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7-03-27 04:35

ㆍIP: 124.xxx.224

긴 병에 효자 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
/이석희

거동이 불편한 형을 동생이 흉기로 찌른 뒤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직장과 결혼도 포기한 채 15년 넘게 형을 돌봐왔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다행히 형은 목숨을 건졌는데, 경찰도 이런 사정을 고려해 동생을 구속하진 않기로 했습니다. 출혈이 많았지만 다행히 생명은 건졌습니다. 이 씨를 찌른 사람은 친동생이었습니다. 범행 직후 경찰에 전화해 자수했고 술을 마신 뒤 형과 다투다 홧김에 찔렀다고 털어놨습니다. 경찰은 오랜 병 간호에 지친 동생이 우발적으로 범행했을 가능성이 크고 동생이 구속되면 형을 돌볼 사람이 없는 만큼 동생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대형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병동에 가면 환자들로 넘쳐납니다. 신입 환자들도 있고 여러 번 재입원한 환자도 있습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전국에서 모여 들기에 천태만상의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환자도 환자지만 보호자가 더 안쓰러워 보일 때가 있는데 보호자를 보면 환자와의 관계가 대충 짐작이 됩니다. 환자의 병원 경력에 따라 보호자의 인상도 천태만상입니다.

처음 입원하는 환자의 보호자는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주변 시선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연신 눈물만 찔끔 거립니다. 수술을 받고 며칠이 지나서야 안정을 찾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병에 대한 이야기 등 신상을 털어 놓습니다. 병이 재발하여 두 번째 오는 환자의 보호자는 짜증스럽게 보입니다. 여러 번 입원하는 환자의 보호자는 만성이 되어 느긋하여 집니다. 환자가 괴로워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운명에 맡기는 것 같습니다. 지칠 대로 지쳤을 테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리고 평상시 환자와의 관계도 짐작이 되는데 금슬이 좋은 부부는 식음을 전폐하고 안쓰러워 연신 환자를 쓰다듬으며 식사 때는 맛 나는 거 챙겨 주며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합니다.
사이가 좋지 않으면 짜증스런 말투로 불편한 환자를 다그치기도 합니다. 환자 식사 시간에는 옆에서 화장하며 옷맵시 다듬고 호호 하하 웃으며 환자가 밥을 먹든 안 먹든 관심이 없습니다. 면회객의 표정을 보아도 환자와의 관계가 짐작됩니다. 형제자매나 부모 자식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눈물만 흘리다가 말없이 돌아갑니다. 가까운 친척들은 먹는 것 자는 것 미주알고주알 온갖 잔소리 늘어놓으며 주문이 많습니다. 조금 먼 친척 벌 되는 사람들은 좋은 덕담은 건네지만 무덤덤한 표정의 가벼운 발걸음입니다.

재활 운동하러 가는 환자 부축 장면에서도 관계를 알 수가 있습니다. 휠체어 밀고 가는 착한 아들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말하듯 무덤덤하고 지겨운 표정입니다. 잔소리만 듣고 사는 며느리는 벌레 씹은 얼굴로 먼 산만 바라보며 갑니다. 착한 딸은 옷맵시 만져주며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꼼꼼히 챙겨줍니다. 평상시 금슬이 좋은 부부는 착한 딸처럼 하지만 불편한 부부는 못 된 며느리처럼 대합니다. 그러니 평상시 몸 관리 잘하여 내 몸은 내가 돌보아야 합니다. 부부를 비롯하여 아들 딸 내외 등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다 나 하기 나름입니다. 아파보면 내가 어찌하며 살았는지 비로소 알게 됩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병수발의 끔찍함을 꿰뚫은 ‘촌철살인’의 표현입니다. 조금 과장된 게 아닐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혈육의 정이 얕아서가 아니라 장기 간병이 초래하는 내상이 너무 깊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가족 중 누군가 만성질환으로 몸져누워 있을 경우 형편이 넉넉하다면 전문 간병인을 고용할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서민들의 경우엔 싫건 좋건 직접 병간호를 해야 합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무대책으로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딱합니다.

가족 간병인들의 대부분은 가계를 꾸려가야 하는 근로자들로 장기적인 병수발을 감당할 만한 재정적 능력이 없습니다. 이들이 밟는 과정은 거의 비슷합니다. 간병기간이 장기화되면 우선 아등바등 모아두었던 비상금이 증발하고 맙니다. 가정과 직장으로 신경이 분산되다 보니 업무 집중도가 떨어져 고용주의 눈 밖에 나기 십상입니다. 해고의 도끼날에 언제 목이 잘려 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장마철의 강물처럼 수위를 높여갑니다.

장기 병수발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지만 간호해야 할 대상이 치매환자면 간병인이 받는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집니다. 치매환자 간병인은 병수발이 끝난 뒤 최고 3년이 지나도록 약화된 면역체계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국립과학원의 연구결과가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줍니다. 사정이 이 정도면 근로자 간병인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파산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줄 제도적인 장치가 있을 법도 한데, 아무리 둘러봐도 변변히 눈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노부모 병수발을 왜 정부가 지원해야 하느냐는 ‘철없는’ 소리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이러한 경우에 대비하는 각종 요양원이 성업 중입니다. 인식이 부족한 노인들은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손사래부터 치고 보는 경향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럴 일은 아닙니다. 나의 경우를 말해 봅니다. 나는 75세이고 아내는 71세입니다. 20년 전 쯤에 둘 다 대학병원에 시신 기증을 하였습니다. 화장을 해서 새 먹이로 사용하라는 유언도 해 놓았습니다. 묘소 만들어 후손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건 정말 싫습니다. 그리고 대소변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게 되면 무조건 요양병원으로 입원시켜 달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아들과 딸들도 흔쾌히 손을 들어 하이 파이브를 하여 주었습니다. 고관절 골절을 당한 우리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대소변과 목욕시설을 보고 안심을 하였습니다. 가족이 수발을 든다면 그렇게 잘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문제는 내가 스스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김종덕

2017-03-27 10:04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께
"나의 문제는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한다"는 말이 왜 이다지도 가슴을 긁습니까. 작가님은 추호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오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정으로부터 담을 쌓는 일을 또 아니한것 같습니다. 사람 냄새가 나게 산다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이기는 하겠지요. 눈에 이슬이 고입니다. 나는 어떻게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나하는 생각이 온 몸을 덮칩니다. 잘 못하면 매를 맞아야 겠지요, 사랑이 없는 칼날같은 매라도 맞아야 겠지요. 매로써 세월을 바꿀 수 있다면 더욱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아프지 않아야 겠지요. 작가님도 틈따라 걷기도 하시면서 내일을 위하여 건강을 챙기시길 당부드립니다. 따가운 회초리 감사합니다.


이석희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참으로 무겁습니다. 교직에 있을 때에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강조하였습니다. 자녀들도 그렇게 키웠고요.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엄격하지만 부모 앞에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삽니다. 삶도 각자 자신이 책임 질만큼 자라기도 했고요. 자녀뿐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도 나로 인하여 힘든 환경이 되면 안 된다고 믿는 편입니다. 좋은 말씀에 머리 숙입니다. 지난번 등단식때 보내주신 사진은 잘 받았고요 메일로 답장을 보내드렸습니다.	3/27 11:41

김종근

2017-03-27 13:22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
저희도 할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그곳에서
삼 년 사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요양원이 잘 되어 있어서
참 좋은것 같았습니다. 치매와 같이 밀착 생활을 하여야 하는 상황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나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감사히 배독하였습니다. 편안한 한 주간 되세요.


이석희	그렇습니다. 좋긴 좋은데 자식이 선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서 본인이 해결 짓고 떠나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식으로 보면 어려운 일이지만 조금만 세심히 보면 바로 답이 떠오릅니다.	3/27 13:26

백낙은

2017-03-27 20:24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참으로 입에 담기도 힘든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옛날과 달리 자꾸만 개인주의가 되고
가정이 자꾸만 파괴되고 있는 것이 문제 중 하나라 여깁니다.
요즘 노인요양병원이 옛날 고려장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만
제동장치가 고장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여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거다라고 탄성을 지를 수 있는 답이 없다는 것 또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안하소서.


이석희	위원장님! 찾아 주시어 고견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른들의 의견을 받들어 드리면 더 없이 좋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참으로 딱합니다. 자녀들의 어려움을 덜어주자는 뜻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일기가 고르지 못합니다.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3/27 22:31

김상화

2017-03-28 00:01

이석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제목의 글 어찌 그리도 구석구석
많이 아시는지 감탄을 합니다
긴 병엔 효자 없다는 말씀은 백번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작가님께서는 사후에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하신다 했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화장해 새들의 밥이 되게 해달라는 큰 용단을 내렸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도 또한 마찬가지고요
핵가족으로 말미암아 시대 조류에 따라 모두 그런 추세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리타분한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반대를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산소를 쓰므로 형제들이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로 인해 우애가
생기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영혼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릅니다. 다만 종교적으로 고운 인성을 가르치기 위해 성인들이 만든 것이 아닐까
봅니다. 작가님의 훌륭하신 생각과 글에 찬성과 박수를 보냅니다
다만 제 작은 의견을 잠시 드렸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밤이 깊었네요. 고운 꿈 꾸시기 바랍니다


이석희	김상화 작가님! 반갑습니다. 작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해도 됩니다. 강요는 아니거든요. 단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우애가 이어진다는 보장은 사실 못하니까요. 대체로 그래요. 내 손자대까지는 가능하지만 증손자부터는 얼굴도 모르는 조상 묘사에 얼마나 성의가 있을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3/28 05:46

김경렬

2017-03-28 22:50

긴병에 효자 없다/
옳으신 말씀들 공감 합니다.
병도 병나름이라 생각 합니다.
특히 중증 치매의 경우 온가족의 심성이 피폐해 지는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요양 시설이 잘된곳이 많아 편리합니다.
남아야 하는 가족의 건강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환자 자신이 편리한 시설속에 머무를수 있다는것도 중요 하지요
그리고 부부가 시신 기증을 하셨다 하시니 고개가 숙여 집니다.
고루지 못한 날씨에 건강 하시기 바람니다.


이석희	김경렬 작가님! 찾아 주시고 고운 마음으로 응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직 날씨가 찹니다. 건강 잃지 않도록 하세요.	3/29 05:46

김상훈

2017-03-30 03:55

그나마 길바닥에 버리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가 됀 세상입니다. 저도 어머니와 할머니를 참 힘들게 간병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간병에 효자 없다라는 진실을 알고 계신 두 분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였을 겁니다. 사후에 대한 계획까지 미리 세워놓고 계신 것이 어쩌면 그런 불편한 진실을 예방하는 지혜일 수도 있겠습니다. 용단에 고개 숙여집니다.


이석희	김상훈 작가님! 반갑습니다. 등단을 축하합니다. 늙은이 눈으로 바라보아서 그런지는 모릅니다만 크게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이 별로 안 보입니다. 사체가 이러하니 가뜩이나 자유 분방한 분위기에서 자라고 큰 젊은이들에게는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합니다. 인생 선배가 할 일이 젊은이들에게 양보하고 그들을 희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아 줄 수만 있어도 그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다는 게 고작 그런 일 뿐이었답니다. 정성스런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3/30 08:18

정찬열

2017-04-02 22:31

이석희 작가님 !
누구나 공감하는 글이지만 내공깊게
써주신글에 단숨에 배독했습니다.
내주위에 도 아주 아내밖에모르는 다정한 부부가
3년전 형수의 암투병에 처음에는 슬픔에 꼭붙어
어찌할바를 모르던 남편이 이제는 모든것을 포기하고
한자리 나와함께 점심을먹은바 를 보았습니다.
분명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몇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속담인것이 분명합니다.
멋지게써주신글 감사히 보았습니다. 늘 건안 하세요


이석희	정찬열 작가님! 공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른들이 먼저 존경받도록 살아야 합니다. 요새것들이라 하고 폄하하면 안 됩니다. 대우 받으려면 대우를 해 주어야 합니다.	4/2 23:28

이유리

2017-04-04 21:16

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 정말 공감가는 말이지요
저도 작가님과 같은 생각이예요
아직은 오십대 초반으로 젊다고 하겠지만
나중에 자식들이나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요즘은 잘되어 있는 요양시설도 그런생각에 한 몫 하는것 같구요
이미 현명한 판단을 하신 작가님, 너무 멋지십니다
공감의 글 감사히 봅니다


이석희	이유리 작가님! 안녕하세요? 그래요, 자식들은 차마 못하는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그들의 짐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4/4 22:34

염소 목걸이

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