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6-11-08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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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구두에게 당한 봉변

맞춤 구두에게 당한 봉변

내가 젊었을 때 그리고 한창 시절 그러니까 1972년으로 기억됩니다. 오지 벽지 학교로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제도 때문에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군내 학교 중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공부하는 읍내 학교를 떠나 이름도 생소한데다가 닥쳐올 고생을 생각하면 미리 풀이 죽는 벽지 학교로 발령이 났습니다.

지금은 교사들에게 벽지 근무 혜택이 있어서 승진을 꿈꾸는 많은 교사들이 서로 가겠다고 줄을 잇는 상황이니 희망자만 보내려고 하려도 자리가 모자랄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마지못해 가기는 합니다. 하지만 세월의 수레바퀴가 돌고 돌아 딱 1년 전 그 날이 오면 다시 그곳을 빠져나오니 말 그대로 정확하게 순환 근무 그 자체인 것입니다.

오지 벽지 학교는 우선 교통이 불편합니다. 말 그대로 오지란 하루 두어 번 왕래하는 버스 종점에서 걸어서 십여 리는 족히 걸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하늘과 산뿐이요 밤이면 깜깜한 적막강산에 겨우 주말이나 되어야 바깥세상 구경을 하게 되고 가족들과 상면을 하게 되니 이게 바로 생지옥이나 별반 다르지를 않습니다. 학생 수라야 고작 수십 명이니 도회지 또는 적어도 자기 집에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이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늘 푸른 나무 같았던 청년 시절의 그 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시절에는 소위 맞춤 구두라는 신발을 신었습니다. 구두 가게에서 그냥 파는 구두는 기성화라고 부르고 발 치수를 재어서 만드는 구두를 맞춤 구두라고 일렀습니다. 미리 만들어 놓은 구두를 가게 진열대에 사열 받는 군인들처럼 줄을 나란히 맞추어 진열하여 놓은 신발은 기성화라고 불렀습니다. 구두를 사서 신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형편이 조금 어려운 이는 기성화를 신었고 조금 나은 이는 맞춤 구두를 신었던 셈이지요. 가격도 기성화는 맞춤 구두에 비하여 많이 저렴하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구두만 그런 게 아니라 양복도 양장도 다 그렇게 입었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심지어 우산이나 모자도 공장에서 주문을 받아 만들어 팔았습니다. 속칭 맞춤이라는 게 말만 붙이면 비싼 값에 만들어 팔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도 교직에 온지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어서 그 동안 부모님에게서 받은 알량한(?) 용돈으로 사서 신었던 구두를 이제는 맞춤 구두라는 것으로 바꾸어 신고 젊음을 뽐내고도 싶었습니다. 또 다들 그렇게 하기를 즐기는지라 젊은 놈 마음에 그게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부임한지 두어 달 쯤 지난 어느 주말에 바깥 세상에 나가서 주문을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 주말에 가서 발에 꼭 맞게 맞춘 새 신발을 신고 설레는 가슴을 억제하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벽지에 있는 근무지를 향하여 적막강산 행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때 그 학교가 지금은 없어졌습니다만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미니버스에서 내려서 자갈길을 십리 반쯤 걸어야만 하는 먼 길인데 발뒤꿈치가 온전할 리가 만무하지요. 몇 걸음 걸을 여유도 없이 발뒤꿈치가 따끔따끔 아파옵니다. 이유야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우선 이 구두가 새 것이기 때문에 길이 안 들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양말도 얇디얇은 부실한 양말을 신었으니 단련이 안 된 발뒤꿈치가 견딜 재간이 없었겠지요. 겨우 가까운 산모롱이를 지나갈 무렵 양쪽 모두에 통증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려니 하고 걷는데 이제 더 이상은 한 걸음도 떼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큰일입니다. 정말 큰일이 났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방법이 없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저 산 모롱이만 지나가면 냇물이 흐르는 마을이 나옵니다. 그 냇물에는 동네 아낙들이 나와서 빨래도 빨고 채소도 씻고 합니다. 그 중에는 동네 큰 애기들도 섞여 있기 마련이고 학교 다니는 어린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자갈길이었으니까요. 소위 선생님이라고 하는 주제에 그것도 총각 선생이 신발을 벗어서 손에 들고 길을 간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 날이면 온 천지에 왁자지껄 소문이 할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그 마을을 지나서도 한참을 더 걸어야 합니다.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옵니다.

구두 뒤축에 종이를 넣을까? 그럴 수도 없습니다. 신발이 워낙 꼭 맞아서입니다. 평소 힘찬 발걸음으로 걷던 나였지만 별 도리 없이 어기적어기적 마치 똥 싼 바지를 거머쥐고 겨우 걸어가는 사람처럼 기다시피 그 어려운 길을 지나갔습니다. 동네 빨래터를 지나면서 흘끗흘끗 훔쳐보니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학교 관사에 도착하니 계절이 가을인데도 불구하고 내의가 흠뻑 젖었습니다. 좌우지간 고생 참 많이 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맞춤 신발은 나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값도 값이지만 좀 넉넉한 걸로 편안하게 생긴 놈으로 골라서 신으니까 아주 좋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각인이 되었는지 그 뒤 한 동안 양복도 큰 것으로만 고집을 하다 보니 그 이름도 찬란한 똥 싼 바지 스타일의 펑퍼짐한 바지를 즐겨 입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에는 전반적으로 기성화 기성복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게에 가서 신어보고 입어보고 맞는 것으로 고르기 때문에 그러한 일도 없겠지만 걷는 길도 얼마 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기성품을 만드는 솜씨도 많이 좋아져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일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새로 산 반질반질한 구두보다는 오래 신어서 조금 모양은 덜하여도 그게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이 편하여야 하니까요. 발이 편해야 몸이 편하고 몸이 편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광고 문구가 생각납니다. 이게 전혀 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멋도 좋지만 공연히 사서 고생을 한 것 같아 꼭 손해 본 장사를 한 것 같이 씁쓸합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그러한 사례들은 찾아보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옷도 많이 입었던 옷이 더 편하고 자동차도 많이 운행한 차가 손에 더 익거든요. 오죽하면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그 맛이 더 깊어진다고들 말합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사고방식이 변하여서 이젠 옛것은 버리는 것이 대체적인 추세인 것 같지만 모든 일이 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는지요.

백낙은 2016-11-08 11:22	이석희 작가님. 맞춤 구두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같은 경험이 있습니다만 옛날 신발은 재질이 딱딱해서 그런지 물집이 잘 생기곤 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엔 발도 편하고 멋진 신발들이 많아 참 좋습니다. 지난 번에 팔공산을 등반할 때 등산화를 깜박하고 운동화 비슷한 신발을 신고 갔는데도 아무 지장이 없더군요. 옛날 신발들 신장에 가득하나 정이 들어 버리기도 아깝고 처치 곤란입니다. 그러나 옛 것이라고 다 버릴 순 없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찬열 2016-11-08 17:13	이석희 작가님! 마춤구두에 당한 봉변 에글 잘 배독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한때 마춤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드때의 불편한 심기가 눈에 보이듯 선 합니다. 아마 지금 없어진 학교라 하니 시골 분교 정도 오지인 모양입니다. 오늘날에는 너무 많은 기성 품이 판을 치는 몸에다 맞추는 것이 아닌 옷이며 신발에다 자기 몸을 맞추는 시대이지요 입동이 지나고 내일부터 추워 진다 합니다.늘 건안 하세요

이석희 2016-11-08 18:41	《Re》백낙은 작가님! 요즈음은 정말이지 안 좋은 게 없어요. 값도 싸고요. 저도 종종 산에 갈 일도 있지만 그냥 운동화로 때운답니다. 별 문제가 없으니까요. 우리 집도 신발장에 운동화나 구두가 여러 켤레가 대기하고 있지만 닳아져서 못 신는 신발은 없습니다. 버리기는 아깝고요. 그래서 그냥 돌아가며 신습니다. 아마도 신발에게 욕은 먹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성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이석희 2016-11-08 18:47	《Re》정찬열 작가님 ! 반갑습니다. 기성품이 얼마나 잘 만들어지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짝퉁도 팔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짝퉁도 사실은 참 좋을 거예요. 정품과 짝퉁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긴 분간하기가 쉬우면 그게 팔릴 리가 없으니 똑같이 만들어야 하겠지요. 기성복이 몸에 안 맞으면 잠깐만 기다리면 몸에 맞추어 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김종근 2016-11-09 19:27	반갑습니다. 이석희 작가님. 저는 군대생활을 순환 근무로 백령도에서 일년을 보냈습니다.인천연안 부두서 배타고 북쪽으로 12시간, 힘들 군생활 더군다나 이병시절이니 죽으로 간다는 느낌이 오더군요. 일년뒤 동기생을 백령도로 밀어 넣고 강화도 레이더 기지로 나왔지요. 힘든 곳인 만큼 추억도 많지요. 잘 배독하였습니다. 감기조심하시고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이석희 2016-11-09 20:25	《Re》김종근 작가님! 허허허허 그 세계에도 순환근무가 있었군요.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래도 세월은 지나가기 마련이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가장 재미있었지 싶습니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격려의 글 감사합니다. 추워집니다. 농사 일도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김경렬 2016-11-13 23:53	저도 새구두 때문에 뒤꿈치가 다 까지고 아파서 절뚝 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뒤로는 새구두 신게되면 망치로 뒤꿈지 부분을 두드려서 부드럽게 만들어 신고 다녔습니다. 작가님은 자갈길을 가시자니 고생이 말이 아니셨네요. 멋쟁이 총각 선생님 품위 지키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감기 조심 하시고 건안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이석희 2016-11-14 10:15	《Re》김경렬 작가님 , ㅎㅎㅎㅎ 그 때는 부끄럽기도 하고 시쳇말로 쪽팔리기도 했었지요. 그래도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망치로 그렇게 하면 좋았을 것을... 지금은 그런 불편은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걱정은 없습니다. 추워질 일만 남았습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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