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평균
ㆍ작성일	2011-12-17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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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지 않는 국화

결국 나의 국화들은 저희들의 계절에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이 겨울을 맞아 생의 의미도 모르고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 치고 국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국화는 물론 화초나 심지어 질경이, 쑥, 씀바귀 같은 잡초도 가꾸길 좋아한다. 그런데 이층에 사는 제약으로 마음껏 화분을 갖지 못하다가 재작년에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지면에 맞닿은 1층에 사는 덕으로 거실 커다란 창문 앞에는 화분과 또한 화분과 유사한 플라스틱 통에 흙을 담아서 화초들을 잔뜩 가꾸었다. 경기도의 모란시장에서 작은 홍매화묘목도 사다 심고 여주, 토란 등속도 심기도 했는데, 올해는 작은 호기심으로 작두콩 한포기와 경기도 용문장에서 사다 심은 2년산 더덕 여남은 뿌리, 언젠가 강화도로 낚시를 갔다 오다 인근 야산에서 획득한 엄나무 작은 한그루, 보라색 꽃이 예뻐서 사다놓은 가을꽃 한 화분, 지난 봄에 근무하던 아파트의 화단에서 솎아온 국화와 벌개미취, 그리고 바위취, 사랑초, 코스모스 그리고 씨를 얻어서 기른 분꽃, 목화, 피마자에 아내가 사온 화초와 작년 가을에 관악산 등산 후 석수역 쪽으로 내려오다 두 뿌리 캐온 국화, 버려진 화단에서 캐온 붓꽃과 몇 년전 남해의 지인 펜션에 묶을때 인근 산을 등산하여 캐다 심은 자생 란 몇 촉 등 화초를 보면 욕심을 내어 내 품에 안았다. 그러다 보니 내 집 앞에는 내내 초록이 무성했고 조그마하지만 봄여름가을 꽃을 볼 수 있었다. 작두콩도 커다란 콩깍지에 커다란 작두콩 세알도 수확을 했으니 그만하면.......
단지 화초에는 벌과 나비만 찾을 줄 알았는데 날벌레와 원치 않는 곤충까지 모여 들었으나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지극정성으로 물을 주고 꽃집에서 퇴비도 사다가 넣어서 화초들이 비육해 지기를 바랐다. 가끔 집에서 쉬던 여름날에도 더위에 지친 화초들이 축 늘어져 있으면 안타까워 조리개에 물을 가득 채워 시원하게 뿌려주기도 했었다. 심지어 여행이나 출장으로 며칠 지방에 기거하게 되었을 때도 아침마다 전화를 하여 아내나 아이들 시켜 물주는 걸 거르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내가 화초를 가꾸는데 게으르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정성으로 물을 주고 가꿨더니 다른 화초들은 그런대로 적기에 자신들의 꽃을 피워 나의 정성에 화답을 했는데, 유독 국화 몇 종은 잎만 무성히 자라고 가을이 다가도록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결국 가을을 지나고 겨울이 오니 영하의 밤공기에 무성하던 이파리들도 얼어서 떨어져버렸다. 화초를 가꿈은 꽃을 보기 위함인데, 나의 온갖 정성은 허사가 된 것이다. 나의 허망함도 컸지만 의혹도 커졌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었다. 다른 곳의 같은 국화들은 모두 소담스럽게 꽃을 피웠는데 나의 국화만 유독 꽃을 안 피우다니....... 그 이유를 생각하고 생각하다보니 ‘내가 화초를 너무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넘치게 사랑을 하였었나?’라는 생각에 까지 다다랐다.

생각해보라. 화초나 나무의 꽃은 결국 종족번식의 목적으로 피고 열매를 맺고 씨를 퍼트리는 것이다. 이들은 살아가는데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결코 종족번식의 욕구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베푼 양분과 수분으로 제 키를 한껏 키우고 잎만 무성히 우거졌던 것이다. 그 분석이 현재로는 제일 합당한 것이다. 곧 겨울이 닥쳐오고 여름과는 비교적 적은 일조량과 수분으로 국화는 삶의 위기를 느껴 꽃을 피우고 엄동을 지내기 위해 이파리에 수양분 공급을 중단하여 떨어뜨리고 최소의 몸가짐으로 겨울을 나려고 하는 것인데, 나는 너무도 정성껏 물을 뿌려주었으니 국화는 꽃 피울 필요를 느낄 수 없었으리라.

사실 어느 화초도 처음부터 화초는 아니었을 것이다. 산과 들에 제멋대로 피어있는 종 중에서 인간의 선택으로 터전이 화단으로 옮겨지고 가꾸어지고 개량되고 하였겠지만 그래도 제 안에는 야초나 잡초였을 때의 본능 같은 게 있을 것이다. 마치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들도 어느 정도 야성을 지켜 주듯이 식물들도 최소한의 야성의 법칙을 지켜 주었어야 했다. 결국 나의 오판된 넘치는 사육으로 국화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렇게 올해를 마감하였던 것이다.

별 어려움 없이 부양하던 내 식구들이 나의 부실로 겨울을 맞았었다. 다소곳이 살림을 하던 아내와 학업에만 전념하던 두 아들은 직접 생활비를 벌어 살림을 하고 학비를 벌어 학업을 계속해야만했다. 큰 아들은 대학교 2년을 마치고 휴학, 입대한 후 2년 뒤의 3월에 전역을 했지만 그 해 복학을 미루고 다음해 까지 학원 강사와 과외로 학비를 저축하여 결국 일 년 육 개월을 소비하고 복학하여 나머지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학원 강사를 하고 과외를 하면서도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큰아들. 어느 큰 눈 내리던 날 아내와 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들의 아르바이트 호프집에 가서 내 아들이 일하고 있는 걸 보면서 치킨에 호프 몇 잔을 마셨다. 나는 그때 아들에게 물어 봤다. “너 같은 명문고 출신은 차라리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하는 과외를 하나 더 하면 지금 같은 호프집에서 오랜 시간 밤늦게까지 힘들게 일하고 받는 알바비하고 똑 같을 텐데, 뭣 하러 매일 저녁부터 새벽 3시까지 호프집에서 일하니?” 하고 물었더니 “아빠! 제가 앞으로 살다가 어떤 역경이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데 항상 잘 나갈 거라는 생각으로 쉬운 일만하다 갑자기 아빠와 같은 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이런 경험도 제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할지도 모르니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경험을 쌓아놓아야 하지요.” 하였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어느 CF의 대사처럼 ‘아들에게~ 배웁니다.’였다.

작은 아들도 별로 공부를 잘하지 못했으면서도 학업 운이 좋아서인지 시립 전문대를 거쳐서 정규대학의 학업을 닦고는 있지만, 수능 준비로 바빠야 할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빠 엄마 몰래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제 용돈과 군에서 휴가 나온 형의 용돈을 주기도 했으니 내 아이들은 못난 아비 때문에 계획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학업을 성취했거나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즉, 꽃피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획득한 것이니 결국 나의 어려움으로 토양분이나 수분이 부족할 때 스스로 헤쳐 나갔고 앞으로 화려한 꽃을 피울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게 나의 마음이다.

오늘은 내년을 기약하고 내내 꽃이 피지 않는 국화의 말라버린 줄기들을 모두 베어 버렸다. 아쉽지만 나의 화단은 올해의 우를 참고하여 내년의 화려한 국화의 개화를 기대해본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시련을 겪고 난 나의 아이들이 꽃 피는데 는 문제없겠다.

2011년 12월 16일 저녁에

설연화 2011-12-17 02:35	오래간만에 글 올리셨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요즘 제가 꽃 키우는것에 무척 재미있어 하는 중이라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제가 거실에 있으면 소리부터 지릅니다. 과도한 애정은 식물들도 스트레스를 느낀다구요. 적당히 바라보고,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가꾸라고....... 자기네들 한테는 방목을 했으면서, 식물은 애지중지 한다는 질투성 발언들이 많죠. 국화는 추운 겨울에서 뿌리는 살아 있는 녀석들이라, 아예 거실로 들여놓지 않고 베란다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녀석들이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추울 것인데.... 물도 준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 꽃을 꽃봉우리를 만들고 꽃을 피우고... 겨울 다 되었다고 진딧물 있는 것들을 모두 잘라버리고 곁 가지만 두었는데도..... 거기에서 꽃을 피우는 녀석들을 보고.....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오래간만에 좋은 글 마음에 담고, 저도 화초보러 거실로 갑니다. 요즘, 햇볕을 보지 못한 다육이 들이 좀 부실해서..... 신경이 여간 쓰여서요

전성권 2011-12-18 14:01	깊이 공감합니다. 적당한 시련은 자양분이 되는데, 너무 애지중지하다보면 험한 세상 어디에서도 설 수 없겠지요. 가을보리를 봄에 심으면 키만 쑥 클뿐이지 열매를 맺지 않는다하더군요. 그 국화든, 자녀분들이든 적당한 스트레스와 경험 등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꽃이 반발하게 하는 자양분일 겁니다. 삶의 경험이 우러난 글 감동받고 갑니다. 좋은 글 자주 내려 놓으셨으면 합니다. 건안하십시요.

학 천 마리

비 오던 밤의 춘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