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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도연 소설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12-08 09:37
ㆍIP: 175.xxx.88
들 개
들 개

이 도 연

 어느 날부터 산책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들개와 자주 만나기 시작한다. 어느 집에서 주인 몰래 뛰쳐나온 개 이겠구나 하였지만, 자주 만날수록 불안해진다. 풀어 놓은 주인을 원망해 보았지만 어느 집 개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함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 육두문자가 무색해진다.

 한 여름 숲이 절정에 이르러 푸르름이 온 산을 녹음으로 뒤덮어 산책로는 언제나 맑고 싱그러웠다. 산책로 주변을 서성이던 들개도 더위에 지쳐서 긴 혀를 내밀고 헐떡이며 공원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서산의 해가 점점 여물어 뜨거울 여름 햇살을 서해 바다로 침강하며 식혀갈 무렵에는 뒷동산 산책로는 붉은 기운이 감돌아 서서히 가을 빛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며 고독의 계절이다. 산책로 주변은 붉게 물든 가을이 온통 풍요로움으로 가득 했고 상수리나무도 토실한 도토리가 여물어 가며 익어가고 들꽃도 화려한 꽃잎을 떨구어 낸 자리에 이파리가 가을로 젖어 들며 청록빛 수분을 증발시키고 있다. 봄날을 마취시키며 꽃으로 물들어 꽃 눈발을 날리던 왕 벚꽃 나무도 앞다투어 노랗고 붉게 물들어 낙엽이 되었고 새파란 하늘아래 다양한 빛으로 숲을 수놓은 가을의 사색은 아름다웠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컹컹거리며 들려온다.

 행복한 사색의 공간이며 명상의 공간에서 가을을 음미하며 즐기는 공간 속으로 문제의 커다란 백구 한 마리가 길을 막아서 서 저녁 무렵의 산책길에 적막을 깨며 나타났다.
뒤를 다르던 또 한 마리의 백구가 능선을 넘어 시선 끝에서 자취를 감춘다. 어둠이 살짝 내려 앉을 무렵의 숲 속이라 공포심이 배가되어 서늘한 가슴이 철렁한다. 어느 집 개인데 저렇게 송아지 만한 개를 풀어 놓았는지 몰상식한 행동에 걱정이 앞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떤 집에서 풀어 놓은 것이 아니라 산 아래 재계발지역 단독주택에서 키우던
개를 이사하면서 버리고 간 것일 거라는 추측이 든다.
아래 재계발지역의 넓고 황량한 들판 같은 곳에서 버려진 백구 두 마리는 살아 갈 길이 막연 했을 것이다.

 개들은 이리저리 배회를 하는 것 같아도 일정 간격을 두고 서로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다닌다. 마치 잘 어울리는 한 쌍 같기도 하고 동물이라 할지라도 자기들을 버린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서로가 의지해서 다니는 것 같아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두 마리라 외롭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두운 숲에서 만나는 나로서는 커다란 개 두 마리 이기 때문에 더욱더 위협적이다.
개들의 털은 말 그대로 백구지만 산속을 헤매고 다녀서 흰색은 잿빛으로 바뀌었고 무얼 먹고지내는 지 모르지만 들개의 덩치는 날이 갈수록 커져간다.

 개들도 산책을 하는지 나와 똑 같은 동선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과 공간에서 눈을 마주친다.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며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들개의 출현에 깜짝 놀라고 위압적인 개들의 크기에 다시한번 더 놀라며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가슴은 쿵쾅거리며 얼어붙어 온다.

 산책을 나가는 시간은 하루의 일과 중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나 들개와 만날 것을 생각하면 불안과 걱정이 앞선다. 숲 속에서 튀어나와 순간적으로 공격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올라갈 때는 커다란 몽둥이를 하나 들고 올라가서 일정한 장소에 몽둥이를 놓아 두고 해가 어스름하게 질 무렵에 다시 그곳을 내려올 때는 다시 몽둥이를 들고 내려오기를 반 복하였다. 들개를 만나면 대부분 녀석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처다 보는 듯하다 후다닥 건너 숲으로 달아나곤 했지만 산 아래 공원에서 안도의 숨을 쉬고 있을 때 뜻 밖에 장소에 나타나기도 할 때는 더 없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사람이 개를 버리고 버림받은 개들은 들개가 되었고 들개는 사람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개들의 잘 못은 아닌 것 같아 개에 대한 불쌍함에 마음이 아파진다. 사람의 욕심으로 인한 생명존중에 대한 경외심이 부족하고 살아있는 생명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필요 없으면 버리는 모진 마음을 탓하며 속상함을 스스로 자책하며 걷는다.

 가을의 끝을 지나 겨울의 초입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들개는 여전히 산책길에 만나면 위협적이고 불쾌한 존재이지만 언제부터 들개와 만나지 않은 날에는 안도감과 함께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야생 동물처럼 변해버린 눈빛과 숲에 적응이 되었는지 엉켜 있는 덤불사이를 쏜살같이 달려가고 들개의 잿빛 몸으로 숲속을 헤집으며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어둠이 내려오면 민가로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지고 어느 골목길을 돌아다니는지, 잠은 어디서 잘 자고 있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를 걱정이 앞선다.

 오늘도 영하의 수운주가 손끝을 아리게 하고 숲속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컹컹거리며 들려온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길들여진 개들이 키우던 주인에게 배신을 당해 졸지에 야생의 들개로 변해서 또 다시 인간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내는 적개심에 숲속을 헤매고 있다.
들개가 긴 겨울을 어찌 보낼까 등산객에게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온간 사념이 겨울 한파처럼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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