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6-12-16 17:29

ㆍIP:

와우정사에서 청량사까지
새벽 일찍이 조상님들께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씩 올리고 아내와 같이
민방위 대피 훈련하듯 부지런히 집을 나선다.
오늘은 설날 아침,
아직까지는 거리가 한산하다.
서초 인터체인지에 들어서니
삼일의 짧은 연휴를 의식한 듯
제법 많은 차들이 속도를 뽐내며
아래로 아래로 내뺀다.
우리도 세속인양 차량 속으로 빨려 들어가 본다.
경부를 타고 영동 고속도로를 지나
용인 산모롱이에 숨바꾹질 하듯
숨어있는 고초골 연못에 당도 하여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방한복, 방한화에 겨울 모자 뒤집어쓰고
빙판으로 나선다.
손에는 창칼인양
한대의 낚싯대와 얼음끌이 비장하다.

두꺼운 얼음을 뚫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옆에 마련된 빙판위의 고기 저장고에
마치 가을날 다람쥐가 도토리 물어다 놓듯
잡은 빙어로 채워간다.
얼음 깨지는 소리가 둔탁한걸 보니
봄은 물 속 밑에서부터 빠르게 오고 있는듯하다.
아마도 다음주는 얼음위에 올라오긴 힘들듯하다.
열두시가 가까워지니
아내는 얼음이 약해 위험하다고 얼른 나오라 야단이다.
도종환님이 그랬던가?"창백한 조팝나무 꽃이라고..."
잡아 놓은 빙어들이 허연 배를 내밀고 누워 있는 꼴이
조팝나무 만개 한 것 같다.
채비를 걷고 수확한 빙어를 전리품으로 철수를 하였다.
가벼운 차림으로 바꾸고 지척 거리에 있는 와우정사로 향한다.

산 고랑을 한번 넘어 채 마을에 닿기 전에
와우정사 이정표가 우리차를 우회전시켜
연화산 품으로 감싸 앉는다.
차례를 일찍 마친 사람들이
꽤 많이 와우정사를 찾은 것 같다.
주차장 입구에 누런 황금빛의 부처님 얼굴님이
먼저 우릴 반긴다.
이절은 신라의 봉황사처럼 호국 불교로
남북의 통일을 기원하는 뜻으로
각 사찰의 돌들을 모아 탑도 쌓고 스리랑카 고승들이
직접 부처님 진신사리를 운반 봉안 하였다한다.
이 절의 대표겪인 누워계신 부처님은
산 중턱 암굴 같은 절집에 한가로이 누워 계셨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절들에서 보아왔던 부처님들 하고는
얼굴이나 형상이 다르고
이국적인 냄새가 많이 나서 조금은 낯설다.
그러나 어차피 석가모니는 이방인이 아니던 가.
옛 인도의 왕자이잖은가?
오히려 우리나라에 와서 인도인들이 본
한국화 된 부처님 얼굴이 더 이상하고
생뚱맞을 것 같다.
부처님 얼굴이 아무려면 어떠랴.
자신의 맘속에 부처 있음을 깨달은다면...
음악카페에서 자주 듣던 와우정사란 노래와
김동아란 가수가 더 생각나는 사찰순례였다.
명절 인고로 문을 연 음식점이 드물어
먼 길을 찾아 찾아서 무봉리 순대국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역시 사람은 배부른 게 우선 좋다.
그러나 부처님은 식사를 안 드셔도 마냥 앉아 계신다.
차를 달려 제천의 지인이 주인인 펜션으로 들어갔다.
마치 헐리우드의 ‘스티븐시걸’ 같이 꽁지머리를 묶은
잘 생긴 지인이 스피츠 강아지 짖는 소리
속에서 우리를 반겨준다.

중앙 고속도로를 달려 풍기를 지나 봉화를 지난다.
어제 팬션에서 처음 뵙는 분들과
늦게까지 이스리, 고량주, 양주에 질펀하게 마시고
파안대소하며 이야기꽃을 피운 후유증에 조금은 피곤하다.
하지만 여기서 약한 모습 보이면 아내는
대번에 음주량 삭감 하자고 덤빌 테니 그저 앞만 주시하며
내색하지 않는다.
항상 몸 걱정 하며 절주를 외치면서도
가만있는 내게 김치전 부쳐서 막걸리 한병씩 내오는 그녀지만
음주량관리는 내겐 두려움이다.

청량산 입구에 도착하니
냇가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얼음 꽃 궁전이
정말로 아름답고 가슴속을 ‘싸--아’ 하게 만들어 준다.
어떻게 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자연하고 합작하지 않으면 불가능 하리라..
십 여 명의 산객들이 삼삼오오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그들 속에 묻혀서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내 사진은 꼴랑 한 컷만...
아내는 내 인물이 딸려서 사진 찍길 싫어 하냐고 놀린다.
그래,
그리 생각해도 좋겠다.
하지만 나의 흔적을 많이 남겨 놓고 싶지 않아
내 사진은 많이 안 찍는다.
내가 먼저 떠나면 그 사진들 보고 아내가 많이 울까봐...

청량산은 참 좋은 곳 이다.
산 모습이 모두 모두 묵화 한 폭들 이고,
가장 중요한건 입장료가 일인당 천원으로 저렴하다.
산 그림자 옅어지는 산 밑 주차장에
그동안 수고한 조강지차를 편히 쉬게 한다.

차로도 청량사 근처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하나
적당한 운동이 필요한 산행인지라
사십여분의 등반시간을 할애하여 청량사로 오른다.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 지나
비포장과 침목으로 포장한길을 지나니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오층탑과 수려한 산새가 우릴 반겨 준다.
아내는 예전에도 그래 왔듯이
불전에 작은 시주하고 발복을 기원하는 삼배를 한다.
(난 기독교 신자라 절하는 걸 항상 안 봐와서 삼배인지 잘 모르겠다)
여태까지 사찰에 절하고 무사안녕을 기원한 걸 따지면
우리 집은 안건강하고, 안 행복 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이상한건 절에 오면 아내는 항상 지갑을 놓고 와서
내 돈으로 시주를 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자의 돈이
부처님시주 돈으로 쓰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신라시대에 원효 대사가 창건 했다는
유리보전엔 삼존불이 모셔졌는데
우측엔 반가운 문수보살님이 동안으로 우리를 반겨 주신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우리의 정겨운 가락에 끌려
절 옆의 허름한 집엘 들어서니
달마도의 명인이신 이대실님의 ‘산 꾼의 집’이란 찻집이
마당 곳곳에 옛 풍물로 단장하여 우릴 맞는다.
특히 어린애 손바닥만한 앞마당에 대나무와
응달에 건조한 산과일로 만든 솟대들이
신계에 들어 온 듯한 착각을 주지만 그것도 잠시
산새들에게 시주한 주인장의 조밥 그릇에
산새들이 날아와서 산객들을 꾸짖는 듯한 소리로 상념을 깨워준다.
솟대를 디카로 몇 컷을 찍으며 아내도 한 컷 찍어둔다.
솟대는 하늘과 통신하고픈 사람들의 마음의 상징이라고 한다.

청량사 뒷편 가파른 산을 따라 응진전을 가는 길에
집채 만 한 바위사이에서 솟아서 적당히 고인물이
낙엽과 조금의 부유물로 깨끗하진 않지만 맛있어 보인다.
갖고 간 컵으로 한잔을 머금으니
봄을 잉태한지 이개월 쯤 된 듯한 춥지 않은 바람이
눌러쓴 모자를 거부하고 빼꼼이 내민 나의 흰머리에 머문다.
이 샘은 신라시대 유학파 천재 최치원이 마시고
더욱 총명해 졌다고 해서 총명수라 명명해 졌다는데
나도 총명해 지고파서 한 컵 더 마셔본다.
산 아래 바라보니 절벽 밑의 도로들이
태극을 이루며 힘차게 뻗어 나간다.
금탑 봉 모퉁이의 응진전을 살펴보니
스님들도 인간인 듯 절 앞의 텃밭이 겨울을 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위험을 무릅쓰고
산길위의 금탑 봉 옆구리 풍혈 대에 오르니
커다란 바람동굴 사이의 풍광이 이채롭고
내려다보는 산새가 더욱 아름답다.
자연은 항상 더 많이 수고하고 고생한 사람에게 만
더 좋은 경치를 허락 하는 것 같다.

신라시대 문장가인 김생이 수련했다는 전설이 깃든
김생굴에서 현대의 산물인 커피를 타서
아내와 한잔하는데 바위절벽에 매달린 커다란 고드름이
허허로이 봄 향기에 녹아서 눈물 흘리고 있다.
김생이 집삼아 살았던 굴 암벽엔 언제 누가 새긴지 모르나
빨간 물감으로 채색한 동그란 해와
옆에 새긴 "日,月"이란 글씨가 고소를 자아낸다.
오십년이나 썼더니 부실한 다리 중간 무릎 뚜껑이
약간 무리한 산길 이었던지 열이 나며 조금은 아파온다.

부모 형제가 모두 서울에 살아서
명절 교통지옥을 매스컴으로만 접해온 세월인지라
마음먹고 팬션에서 커피한잔하고 가장 막힐 것 같은
오후 다섯시에 서울로 향했다.
그 지옥을 즐기고 느껴 보기 위함이다.
아내는 별걸 다 샘내고 경험 하려 한다지만
나도 남들같이 명절 고행 길을 당해봐야
대한민국 국민인 것 같음을 어쩌랴.
내부 고속도로를 타고 여주 분기점에 당도하니
차량이 많기는 하다.
여유로 히 교통 체증을 즐기며 올라오니 짝퉁이긴 하지만
나도 귀경 객이 되어서 국민의 한사람이 이제서야 된듯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
경부고속도로를 들어서니 휴일만큼도 안 막힌다.
아마도 곳곳에 진, 출입 통제도 하고,
또한 겁먹은 귀경 객들이 어제 미리들 올라온 탓인가 보다.
에이그! 그것도 무슨 복이라고 잠깐의 체증만 맛보게 하는가 모르겠다.
제천서 다섯시에 출발하여 집에 오니 여덟시 반도 안됐다.

아내가 부쳐주는 김치전에
막걸리 한 병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한다.
교통지옥은 추석에로 미뤄 놓고
피곤한 육신과 고단한 영혼을 침대에 고이 눕혔다.

*어머님이 병중이라 구정에 간단히 조상님께 식사 올리고 아내와 같이
용인의 연화산에 있는 와우정사와 봉화의 청량산에 있는 청량사를 다녀와서
지난 일월 말경 적어 놓았던 글입니다.

왕만두국과 설날

인사와 경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