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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도연 소설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1-03-25 11:34
ㆍIP: 175.xxx.88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이 도 연

나는 학생이다
수업 종이 울린 것을 깜빡하고 절친과 손을 잡고 화장실을 간다.
등 뒤에서 친구들이 빨리 다녀오라는 소리와 비웃음 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을 향해 부지런하게 달려가 소변을 보고 화장실 밖에 나오자
친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급한 마음에 학교를 향해 뛰어간다.
그러나 갑자기 시야에서 학교는 사라지고 엉뚱한 길로 들어서자 순간 당황한다.
마침 버려진 바퀴 달린 의자를 발견하고 의자를 타고 가면 빠르게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자에 걸터앉아 빨리 교실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힘차게 발을 구르자 학교는 사라지고 흰색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길고 긴 시골 언덕길이 나타난다.

언덕길을 미끄러지듯 달리다 보니 바퀴가 달린 의자는 엄청난 속도를 내고 빠르게 내려가는 쾌감을 즐기며 속도를 더 높이며 달린다.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목적지도 없이 달리며 신나게 즐길수록 학교는 더욱더 멀어진다.
문득 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내려가던 길을 되돌아 오르기로 한다.

언덕을 반대로 올라가니 힘이 든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바퀴 달린 의자는 제법 잘 달려 올라간다.
학교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머리가 복잡하다.
이때 앞을 가로막는 젊고 잘생긴 청년이 나타난다.
바닥에 농구공을 튀기며 지나가는 청년을 만나자 앞을 가로막았다는 생각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길을 물어본다.
그는 길은 가르쳐 주지 않고 주고 엉뚱하게 김치 이야기를 꺼낸다.
무를 잘라 나박김치를 담갔더니 너무 맛있고 좋다고 말하며 김치를 잘 담그는 자기 어머니를 칭찬하며 따라오라 한다.
자신의 동네라 길은 잘 안다고 큰소리를 치며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며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낡은 철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러나 길은 없고 남의 집 앞 당에 커다란 개들만 컹컹 짖고 있는 것을 보고 개들이 달려들 것 같다는 생각에 공포감을 느끼며 포기를 하고 문을 닫아 버린다.
되돌아서서 다시 좁은 길을 따라가자 막다른 길이 나온다.
그의 뒤를 쫓아가며 답답하다는 생각에 진땀이 난다.
다른 길을 찾아가지만 역시 길은 없고 골목은 미로처럼 엉켜 있다.

여기저기에 좁은 길들이 벌집 같다고 생각을 하며 무작정 그를 따라 걷다 보니 조그만 밭이 나오고 밭 건너편에 큰길로 이어진 길이 보이지만 쉽게 건널 수가 없다. 밭을 가로지르는 그물망이 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억지로 그물을 망가트리며 밭을 넘어 길을 찾아간다.
그는 무사히 그물을 통과하지만, 발목이 그물에 걸린 나는 천신만고 끝에 그물을 겨우 통과해 그를 바라본다.
앞서 걸어가는 그를 따라 걷지만 큰길로 이어진 골목은 사라지고 그곳 역시 길이 없어 또다시 미로에 갇히고 만다.

그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어느 집 철문을 밀고 들어간다. 순간 앙칼진 여인의 비명이 들린다.
그는 여인의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았다는 누명을 쓰고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여인은 막무가내로 그를 향해 옷가지 등을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혼을 낸다.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공범으로 몰릴까 두려워 초인적인 힘으로 담을 뛰어넘고 지붕 위로 올라가 허공을 날아오른다.
그래도 몸은 가볍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아프거나 다치는 곳 없이 잘도 달아난다.

공범으로 몰리면 수치스럽다는 생각과 악다구니 쓰는 여인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치를 떨고 언덕과 들판을 가로질러 무한 질주를 하며 달아난다.
하지만 길도 학교도 보이지 않는 끝없이 커다란 우주의 미로 속을 달리다 몸은 지쳐가고 주변은 갈 수록 어두워지며 공포가 엄습해 비명을 지르다가 악몽 속에서 현실로 깨어난다.

길은 없고 발은 허공 속을 허우적거리며 둥둥 떠다니는 김이 빠지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과 아무리 골목을 헤매도 길은 나오지 않던 순간들이 방금 전에 일이고 억울한 누명을 쓴 낮 선 젊은 청년이 기억에 생생하다.
땀에 흠뻑 젖어버린 몸에 이불을 걷어차며 바람을 쐬고 악몽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길게 호흡을 하며 눈을 비빈다.
휴 꿈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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