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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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게양하는 날

6월 6일 아침이었다. 늘 하던 습관대로 아침 산책을 5시에 나갔다. 요즘 아침 기상 시간은 4시경인데 오늘은 조금 늦잠을 잦나 눈을 떠보니 4시 40분이었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물 한 모금 마신 다음 아무런 생각 없이 산책길에 나선 것이다. 평소보다 30여 분 늦은 시간에 나선 것이 쾌 게으르다는 느낌을 받으며 내 몸에 맞춰 하천 도로인 목적지를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가 요즘 걷는 길은 왕복 만 이천 보가 조금 넘는 코스로 2시간 정도 시간을 투자한다.

천변을 거쳐 우리 아파트 주변에 들어올 때쯤은 7시가 막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무심코 걸어오다 아파트 주변에 다가왔을 때 불현듯 오늘이 현충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30대 초반부터 현충일 날이며 산행을 하던 습관을 지니고 있었는데 70이 넘은 지금도 현충일이면 산에 가고 싶은 생각에 온몸이 안달을 한다. 하긴 올해에도 산행 약속을 지키려 지난 토요일 날 가족과 함께 지리산 피아골에서 시작하여 임걸령을 거쳐 반야봉으로 등산하겠다고 집을 나섰었다.

올해는 현충일이 월요일이라 3일 연휴의 특혜를 얻어 토요일은 전북 완주에 있는 죽림 편백숲을 산책한 다음 지리산 피아골로 내려가 숙식을 하고, 반야봉을 등산한 다음 등산을 하지 않는 가족은 피아골에서 만나 쉬었다가 오자고 계획을 세우고 전라북도에 있는 죽림 편백숲을 찾아가는데 보슬비가 내렸다. 분명 일기예보는 구름만 많이 끼는 날씨로 되어 있었다. 집에서 나서 30여 분 정도 지났을 때부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전라도를 들어설 때는 이슬비로 변하였다. 농부인 나는 비를 보니 너무 반가워 산을 못 가도 좋으니 비야 내리라고 기원하면서 편백 숲을 찾아갔다. 편백 숲에 도착했을 때는 이슬비가 제법 내려 길이 질퍽하고 그리 기분 좋은 날씨는 아니 없다. 오랜만에 큰마음 먹고 가족들과 여행을 나왔는데 아쉬웠다. 숲속 길은 날씨가 화창해야 산속의 기막힌 공기 맞을 느낄 수 있는데 우중충한 날씨에 비를 맞으며 우산을 쓰고 걷는 것은 청승맞은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처럼 나온 가족들의 표정이 별로였다. 결국, 우리는 비를 피하여 점심을 먹고 여행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올해 현충일 전후의 산행은 취소된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년 현충일이 되면 강원도에 속초 살 때는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했고 충청남도에 와서 살면서는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청봉이나 천왕봉을 못 오르면 다른 곳이라도 꼭 등산했다. 힘이 있을 때까지는 해 보자고 마음먹고 실천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현충일 날은 6월의 뜨거운 태양열 속에 땀을 펄펄 흘리면서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오르는 것은 내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해 보았으며 또, 젊은 날 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윤리과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사람으로 6·25를 잊을 수 없어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분들의 고행을 되새겨 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집사람과 아들이 따라붙어 식구들은 계곡을 거닐기로 하고 나 혼자만 산행의 고행을 맞보기로 하였으나 그나마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취소하기로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제는 집에서 푹 쉬며 그동안 밭에서 지친 몸에 충전했다.

이런 나는 현충일 날 아침 산책을 하다 보니 산에 가고 싶은 생각에 몸이 근실거려 아무래도 산행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일은 건강 검진이니 못 가고 모래는 밭을 한번 가 봐야겠고 글피나 지리산 피아골 계곡을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현충일을 떠 올리게 된 것이다.

마침 아파트 담벼락을 걷다 현충일 날이 떠올라 무심코 아파트를 쳐다보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커다란 아파트 단지를 두 곳이나 스쳐 갔는데도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 4시 50분이면 날이 밝으니 7시쯤이면 아무리 공휴일이라고 하지만 일어나 활동하는 사람이 쾌 있을 만한데 하면서 유심히 살펴봐도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 근무할 때 6월 5일만 되면 아침 직원회의 때 학급 담임 선생님들에게 내일은 꼭 조기를 게양하고 오전 10시에 사이렌이 울리면 그 자리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 사이렌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하여 1분간 묵념을 하도록 지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수업이 끝나고 종례하기 직전에 다시 방송을 통하여 내가 직접 교육한 것이 얼마이며, 6월이면 전교생에게 국군 아저씨께 편지를 써 오도록 지도도 쾌 많이 했었다. 이처럼 현충일 날 조기 게양은 초등학교 Eop부터 교육받아 왔던 것이 아닌가? 이제는 6월이 호국의 달이라는 의미도 퇴색해지나 보다.

아마, 이제는 현충일이 공휴일이 부족하여 하루 쉬는 날로 변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선생을 하는 내 셋째 딸 가족들도 어제 저희 서방 회사 동료들과 서해안에 있는 무창포 해수욕장으로 캠핑을 떠났다니 할 말은 없다. 다만 지난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혼자 열을 올리며 가르쳤던 내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질 뿐이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내 국가가 온전해야 우리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즘 사람들은 내 조국 내 국가를 너무 등한히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우리에게 일제 침략 35년 같은 치욕의 역사는 없어야 할 것이며 6·25 같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데 요즘 사람들은 우리의 역사를 너무 쉽게 잃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마 다 살은 늙은이가 필요 없는 근심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집에 들어와 태극기 함에서 태극기를 꺼내 정성껏 조기를 달며 흐뭇함을 느껴본다.

한이 서린 학춤

친구 2. 학교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