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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택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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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한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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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20-02-11 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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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
한영택
집사람이 대뜸 ‘보험은 들어놨어요?’ ‘떨어져 죽으면 괜찮아도 다쳐서 오면 안 됩니다.’ ‘뭐 하고 싶은 말 없어요?’ 걱정되는지 농담 반 진담인지 이런 말 저런 말 하면서 밥은 먹고 가야지 하며 상을 차려준다. 대수롭지 않게 들리지만 분명 걱정이 실린 말이다. 가끔 마라톤 갈 때도 그렇고 어디든지 일이 있다고 집을 나서는 날이면 별말 없이 잘 다녀오라고 한다. 어떤 친구는 사사건건 간섭을 한다는데, 난 일할 때도 그렇고 어디든 다녀오겠다면 그냥 지켜만 본다. 우린 처음부터 그랬다. 어떤 일에 대해서 숨길 이유도 의심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부부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처음 만났을 때의 애틋한 감정은 아닐지라도 살면서 사랑보다 정, 정보다 믿음이 가족을 만들어주는 거 같다.
단양 패러글라이딩 가는 날, 아침 9시 친구 둘과 대구에서 출발하였다. 가는 길에 구미에 사는 친구 하나 더 태우고 목적지로 향하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김천IC를 지나자 따다닥 빗줄기가 더 심해지는데, 날이 날인만큼 걱정이 된다. 새도 비 오는 날이면 날지를 않는데 패러글라이딩 타러 가는 우리는 계속 날씨 정보만 보고 있다. 10시경 안동휴게소에 들렀을 때는 비가 주룩주룩 엄청나게 쏟아진다. 이젠 틀렸다 하고 가서도 비가 계속 오면 고수동굴 구경이나 하고 오자며 자판기 커피 한 잔씩 빼 들고 마시며 날씨 정보를 보는데, 단양은 11시 이후에 비가 그치는 거로 나와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다시 차에 올라 단양으로 향한다. 갑자기 와~~~ 10시 40분 죽령터널을 지나자 전혀 다른 하늘이다. 산 위로 구름이 걸쳐서 가고 미세먼지 아주 좋음에 덥지 않은 날씨다. 비 온 흔적은 있었지만, 기분 업 되는 순간이다. 낮 12시~15시 사이가 비행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라 했지만, 그래도 비 온 뒤의 날씨라서 시간을 조정 스케줄을 변경시키는 것이 나을 것아 패러 체험을 책임져주실 조 대표님께 전화 의견을 구했다. 오후 1시~3시경이 가장 좋을 거 같다며 먼저 도담삼봉 구경을 하고 12시쯤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다 멈춘 이곳 명승 제44호. 단양 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것이 도담삼봉이다.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도담삼봉을 거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중앙에 있는 봉우리에 정자를 짓고 시를 읊기도 했는데, 정도전의 호가 삼봉. 바로 도담삼봉에서 따온 것이라는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왕도정치의 신봉자 정도전은 이성계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정종의 맏아들이 아닌 정종의 동생 이방원이 임금이 되는 것을 반대하다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방원은 기어이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도덕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하여 정치하는 동양의 사상을 왕도정치라고 하는데, 공자와 맹자의 사상 왕도정치를 바탕으로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은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역사를 생각하니 도담삼봉은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시간이 갈수록 날씨는 좋아진다. 사무실에서 조 대표님과 미팅을 하자 점심 먼저 먹고 고수동굴 구경하고 난 뒤 3시쯤 비행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 하였다. 사무실 인근에 식당에서 잡어탕으로 식사를 하고 곧바로 고수 동굴로 향했다. 구름 틈 사이로 햇살이 조금씩 비치니 덥고 습해서 그런지 자꾸만 땀이 난다. 39년 전(1980년) 친구와 이곳에 와본 적이 있어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출입구에 매표소만 있었는데, 지금은 건물을 지어 그곳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게 되어있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과는 달리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국내 최고의 석회암 동굴이라 불리는 단양 고수동굴은 내부 온도가 섭씨 14~16도를 항상 유지한다는데, 동굴 속을 이리저리 살피며 계단을 올랐다 내렸다 하니 자꾸 땀이 나는데, 아마도 습한 동굴 안에서 나부대다 보니 그런 거 같았다.
오후 3시경 사무실로 돌아와 비행 준비를 한다.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 앞 남한강 변에서 조 대표님의 인솔로 친구 3명과 양방산 이륙장 이동 차량에 탑승하여 해발 664m 고지로 향한다. 꼬불꼬불 가파른 산길을 돌아 올라가니 양방산 전망대에 다다른다. 산 아래로 촘촘하게 보이는 읍내 풍경에 남한강 물줄기 원을 그리듯 푸른 옥빛으로 물들어 흘러가는데, 고지에서 보이는 탁 트인 풍경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활공장 바닥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 비행하기 좋게 되어 있었고 모두가 바쁘게 서두른다. 준비를 마치자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념촬영을 했다. 제복을 입은 모습은 모두가 그럴듯하게 멋있어 보였다.
준비가 다 된 친구는 차례로 파일럿의 지시에 맞춰 먼저 날아갔다. 뒤이어 한 친구는 이륙 직전 갑자기 날개가 앞으로 내려졌다. 뭐 잘못되기라도? 확인해보니 출발신호와 함께 이륙할 때까지 계속 뛰어야 하는데, 뛰다가 겁이 나서 그만 멈춰버렸다는데, 다음은 조 대표님과 내 차례다. 실패한 친구는 다시 비행 준비를 해서 뒤따르기로 하고 나는 조 대표님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출발과 동시 느린 속도로 달리다 빨리 달려 소리와 함께 힘껏 뛰었다. 조금 후 나도 모르게 헛발질이 된다. 쏴~~~ 드디어 이륙이다. 분명 바람은 약했는데 귓전에 들려오는 바람 소리 쏴~~~ 제법 세게 들린다. 가파른 절벽에서 뛰어내려 푸른 소나무 위로 날아가는 기분은 타 보지 않고는 모를 것이다. 처음엔 겁을 낼지 몰라도 막상 날아가는 기분은 상쾌하기 짝이 없다. 절로 와~~~ 와~~~ 고속도로에서 고급승용차를 타고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기분이다.
조 대표님은 이번 비행에서 특별히 나에게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다. 비행 중 가장 멋진 장소에서 영상 촬영을 놓치지 않는다. 바람을 타고 좌우로 곡예비행을 하며 묘미를 한껏 보여주었다. 비행 중 단양 읍내를 휘감아 돌아가는 남한강 상공에서 보여주는 풍경은 감탄의 연발이었다. 뒤따라 비행한 친구의 비행 모습도 보이는데, 고소공포증이 심한 이 친구 오늘 식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 상공위에서 몇 번이고 곡예비행을 하고는 착륙점에 정확히 내린다. 국가대표 조 대표님의 비행술은 정말 정교했다. ‘두 발 펴고 바짝 들어요.’ 소리와 함께 스르르~~~ 아~~~ 이런 것이었구나.
착륙을 마치고 조 대표님이 다시 양방산에 차를 가지러 다녀오는 사이 친구들과 사무실에서 소감을 이야기하는데. 역시 마지막에 내려 온 친구는 억지로 탄 거 같았다. 친구들이 다 타서 어쩔 수 없이 탔는데 다시는 타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15분 비행인데 실제 10분 비행이니 시간이 좀 짧은 거 아니냐고 했지만, 바람이 약해 어쩔 수 없을 것이라 하였다. 정해진 요금도 할인받았고, 고수동굴 무료입장권까지 받았으니 더는 말하지 않았는데, 조 대표님이 돌아와서 나에게 좀 약한 듯하니, 두산 활공장 해발 500m에서 한 번 더 태워주겠다고 하였다. 친구 모두가 타게 되면 요금을 더 내야 하지만 혼자면 그냥 태워주겠다 하니 다른 친구들은 조금 떨어진 곳 스카이워크에 가기로 해서 난 조 대표님 차를 타고 두산 활공장으로 향했다.
단양에는 양방산 활공장과 두산 활공장이 있는데 두산 활공장은 이륙장이 몇 군데나 있다. 그중 단양 패러 마을 이륙장은 조 대표님 지분이 있어 많은 사람을 상대로 비행을 하고 2016년 KBS 1박 2일에도 방영된 장소였다는데, 이륙장 일부 공간에 포토라인 설치 등 잘 훈련된 단양 패러 마을 마스코트 바람이도 분위기를 한층 더 멋지게 했다. 잔뜩 구름 낀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서쪽 하늘이 아주 아름답게만 보인다. 비행복으로 갈아입고 포토라인에서 몇 번이나 찍은 뒷모습 또한 멋있었다.
이륙 전 조 대표님이 ‘영상 촬영은 하지 말고 곡예비행으로만 할까요?’ 조 대표님이 물었으나 그냥 순항 비행으로 하자고 했다. 격한 곡예비행이 스릴은 있지만, 비행시간이 짧고 촬영은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순항 비행으로 이 모든 아름다운 장면을 영상으로 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조 대표님 지시에 따라 노련하게 움직인다. 양방산 비행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이다. 주변엔 도심의 건물도 없고 산자락을 끼고 도는 남한강과 푸른 숲이다. 그저 말없이 하늘을 날아보았다. 몇 번의 좌우 흔들기로 스릴감을 준 후, ‘두 다리 펴고 들어요.’ 소리와 함께 스르르~~~ 양방산 보다 고도가 낮아 비행시간은 짧았지만, 단양에서의 멋진 패러 체험을 두 곳에서나 해 보았기에 더는 미련은 없을 거 같았다.
해 질 무렵에야 조 대표님과 사무실에 돌아오니 친구들도 스카이워크 구경 후 동시에 들어왔다. 조 대표님은 언제든 찾아오면 마음껏 비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꼭 한 번 더 오라고 했다. 오늘 하루 즐겁게 해준 조 대표님에게 ‘좋은 경험하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나눈 후 가볍게 발길을 돌렸다. 이윽고 대구에 도착 친구들과 가까운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밥보다 술이 먼저다. 갈빗살에 소주잔은 자꾸 비워가고, 친구와의 우정은 쌓여만 가고, 틈새 끼여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난 따라주기 바쁘지만, 깜짝 제안으로 살기에 바빠 젊어서도 해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갖게 해 준 나에게 모두가 신뢰를 보낸다. ‘다음엔 어디 갈래? 좋은 곳 있으면 빨리 정해라.’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 패러글라이딩 또 다른 취미가 삶의 활력이다.
단양 패러글라이딩 (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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