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7-01-06 20:13

ㆍIP: 118.xxx.100

떡국은 드셨나요,

새해 첫날 떡국을 먹었다. 막내가 일찍 일어나 정성껏 끓여준 떡국이다.
막내가 아프고부터 아침은 대게 혼자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생활 방식이 아침형인 소운은 아침을
꼭 챙겨 먹는 버릇이 있지만, 저녁은 간단히 넘기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반대로 막내는 아침을 먹지
않고 저녁은 꼭 챙겨 먹는 편이라, 같이 있어도 식사를 같이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떡국을 끓여서 아빠 아침을 꼭 챙기라는 당부를 큰딸이 하는 것을 얼핏 들었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새해 아침 떡국을 기다리기는 했다.

떡국은 고기에 버섯에 은행까지 들어 있어서 보기에도 근사했고 맛도 좋은 편이었다.
떡국을 먹다 문득 가시고 없는 어머니 생각을 했다. 새해 아침이면 어김없이 떡국을 끓여 주시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린 건 떡국에 푸짐하게 들어간 고명 때문이리라,
전쟁통에 아버지와 헤어져 어린 우리를 이끌고 힘들게 둥지를 튼 곳은 피난 수도 부산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어린 삼 남매를 먹이고 기르셨는지, 아무튼 그때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궁핍했다.
지금이야 분식집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떡국이고 흔한 음식에 속하지만, 예전에는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떡국에 고기를 넣은 다는 건 사치였고,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떡국을 끓여 김 가루를 살짝 뿌려 내기만 해도
탄성을 지를 만큼 대접을 받던 음식이 떡국이었다.

잔칫집에서 국수를 내듯, 설 날이면 내는 떡국도 단순한 음식의 의미를 넘어 상징성이 있는 음식이다.
한해를 잘 넘긴 감사함과 앞으로 다가올 새날들 앞에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국수는 길게 늘어진 국수 가락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국수 가락 같이 장수 하시라는 의미가 담겨 있듯,
떡국도 긴 모양의 가래떡에 의미가 있고 하얀 백색의 순수함에 의미를 두어 새해맞이 첫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얀 떡국에 살짝 얹은 고명이 어우러져 떡국은 모양이 아주 담백해 보이기까지 한다.
떡국에는 요란한 반찬이 필요치 않다. 장독에서 꺼낸 김치를 썰어내면, 더 이상의 반찬은 오히려 부담스럽다.
새해 첫 음식으로 이보다 정갈한 음식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떡국에 들어가는 필수적인 고명을 들라 하면 까만 김 가루와 노란 계란 지단이 전부이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지만 까만 김 가루가 뿌려지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생활에서 宇宙의 循環 원칙을 충실히 따랐고 음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陰과 陽과 木, 火, 土, 金, 水, 生長收藏의 원칙을 알게 모르게 철칙같이 지켜 온 것이 우리의 삶이었다.
하얀 떡은 陰陽五行에서 金에 해당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치우치면 균형이 깨지게 된다. 金에 相生인 水의 색이
까만색이고, 하얀 떡국에 까만 김 가루를 뿌리면, 치우침이 없는 좋은 음식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조화의 색인 土(노란 계란 지단)까지, 이런 떡국은 음식이라기보다는 한해를 맞는 儀式이라 해도 좋다.

세끼 끼니도 걱정해야 하는 피난지의 고달픈 삶에서도 어머니는 새해 첫날에 떡국을 잊지 않으셨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한 해 동안의 모든 나쁜 것들을 백색의 하얀 떡국으로 씻어 내고, 음양이 조화된 떡국으로 새날을
맞으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이미 가시고 난지 한참을 지난 지금에야 깨우치다니!
고기가 듬뿍 들어간 떡국을 먹으며 멸칫국물에 끓여 낸 어머니의 소박한 떡국이 새삼 그리운 까닭은
이런 염원이 담긴 사랑이 목마름 때문이리라,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촛불을 드신 분이나, 태극기를 드신 분이나, 떡국은 드셨을 것이다.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지는 말자, 각자 진영의 입장에서 자신이 순백색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백색의 떡국에 까만 김 가루를 뿌려야 멋진 떡국이 되듯, 상대의 존재가 없다면 조화의 상실이고
자신의 존재 가치도 언젠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우주의 진리이다.
자신만이 정의라고 생각하셔도 좋다. 다만 까만 상대방을 내 위에 살짝 곁들여야 상생의 득을 얻는다는
떡국의 가르침은 잊지 않으셔야 한다.
추운 광장에서 촛불을 켜거나, 태극기를 드실 때,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끓여 주시던 따끈한 떡국이 그리우실 것이다.
우리 모두 어머니의 사랑을 되새기시며, 하얀 떡국에 까만 김 가루를 뿌려 상생의 길을 걸어보자

떡국은 드셨나요? 소운/박목철

하얀 가래떡
곱게 썰어 뽀얗게 끓여내고
온갖 소망(所望) 고명으로 얹어
의식(儀式) 치르듯 떡국을 내셨지요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 하시며,

한해를 잘 보낸 안도감에
흐뭇해하시던 모습
떡국의 뽀얀 김에 서리던 그느르심
주름 늘며 옹이 되어 가슴에 남았습니다.

丁酉年 아침
세월에 밀려 깔깔한 입맛으로
떡국을 먹었습니다
멸치 대신 듬뿍 들어간 고기 하며
색색(色色)의 고명들
풍요(豊饒)야 넘쳐 나지만
빈자리 사무치는 그리움
또, 한 살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해를 깨치는 닭 울음소리
당신은
놀란 가슴 달래 줄
따끈한 떡국은 드셨는지요?

* 뜻풀이,
고명 - 음식의 모양과 맛을 더하기 위해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의 우리 말,
그느늘다 - 돌보고 보살펴 주다. 의 우리 말,
옹이 - 가슴에 맺힌 감정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우리 말,

정찬열 2017-01-06 21:12	소운 작가님! 작가님의 "떡국은 드셨나요" 좋은 글을 배독하니 어릴적 어머님이 닭게장에 끓여주신 떡국 생각이 나네요 떡국에 고기는 꿩고기가 원조라는 데 꿩이 맘데로 구할수가 없어 꿩대신 닭이라했다고 하더군요. 내가 성장하면서 직접 꿩을 잡아다 해먹어보아도 어머님이 해주신떡국에 그맛이 찾아볼수가 없데요 떡국의 가르침 의미깊게 세겨답습니다. 늘 편안 하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김경렬 2017-01-07 01:23	막내 따님의 사랑어린 정성! 새해 떡국을 맛나게 드셨습니다. 글을 배독하며 문득 어릴때가 생각 납니다. 유독 별식을 할때마다 우리집에 한그릇씩 가져오는 집이 있었지요. 고기와 계란은 구경도 못하던 시절, 그집 떡국은 고명도 침이넘어 갈 만큼 예쁘고 푸짐 했지요. 덕분에 즐거운추억 여행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석희 2017-01-07 03:04	소운님! 한 살 잘 잡수셨군요. 저도 한 살 잘 먹었습니다만 그 한 살에 이토록 깊은 의미가 묻혀있군요. 많은 공부에 감사드립니다.

박목철 2017-01-07 10:17	《Re》정찬열 님 , 꿩고기가 든 떡국은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냉면에도 꿩고기를 사용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꿩을 직접 잡아서 드셔 보셨다니, 젊은 패기가 넘치는 작가님 모습이 그려집니다. 우리 아이들도 이 다음에 우리와 같은 추억을 얘기 할 거리가 있을지 의문이 드네요, 풍요롭지는 못해도 정이 넘치던 시절, 작가님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기 바랄게요,

박목철 2017-01-07 10:20	《Re》김경렬 님 , 우리가 어릴 때는 이웃집에서 음식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많았지요, 어머니 께서도 별식을 하면 넉넉히 하고, 당연히 이웃에 돌리곤 하셨습니다. 지금은 혹 귀찮은 관계로 엮이는 게 싫어서 이웃을 애써 외면합니다. 올해에도 건강하시고 문운이 빛나시기를 바랍니다. 김경렬 작가님,

박목철 2017-01-07 10:22	《Re》이석희 님 ,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때 부터인가 제 나이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나이 더 드는게 싫은 탓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 한해도 멋진 글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작가님,

백낙은 2017-01-07 11:49	소운 작가님. 열어 보여주신 떡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면서 오늘 다시 떡국을 먹어 볼까합니다. 그런데 요즘 계란값이 금값이라 걱정입니다. 옛 어른들이 의도하신 심오한 뜻과 진리가 그냥 잊혀질까 걱정입니다. "한해를 잘 보낸 안도감에 흐뭇해하시던 모습 떡국의 뽀얀 김에 서리던 그느르심 주름 늘며 옹이 되어 가슴에 남았습니다." 다시 되색임질 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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