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3-30 20:40

ㆍIP: 223.xxx.150

아버지와 고량주

아버지와 고량주 (1)

권영심

나는 딸로 태어났으나 아버지 무릎에서 술을 받아 마신 특이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진지를 드실 때 마다 반주를 즐겨 드셨는데 밥주발 뚜껑을 벗겨 내미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그 때는 어른 밥상의 밥은 반드시 뚜껑이 있는 주발에 담아야 했고 굉장히 컸다
뚜껑을 벗겨 상에 놓으면 아버지는 큰 병에 담긴 청주를 그 뚜껑에 가득 부었다가 잠시 후 드셨다
-이렇게 하는 거이 거냉하는 거이야
이렇게 거냉해서 마시믄 최고로 맛이 좋디 -
-아부지 그렇게 맛있어? -
-왜? 마셔 보간? -
그게 아마 여섯 살 때였나 보았다
아버지 무릎 위에 냉큼 앉으며 나는 참새 처럼 입을 벌렸다
아버지는 조금 남긴 술을 내 입술에 대어 주었고 술이 입 안으로 흘러 들어 왔다
그 이상한 맛에 펄떡 펄떡 뛰며 난리 법석을 떠는데 아버지는 그렇게 유쾌하게 웃으셨다
그 여름날의 이른 오후에 퍼지던 아버지의 웃음소리는 청주의 맛과 함께 언제나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청주는 반주로 드셨지만 아버지가 가장 즐겨 드신 술은 고량주이다
나는 아주 편식이 심한 아이여서 밥을 안 먹기 일쑤였고 그럴 때 마다 아버지는 시장 초입의 중국집에 데려가 맛있는 요리를 사주셨다
화교 식구들이 하는 중국집의 요리는 중국만두를 비롯해서 참 맛있었다
탕수육 난자완스 전가복 고추잡채 꽃빵과 콩국...
공갈빵이며 팥이 가득 든 각종 중국 과자와 길다란 군만두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분명 돼지고기를 못 먹었는데 그 집의 요리는 먹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요리를 같이 드시면서 꼭 고량주를 드셨는데 그 고약한 냄새 때문에 나는 무던히도 쫑알거렸었다
아버지는 그럴 때 마다 나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는데 어느날 내가 갑자기 아버지께 고량주를 따라 드렸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였다
그리고 눈물이 가득해진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때 내 눈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커서 그 눈에 눈물을 담고 바라보면 아버지는 못 견뎌 하셨다

-와 그라네? 어디 아프간?
갑자기 와 우는 거이야? -
-아부지... 아부지는 고향이 그리워서 고량주를 마시는 거지요? -
-머이? -
아버지는 정말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금문도가 중국과 가장 가까운 섬이라면서요?
거기서는 중국이 바로 보인다면서요?
전쟁중에 금문도로 넘어온 사람들이 고향 생각을 하면서 만든 술이 고량주라면서요?
아버지도 이북 고향이 그립잖아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싶어서...-
나는 아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나 보았다
아버지가 내 옆으로 건너 와서 나를 꼭 껴안았다
내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고 등을 두드리며 그 가게를 나올 때 까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 뒤에도 아버지와 나는 중국요리와 고량주를 먹고 마셨으나 아버지와 대작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대신 아버지는 마치 비밀의 화원의 문을 연 사람 처럼 무척이나 많은 고향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 때 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부터 금강산 여행이며 북간도 러시아 등...
젊은 시절 가슴에 품었던 그 활화산과도 같은 열정을 내게 털어 놓으셨다
- 그 날 알았디...
내 딸레미레 , 이 미칠 것 같은 속 마음을 터트려도 알아 줄거이라는 거
이 아바지의 한이 무언가를 알아 줄거라는 거...
할수만 있다면 네 손을 잡고스리 가고 싶어서.
내가 다녔던 그 모든 곳에 너를 데리고 가고 싶었더랬어.
네게 이야기를 하면스리 나는 숨이 쉬어졌더랬어
너는 아바지 이야기를 백프로 알아 들었으니까니. -
그랬다.
나는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그 모든 것을 마치 같이 겪는 것 처럼 알아듣고 호응했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리액션 만점이었는데 실제 그렇게 재미있었다
엄마의 질투심이 만발하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아버지와 나만의 비밀 공유는 또래 아이들과 나를 다르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의 바탕은 바로 아버지의 것이다
내가 가진 이 세상에의 호기심과 갈증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술이 무척 센 편이었는데 그것 또한 아버지의 유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무척 많은 술을 마시고 다종다양한 술을 흥미를 가지고 접해 봤으나 고랑주를 비롯한 중국계의 술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량주엔 아버지와의 많은 추억으로 깊은 그리움이 술 향기 처럼 남아 있다
지난번 마오타이주와 고량주 이야기로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래서 왜 고량주가 중국술이 아니고 대만술인지 이제부터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야기가 길기 때문에 몇 회에 나누어질지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고량주 이야기를 맘 먹고 해야겠다.

정찬열 2020-03-31 06:34	권영심 작가님 ~ 남과북의 이별의 아품을 술로 달래시는 아버지의 추억에 담긴"아버지와 고량주" 술에 취한듯 단숨에 배독했습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면 작가님께서도 아버지의 고향을 한번쯤 찾아가 아버지 한을 대신해 보셔야 되겠네요 다음호를 기다리며 항상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ㅋ*^

권영심 2020-03-31 12:05	망향의 아픔을 저는 누구보다 아프게 겪고 살아 왔습니다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딸이었기에 아버지의 고통을 옆에서 그대로 함께 했습니다 이북에 계신 나의 혈육들을 그리워 하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나 아버지의 그리움은 그대로 저의 그리움이 되었지요 따뜻한 위로의 말씀, 정찬열 작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병일 2020-03-31 20:19	권영심 작가님 안녕하세요? 허락도 없이 처음 방문했네요 아버지와 술에 대한 추억이 많이 있었군요 고량주 지난 중국연수때 회원들하고 많이 먹었지요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는 뒷전으로 밀리고 호텔식당 고량주를 바닥을 비운적이 있었습니다 그후 고생은 많이 했지만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다음편이 기대 됨니다 3월의 마지막날 입니다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한 4월 되세요~~^^

아버지와 고량주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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