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락호
ㆍ작성일	2007-10-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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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을 달리고 있는 자전거 (수필글)
<가슴속을 달리고 있는 자전거 (수필글)

/ 김락호 시인

며칠 날씨가 화창했다. 적당한 바람도 쐴 겸, 연록으로 자라고 있을 가로수 잎의 크기도 가늠할 겸, 잠시 차를 몰고 거리로 나갔다.
벌써 잎들은 다 자라 바람이 불 때 마다 큰 잎을 흔들거리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여름이 옴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천변길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잠시 차를 세웠다.
창문을 열고 맑은 바람을 쐬고 있는데 옆으로 휙~ 하니 무엇인가 지나갔다.
운동복을 입은 노신사였다. 칠십은 넘어 보이는 나이에도 건강을 위해 자전거로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동안 잊고 지내면서도 한번 씩 스멀거리며 내 가슴을 눌러오던 옛 기억이 또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1972년 여름, 하늘을 향할 것만 같은 긴 도로가 가파르면서도 활처럼 휘어진 길을, 화목을 실은 트럭한대가 지나가면 세상은 온통 흙먼지로 뿌연 해 졌다.
하루에 서너 번 다니는 버스와 삼륜차 몇 대가 전부였지만 그때는 그 길이 왜 그리도 넓어 보였던지, 지금의 느낌으로 치자면 아마도 100M 달리기를 위해 흰 가루를 뿌려놓은 학교운동장에 서서 도착점을 향해 멀리까지 뻗어 있는 길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듯하다.

한 시간을 걸어서 중학교를 다녀야하지만 도시락을 싸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물론 쌀이 없어서였겠지만 늘 상 있는 일이다 보니, 그쯤은 이미 흙길을 지나다 밟히는 돌멩이만큼이나 하찮은 일이 되어 버렸다.
그날도 허기진 배를 등짝에다 붙이고, 소나무 잎처럼 짧은 머리에서 송골송골 맺혔다 굴러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책가방을 던지듯 방에다 내려놓고 부엌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찾아보았지만, 빈 솥뚜껑만 요란한 소리를 낼 뿐 뱃속에서 요동치는 허기진 고함소리를 대신할 것을 찾기엔 별 소득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허연 밀가루뿐이었다.
밀가루 한 대접에 물 한 컵, 소금 약간, 사카린 두어 덩어리를 넣고 반죽을 해서 풍로 위에프라이팬을 올려놓았다. (요즘에야 이런 것을 먹는 이가 없으니 모르겠지만 잘만 만들면 바삭하면서 고소한 맛이 나는 누런 밀가루개떡이 된다.)
대충 때운 오늘에 점심이었다.
배가 고팠으니 맛이 더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것이 왜 그리도 입에 찰싹 감기며 군침 돌게 하던지...
일단 배가 든든해지니 무엇을 하며 놀아야 하는지가 고민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무도 몰래 혼자 가지고 놀 심산으로 헛간에 숨겨둔 공이 생각났다.
‘아니! !!!!!! 이게 머야? !!! ’
헛간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의심하게 하는 번쩍거리는 물체가 눈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꿈뻑꿈뻑 거리며 눈을 의심하다가 다시 한 번 그것을 쳐다봤다. 아무리 눈을 의심하며 쳐다봐도 진정 그것은, 당시 학생들이 하나쯤은 갖기를 소망하는 그 유명한 삼천리 자전거였다. 그것도 스텐으로 몸체를 치장하고 번쩍번쩍 광체까지 내뿜고 있었다.
‘분명 새것이다. 그럼 혹시 아버지가 학교 갈 때 걸어 다니기 힘들까봐 생각해서 사다놓으신 나를 위한 선물? 그럼 시운전을 해봐야지.’
입이 찢어진다는 말이 아마도 이때 필요하기에 만들어 놓은 말인 듯 했다. 너무 좋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 다더니 바로 내가 그런 심정이었다.

사알~살 아주 조심조심 자전거를 끌어내 마당에 두고는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너무 멋진 놈이었다.
‘그래 너는 오늘부터 나의 애마다.’
들뜬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큰 쉼 호흡을 한번 하고는 이놈을 타 볼 참으로 우선 밖으로 끌고 나갔다.
한 쪽 다리를 올려놓고 다른 쪽도 페달에 올려놓는데 어째 생각보다 자전거가 큰 느낌이었다. 발이 제대로 페달에 닿지를 않아 발끝만 겨우 닿았다 떼었다가 반복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생긴 자전거인데...’
타보고 싶은 욕심에 집 옆으로 비스듬히 나 있는 언덕길 꼭대기까지 한참을 끌고 올라가자 온몸은 땀으로 빨래를 하고 있었다.
길 저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정상이었다.
솔직히 이 길은 반듯한 모양새가 아니었다. 휘어져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았고, 생각 외로 꽤나 가파른 길이었다.
‘자빠지면 어쩌지... 이러다 자전거 부서지는 것 아닐까?’
한참을 망설이다 한쪽다리는 페달에 올려놓고 서서히 한쪽발로 중심을 잡고는 앞을 향해 힘차게 발길질을 하자 자전거는 쏜살같이 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내가 두발로 굴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아래로 내리막치고 있었다.
‘이얏~호!’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를 외치며 달리는 그 기분이란...
그 시간만큼은 난 이세상의 누구보다도 행복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꿈같은 행복도 잠시, ‘이게 웬일인가...’ 속도가 너무 붙고 있었다. 자전거는 점점 작은 내 몸무게로는 제어하기 힘든 속도를 내며 아래를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급기야 앞이 캄캄하고 손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자전거는 논두렁 한복판에 내 던져지고 말았다.
하늘을 원망하듯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자전거는 그 형체를 잃어버린 후였다. 체인은 벗겨지고 은빛 광채를 내던 몸체는 군데군데 벗겨지고 질퍽한 흙이 잔뜩 묻어서는 새 자전거라기보다 누군가 타다가 더 이상 굴러가지 않아 내다 버린 고물 자전거라고 해야 말이 더 맞을 몰골이었다. 한 마디로 “아비규환(阿鼻叫喚)” 그 자체였다.
빈 바퀴만 돌고 있는 자전거를 바라보며 그저 흐느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짧은 희열과 행복감이 한숨과 고통으로 변하며 이제는 부서진 자전거로 인해 발생될 앞으로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자전거를 수습해서는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두고는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왔다. ‘이 일을 어쩐다. 어찌해야하지?’
아버지가 알면 분명 몽둥이찜질을 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임을 알기에 일단 집을 나와 숨어서는 밤까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한참을 담 모퉁이 아래에 몰래 숨어 기다리고 있자니 밤늦게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며 들어오셨다. 아마도 술을 거하게 드신 모양이었다.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는 몸이 달빛아래에서 이리저리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올수록 가슴은 조여오고 몸속에서는 셀 수 없는 천둥번개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런, 난 오늘 죽었다.’
손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렸고, 아버지의 분노한 고함소리가 나를 찾는 것 같은 환청마저도 귓전에 울려댔다.
평소 매를 때릴 때면 사용되던 지개 작대기, 부지깽이, 마당 빗자루와 아버지의 큰 주먹이 눈앞에서 휙휙 날아 다녔다.
한참을 숨어서 지켜보는데 부엌에서 어머니가 나오셨다.
‘혹시 또 나 때문에 엄마까지 아버지한테 혼나면 어쩌지...’
평소의 아버지 성격으로는 지금 나가면 온몸이 성한 곳 없을 정도로 매를 맞을게 뻔했고, 반면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머니 또한 잘못된 교육 운운하며 호된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얼마를 지났을까.
문득 온몸이 가려움으로 견디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무서움에 온 신경을 아버지에게 보내는 와중에 모기란 놈들이 내 온 몸에 붙어서는 강제로 헌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을 숨어있느라 저녁도 못 먹은 탓에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간지러움의 고통은 상상 속에서 매를 맞는 공포보다 곱절의 고통으로 변하며 어린 몸을 꼭죄어 오고 있었다.

주변은 캄캄해지고 청아한 달 주위를 감싸는 달무리가 어찌나 슬픈 모습으로 다가오던지, 한참을 소리죽여 눈물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가 헛간으로 가시는 게 아닌가!
숨소리 한번 깊게 내지 못하고 눈은 아버지의 모습만 따라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보시더니 바퀴를 돌려보고 이리저리 만져보다가는 나오시는 게 보였다.
‘드디어 올 것이 오는구나.’
떨리는 몸을 안고 지켜보는데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야!’
큰 고함소리로 먼저 나를 찾을 줄 알았는데 아무 일 없는 듯 소외양간으로 향하고 계셨다. 돼지우리까지 둘러본 후에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흘깃 나를 찾는 것 같았다.
“이놈 어디 갔어?”
“글쎄요. 아까부터 안보이던데요.”
어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꾸를 하고는 부엌으로 다시 들어 가셨다.
“어디를 가서 이 시간까지 안 들어와? 얼른 찾아서 밥 먹여.”
‘얼른 찾아서 밥 먹여? 그럼 별일 없이 지나가려나?’
밤이슬이 내리는 시간까지 보이지 않는 아들이 궁금해 큰 소리로 부르는 대신 어머니께 한마디 툭 던지고는 마당에다 모기향을 피우기 시작하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아버지가 눈이 안 좋으신가? 아니면 자전거 부서진 게 별거 아닌가?’
‘감사합니다. 하느님, 부처님, 성모마리아님, 또 없나? 그래,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속으로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모든 이들의 이름에다 대고 고맙다는 말을 외치며 당당히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엄마 밥 줘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혼자 신나서는 떠들어 대는데 뒤에서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놈? 너 이리와 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가 캄캄해져 왔다.
“야 이놈아? 너 오늘 하루 종일 뭐했어?”
“네? 그게 저........”
‘이제 날벼락이 떨어지겠지. 오늘이 제삿날이구나...’
“쇠꼴은 베어왔어? 돼지우리에 풀은 넣어줬어?”
이런 세상에.... 부서진 자전거 걱정에 쇠꼴 베어 놓는 것도, 돼지우리에 풀 넣어 주는 것도 오늘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대꾸 없이 고개만 떨구고 있는데 아버지가 재차 같은 질문을 해왔다.
“아~~~니~~요....!!!”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가 바쁘게 번개같이 후다닥 지개 작대기가 등짝과 머리를 사정없이 강타하더니 우뢰와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뭐한다고 그 작은 일 하나도 안 해놔? 그래놓고 네놈은 배고프다고 밥 달라는 소리가 나오냐. 이놈?”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온 동내 개들까지 일제히 거친 소리를 내며 난리를 쳐댔다.
실컷 맞으면서도 그 맞는 이유가 겨우 소와 돼지의 먹이를 하루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이지, 정작 비싼 자전거에 대한 일은 그냥 묻어두시는 것에 대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아버지의 꾸지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자전거를 고장 낸 것에 대해서는 두들겨 맞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분명 반쯤은 죽을 줄 알았는데...’
저녁 내내 그렇게 한참을 두들겨 맞고 나서야 한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그날 자전거에 대해서 혼나지 않은 이유가 명백히 있었다. 내가 논두렁에 처박으며 고장 냈던 자전거를 사실은 그 전날 잔뜩 술에 취해 자전거를 타고 오시던 아버지가 먼저 넘어뜨렸던 것이었다. 술기운 때문에 그 일로 자전거가 고장 났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정작 내가 고장 냈다는 것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있었고 소 우리와 돼지우리가 텅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는 하루 종일 굶긴 가축들에 대한 응징을 내게 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자전거는 나를 주려고 산 것이 아니라 아버지 본인께서 타고 다니시려 사 놓은 것이었다.
그 후로 혼나는 것이 두려워 자전거를 고장 내 놓았던 그 일은 끝까지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며 가슴에 묻어 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집안의 교통수단인 애마는 가족과 친구만큼이나 값진 보배로 여긴다.
그 옛날엔 그리도 소중히 여기던 자전거지만 요즈음 자전거는 어린애들에게 선물로 줘도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을 정도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차라리 킥보드나 롤러블레이드를 사줘야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나.
그러나 그 흔한 자전거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고 거리를 지나쳐갈 때, 자전거를 타고 스쳐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난 여전히 가슴에 찬바람 한 줄기가 차고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최평균: 그 시절 자전거는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 대상 1호 이었었죠.
저도 자전거는 중학교때 배웠는데 여러번 바퀴가 찌그러져
자전거 수리 전문가인 막내 외삼춘의 손을 빌리다 나중에는
직접 수리도 했었죠.
김락호 이사장님의 글을 읽다 보니 내 어린시절의 막내 외삼춘이
그리웁게 떠 오르는 군요.
마치 나의 유년의 기억인양.......
행복한 가을날 되세요. -[10/10-00:15]-

팝콘과 콜라의 맛은 영화의 질과 반비례한다.

짝퉁 봉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