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6-12-0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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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

충고

충고를 감수할 경지만 되면 그 공부는 일취월장 한다고 하셨습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충고를 감수할 수 없는 사람의 인품은 쪼그라들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뜻이겠습니다.

가족 셋이서 고구마를 먹고 있습니다. 점심 식사가 끝이 난 다음 때 이른 간식 삼아 먹는 것이기에 잡다한 시국 이야기를 하는 중입니다. 내가 한참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고구마 맛이 달라졌어.” 하고 딸에게 말을 합니다. 기분이 팍 상합니다.
나는 기분이 팍 상하였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아내를 바라봅니다. 딸도 엄마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급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더라도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이건 간에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해야 하지요.” 하고 충고를 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들으니 대답할 말이 궁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존경하여 달라는 게 아니라 무시하지는 말아 달라 하는 것입니다.” 하고 길게 충고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를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습관이 들어서 그랬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가정에서 가족끼리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에는 확실한 출구가 있어서 별 문제가 없습니다. 가족이 아닌 동료나 상하 사이와 같은 사회 집단에서의 이와 같은 사례는 보통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은 노인들만 모여서 일을 하는 곳입니다. 직장도 아니고 직장이 아닌 것도 아닌 그저 그렇고 그런 어정쩡한 곳입니다. 일을 하는 장소와 직장 이름은 있지만 일하는 날짜가 서로 다르고 급여가 겨우 용돈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는 날은 하루에 3시간씩이고 한 달에 10일간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30시간씩 일을 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직장은 아닙니다. 다섯 명이 일하는 날과 열 명이 일하는 날 열다섯 명이 모두 모여서 일하는 날 등이 있습니다.

일하는 중간에 소위 티타임이라는 게 있습니다. 잠시 모여서 대화를 하는 시간입니다.
다섯 명만 모였을 때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열 명이나 열다섯 명이 함께 만났을 경우에는 정말로 가관입니다. 호루라기를 불고 나서야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있을 성 싶습니다. 그런데 다섯 명이 모였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2:3으로 나뉘어서 이야기를 하니까 조금 조용하다는 것이지 숫자가 적다고 해서 한 팀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히 재래시장입니다.

통제 불능입니다. 누가 이 노인들을 제어한다는 말입니까? 아무도 말릴 선수가 없습니다. 만일 통제를 하려고 했다가는 망신 당할 각오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네가 뭔데? 아니 네가 무언데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겨?” 이리 되면 방법이 없습니다. 둘씩 셋씩 짝지어서 자기 이야기 하느라고 야단들입니다. 서로 떠들기 때문에 시끄러워져서 앞사람의 말이 안 들리고 겸하여 소리는 점점 볼륨이 올라갑니다. 마치 리어카 꾼 채소 행상이 모두 모인 형국입니다. 본부 연락 사항이나 전달사항이나 되면 모를까 그저 하릴없이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내 눈에는 오장 상할 이러한 광경들이 보이지만 충고를 접고 썩은 홍어속이 되어 지냅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 컴퓨터로 일을 하다가 다섯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문자 오는 소리가 납니다. 아는 분에게서 온 것입니다. 시간이 날 때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시계를 보니 5시 57분입니다. 시간 날 때 해 달라는 걸 보니 급하지는 않는 일입니다. 나보다 한 살 위입니다. 충고를 할 수는 없습니다. 기분 나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 때 바로 일어났지만 7시가 되어서야 답장을 보냈습니다. 지금 일어났다는 말을 먼저 썼습니다. 사람마다 일어나는 시간은 나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무언의 시위인 셈이지만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벌써 여러 차례 째니까요.

내가 옛날 교직에 있을 적에는 교장실에 가서 출근부 날인을 하고 나서 교실로 향하였는데 세월 따라 그게 바로 교실로 직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23학급 정도의 학교였기에 출근을 하면 바로 교실로 올라가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시간이나 되어서야 겨우 교무실에 들렀다가 나가는 정도였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학교 선생님들은 말 끼어들기는 하지 않는 고매한 인격자들만 있는 것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전교생이 8, 90명 정도의 학교에 가니 출근 시간이면 교직원 모두가 교무실로 모이더군요.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대화를 하고 있어도 여지없이 끼어들곤 합니다. 이것을 새치기라고 해야 하는지 끼어들기라고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자기가 할 말만 다 하고 난 뒤에는 미안한 기색이나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저 갈 곳으로 바람처럼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장 선생님이라고 하여도 충고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오랜 옛날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말하는 중에 끼어들기를 하는 사람이야 예나 지금이나 있을 수가 있지만 옛날에는 자기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라도 충고를 할 수가 있다고 믿는 사회였고 또 실지로 충고를 하면 속으로야 어쩔망정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가능 하였던 연유는 가정에서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세대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방예의지국’이라 하며 칭송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자라 왔지마는 어느 날부터인지 내 자식이지만 충고하기가 쉽지만은 아닌 시절이 오더이다. 이게 나 혼자만의 변명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게 바로 시대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부모의 말도 듣기 싫어한다는 감이 오기 시작한 때가 있었습니다. 이 때 나는 내 말로 가르치지 않고 성자의 말씀으로 가르쳤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청소년 시절부터 경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눈이 밝은 사람은 자기의 그름을 잘 살피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귀가 밝은 사람은 알뜰한 충고를 잘 받드는 사람입니다. 이 또한 성자의 말씀입니다.

김경렬 2016-12-07 05:54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눈멀고 귀멀어서 생긴 작금의 사태가 반증합니다. 아내말을 귀등으로 듣는 권위적인 남편, 안아무인 갑질상사, 대책없이 주책스런사람, 팔랑귀에 촉새같은 인물 이기적이며 배려가 말라버린 세상입니다. 나이든 기성 세대라도 모범이되고 귀감이 되어야 겠지요. 문인들이라도 작가님 말씀처럼 눈밝고 귀밝은 글을 많이 집필해야 겠다는 책임을 느낍니다. 가볍게 배독하였으나 깊은뜻 회초리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대전에서 비로소 작가님 뵐수 있겠네요. 반가운 해후를 기대 합니다.

백낙은 2016-12-07 15:17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이 세상에 가장 눈이 밝은 사람은 자기의 그름을 잘 살피는 사람"이요, "이 세상에 가장 귀가 밝은 사람은 알뜰한 충고를 잘 받드는 사람"이라는 말씀에 큰 감동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동리 어른들이 "이 놈! 그러면 못 써"라고 꾸짖는 말씀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만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충고가 아닌 간섭만 해도 봉변 당하기 일수이지요.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요즘은 어른이 없어졌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요즘 늙은이들에게 흰머리가 있나요, 수염이 있나요, 갓이나 상투가 있나요, 장죽이 있나요, 회초리가 있나요? 내 자신부터 스스로 자책해야할 것 같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늘 건필하소서.

이대유 2016-12-07 23:21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삼강 오륜 사라진 지 오래 된것 같습니다. 충고 받아 들이지 못함은 불통이겠지요. 언제나 알콩 달콩 일상사 참 맛깔스럽게 그리시는 작가님의 글맛에 취해 어지럽습니다. 베스트셀러 이석희 작가님의 대서특필 날 고대합니다.

이석희 2016-12-07 08:06	《Re》김경렬 작가님! 반갑습니다. 무슨 큰 볼일이나 있는듯이 쫓아오신 것만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깊은 교훈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함께 걱정하자는 말씀입니다. 어찌 보면 저 같은 사람이 더 문제인지도 몰라요. 시류에 거슬러 오르려는 사람은 손가락질 받기 딱이거든요. 저도 대전에서의 해후를 기다리는 심정이 기린 목입니다. 추워집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석희 2016-12-07 17:37	《Re》백낙은 작가님! 반갑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시류에 민감한 것 같아요. 먹고 사는 게 문제라더니만 먹고 살만 하니까 이젠 즐기기에 바빠요. 즐기기에 빠지다 보니까 좋은 일인지 아닌지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분별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제어 장치가 마비가 되었어요. 어른도 없고 선생님도 없고 선배도 없고 부모도 몰라보는 무법 천지가 되었어요. 실력이 좋으면 모둔 게 용서되고 성공만 하면 그만인 세상이 되었어요. 이제는 정신 줄을 바로 잡아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이석희 2016-12-08 07:20	《Re》이대유 시인님 ! 정말 반갑습니다. 첫눈 맞으며 찾아오신 북녁 서을의 진객이십니다. 저도 종종 찾아가서 눈도장만 찍고 옵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어지러워서 힘들어 집니다. 18일 모임에서 뵈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목철 2016-12-31 15:15	작가님,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은 권력을 말 합니다. 졸병은 듣는 권리 밖에 없지요, 대통령이 말하면 장관도 수첩 꺼내들고 듣기만 합니다. 저도 직장을 고만두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말 할 때는 부원 모두는 듣고 있어야만 했다는 것을,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N분의 1의 원칙입니다. 4명이 있은면 25%가 말할 수 있는 제 몫이라고, 지키려 노력 하지만 깜빡 할 때가 많답니다. 끼어들기 참는 것도 아주 힘들어요,

이석희 2017-01-01 19:36	《Re》박목철 작가님! 끼어들기를 참는 일이 쉬우면 세상 일이 얼마나 쉽겠어요. 그것 참 어렵지요. 내 차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좀이 쑤십니다. 그래도 차례를 기다려야 하니 어려운 일이지요. 새해개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멋진 일만 가득한 날이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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