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락호
ㆍ작성일	2007-08-0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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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봉선화
짝퉁 봉선화

한여름 살갗을 헤집고 들어오는 햇살은 누구나 싫어하는 여름날의 필요악일 것이다.
오늘처럼 장맛비가 오는 날이면 바래버린 사진처럼 기억 저편에 숨어있던 추억이 슬금거리며 여름을 찾는다.

몇 년 전 일이다.
장맛비가 3일 동안 소리도 없이 종일 내리기에 그동안 생각해온 일을 오늘은 행동에 옮기기로 하고 사무실에서 30분 거리에 마련해둔 농가 주택으로 차를 몰았다.
우비와 호미를 들고 그동안 가꾸어온 화단을 바라보며 아직 채 가꾸어놓지 못한 한 귀퉁이로 향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완성해놓지 못한 곳이 못내 찜찜하던 차였기에 오늘은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큰맘 먹고 그곳을 완성해놓을 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누가 씨를 뿌린 것도 아닌데 봄이 되면 집 주변이며 주차장이며 텃밭 주변에 무분별하게 봉선화가 자라고 있었다. 개량종인지 어릴 때부터 보았던 봉선화는 아니었지만 꽃도 큰 송이로 필 것 같았다.
저것들을 화단에 옮겨 심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화단 한곳을 무엇으로든 매워야 하는데, 아무 곳에나 자라 있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서 죽고 주차하는 차에 쓰러져 죽게 되는 등 서러움을 받지 않아도 될 것들이 설움을 받는 것 같아 아쉬운 맘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비가 오면 꽃을 옮겨심기가 더 좋았다. 단단했던 흙이 비에 젖어 몇 번의 호미질로도 그 뿌리까지 모두 파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꽃도 옮겨 심은 후에 새롭게 적응하는 시간을 줘야 하는데 비가 올 때 옮겨 심어 놓으면 그 적응기간이 짧아 생존할 확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가끔 꽃이나 묘목을 옮겨심을 때면 비오는 날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차가 다니는 큰 도로에서 집까지는 대략 200미터 정도 흙길이 뻗어있었다. 처음엔 시멘트로 포장을 할까도 생각을 했었지만 농가주택의 맛이 사라질 것 같아 처음 살 때 그대로 흙길을 살려두었다.
길옆으로 해바라기며 분꽃, 맨드라미 같은 여름 꽃들을 심어놓으면 한여름 짜증 섞인 날씨 속에서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마음의 청량제도 되고, 찾아오는 손님들의 눈도 즐겁고 하여 해마다 길옆에는 가늘고 길게 꽃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사실 꽃길을 제외하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그 화단이라는 것이, 집안에 예쁘게 꽃단장 해놓은 것이 아니라 주택 옆으로 딸린 밭을 개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보니 화단으로서의 용도보다는 다용도 텃밭으로서의 역할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온갖 과실수며 여름작물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을 모두 심어놓고는 그래도 남아있는 구석이 있으면 길게 뻗어 올라오는 옥수수를 심어놓고, 그래도 남을라치면 그곳에다 꽃을 심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농사라기보다는 심는 재미며 여름에 손님 접대용으로 심은 것들이지만 솔직히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한번 무언가를 심어놓으면 손봐야 하는 정성은 똑같이 들었다.
하루 종일 화초밭이며 과실수에 매달린 벌레를 잡고 잡풀을 뽑아내다보면 하루해가 어찌 넘어가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가 어둑해져 오곤 했다.
일하느라 흘린 땀은 집 옆으로 흐르는 계곡에 들어가 씻어 내렸다. 계곡물에 들어가면 어린 시절 땀 뻘뻘 흘리며 집에 도착해 아이스깨끼를 하나 먹었을 때 그 시원함 같은 맛을 다시 느끼는 듯하여 더운 날을 골라 일부러 일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그날도 그렇게 비오는 하루를 농가주택 가꾸는데 투자를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옮겨 심어놓은 봉선화가 잘 자라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시내로 돌아왔다.
여름에는 집식구들이 피서지 온 기분이 든다며 농가주택을 즐겨 찾았고 어머님도 자주가시는 편이라 모두가 신경을 참 많이 쏟아 넣고 있었다.
그러고는 일이 바빠 한 일주일정도 그곳을 잊고 보내는데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예 아범아, 자네 물봉선화는 왜 화단에다 심어 놓은 계여” 하시는 거다.
“참네. 엄니 저 봉선화 좋아해요. 왜 엄니는 봉선화 싫으세요?” 여쭤보니 어머님 하시는 말씀이 “별걸 다 좋아하네. 화단에 심은 거는 내가 대부분 뽑았다” 하신다.
이런 이게 먼 소리란 말인가...
‘어머님도 화초를 무척 좋아하셔서 일부러 꽃이며 야채들을 가꾸는 것에 즐거움을 삼으시는 분인데.....거참 이상하네’
혼자 중얼거리며 내일은 토요일이니 가서 하루 자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늦은 오후쯤 농가주택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차안에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봉선화를 뽑아 버렸다는 어머님의 말씀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를 주차하고 집으로 들어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한손에는 호미를 들고 화단으로 가보는 순간 머리가 휭해졌다.
이게 웬일인가! 며칠 전에 정성을 다해 심어놓은 것이 내가 바라던 봉선화와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그제야 어머님의 말씀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해가 됐다.
꽃이 피려면 아직 멀었는데 옮겨 심어놓은 봉선화는 벌써 꽃이 펴 있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봉선화가 아닌 동화에 나오는 마녀고깔 같이 생긴 아주 작은 꽃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허탈함을 감추고 앉아 비오는 날 애먹으며 버린 시간이 아까워 한숨만 쉬고 있는데 동생이 어머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화단에 앉아있는 날 보시고는 어머님이 한마디 툭 던지신다.
“이보게. 그 물봉선화는 지천인데 뭘 화단에까지 심었어.” 하신다.
멋쩍은 표정으로 “엄니, 난 이게 가을에 손톱에 물들이는 그 봉선화인줄 알았지 머유.” 했더니 어머니도 어이가 없으신지 한참을 날 쳐다보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셨다.

물론 다른 곳에서 모종을 해와 그해에 봉선화 꽃을 보기는 했지만 막 싹이 튼 어린 물봉선화는 봉선화와 너무도 닮아있어 그 후로도 해마다 착각을 하곤 했다.
국립공원 안에 지어진 집이라 제약이 너무 많아 지금은 그 농가주택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 올해는 시내의 집 화단에 모종을 사와 봉선화꽃을 심어놓았다.
이제는 물봉선화와 착각을 할 일은 없어졌지만 같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하나는 여인네의 손톱위에서 첫사랑을 속삭이고 또 하나는 지나는 이들의 관심에도 들지 못하니...
그래서일까! 장맛비가 오는 7월이 되면 사람과 가까이 있고 싶어 피어난 듯 한 그 가늘고 새초롬했던 물봉선화의 모습이 문득 생각나고 더 그리워진다.

최 선경: 안녕하세요. 더위속에서도 흙냄새 풍기는 이야기는 여전히 정겹네요. 비에 말랑해진 흙더미들과 일년초들에게 잠시 빠졌다 갑니다. 짝퉁 봉선화도 있군요. 회장님 글을 통해 또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네요. 건강하시고 수필 서재에도 가끔 얼굴 보여 주세요. -[08/02-15:38]-

이동인: 김락호 시인님 안녕하세요.
지난번 행사때 심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을 선정해 주셔서 좋은 평으로 행사를 마감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곳 대한문인협회 자주와서 선생님의 글을 보며 많은 배움가질 예정입니다.
안녕히 게세요. -[08/03-23:03]-

최평균: 물봉선화라는 것이군요. 제가 개울가에서 가끔 보는 봉선화가...
사람도 겉은 똑같은 완소남인데 머리에 든것 없이
부모님 속만 썩인다면, 그 물봉선화 같을것 같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회장님 잘 지내시고 계시지요?
오랜만에 회장님글 즐감하고 갑니다. -[08/05-17:34]-

김락호: 요즘은 시내에서 바라보는 하늘보다 촌부가 되어 맑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싶을때가 참 많아집니다.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또 한편으론 흐르는 세월에 퇴색해져가는 젊은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지나온 시절을 되돌리며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합니다.
다녀가신 소중한 님들께 인사 여쭙니다.
감사합니다. -[08/07-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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