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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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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채영제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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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채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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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8-03-06 1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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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개작) 타잔의 울음소리가 아파트를 붕괴시켰다
타잔의 울음소리가 아파트를 붕괴시켰다
1
내가 일곱 살 되던 해,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는 그때도 화물트럭 운전을 하였는데 한 번씩 짐을 싣고 장거리 운행을 나가면 보통 일주일 이상을 차 속에서 지내셨다.
엄마는 그럴 때면 집을 나가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장거리 운행에서 돌아와 엄마가 사라진 것을 알고 여기저기 수소문 한 끝에 어디선가 엄마를 찾아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엄마를 어디에서 어떻게 데리고 왔는지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알게 되었다.
그것은 동네 아이들이 자기 엄마에게 들은 것을 전해 주는 말이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장거리여행을 나갔을 때 이웃 동네에 사는 춤 선생의 집에 가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왜 나만 모르고 있었을까…….
친구 갑동이는 내게 이런 말을 살짝 귀띔해 주었다.
“ 우리 새야(형)가 그라는데, 너그 엄마는 ‘반금련(潘金蓮)’이고 아빠는 ‘무대(武大)’라고 하더라.”
갑동이의 형은 소설을 공부한다는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나는 ‘반금련’이 무언지 또 ‘무대’가 무언지 전혀 그 의미를 몰랐다. 다만 엄마는 아이유처럼 얼굴이 예쁘고 하얀 피부색에 키도 늘씬한 반면 아버지는 착하기는 하지만 키가 작고 말랐으며 얼굴조차도 못생기고 까무잡잡했으므로 아마도 그 형이 그렇게 별명을 붙였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날 밤, 아버지와 엄마는 밤새도록 싸웠다.
나는 겁이 나서 작은방으로 건너가 잤다.
아버지의 말소리는 조곤조곤하여 잘 들리지는 않았는데, 엄마의 목소리는 거의 고함 수준이었으므로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무서워 오돌오돌 떨며 이불을 푹 뒤집어 쓴 채 엄마가 아버지를 향해 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다.
“ 나도 행복해 지고 싶단 말이야. 너처럼 남자 구실도 못하는 놈이랑은 더 이상 살기 싫어.”
“ 여보. 왜 이래 응. 제발 우리 지후를 위해서라도 그러지 말어. 부탁이야.”
“ 흥, 지후. 지후가 당신 아들이야? 웃기고 있네.”
“ 당신 지금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있어?”
“ 문지방에 풀칠밖에 못하는 주제에…….”
“ 애가 듣겠어. 누가 뭐래도 지후는 내 아들이야.”
나는 아버지와 엄마가 싸우면서 서로 주고받는 소리를 듣고도 도저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밤새 엄마를 달래어 그 다음날 나를 근처에 사는 친척집에 맡겨놓고 엄마와 같이 장거리 운행을 떠났다.
엄마는 아버지 옆 좌석에 앉아 나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 지후야. 엄마가 아빠랑 멀리 여행 갔다 오게. 그동안 아주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 아빠랑 돈 많이 벌어 맛있는 것 많이 사오게.”
“ 그래. 엄마. 아빠. 꼭 맛있는 거 꼭 많이 사와야 돼.”
이렇게 아버지는 엄마의 바람기를 잡기 위하여 어린 나를 먼 친척집에 맡겨놓고는 늘 화물차에 엄마를 태우고 장거리운행을 다녔다.
아버지와 엄마는 한 1년간을 그렇게 실과 바늘이 되어 사이좋게 늘 붙어 다녔다. 어린 나의 눈에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여 동네 친구들에게 늘 자랑을 하였다.
아버지도 화물 운송 사업이 잘 되어 돈을 많이 벌었다. 그래서 단독주택 전셋집에서 근사한 아파트를 사서 우리는 이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자마자 아버지와 같이 다니지 않겠다며 변덕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였다.
남들은 부부간에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데 화물차를 타고 다니니 너무나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몇 번이나 설득하다가 더 이상 고집을 꺾지 못한 채 “ 내년에는 틀림없이 멋진 승용차를 사줄 테니 그동안 밖으로 나다니지 말고 집에서 지후나 잘 키워라.”고 당부하였다.
2
엄마는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꽃꽂이를 한다거나 비디오를 빌려 본다거나 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30대 후반쯤 되는 아저씨 한명이 우리 아파트로 찾아왔다.
엄마는 그 아저씨를 보고 반색을 하며 “ 어머, 오빠. 우리 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라며 나를 보고 인사를 시켰다.
“ 지후야. 외삼촌이야. 인사해.”
나는 처음 보는 외삼촌이라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꾸뻑하였다.
그 아저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지갑에서 빳빳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내손에 꼭 쥐어주었다.
“ 아이구, 우리 지후로구나. 내 잘 모르겠지? 너 갓난아기 때 보았는데 참 많이도 컸네!”
엄마는 그를 반갑게 맞으면서 물었다.
“ 이렇게 갑자기 오니 뭐 대접할 게 없네. 삐루(맥주)라도 한 병 사올까?”
“ 그 좋지. 오랜만에 삐루나 한잔 하자.”
그날 나는 그 아저씨가 준 만 원짜리를 들고 나가 친구들에게 ‘외삼촌이 오셔서 용돈을 얻었다.’며 자랑을 하고, 근처 오락실에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서도 한참을 지난 후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
그 아저씨는 거실 소파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엄마는 갓 샤워를 하였는지 샤워복을 입은 채 물기 있는 머리카락을 타월로 닦고 있었다.
그날. 아저씨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갔다.
아저씨는 나에게 “ 지우야. 외삼촌이랑 같이 잘래?” 라고 물었으므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아저씨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 무엇인가에게 자꾸만 끌려들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꼭 아저씨가 아버지보다 키가 크고 잘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큰방에서 잤다. 엄마는 침대 위에서 자고 나와 아저씨는 침대 아래에서 잤다.
나는 아저씨의 체온을 느끼며 이내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는데, 새벽녘인가... 꿈결에 아프리카 초록빛 밀림 속에서 침팬지 한 쌍이 타잔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 나무, 저 나무로 건너뛰어 꽥꽥, 대며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잠에서 깨어났다.
방안은 어두컴컴한데 맞은 편 아파트에서 날아온 불빛들이 창틈으로 기어 들어와 침대 위를 벌레처럼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곳에는 꿈속에서 보았던 침팬지 두 마리가 그림자처럼 서로 엉겨 붙어 있었다.
때로는 마치 레슬링을 하는 것처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잠시 후, 위에 앉아있던 그림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타잔의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그것은 엄마의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이내 밑으로 툭 떨어졌다.
그 후부터 아저씨는 아버지가 장거리 운행을 나가 집을 비울 때면 수시로 찾아와 그렇게 자고 갔다.
3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엄마는 또 가출을 하여 몇 달째 행방불명이 된 상태에 있었다.
아버지의 연락을 받은 할아버지 내외와 삼촌들이 우리 아파트로 몰려와서 집안회의를 하였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꾸짖듯이 입을 여셨다.
“ 이 어리석은 손(孫)아. 어쩌자고 여자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나 그래. 자식이 학교에 들어가는데도 집을 나가는 어미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냐?”
“ …….”
“ 그래, 어데 짚이는 데는 없냐?”
“ ……. 저가 최근에 일이 많아 자주 집을 비웠는데, 그 안에 어떤 남자가 우리 아파트에 들락거렸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어디에 사는 누군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 이런 답답... 쯧쯧. 그러면 얘는 알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는 나를 돌아보시고
“ 지후야. 누가 왔다 갔느냐?”
“ ……. 외삼촌요.”
“ 외삼촌? 그래 자고 갔느냐 ?”
“ ... 네.”
이때 옆에 있던 큰 삼촌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 형님, 지우 외삼촌은 어데 살아요?”
“ 외삼촌이라고는 없지.”
“ 안 되겠어요. 저가 아는 흥신소가 있으니 일단 의뢰하여 찾아보도록 합시다.”
그 며칠 후 밤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 정문을 들어서서 바라보니 아버지와 삼촌들이 빙 둘러 서있고 그 속에 엄마와 그 아저씨가 속옷 바람으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나는 몇 달 만에 처음 보는 엄마가 반가워서 “엄마아.” 부르며 달려갔다.
그러나 엄마는 매정하게도 “ 저리 가.” 라며 그냥 한쪽으로 떠밀어 버리는 것이다.
엄마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아빠와 싸워도 내한테만은 그러지 않았는데…….
나는 너무나 서럽고 억울하여 아빠에게 달려가 울었다.
큰삼촌의 말에 의하면 그날 엄마는 아저씨와 어느 여관방에 투숙하고 있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직근무를 하는 형사 아저씨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뭔가 일이 여의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 글쎄요. 말씀을 듣고 보니 딱하긴 한데요. 그러나 간통죄 고소가 성립하려면 우선 민사상 이혼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호적등본을 고소장에 첨불 해야 우리가 조사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 내일 낮에 법원에 가서 요건을 다 갖춘 후에 고소를 하시죠?”
“ 그러면 저 사람들은 어떡합니까?”
“ 그건 우리로서는 어떻게 하시라고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간통 피고소인도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되기 때문에 고소장이 접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호조치를 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하였다.
“ 집 나간 며느리가 다른 놈과 여관방에 있는 걸 잡아 왔더니 글쎄, 담당 형사가 서류 구비가 되지 않았다고 조사조차도 안 해주겠다고 하네. 하 이거 참. 어쩌면 좋은가? 내가 이것들을 잡느라고 근 보름이나 걸렸는데 말이야.”
잠시 후 담당 형사가 어디선가 온 전화를 받으며 연신 “ 예, 예 ” 하더니 엄마와 아저씨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가 잠시후에 돌아왔다.
담당 형사는 이때까지의 거만한 태도를 싹 바꾸어 공손한 말투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 어르신.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실례지만 피해자와는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 예, 나는 피해자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자식이 가정을 잘못 다스려 이런 일이 생겼는데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 아 그렇습니까. 잘 아시겠지만, 간통죄는 친고죄라서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으면 처벌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소는 당사자 간 이혼이 되거나 이혼소송이 제기된 후에 나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저가 조사를 할 테니 내일 중으로 법원에 가셔서 소장을 내고 접수증을 받아오실 수 있겠습니까?”
“ 예, 그건 염려 마십시오. 저도 과거에 이 회사에 있었던 사람인데 그 정도야 모르겠습니까.”
“ 그런데 만약 저 사람들이 범행을 부인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일단 귀가를 시켜야 하는데요?”
“ 안 됩니다. 절대로 내보내면 안 됩니다. 저 간악한 것들이 밖에 나가면 서로 입을 맞추어 또 무엇을 어떻게 조작할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어르신. 이런 사람들이 밤중에 붙들려 오면 상투적으로 늘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절대 로 그건 하지 않았고 그냥 한 방에 같이 있기만 했다고요... 그렇게 변명을 하면 여자의 동의를 얻어 의사가 신체검사를 해야 하고 ... 질 속에서 남자의 정액을 추출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DNA 검사를 의뢰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생깁니다. 그러니 이 사건은 당사자 중 한명이 자백을 해주든지 아니면 성관계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와서 증언만 해준다면 당사자가 아무리 부인을 해도 판사는 구속을 시켜줄 것입니다.”
4
형사 아저씨는 먼저 아빠부터 조사를 하고 다음에 엄마를 데리고 왔다.
형사 : 저 남자의 이름이 뭐요?
엄마 : 몰라요.
형사 : (웃으며) 모른다...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같이 여관에 들 수 있어요?
엄마 : (눈을 치켜뜨며 ) 그럴 수 있지요……. 서로 스파크만 때린다면.
형사 : 스파크? 흐흐 표현이 좀 리얼하네. 그럼 언제부터 저 남자를 알았어요?
엄마 : 오늘 처음요.
형사 : 어데서?
엄마 : 그딴 거 왜 물어요? 그냥 본론만 말하세요.
형사 : 그딴 거 왜 물어... 좋아. 저 사람과 몇 번 했어?
엄마 : (피씩 웃으며) 생사람 잡지 마세요. 우리 그런 건 절대 안 했어요.
형사 : ... 조사 많이 받아본 솜씬데! 정말?
엄마 : 그딴 식으로 비꼬우지 마세요. 사실이에요.
형사 : 이 여자야. 말 같은 소릴 좀 해. 그 짓 안했다면 왜 여관방에서 벌거벗고 있었어?
엄마 : 땀 흘렸는데 그럼 사워도 못하나요?
형사 : 땀 흘렸다고 ?
엄마 : 그래요. 오늘 처음 카바레에서 저 남자를 만나 몇 바퀴 돌고 나니 땀이나서 목 욕탕이 있는 여관에 간 거예요.
형사 : 가출한 지 몇 달 되었다며?
엄마 : 경찰이 남의 사생활 문제도 간섭하나요? 결혼생활이 지겨우면 나갈 수도 있는 게 아닌가요?
형사 : 그러면 간통사실을 부인한다 이말이지요?
엄마 : 남편이 의처증이 많아 고소를 한 것이니 빨리 내보내 줘요. 나는 잘못한 게 없어요.
형사 아저씨는 엄마가 말하는 대로 ‘다다락’ 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다시 물었다.
형사 : 당신 말하는 대로 다 찍어주게. 그러나 증거가 있는데도 오리발을 내면 검사나 판사 가 밉게 보는 것은 물론이고 피해자에게도 동정을 못 받아.
엄마 : (형사를 쳐다보면서) 아, 증거가 있으면 있는 대로 하세요. 나는 정말 억울해요.
형사 : (빙긋 웃으며) 억울하다... 억울하다고 ?
엄마 : ( ……. )
형사 :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남편이 데리고 온 저 아이는 당신 아들이 아니야?
엄마 : (고개를 돌려 아버지와 나를 쏘아보면서 고함을 질렀다) ... 맞아요. 병신 같은 게 어린 애까지 데리고 와서 지랄하고 있어.
형사 : 아들 이름이 뭐요?
엄마 : 다 암스롱 왜 물어요?
형사 : 자꾸 그렇게 시비조로 말하지 말고 대답이나 해요. 지금 조서에 다 기재되는 거요.
엄마 : ... 박지후(朴志厚).
형사 : 몇 살이지요?
엄마 : 금년에 일곱 살인가…….여덟 살인가... 하여튼 내년엔 초등학교엘 들어가요.
형사 : 당신 가출하는 날, 아들이 입학하지 않았나요?
엄마 : ( ……. )
형사 : 아들 말에 의하면 남편이 집을 비울 때면 늘 저 남자가 아파트에 들어와 살다시 피 했다는데?
엄마 : 형사님. 도대체 왜 그러세요?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라 그랬잖아요. 그렇게 조서를 꾸며 주세요. 자꾸 달달 뽁지 말구요.
나는 형사아저씨가 불러 아버지와 같이 엄마 있는 데로 갔다.
형사 : 꼬마야. 너 몇 살이지?
나 : ... 여덟 살요.
형사 : 이름은 뭐지?
나 : ... 박지후요.
형사 : 아까 엄마랑 같이 있던 아저씨 봤지?
나 : 네.
형사 : 누구야?
나 : 외삼촌요.
형사 : 외삼촌...지금 외삼촌이라 그랬어?
나 : 네.
형사 : 엄마가 외삼촌이라 그랬어?
나 : 네.
형사 : 외삼촌이 아버지를 알아?
나 : 외삼촌은 아버지가 안 계실 때만 오셨어요.
형사 : 그래에. 그래 자고 간 적이 있어?
나 : 예, 늘 주무시고 갔어요.
내가 여기까지 말을 하였을 때, 엄마가 갑자기 일어나 나의 목덜미를 잡아채어 마구 흔들 며 고함을 질렀다.
“ 이 새끼야. 언제 저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왔어? 네 아빠가 거짓말 해라고 시켰지? 맞 지?”
그 소란에 밖에 계시던 할아버지와 삼촌까지 달려왔다. 아버지는 분개하여 소리쳤다.
“ 이 악녀야. 니는 지금 어린 자식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거야. 왜 일을 이 지경으로 까지 끌고 왔어, 응?”
“ 뭐. 악녀? 병신 같은 게. 제법 문자 쓰고 자빠졌네. 그냥 이혼해 주면 될 거 아니야.”
“ 그래 내가 병신이다. 이제 자동으로 이혼이 되니까 더 이상 우리 지후에게 상처를 주 지 말자. 응 ?”
형사 아저씨는 엄마를 데리고 나가 다시 그 아저씨를 데리고 와서 의자에 앉혔다.
형사 : 이름은?
아저씨 : 김을수.
형사 : 직업은?
아저씨 : 예술가.
형사 : 어떤 예술가?
아저씨 : 댄스 교습소.
형사 (기가 찬 듯이 웃으며) : 푸후후...선생. 제비족이구만.
아저씨 : 형사 양반. 말 조심하슈. 나는 예술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말이요. 선생.
형사 : 아, 그래요. 그러면 ...좋아. 선생님.(그대로 워드를 치고)
저 여자와 언제부터 관계를 했지?
아저씨 : (갑자기 돌변하며) 그런데, 왜 반말은 반말이야. 좇도 나는 죄지은 적 없어.
형사(핏대를 올리고) : 욕설은 삼가하고.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당신들은 확실해. 알았어 요?
아저씨 : (묵비권행사) …….
형사 : 그러면, 왜 남의 유부녀와 야밤에 여관방에 들어가 발가벗고 있었지?
아저씨 : 당신 꼴리는 대로 하쇼……. 나는 잘못한 게 없어.
형사 : 당신? 흐흐……! 좋아 (그대로 워드를 치고)
부인한다고 될 문제가 따로 있어. 당신이 그 여자와 여관방에 알몸으로 있다가 피해자에게 현장에서 붙잡혀 왔어. 당신이 이런 식으로 나가면 검사 판사가 악질 로 봐요. 그냥 순순히 자백하는 게 당신 신상에 이로워, 알았어요?
아저씨 : 나는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자라고 해서 같이 춤도 춰주고 술도 마시 고 했을 뿐 그 외는 없어요.
형사 : (허탈한 표정으로) 혼자 사는 여자인 줄 알았다고?
아저씨 : 그래요. 가정이 있는 여자가 카바레에 춤추러 다니겠어요?
형사 : 이 꼬마가 누군지 알겠지?
아저씨 : (힐끗 나를 쳐다본 후) 이 애는 또 누구요? 나는 전혀 모르는 애요.
형사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형사 : 꼬마야. 이 아저씨가 모른다는데?
나 : 아녜요. 외삼촌이라 그랬어요. 아버지가 안 계실 때 와서는 늘 주무시고 갔어 요.
아저씨 : 정말? 내가 네 외삼촌이야? 거짓말하면 큰일 난다. 지금 네 아버지가 엄마를 형무소에 보낼려고 흉계를 꾸미고 있는 거야. 정말이야?
이때 아버지가 아저씨에게 “애에게 공갈 협박하지 마.”라고 소리를 쳤다. 그런데 아저씨 는 아버지를 노려보며 “ 이 병신 새끼가…….” 라며 마치 한 대 칠 듯 한 태도를 보였다. 아버지는 그 위세에 그만 주눅이 들어 뒤로 주춤 물러섰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약한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나서 참을 수 가 없어 그 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외쳤다.
나 : 외삼촌이라 그랬잖아요. 또 내한테 만원도 주고. 우리 집에서 술도 마시고, 엄 마와 같이 침대에서 잤잖아요. 맞잖아요.
형사 : (아저씨를 보고) 이래도... ?
아저씨 : (형사에게 눈을 크게 부라리며) 애먼 사람 때려잡지 마소. 당신들은 지금 엄청 난 짓을 꾸미고 있는 거요. 도대체 당신 모가지가 몇 개야. 나는 뭐 뒤에 사람 이 없는 줄 알아?
형사아저씨는 아저씨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를 불렀다.
“ 지금 저 친구가 댁의 부인이 배우자 없는 여자로 알고 있었고 오늘 성관계를 한 사실이 전혀없다고 딱 잡아떼고 있어요!”
아버지는 땅이 꺼질듯이 한숨을 쉬었다.
“ 참 뻔뻔스런 놈이네요. 어떻게 혼내는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 애에게 저가 살살 물어보니 저 자식과 처가 침대 위에서 그 짓을 할 때 처가 이상한 소리를 내었대요. 형사님이 한번 물어주시면 안 될까요?”
“ 너무 상세히 조사를 하면 애가 충격을 받지 않을까?”
“ 애가 이미 자기 엄마의 부정한 행동을 다 보고 알고 있으니 더 이상 충격은 없을 겁니다. 애에게 꼭 확인해 주십시오.”
형사 아저씨는 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엄마와 아저씨가 침대 위에 있을 때 엄마가 내던 소리를 그대로 내어 보라고 하였다.
나는 아~~~ 아아아 ...하고 소리를 낸 후에 영화에서 타잔이 나무 위에서 침팬지를 부르던 소리와 똑 같았다고 대답을 하였다.
어느새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내 옆에 와서 나의 타잔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붙들고 으아악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때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형사 아저씨는 보호실에서 다시 엄마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달래기 시작하였다.
형사 : 지금 저 친구는 댁과 입을 딱 맞추어 부인하고 있어요. 그러나 어린 아들의 증언은 굉장히 신빙성이 있어요. 이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당신들은 구속이 돼.
엄마 : 아이고. 마음대로 하세요. 잡아넣든지 말든지…….
형사 : (엄마를 보고) 담배 태우세요?
엄마 : (좌우를 돌아다 본다) “ ……. ”
형사아저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눈짓을 하며 밖으로 나가달라고 하였다.
형사 : (담배연기를 푹 내뿜으며) 간통죄는 한번 했든 천 번을 했든 고소인이 고소 취소만 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죄가 안 돼요. 지금 남편이 미운 것은 댁이 아니라 댁의 집 에 까지 들어와서 동침을 한 저 친구가 미운 거요.
엄마 : (눈을 동그랗게 뜬 후 잠시 생각하더니, 담배를 빨아 당긴다)
형사 : (엄마의 귀에 대고 살짝) 내, 책임지고 아주머니는 봐줄 테니 그냥 바른 대로만 말 해주세요.
엄마 : (갑자기 울면서 머리를 마구 흔들어 대며) 어떻게 .... 어떻게.
결국 엄마는 형사 아저씨 앞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모든 것을 자백하게 되었다.
형사 : 혹시 저 친구한테 돈 같은 건 빼앗긴 적은 없어요?
엄마 : (서럽게 울며) 사실은…… 저 남자를 10여 년 전부터 카바레에서 만나 첫 관계를 맺은 후 기천을 빌려주었어요. 그런데 저놈이 현재까지 그 돈은 한 푼도 갚지 않고 도리어 남편에게 전화한다며 겁을 주고 돈을 더 요구하여 보험과 적금을 깨서 전부 주었어요. 오늘도 카바레에 불려나갔는데 또 돈을 가져오라고 하여 이제는 없다고 거절을 하였더니 여관방으로 강제로 끌고가서 주먹질을 하고 남편에게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하였어요.
5
그날 엄마는 간통죄로 구속이 되었다가 며칠 후에 아버지의 고소 취소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아저씨는 간통죄 고소가 취소되어도 폭행과 공갈죄 사기죄가 있어 그대로 구속이 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때 엄마는 아버지에게 ‘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는 지후와 아버지를 위해서 가정 일에만 충실하겠다.’고 맹세를 하였다.
그러나 엄마의 맹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희석되기 시작하며, 예전의 그 이상한 습벽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아저씨들만 해도 한 둘이 아니었다.
아파트 사람들이 엄마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갈보 같은 여자’라고 낙인을 찍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부둥켜안고 경찰서 안에서 슬프게 울었던 그날의 모습이 생각났으므로 도저히 아버지에게 그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부녀회원들 여러 명이 우리 아파트에 찾아와 “ 이 더러운 여자야. 당장 우리 아파트에서 떠나라.”라고 고함을 지르고, 아버지에게는 “ 마누라 단속 잘하라.”고 충고조로 말을 하였다. 그 이유는 엄마 때문에 아파트 남자들 사이에 싸움판이 벌어지고 단란하였던 가정들이 깨어진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그 사실을 다 알고나 있는 듯 처음 보는 여자들에게 무조건하고 죄송하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부녀회원들은 돌아가면서 아버지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측은한 듯 그냥 혀만 끌끌 찼다.
그런 소란이 있은 며칠 후였다.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 처벌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슈퍼마켓이며 동네 놀이터 등지에서는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서로 끼리끼리 모여서 자기들 나름대로 충격적인 일이라고 수군대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이젠 세상이 막가게 생겼다.’고 분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날 집배원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와서 이상한 우편물을 한 장 주고 갔다.
아버지는 그것을 뜯어보더니 갑자기 눈알이 튀어나올 듯 눈이 커졌다가 이내 신음소리를 내며 소파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우리 아파트가 경매 신청이 되었다는 법원의 경매 결정문이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달래느라 아파트를 엄마 명의로 해 준 것이 화근이었다. 아버지가 결정문을 흔들며 “여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라고 물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일도 나가지 않고 종일 법원과 법률사무소를 돌아다니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저녁밥상도 차리지 않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안으로 닫아걸었다.
6
엄마는 그 다음날 캐리어 하나에 옷가지를 모조리 쓸어 넣은 후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버지가 비명을 지르듯 고함을 질렀다.
“ 이 여편네야. 나가려면 혼자 나가지 왜 애까지 데려가려구 그래. 미쳤구나. 미쳤어.”
“ 그래 미쳤다. 내가 미쳤다. 왜? 이젠 우린 끝장이야. 지후야, 우리 나가자.”
나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엄마는 그런 나를 향해 마귀와 같이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소리를 질렀다.
“ 이 새끼야. 너는 엄마랑 같이 가야 해. 가자.”
나는 아버지의 다리를 꼭 붙들고 소리쳤다.
“ 안 가. 나는 아빠랑 같이 살 거야.”
“ …… 제 애빌 잡아먹은 놈.”
엄마는 나를 표독하게 쏘아보더니 캐리어를 끌고 그대로 밖을 나가 버렸다.
아버지는 못 마시는 소주를 한잔 하시고 그날처럼 또 그렇게 울었다.
“지후야. 엄마 없이도 우린 잘 살 수 있겠지? 아빠가 일 나갈 때 밥통에 밥만 가득 해놓 으면 너 혼자 밥 먹고 학교 갈 수 있겠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래 고맙다. 지후야. 우리는 곧 가난하게 돼. 가난해도 지후만 옆에 있으면 아빠는 그냥 행복하기만 하단다. 집이야 아빠가 열심히 일하면 이보다 좋은 아파트를 다시 살 수 있어.”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저주의 말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게 되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식사도 하지 않고 계속 술만 마셨다. 그러면서 취중에 혼잣말처럼 중 얼거렸다.
“ 지후야. 아빠는 이제 타잔의 울음소리에서 해방되었단다.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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