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외 일곱 편
인동초
서리 내리고
눈 추위 속에서 견디며 자라는
꽃,
큰 아픔속 끝없는 꿈과 혼돈에서
살아남고 활짝 핀 꽃들이
꽃놀이패로 가더라도
저만큼 홀로 피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말이 아니라
꽃에 향기가 진실이다
그 꽃을 도끼로 찍었던 사람들이
오해의 기름과
불붙인 미움으로 불길에 내던져도
정의가 보살핀 기적
신의 사랑을 현실에도 맞춤한
임은 인동초!
우리의 바람은 다시 태어난 인동초의 꿈이
갈라진 땅에서 화합으로 틈을 메꾼 날
희고 노란 꽃으로 피는 일이다
아름다운 슬픔
지팡이라도 짚었다면
망령들 일이지!
어느 날
잊고 있었던 비슷한 거리에서 한 여자를 보았다
곧, 다른 여자인데
팔등신에 긴 머리와 미끈한 종아리로 흘러내린
긴 뒷굽이 닮은 것이다
그림 같아!
추억의 커피와 곁들인 마들렌을 먹는 순간
환각이 준 증세는 그 옛날 느낌으로─
버스에 오른 그 여자는 점 되어 사라지고
문지방 넘는 끼만 남아
아름다운 슬픔은 염병할 것에 견준다
*마들렌: 커피와 곁들여 먹는 빵
시름에 젖어(哀愁)
누구,
한 번쯤
쓸개 맛과
마음에 상처와
두통을 겪었다오
멀리 달아난 얘기지만
눈비가 오거나 낙엽이 질 때는
아슴푸레 먹물 번지듯 깊은 시름에
마음이 천천히 찢어져
그래도 되는지
얇은데도…
그럴 바에
잊어버릴 값어치가 있다면
편해서 죽을 것 같은데
그런가요
신내림이 있어야 하늘나라가 보이나요?
없어도
恨 많은 땅에서 밥 먹고
오줌똥 잘 싸고
죄 덜 짓고 서두르지 않고
착한 일 또박또박한다면
뵈는 게 하늘나라 아닌가요?
아니면
내 눈에 보인 게 다여서
뇌가 못 본 건가요?
잊지 못한 세월
만년설이 녹지 않거나
눈 덮인 산이 녹아내린들
하늘이 갈라놓아
내 곁을 떠나 버려
세월 흐르다 잊은들
그리운 마음이
마른 가지에 걸려 너붓거려도
품었던 꽃씨 하나 날리기만 하여라
봄 되면 꽃 피어 찾을 줄
알고 계신지
산마루 호수의 밤
그 여자와 사내가
헤어지면 죽고 못 사는 여행 동안
산마루 아래 앉은
하늘색 호수를 보았어
여행객은 떠나고
환상은 밤에 찾아와
호수에 내린 별빛과
초승달은 배처럼 떠 있고
호수를 에워싼
파수꾼 같은 관목은 바람에 부딪혀
휘파람 노래로 들리고
밤 중에 서로 안아 봄은
산마루의 서늘한 기운도 데워주겠지
그곳에 머문 두 사람은
우연도 축복이 되어
호수에 별의 꼬리도 담아 주리라
*별의 꼬리: 유성
써, 말아야 해
쓴다는 것은
아주 큰 문호를 욕뵈는 일
아니면
딱히 취미랄 것도 없고
되풀이한 좋은 버릇도 내세울 것 없는
풋내기 글쓰는 이에게
후회가 그림자처럼 덮어도
하나 뿐인 즐거움이라, 그저
쓰고 난 뒤 세절기에 씹히더라도
밥인 양 넣어 주고
헛배 부른 들뜬 생각이라도 채워야지
새 아빠
곧, 우리 집에
새 아빠가 온단다
수단을 위해 원한을 사는 아빠일까
반면교사라는 성어를 잊은 깡패 닮은 아빠일까
보통이어서 속죄도 유산 남기는 아빠일까
머리 빌린 것까지 좋았는데 빚까지 남기는 아빠일까
상대편도 껴안는 아빠일까
집안을 확 바꾸어 새것만 찿는 아빠일까
끝가지 거짓말도 잘하는 아빠일까
큰 물결에 쓸려 나간 아빠일까
우리 가족 중에 한쪽 편만 드는 아빠일까
가장으로써 결과가 좋기도 나쁘기도 했지만
우리는 당신이 떠났어도
뒤끝이 존경받는 아빠를 두고 싶어요
삶에 지친 우리 집에 오셔서
아우르며
두루 평안하심의 아빠여서
집안에 웃음꽃 피우기를
어느 때 보다 두 손 모아
기도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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