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가리 외 넉 편
꿩 대가리
오래전 찻집과 사무실 따위에서
연기가 자욱했던 그곳은 전설이 되었다.
늘 그랬지―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고
서재로 돌아가 책을 읽다가
끝없는 기쁨으로 뇌에서 소름 돋을 때 피우고 싶어
거실 창을 여는 순간 고약한 냄새가 늘 싫었다.
베란다 창을 열어 놓고
다시 서재에 앉아 글을 읽으며
시간 두고 소름 돋기를 되풀이하다가
거실문을 열었을 때
나의 흡연구역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층 높은 아파트에 살면서 버릇된 즐거움을 위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눈에 띄지 않는 나무숲에 숨어서
피우고 끄고 비비고 털어 눈치를 던진다.
위 사람은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거나 말 잘 듣거나 무섭거나
그러나 집에서 피우는 사람은 간이 배 밖으로 바람 쐬러 나온 이
늘 그러지-
창문으로 흘러나간 연기와 냄새는 바람 따라 이웃으로 흘러들었을 텐데
여태 별말씀 없는 걸 봐서 그 집도 피우거나 문 닫혔거나
어릴 때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얘기 중에 당신이 먼저 까르르
웃으시며 “꿩들은 위기가 닥치면 풀숲에 대가리만 처박는다고,
몸통은 다 보인다고,”
시골에 왔지만 그런 꿩을 본 일은 없다.
윗집이나 옆집으로 흘러간 연기는 나의 대가리며
몸은 베란다에서 어정쩡하게, 아파트 방송 타지 않고 무사하기만을,
늘 그렇게―
웃으시던 의미를 이해하거나 죽기까지는.
우리가 택한 거짓말
지핀 적 없는 화덕에
누군가 빵을 굽고 있다
족집게에 집힌 진실이
힘을 쥔 시간에 듣기 좋은 거짓말로 피로가 쌓인 손가락은
근육이 풀려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
역사적인 일도 요즘도 꾼들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낮은 성냄과
어중된 성냄과
아주 높은 성냄과
선택할 성냄은 많다
없어도 없는 대로 굳어져 치켜세우는 것과
있어도 빼앗아 더 먹고 흩뿌려 주는 것과
너와 내가 되어
음모가 다른 프레스에 생각이 내리 찍혀
같지 않아서 차곡차곡 쌓을 수 없어
물과 기름은 층져도 한 방울의 화학 반응으로
섞일 수도 있다지만
이해와 소통의 시작은 뭘까
사랑, 그거 원석 아닌가요
이성으로 연마하면 빛을 나눌 수 있을까요
속임수로
나쁜 놈이 잘살고 오래 살고
괜찮아 보인 사람이 먼저 스러지고
닿지 않는 집단이념이 평행선을 향하며
그것을 선택한 우리의 꾀에
정의와 진실은 각각의 입맛대로 다신다
역사가 고난으로 몸부림칠 때 영웅에게 지랄발광하고
그 어리석음으로 굽지 않는 빵을 그을린 훈제로
고기인 양 지금까지 먹이고 먹고 있으니
한 줄 行 한 줄 苦
된바람에
창문이 덜컹! 어떻게 하든 받아 쓰고
어두운 하늘 이고 가는 겨울 오후
어린 손등에 떼 절어 갈라진
붉은 속살 보았듯이
行人
길을 걷는다
길을 걷는다
더 걸어야 할지
천릿길 속에 하루 백 리 걸을 때는
발바닥 물집 터져 고통만 가득했고
고희 재 넘자니 태평무는 엄두 없네
저기 높은 곳에
낮은 몸 걸어 놓고 품바의 춤 가락을 휘젓다가
고단이 무게 받는 삶에 길이기에
받는대로 걷기만 할래요
오늘
오늘이랍니다
파란 물감으로 진하게 펼친 하늘
구름 모두 산 너머 앉으신 것 같네요
가을빛은 지쳐 바래도
잎 성근 숲에 작은 토박이 새들에 노래는
32분음표로 날아다녀요
누구의 노래며 기쁨인지요
맑은 바람에 해마저 씻긴 한나절
요런 날은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그리워지니
빈 가슴에 설렘의 씨를 뿌립니다
낮게 흐르는 노래가 시작되고
고개 들어 목소리를 뿜어댑니다
다 이루어진 하루인 거예요
딱,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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