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6 08:07

ㆍIP: 125.xxx.48

치매아닌 치매기

나이가 들어가면서 늙음의 두려움보다 더 두려움이 있다면 치매가 안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 간간 집안의 어른들이 치매에 걸렸다고 숙덕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이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내가 그런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노년의 인구가 많아지고 나이 드신 어른들이 많아지다 보니 어른들의 치매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가 여러 해가 된 것 같다. 직장에 있을 때는 일에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선거 때마다 노년의 복지 문제를 들고나오는 후보들의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그 소리가 바로 내 문제였다는 것을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 날씨이다 보니 밖으로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어 창밖을 멍하니 무심코 내다보다 갑자기 엊그제 집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보 글쎄 지난번에 없어졌다고 하던 옥상 열쇠가 내 차에 있잖아."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하는데 나는 어이가 없었다.
지난 8월 초 어느 날 집에 있는 나에게 마누라님(내가 사용하는 애칭)한테 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 내가 맡긴 옥상 열쇠를 가지고 가계 집에다 가져다줘요."
"알았어요." 하면서 열쇠를 찾아보니 책상에 넣어둔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그 열쇠는 새로 장만한 집 옥상에 올라가는 문의 열쇠로 나보고 보관하라고 해서, 귀중품 보관 상자에 넣어 두려고 하자 너무 깊이 둔다고 잔소리하여 그녀가 보는 앞에서 책상 첫 서랍에 넣어 두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급하게
"열쇠가 안 보이는데?"
"그것도 못 찾아 잘 찾아봐." 하면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옥상 공사를 하기 위하여 사람이 곧 온다고 하는데 열쇠가 없다고 하니까 화가 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열쇠를 둘만 한 곳을 다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공사하러 온다는 사람에게 연락하여 다음에 오라고 하라는 연락을 하고 내 책상 서랍을 모조리 뒤집어서 보았다. 그리고 혹시 다른 곳에 두엇 나 싶어 둘만 한 곳을 모조리 찾아봤지만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노망이 들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종이 한 장까지도 세다시피 하면서 서너 시간을 찾아봤지만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두 부부는 혹시 손자 녀석들이 손대지 않았나 싶어 옆에 사는 둘째와 셋째 딸들에게 아이들이 열쇠 가지고 노는 것 못 봤냐고 물으면서 호주머니를 한번 뒤져 보라고 까지 하면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딸들에게서 돌아온 이야기는
"노인네들이 어디다 잘 두고 못 찾는 것이 아냐? 잘 생각해서 찾아봐."라는 답이 왔다.
"네 아비가 그 정도로 늙어 보이냐. 그리고 나 아직 치매 오지 않았다."라며 화를 냈던 것이다. 그러다 추석 전 날 책상에 않자 컴퓨터를 하면서 내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없어졌던 열쇠가 서랍 입구에 놓여 있다.
"여보 옥상 열쇠가 서랍에 있네?"
"어떻게 된 거야."
"글쎄"
"지난번 자기가 잘 못 찾은 것 아냐?"
"뭐야" 책상 서랍을 다 빼내서 완전히 뒤집어 놓고 찾았는데 무슨 소리야." 하면서 어떻게 된 일인가 추리를 해 보았다.

열쇠가 어디에 있다 나타났을까?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답이 나왔다. 옆에 사는 셋째 딸이 추석 명절을 쇠려고 간다고 시댁을 가기 전 인사차 사위와 5살짜리 외손자가 전날 저녁에 왔다 갔었다. 나는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안방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그때 내 서재에 외손자 녀석이 가져다 놓은 모양이다. 라고 추리하면서, 열쇠가 언제 없어 잦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8월 13일경 딸들 셋이 내 古稀기념으로 가족여행을 제주도로 떠나자고 하며 해외에 나가 있는 큰 녀석 가족까지 다 왔다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셋째가 계획을 세운다면서 내 책상에서 컴퓨터를 만진 적이 있는데 그때 저희 어미 곁에서 칭얼대던 외손자가 손댄 모양인데 그것을 소리 없이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추석 전날 음식을 장만해 주려고 온 둘째 딸한테 저희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딸은 벌컥 화를 내며 그럴 리가 있겠냐며 노인네들이 잘못 찾아보고서 그런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나는 점잖게 딸을 나무라며 아비 아직 그렇게 늙지 않았다고 하면서 쓴웃음을 참으며 그 말을 한 마누라만 혼을 내었다. '화가 나지만 참고 살자고?'

그러다 10월에 큰딸과 함께 네팔에 있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길에 외손자 녀석의 영악함을 이야기하면서 열쇠 사건을 이야기하자 큰딸도 역시 그럴 리가 있겠냐며 아빠가 착각한 것이 아니냐고 한다. 책상 서랍을 완전히 뒤 짚어 놓고 종이 한 장까지 다시 정리하면서 찾아도 보이지 않았던 열쇠였는데 내가 둔 곳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식이다. 쉽게 말해 나이가 들어 어디다 두었는지 잃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억울한 나는 이 녀석이 책 좀 읽더니 노인네는 모두 다 치매기가 있어 그렇다는 식이 아닌가? 나는 앞으로 내 새끼라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고 가능한 말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처럼 되찾은 열쇠가 6개월이 지난 후에 또다시 우리 집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집사람이 호들갑을 떨면서 지난번 없어졌다던 열쇠가 자기 차에서 나왔다며 나보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다. 처음에는 나도 당황스러웠다. 내 책상 서랍에 넣어 둔 열쇠가 왜 차에서 나오냐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기가 서랍에서 꺼내다 차에다 놓고 나보고 찾아보라고 한 거야.” 하면서 나이가 들어가니 혹시 집사람이 치매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어 열쇠 사건을 글로 작성해 놓아 다음에 이런 일이 또 나타나나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열쇠에 대한 글을 작성하면서 생각해 보니 이 열쇠는 지난번에 찾았던 열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열쇠를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여 문을 부수고 새로운 자물쇠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뒤에 찾은 열쇠가 필요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필요 없는 열쇠를 버리라면서 집사람에게 주었는데 이 사람은 그것을 자기 차에다 놓았든 모양이다. 그러다 6개월이 지난 후에 다시 열쇠를 보고 내 서랍에서 자기가 꺼내다 차에 둔 것으로 착각을 했고, 나는 나대로 열쇠를 버리라고 한 것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누라를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면서 혹시 치매 현상이 아닐까 하고 이 글을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퇴직을 하고 치매에 대해서 은근히 걱정되어 65세가 되든 해 아무도 모르게 보건소에 가서 치매 검사를 받아 보았는데 그런 검사 정도라면 아직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자부했는데 오륙 개월 전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딴에는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컴퓨터에 앉자 글도 쓰고 낙서도 하면서 하루 두 시간 이상 꼬박꼬박 헬스뿐 아니라 하루 만 보 이상 걷기를 4년째 하고 있는데 내 머릿속에서 되찾았던 열쇠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렸다.

친구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하는 이야기가
“사람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
“그래 나는 금방 한 것도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어?”
“그건 괜찮네, 나는 손에 핸드폰을 들고서 핸드폰을 찾고 있었는데?” 라고들 하지만 자식들에게 핀잔을 먹었으며 그리 요란을 떨면서 찾았던 열쇠 사건이 고작 6개월 전인데 혼자도 아니고 두 사람이 감쪽같이 머릿속에서 사라졌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아마 이것이 나이 들면서 나타나는 치매의 시초인 치매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사람이 나갔다가 들어오자 그녀에게 열쇠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것이 치매기인 모양인데 치매가 오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면서 허탈 웃음을 웃었다.

친구 1. 죽마고우

추억의 도토리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