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6 08:05

ㆍIP: 125.xxx.48

추억의 도토리 밥

어느 가수의 '보릿고개'라는 노래를 듣다 보니 문득 나의 어린 시절 도토리 밥을 먹으며 한 해 겨울을 보냈던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흉년으로 학교에 수업료를 내지 못해 제적당하고 집에서 일손을 돕던 해로 기억된다. 1962년 겨울이 아닌가 싶다. 화폐개혁이 단행되던 1962년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된다. 그해 봄 가뭄이 극심하여 시골에 있는 농업계 고등학교에서는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7월까지 모내기를 하지 못한 논에 밭곡식이라도 심을 수 있도록 흙덩이를 부숴주는 대민 봉사 작업으로 농촌 일손 돕기를 다니던 기억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해 우리 집 논농사는 전체가 천수답 600평을 경작했었다. 그동안 남의 땅을 얻어 어울리(소작을 내가 살던 지방에서 표현한 말)라고 해서 농사를 지으면 반은 땅 주인에게 주고 반을 우리가 갖는 반작을 하다 지난해에 우리 논을 처음으로 장만하여 첫해 농사를 지었다.

천수답에 가까스로 모내기했는데 가뭄이 계속되다 보니 벼가 크지 못하고 타 죽어 이를 막아보려고 하천에다 웅덩이를 파고 남의 집 인삼밭 둑으로 도랑을 만들었다. 만든 도랑에는 질흙을 발라 물이 새지 않도록 했다. 그다음 나무에 매단 바가지를 이용하여 밤새 물을 퍼 올렸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밤새 물을 퍼 올리고 새벽에 논에 가보면 물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논에는 물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남의 인삼밭 둑에다 새로 만든 물길에는 지렁이란 놈이 구멍을 뚫어 다 새 버리고 논에까지 온 물은 물길을 점검할 때만 잠깐 흘러왔던 것이다.

16살 먹은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보다는 학교가 끝나기 바쁘게 쇠꼴을 한 바닥 베어다 놓고 저녁을 먹으면 밤 11시까지 논에 물을 대고 집으로 돌아와 12시가 넘어야 잠깐 눈을 붙이는 생활이었다. 그러니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일도 없고 학교는 매일 지각에다 수업 시간에는 수업을 듣기보다 꾸벅꾸벅 조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렇게 열심히 농사를 지었건만 가뭄에다 그해는 벼 도열병이 전국을 휩쓸었다. 우리 집 논 600평에서 거두어들인 곡식 전체가 싸라기 쌀 반 가마 남짓했다. 긴긴 겨울 먹을 식량이 없어진 것이다. 지금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런 흉년으로 정부에서 대책을 세운 것이 도열병에 강하고 수확이 많은 신품종을 개발한 벼 품종이 통일벼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 신품종인 통일벼는 쌀알이 크고 밥맛은 조금 떨어 젖지만, 수확이 재래종보다 2배 가까이 많이 나와 쌀 부족을 해결해 주었다. 그러다 쌀 수확이 많아지자 새로운 품종인 밥맛도 좋고 수확도 많은 벼 품종을 새로 개발하여 오늘날은 통일벼는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나는 10월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일을 돕는 일꾼이 되었다. 그해 겨울 우리 집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 어른들이 태평양 전쟁이나 한국 동란 때 초근목피로 연명했다고 하는데 나에겐 그런 기억은 없고 1962년 겨울이 가장 잔인한 흉년의 해로 기억되었다.

젊은 부모님들은 열심히 일하였지만, 자연에서 오는 재해를 막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자연의 신비로움은 흉년이 드는 해는 산에 도토리가 많이 달린다는 어른들의 말이 있는데 맞는 말인가 흉년이 든 1962년에 도토리가 풍년이었던 모양이다. 30대 중반인 어머니는 억척같이 진악산의 이 골짝 저 골짝을 헤매며 도토리를 따 날랐다.
도토리묵은 쌉싸름하면서도 독특한 맛에 등산하고 내려와 도토리묵 한 접시와 부치기 한 접시에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 그 맛을 어디다 비길 수 있으랴. 그 재미로 등산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 ~~~?. 나에겐 그 도토리가 지겹도록 싫은 것이다.

우리 집은 한 번도 구경해 보지 못한 도토리 밥을 해 먹었다. 도토리 밥은 우리 어머니가 새로 개발한 음식이다. 도토리를 햇볕에 말린 다음 절구에 찌어 껍질을 벗긴 후 물에다 1주일에서 2주일쯤 담가 뜬 맛을 우려내고 다시 절구에 찧었다. 절구에 찧은 도토리를 싸라기 쌀과 섞어서 팥을 얹어 밥을 하면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허기에 지친 우리 가족들은 도토리 밥이라도 먹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마저도 준비하지 못한 가정은 굶다시피 하면서 고구마 등으로 새봄이 돌아와 보리쌀이 나올 때까지 굶주림을 참고 이겨내야 했다. 오늘날은 돼지도 잘 먹지 않는 정미소에서 나오는 고운 겨 가루에다 쑥을 버무리는 쑥버무리를 해 먹기도 하고 이른 봄에 논이나 보리밭에 나는 둑새풀 씨앗을 훑어다 볶아서 먹으며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잔인한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다.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보릿고개를 호되게 경험한 것이다.

오늘날 도토리 밥을 먹으면 건강 보조 식품으로 성인병에 최고의 음식이었겠지만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시절 도토리 밥은 한참 자라나는 나에게는 잔인한 음식이었다. 그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치질이 심하여 탈 홍 증세까지 나타나 군대에서 한 번 수술을 받고 다시 재발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구에까지 가서 수술을 받아 병을 치료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가난 속에서 일하던 나는 가을이면 배가 고파 밥 대신 김장 채소인 생무로 허기를 때운다든지 볏단을 지어 나르면서 익지도 않은 땡감을 아작아작 깨물어 먹던 어린 시절이 너무나 새로운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결국, 이런 가난은 나에게 위장병을 가져다주어 50이 다 되도록 위궤양과 위염으로 약봉지를 옆에 끼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 경험을 가진 나는 강인한 인내력과 성취 욕구가 강한 사람으로 변했는지 모른다. 오늘날 나는 가난에서 벗어나 사회의 중류계층 생활을 하고 있으며 남에게 자랑할 만큼은 못 되지만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정도는 살 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인가? 그리고 과일이고 과자고 먹기 싫어 먹지 않는 삶을 살고 있으니 신이 나에게 노력한 대가를 인정해 준 모양이다. 오늘날 내 주변에 사는 자녀들이나 손자 녀석들을 바라보면 저절로 행복감에 도취하곤 한다.

종종 해외에 나가 선진국이라는 나라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봐도 우리들의 생활이 그들의 생활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으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발전한 나라인가? 이제는 하나의 추억으로 변한 '보릿고개' 노래 가사가 내 마음을 적시며 도토리 밥을 해 주시던 어머님 생각이 가슴 속 깊이깊이 되새겨진다. '추억의 도토리 밥' 지금 먹으면 어떤 맛을 느낄까? 한 번쯤 먹어보고 싶은데 만날 수가 없다.

치매아닌 치매기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