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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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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채영제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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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채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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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8-01-21 1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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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샛디이야기. 10
샛디이야기. 10
*
무서운 집안 이야기
형제들은 초저녁부터 밤늦도록까지 침통하고도 우울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와 누이는 옆방에서 숨죽이며 어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담아 듣고 있었다.
숙부가 아버지와 당숙을 번갈아 바라보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 저가 오늘 이렇게 기별도 없이 갑자기 형님을 찾아뵙게 된 것은 기풍 아재와 수영(秀英)이 문제 때문에 의론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당숙을 한번 힐끗 쳐다본 후 다시 숙부에게 한숨 쉬듯이 조용히 물었다.
- 수영이. 수영이가 아직 살아있단 말인가?
- 예, 전쟁 전에 수영이가 평양에 먼저 들어갔고 권서방은 아군이 북진하고 인민군이 후퇴할 때 뒤따라서 평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3년 전 김일 성이가 남로당 박헌영 일파를 숙청할 때 권서방도 남한 간첩으로 몰려 처 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영이에게도 본국으로 소환령이 내려졌다고 하나, 수영이는 자기 도 남한 간첩 누명을 쓸까봐 귀국을 미루며 고심을 하다가 결국에는 은밀하게 CIA에 자수를 하고 전향을 하였다고 합니다.
- 수영이가 일본에서 빨갱이 간자(間者) 노릇을 했다는 말이구나?
- 예, 김일성이는 수영이의 정보를 받고 판단한 끝에 도저히 인천상륙작전 을 방어할 수 없음을 판단하고 낙동강 전선에 있던 인민군 3개 사단을 신속하게 북으로 후퇴시켜 인민군 수만 명의 목숨을 건져내게 되었습니 다. 그러니, 김일성이의 입장에서는 수영이는 1등 공신이겠지요…….
사실 저가 형님에게 인천상륙작전 소식을 전하고 피난을 가자고 한 것 도 모두 수영이 덕택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그때 자네에게 수영이 편지를 가져다 준 자는 누구인가?
- ....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수영이는 북과 미국 정보기관에 적을 둔, 쉽게 말하자면 이중간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때 북쪽에도 미 군 측 정보원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 사람도 그렇겠지요.
- 수영이가 살아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전쟁 통에 국군에 붙잡 혀 죽었는지 알았는데…….
-. 그때 수영이는 전쟁에서 남(南)이 일시 이긴다 하여도 나중에는 반드시 중공군이 참전을 하게 되어 다시 후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남이 북진할 때를 기다려 우리 일가들은 속히 고향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을 했지요.
- 그런 그렇고 기풍 아재에겐 무슨 일이 있다는 건가 ?
- 예, 얼마 전 CIA 한국지부장이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만났습니다. 그 자 가 수영이의 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 그래서?
- 위선 한명이(漢明, 당숙)하고 수영이 편지부터 읽어보신 후에 저가 설명 을 드리겠습니다.
당숙은 헛기침을 한번 흠, 하고는 낭랑한 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큰집 작은 오라버님 전 상서
수명(秀明) 오라버님이 백명(伯明) 오라버님과 같이 초도에서 무사히 미군 군함을 탔다는 것과 우리 큰댁 한명(漢明) 오빠도 평양에서 피난을 하여 남으로 잘 갔다는 소식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잘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채 씨 집안의 서출로 태어나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가 남으로 내려간 기풍(基豊) 아재의 아름다운 소식도 잘 듣고 있습니다.
이 여동생 수영이는 우리 대소 간의 남쪽 근황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우선 북에 있는 우리 대소 간의 소식부터 전하겠습니다.
집안 종손부 올케는 초도에서 진남포 집으로 돌아왔다가 곧바로 보안서에 연행되어 수십일 간의 고초를 겪다가 정치범으로 몰려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아직까지 내부 깊숙이 정보망이 미치지 못하여 현재까지 사정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보다 먼저 평양에 온 기풍 아재의 형님 되시는 기환(基煥) 아재는 다행히 박헌영 간첩사건에 연루되지는 않았으나 얼마 전 폐병으로 별세하였습니다.
그 아랫대들은 모두 불순분자 및 반동분자의 자식이란 낙인이 찍혀 함경도 산간벽지로 부처되어 종신 노동 형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의 소식도 역시 현재까지는 소상히 알 수가 없어 유감입니다.
다음은 기풍 아재에 대한 정보를 시급히 전해 드립니다.
이 정보는 북조선 내에 있는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이 입수한 것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김일성이는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부터 미국이 있는 한 전면전에서는 절대로 승리를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휴전 직후부터 남한 내에 있는 고정간첩, 전쟁 때 후퇴하지 못하고 남한 내에 남아 있는 인민군 세력, 그리고 평양에서 잘 교육시킨 공작원들을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군, 관, 민간 기업에 침투시켜 제2, 제3의 내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남파 공작원 중의 1명이 기풍 아재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지금 남한의 여러 정보기관에서 기풍 아재를 은밀히 내사를 하고 있음을 미국 CIA에서 탐지를 하였습니다.
이미 여러 정보기관에서 기풍 아재의 변신과 전쟁 전후의 행적을 파악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인정 많은 큰집 오라버니가 기풍 아재를 불쌍히 여겨 성과 이름까지 바꿔주어 신분적으로 확실한 남한국민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재의 정체를 의심하며 끈질기게 추적하는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사서 일가가 패가망신을 당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몰론 이것은 북조선 정보기관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안개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즉 변절자에 대하여는 적에게 모략성 역정보를 흘려 적으로 하여금 오판하여 처단하게 만들고 자기들은 손에 피 묻히지 않겠다는 전략 말이지요.
그래서 이 여동생은 한 가지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즉시 오라버니들께서는 기풍 아재를 설득하여 한국 정보수사 당국에 자수를 하고 전향을 해야 모든 것이 순탄하게 풀릴 것입니다.
아울러 그 길이 공산당 남파 공작원들로부터 아재의 신변도 보호받을 수 있게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저가 지금 형편상 한국 땅에는 들어갈 수가 없고 나중에 미국 국적자가 되면 합법적으로 한국에 입국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 저가 상세히 말씀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전하는 미국사람은 CIA 내에서도 한반도와 연결된 모든 정보망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로서 저가 굳게 신뢰하는 사람 중 한명이며 저를 일본에서 구명해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기풍 아재에 대하여 언제라도 이분에게 도움을 요청하셔도 됩니다.
수명 오라버님. 다음에 우리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1 9 5 9 년 8월 일본에서
여동생 채 수 영 드림
편지를 모두 낭독한 당숙은 노기어린 음성으로 한탄하였다.
- 못된 것. 내가 지 오누이를 서출이라고 단 한 번도 괄시한 적도 없는데 북에 있는 아버지 소식과 지 오래비(智明) 소식, 그리고 나에게 대한 안부는 단 한 줄도 없네... 나는 도저히 이 애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클 때도 여기 저기 다니면서 온갖 말을 만들어 내고 전쟁 전에도 빨갱이 권가 놈과 만나 여성동맹위원장인가 뭔가 한다고 발광을 떨며 집안 망신을 시키더니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당숙을 조용히 나무라며 한숨을 푹 쉬었다.
- 됐네. 아이들 엄마가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내 그리 짐작은 했지. 그리고 여보게 한명(漢明)... 그 아이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남으로 내려왔지 않는가. 그리 멀리 있으면서도 집안사람들 걱정까지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숙부는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 형님. 그러면 기풍 아재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아무래도 수영이가 한 말을 그냥 넘길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 그래, 알았네. 내가 여기 한명이 하고 의론하여 조만간에 아재를 한번 만나 수영이의 뜻을 전하도록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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