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6-12-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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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없다.

스승은 없다.

나는 오늘 지금부터 15년 전인 2000년에 있었던 일을 회고하여 보고자 합니다.
나는 원래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하지만 20여 년 전에 퇴직을 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 많은 고생을 하고 교직에 다시 돌아가고자 하여 교육청에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서 복직은 안 된다고 합니다. 낙담을 한 채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어정쩡한 마음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로 그 분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꼭 하고 싶으면 기간제 교사를 해 보면 어떨까요?”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생소하기만 한 기간제 교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이 순간과 나를 위하여 있는 명언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에 따라 그 당시 대구에서 살던 나는 가까운 경상남도 밀양에 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던 중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제 교사 일이라는 게 예고 없이 닥쳐오는 일자리이기 때문에 당장 내일부터 오라 하지만 막상 그에 상응하는 준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당장에 오라하니 기쁘기는 해도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당시에 학교에 가려면 컴퓨터를 해야 할텐데 하고 생각을 하고는 있었어도 막상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시간을 죽이고만 있었습니다. 컴퓨터라면 업무는 고사하고 켜고 끌줄도 모를 뿐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난감한 것은 컴퓨터도 못하는 선생님이 왔다고 무시하고 손가락질을 받으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이 앞을 섰습니다. 물론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니 학교에서 오라고 하기 전에 학원을 다녀서 배우고 갈 거라고 다짐은 하였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배우려 가는 일을 차일 피일 미루고 있다가 여기까지 오고 만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해보는 일은 겁이 나는 법인가 봅니다. 그냥 털고 일어나면 되는 일인데도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내 입장이 워낙 절박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부딪쳐 보리라고 배짱 좋게 내일 오전에 가겠노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고 가는데 발걸음이 천 근 만 근이나 되도록 무거웠습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 무시무시한 광경이 나의 눈앞에 전개되었습니다. 20여개의 교사용 책상 위에 두 줄로 나란히 줄지어 앉아 있는 컴퓨터가 눈에 떡 들어옵니다. 아마도 6, 70여대가 아닐까 어림잡아 보았습니다. 정말 기가 팍 죽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에 이르고 보면 기가 안 죽을 장사는 한 사람도 없지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그림이 그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가이 맞이하는 교감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교실에 들어서니 80개의 눈망울이 나를 향하는 그 순간에 또 다시 4대의 컴퓨터가 나를 압도하였습니다. 내가 그토록 걱정하였던 컴퓨터가 어찌 이리도 많단 말인가! 정말 이 기막힌 현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고 얼른 이토록 비참한 연극이 막을 내렸으면 좋겠는데 시간은 어찌 그리도 천천히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 때 다시 오금을 저리게 하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 오늘부터 수업을 하시겠어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채근하는 교무부장님의 질문에 이 순간만큼은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단 하루라도 미루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쉬면 급료가 그만큼 깎이니 그럴 수만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입니다. “일단 미루고 보자.” 그래서 내일부터 오겠다고 하여 사태를 수습하는 게 우선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오고 말았습니다. 마치 벌레를 씹은 듯한 내 얼굴을 살핀 아내는 “결과는?”맥이 떨어지다 시피 한 나에게 대답은 안 들어도 다 알고 있다는 듯“시원한 물부터 한 잔 마시라.”고 합니다. 먹고 사는 일만 아니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튿날 할 수 없이 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맡은 5학년 2반 교실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순진해서 앞으로 나와서 말을 거는 아이, 인사를 하는 아이 등등 눈도장 찍기에 바쁜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오직 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넘길까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하였습니다.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자 반장이 경례를 시켰습니다. 저는 이미 전날부터 정면 돌파를 하리라 굳게굳게 마음먹었기 때문에 별로 떨리지도 않았습니다.

“에에에” 하고 에‘에’소리를 길게 뽑으며 우선 뜸을 들였습니다. “선생님이 컴퓨터를 배우지를 못했다. 다 배운 후 교직에 나서려고 하였지만 이 학교에서 빨리 와달라고 해서 별 수 없이 그냥 왔다. 하니 너희들이 가르쳐 주어야겠다. 너희들 중에 누가 컴퓨터를 잘 하느냐.” 하였더니 아이들이 “얘예요” 하면서 모두가 나서서 이성우라는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서 컴퓨터 켜고 끄는 것을 배웠고 컴퓨터로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하교 후에 혼자서 교실에 남아 퇴근시간까지 인터넷 한글 등의 연습을 정말로 손에 쥐가 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달 후 여름방학을 할 때에 통지표를 컴퓨터로 제작하고 출력을 해서 아이들 손에 쥐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일은 정작 아이들은 나의 컴퓨터 능력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르면 배우면 된다고 생각 하는가 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참으로 허탈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공연한 걱정으로 날밤을 새워서 걱정을 하고 또 하였던 셈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나보다 더 아는 이를 스승으로 생각하였고 나아가 구하는 그 때 그 순간만을 스승으로 여기라는 말씀을 현실에 활용하는 지혜를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빨리 익히기 위하여 쉼 없이 연습을 해서 짧은 시일에 통지표를 만들어 줄 수가 있었습니다.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오늘에 이르러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지혜로운 처사를 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저 배우면 됩니다. 내가 몰라서 배우려는데 나이가 무슨 걸림돌이 될까요. 내가 아쉬운 형편인데 그의 지식 말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배움에는 반드시 시기가 중요합니다. 내가 필요한 지식이 있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그 장소가 내가 배울 시기입니다. 미적거리다가 그 순간이 지나가 버리면 소위 말하는 버스 떠난 뒤에 손을 드는 경우와 하등 다를 바가 없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꼭 같은 기회는 다시 오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김경렬 2016-12-02 15:59	부라보! 대단하십니다. 지혜롭게 대처하셨고 노력 또한 금메달감입니다. 한달음에 가슴 조이며 배독 하였습니다. 기분이 이렇게 상쾌 할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고 많으셨습니다.박수ㅉ! ㅉ! ㅉ!

백낙은 2016-12-02 16:25	이석희 작가님. 먼저 박수부터 보냅니다. 저는 비교적 일찍 컴퓨터를 했습니다만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답니다. 이만큼이라도 컴퓨터를 못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는가를 생각하면 아찔한 기분입니다. 작가님 말씀대로 학생에게뿐 아니라 손주에게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배우기를 멈추는 순간 그 인생은 끝나는 것이라 여깁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안하소서.

이석희 2016-12-02 18:24	《Re》김경렬 작가님 ! 님의 그 멋진 웃음이 마음으로 전해 옵니다. 격려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이석희 2016-12-02 18:27	《Re》백낙은 위원장님 ! 반갑습니다. 포항에서 울리는 박수소리가 멀리 충주에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배움에 대한 의미를 저와 공유하시는 것 같습니다. 더 기쁩니다. 격려에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건강하세요.

정찬열 2016-12-03 08:05	이석희 작가님! "스승은 없다" 한달음에 배독하며 제가 용기와 희망을 갖 습니다. 사실은 저는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대신하고 저의 취미상 이공계를 가야했으나 가정형편상 근거리 15km거리에있는 자전거 통학거리인 농업고등학교를 나왔거든요 그러나 1968년대 전파사에취직후 3년만에 옛날 진공관식 라듸오전축 트랜지스터 를 직접 제작 판매수리하는70년대 의 직업이 오늘날까지 전기공업계에서 활동하는 고급기술자로 사업가가 되었으나 전기감전 사고로 한팔을쓰지못해 결국 문학에 입문해 훌륭하신 문인들께 누가되지 않기위해지금도 계속 문학에 대하여 배우고 만 있는 사람이기때문입니다. 언제 문학과 접할수 있는 기회가 없어 배우고만 있어서 작가님의 글을 읽고 더욱 감사에 마음을 전합니다. 늘 많은 지도 편달 바라오며 건안 하시길 빕니다.

이석희 2016-12-03 10:57	《Re》정찬열 작가님 ! 참 별 송구한 말씀을 다하십니다. 저도 10Km를 걸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고생도 많이 했고 애환도 많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손기술만이라도 가지면 굶지는 않겠다 싶어 하나 있는 아들을 공대에 보냈습니다. 다행히도 엔지니어이기에 쫓겨나지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인생은 성공신화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문학까지 섭렵하시니 존경스럽습니다. 누가 뭐라 하여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초학자에게도 항상 용기를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충고

파슬리까지 먹어 치운 그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