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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도연 소설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1-02-08 09:23
ㆍIP: 175.xxx.88
욕망과 절망
욕망과 절망

이  도  연

가열된 엔진처럼 하얀 입김을 차가운 공기에 펑펑 쏟아 내며
도심의 새벽 발걸음이 분주하다.
얼어붙은 새벽공기는 도시를 꽁꽁 싸매고 있어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지하도에 접은 상자를 깔고 누에고치처럼 말고자는 노숙자는 이른 새벽을 뛰어가는 발걸음에 잠에서 깨어나 눈살을 찌푸리며 입이 찢어 저라 하품을 한다.
이 추운 새벽에 무엇이 저리 바쁘게 매일같이 출근하는지 불쌍한 사람들 기계 부품처럼 움직이는 저들이 가엽다.

길을 가는 사람들도 이들의 모습에서 불쾌감을 드러내기는 마찬가지이다.
지하도 바닥의 얇게 접은 상자 위로 올라오는 한파가 갈비뼈 사이를 할퀴고 지나가는 냉기를 눈으로 느끼며 봉변이라도 당할까 하품하는 노숙자의 눈길을 애써 피하고 지저분한 차림에 안타까움과 격멸의 조소를 보내며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선다.

서로가 가엽다고 말하지만, 누가 더 가여운 사람인지 서로 알지 못한다.
뒷굽이 달아진 헐렁한 구두를 신은 신사의 눈에 비치는 걸인의 삶은 비참하고 걸인의 눈에 비치는 신사의 삶은 도시의 정교한 기계의 부품이 되어 욕망을 쫓는 노예처럼 살아가며 시끄러운 발걸음으로 술기운이 덜 가신 새벽잠을 깨우는 저들이 짜증 나고 불쌍해 보인다.

지하도에 누워 노숙하며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픈 연민을 느끼고 복잡한 도시구조 속에서 저마다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만 삶이 버거운 사람들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거대한 도시의 마천루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욕망을 향해서 앞만 바라보며 달려가다 좌초하고 망가져 차가운 지하도로 내몰린 사람들 모습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삶의 부양을 위해서 헐거워진 중고차의 힘겨운 엔진을 헐떡거리며 한겨울 바람 앞에 입김을 뿜어가며 뛰어다닐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허기진 시간이 지쳐가고 온종일 일을 해도 부양을 위해 한 끼 밥을 아껴야 지폐 몇 장 동전 몇 잎이 다인 사람들과 노숙의 삶이 버거워 보인다.

초근목피 안빈낙도(草根木皮 安貧樂道)라 했던가?
초가삼간에 살면서 풀뿌리로 죽을 쑤고 칡뿌리를 캐어 먹어도 마음이 편하면 제일이고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분수를 알고 살며 욕심내지 않으면 그런 삶이 오히려 더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말하지만, 현대의 삶은 그것 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도시의 그림자가 더욱더 짙게 깔리며 어깨를 누른다.
그렇다고 방향 없이 사는 노숙자의 삶이 안빈낙도의 삶으로 올바르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찬바람의 발끝을 스치는 겨울에 늑골을 파고드는 힘겨운 삶의 현장에서 다만 살아가는 자세를 좀 더 경건하고 참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과 올해에는 크게 욕심내지 말고 비록 작은 소망이나 목표일지라도 감사와 소중한 마음을 담아 삶의 불씨를 열심히 지펴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짐해 본다.

희망에 속을지라도 절망에 속지 말자 희망에 속으면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지만, 절망은 삶의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으며 빛을 향한 꿈을 꾸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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