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6-10-0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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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그 처절한 날갯짓

자유, 그 처절한 날갯짓 / 이석희

그러니까 나는 지금 50여 년 전쯤으로 기억의 시계 바늘을 돌려 그 때 경험하였던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들어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소중하다면 소중한 사연들을 지난 시절 앨범 사진을 뒤적이듯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적어 보려고 합니다.
그 때 내 나이가 열 댓 살 무렵이었으니까 이미 잊었을 법도 하지만 많은 일들 중에 유독 이 이야기가 여태껏
나의 뇌리에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제법 큰 경험이었지 싶습니다.

할머니를 비롯하여 우리 가족들은 마을 전체가 가난해 빠진 그렇고 그런 마을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작은 고모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셔서 논과 밭을 제법 많이 갖추고 넉넉히 살면서 이웃과 나누어 먹고 사는 형편 좋은 시골 농부의 아내였습니다.
그 집에는 나보다 두 살 많은 형과 한 살 적은 누이가 있어 나와 손발이 잘 맞기도 하였지만 우선 우리 집보다는 나누어 먹을 것이 많고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기에 나는 그 고모네 집을 별 다른 일이 없어도 뻔질나게 놀러 가곤 하였습니다.

한 마지기나 되는 넓은 밭에 수박과 참외를 심은 고모 네는 그걸 수확하여 시장에 내다 팔지를 않고 나처럼 별 일도 없이 찾아오는 식객이나 동네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만큼 마음 넉넉한 부잣집 마님으로 사셨습니다. 그 때 나는 그곳에 가면 원두막에 가서 먹고 놀기에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가 고모네 집에 가서 밥 먹고 다시 원두막에 나가서 수박에 참외를 배가 둥근 박이 되도록 실컷 먹고 거기서 자고 다음 날에서야 집에 돌아오곤 하기를 번번이 하였습니다.

그 때 본 신기한 또 하나의 모습이 있었으니 우리 집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닭장이었습니다. 역시 부잣집 닭장이라서 그런지 닭장의 개념 자체가 우리네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우리 집 닭장은 마당가에다가 나무 기둥을 세우고 나무 가지를 이용하여 못질을 해서 대충 만들고 지붕에 쪼개져서 못 쓰게 된 판자 등속을 덮어서 빗물이나 스며들지 않게 만들고 닭을 기르는 판이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밤이 되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닭장에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려 졸린 눈에 가물가물한 등불을 켜서 들고 찾아가 보면 마당가에 죽은 닭의 날갯죽지가 널려 있기를 매번 반복하면서 닭을 키웠습니다. 이럴 때면 어린 마음에 어찌나 서운한지 혼자서 눈시울을 적시기를 여러 차례 하였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고모네 집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고모네 집에 가서 보니 아주 고급스런 닭장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의 닭장은 재료 자체가 대나무였습니다.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서 긴 대나무 가지로 둥근 원통을 촘촘하게 엮어 만들고 가운데에 홰를 부착하여 잠자리를 만들어 처마 밑에 매달고 닭이 다 들어간 뒤에는 출입문을 야무진 끈으로 묶어서 어느 놈이든지 들어갈 수 없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인지 그 날도 거기에서 잠을 잔 내가 아침에 잠을 깨어 마루에 나와 살펴보니 모이통을 들고 나간 형이 닭장 문을 열었고 닭장 안에 있던 닭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습니다. 그러자 형은 이내 마당에 곡식알갱이들을 좍좍 인심 좋게 뿌려 대었습니다. 밤이 새도록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였으니 배가 얼마나 고플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아침 오줌 누는 일도 잊어버리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처럼 쪼그리고 마루 끝에 앉아서 그 신나는 아침 식사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나는 은근히 닭들의 맛있는 식사를 응원하듯이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있었습니다. 닭들은 모이를 먹지 않고 마당을 맴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탉 암탉 어린 닭 청년 닭 처녀 닭 암평아리 수평아리 가릴 것 없이 마당을 맴돌아 뛰어다닙니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이 방향으로 저 방향으로 제각기 제 맘대로 마치 난리라도 난 듯합니다. 병아리들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다가 제 풀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놈, 마치 저한테 덤비는 줄 알고 목 줄기 깃털을 세우며 전투태세를 갖추는 병아리도 보입니다.
그러다가 이내 자기가 오해하였음을 직감한 듯 마치 무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면쩍은 모습으로 등을 보이는 병아리도 있습니다.

그러기를 얼마나 하였는지 닭들은 그 처절하기만 한 날갯짓을 멈추고 식사를 시작합니다. 열심히 먹습니다. 목이 막히는지 물을 마시는 놈도 있습니다. 어린 소견에도 밥보다 자유가 우선이라는 공식을 확인 한 듯한 나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들떠 올랐습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후 나는 이 신기한 사실을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하기에 입이 마를 새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이 신기한 생태보고에 눈깔사탕처럼 눈이 동그래 가지고 듣고 나서는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친구의 놀라운 모습도 느껴졌습니다.

이제 오늘날 구제역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이 병이 번지기만 하면 비상경계망을 치고 차량을 소독하고 사람도 소독을 해야 드나들기를 허용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습니다. 드디어 끔찍한 살처분까지 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면 구제역은 전염병이 아니라 열악한 축사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병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방송에서도 확인 할 수가 있듯이 우리들의 돼지 축사 모습을 한 번 보십시오. 많이 움직이면 살이 찌지 않는다고 겨우 서 있을 만큼의 공간만을 제공하는 돼지 농장 주인의 저 무서운 욕심을 생각해 봅니다. 잠을 많이 재우면 계란을 많이 낳지 않는다고 밤잠을 못자도록 축사에 하루 온 종일 전등불을 밝히는 우리네 인간들의 그 무자비한 행동을 한 번 보세요. 우리에게는 밥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유도 그에 못지 않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해 준 닭들의 아침 시위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내가 기르는 저 짐승들도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으로 생각하고 짐승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유를 선물하여야 합니다. 이리 된다면 비록 소비자가 조금 비싼 고기를 사 먹는 한이 있더라도 살처분이라는 무서운 죄악을 범하는 일은 많이 조금은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등단작입니다.

김경렬 2016-10-01 07:27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 했는데 닭장 이야기를 의미있게 담으셨습니다. 깊은뜻이 서린 재미있는글 잘 배독하였습니다. 시월 첫날 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풍성한 가을 되시기 바랍니다.

이석희 2016-10-01 08:45	《Re》김경렬 작가님 , 10월들어 첫번째 맞이하는 귀한 손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참 반갑습니다. 알뜰하신 교훈 잘 받들겠습니다. 일교차가 심한 날입니다. 늘 건안하십시오.

백낙은 2016-10-01 11:02	이석희 작가님. 여러번 읽었습니다만 다시 봐도 좋습니다. 우리 작가들이 이 사회의 병폐를 바로보고 그 처방을 내 놓는 것이 본연의 사명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안 향필하세요.

이석희 2016-10-01 11:22	《Re》백낙은 작가님 , 항상 용기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딴에는 노력한답시고 폼은 근사하게 잡지만 아직은 촌티를 못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가면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추위질 날이 점점 차차 가까이 오고 있는 듯 합니다. 평안한 시간 보내시기를 빕니다.

주응규 2016-10-01 13:09	이석희 작가님 자유 그 처절한 날개짓 의미있게 배독합니다 시월 첫날입니다 시월 한달도 행복이 가득 깃드시길 축원합니다

이석희 2016-10-01 15:04	《Re》주응규 작가님 , 반갑습니다. 가을 행사 때 작별 인사도 변변히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고생 참 많으셨어요. 님의 열정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날씨가 점점 시원해 집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임정수 2016-10-02 15:59	바람은 없는데 들컹거리는 서재의 문이 열려있길래 시월의 바람을 타고 슬며시 들어와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다녀간듯 한쪽에 놓여진 방석 하나 끌어 당겨 오묘히 수놓은 글밭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마음의 양식을 채워보는군요. 늘 시간에 쫒기듯 숨가쁜 일상 생활 속에 찌들린 삶을 펼 수 없어 그저 발자국 하나 남기면서 자신을 돌아보네요. 항상 건안 / 건필 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빚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이석희 2016-10-02 21:49	임정수 작가님! 이렇게 찾아와서 격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풋내기 초보자입니다. 금년 8월에야 이름을 올렸으니끼요.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찬열 2016-10-03 10:40	이석희 작가님 우선 먼저 가을행사에 받으신 등단 작가상 을 수상하심을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박수를 보냅니다. "자유, 그 처절한 날갯짓 " 가축들도 밥보다 자유롭게 뛰어날으는 가축들이 건강하여 구제역에도 강인함을 깊이 공감하며 배독했습니다. 항상 흉금을 울리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석희 2016-10-03 11:43	정찬열 작가님! 반갑습니다. 지난 행사때 보여주신 환대는 저에게 깊은 인상을 새겨 주셨습니다. 헤어질 때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분에 넘치는 격려로 응원해 주시니 더욱 고맙고요. 힘내어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박목철 2016-10-04 21:02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어낸 얘기가 아니니, 아 그렇지! 하는 공감도 있고요, 저도 강원도 봉평에 토종닭을 길었는데, 몇년 만에 식구가 엄청 늘었었지요, 딸들이 이사 나온다고 돌봄이 소홀하자 쪽제비와 매가 닭들을 잡아 먹었습니다. 동물에 대한 사랑, 다시 한번 되새기며 글을 읽었습니다. 이가을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 작가님,

이석희 2016-10-05 00:42	박목철 작가님! 아주 반갑습니다. 동물 가족과 함께 하신다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들을 많이 접하실 겁니다. 저는 동물과 함께 살아갈 기회가 없기에 '동물농장' 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자주 봅니다. 보면서 그들과 교감합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들과 우리는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사랑이 여기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야 이 세상은 사랑으로 넘쳐날 것입니다. 제가 흥분했나 봅니다. 괜한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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