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속의 『태백산맥』을 건축으로 말하다.]

작가는 왜 이 작품을 썼을까 하는 본질적인 물음 속에서 “역사의 갈등과 아픔을 해원의 굿판으로 풀고 싶은 의지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나름의 답을 내렸다. 그렇게 자신이 느낀 대로 건물을 만들고 싶었지만,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각이나 감동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건물은 통일을 염원하는 차원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상징으로 백두대간 낮은 언덕을 잘라 그 위에 지어졌다. 4층 높이의 이 건물은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북쪽을 향해 건축하였으며 북쪽의 잘린 축대 벽에는 크나큰 의미는 없지만 일랑 이종상 화백의 작품이다.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북쪽을 향해 집을 지었다고 생각하니 한국인들의 오랜 삶을 거부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잠시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라는 시제가 생각나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통일의 염원을 갈구함을 느낀다. 만주에서 보성에 재석 산까지 구해온 재료 3,842장을 축대 벽화로 땅을 파내려 만든 토목 축대 벽이 건축물의 장식 되었단다. 하지만 ‘언덕 위의 하얀 집’처럼 건축물이 두드러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단다. 건축가의 기념비가 아니라 문학작품을 기념하고 담아내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그려낸 분단의 아픔은 산의 등줄기를 잘리는 아픔과 비견될 것이다. 건축가가 산자락을 잘리는 결과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 등줄기가 잘리는 아픔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했다.

건축물 앞에는 억새를 심고 뒤편으로는 대나무 숲을 두를 생각이었다. 비싼 나무를 옮겨다 심는 수려한 조경은 의미가 없다. 언덕 아래에서 볼 때 건물의 앞면이 억새로 조금 가려지고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황량한 느낌이면 더 좋겠다. 뒤편의 대나무 숲은 무당 소화네 집에 심겨있는 대나무들의 연장 선 이라 느끼면 될 것이다. 건물은 한 발 물러선 듯, 멀리서 보면 그저 언덕에 유리 탑 하나가 서 있어서 밤에는 지하의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불빛이 새어 나올 듯한 탑이 하나 보였으면 했다. 건물의 옥상은 그저 펑퍼짐한 해원굿의 무대다. 산줄기를 잘라낸 상처 자리를 건물로 메꾸며 생겨난 엉성한 흔적이다. 이 위에서는 치유와 화해의 대동 놀이가 있어야겠다. 건물 안에 무엇을 많이 채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작가가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태백산맥』 관련해서 수많은 평가와 연관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두고두고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즉 된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개념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될 수 있으면 기둥이 없이 천장에서 커다란 동아줄에 매달린 철 빔에 매달려 있는 2층 공간이다. 우리는 아직 역사 속 어둠을 다 지나온 게 아니고 통일 이후에도 풀어야 할 문제들은 쌓여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그러므로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오늘의 현실을 담아내야 한다는 소망도 남아 있다.

2층 건물에서 동북간 방향으로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기와집은 애초 박씨 문중의 1939년에 건축된 별장과 제 각(현 부자네 집) 그 뒤쪽에 문학관이 들어서면서 문중에서 2002년 보성군 당국에 기부하였단다. 문학관과 현 부잣집 사이 조그마한 기와집은 애초는 초라한 태백산맥 등장인물인 2007년 복원된 소화네 집으로 봉건 사회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는듯한 초라한 초가집이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철교며 중도 방죽(일본 사람 이름 중도 나카시마) 등이 내려다보인다. 남에게 권하고 싶고 다시 보고 싶은 책 1위로 설문 조사 되었다는 “태백산맥” 그 소설이 유명하여 그리 크지 않은 벌교는 그 후 벌교 꼬막과 함께 명성을 얻었다. 지금은 벌교 하면 꼬막요리 집이 오십여 업소가 넘는단다. 이 층 전시실에는 1943년 선암사 대처승의 4남 4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조정래 작가’는 어려서 이곳 벌교로 이사를 와서 살았다. 16,500여 장의 집필 원고와 집필 당시 입고 있던 각종 유류품이 전시되어 있다. 눈에 띄는 건 86세의 할아버지, 54세, 41세, 50세, 38세 되신 분들이 손수 쓴 소설의 필사본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다. 4층까지 해설사의 안내를 받았다. 계속되는 해설사의 해설 중 일제강점기에 핍박받은 ‘태백산맥’ 관련된 일본인의 이야기 도중 공인된 해설가로서 일본 ‘놈’하는 지나친 어원은 다소 거북스런 한 장면이었다.

문학관 앞으로 현 부자네 집과 소화의 집을 직접 찾아 나선다. 현 부자네 집은 소설 첫머리에 등장하는 장소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한옥과 일본방식이 섞인 건축물이다. 모두 일본 자재로 지었다는 5칸 겹집에 한식집과 일본방식이 혼합된 건물이다. 건물 양쪽에는 온돌 구들방이며 건물 중앙에는 널따란 일본식 대청이 자리하고 있다. 습기를 방지하려는 일본식 건물은 건물 전체가 50cm 정도가 떠 있어 공기가 유통되게 되어 있다. 중앙입구는 일본전용 출 구식 구조가 눈에 띈다. 대문 출입구 이 층에는 망루처럼 전면이 유리창이 달려 그때 당시 농경사회의 소작인을 관망하는 처소로 쓰였다고 한다. 돌아 나오는 길에 소작인이며 핍박에 눌려 살아온 소화의 집 구조를 들르니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우리네 살림살이가 그대로 여 보인다. 소화는 소설 속의 무당이면서, 정하섭이라는 인물에게 정을 주는 여인이다. 소화의 집은 소설에 묘사된 그대로 소박하고 순수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점심시간이 다 돼가는 시간 우리 일행은 사전에 예약된 문학관 앞에 있는 꼬막 정식 집으로 안내를 받는다. 직업의식일까? 한사코 천정에 노출로 시공된 전기시설로 눈이 간다. 조금만 신경 써서 관광지 면모를 생각해 깔끔하지 못함을 느낀다. 사전에 준비된 밥상에는 꼬막 전이며 삶은 꼬막 그리고 꼬막 무침이 나왔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꼬막 음식이 고급 음식이 되어 버렸을까? 남자 주인이 한사코 꼬막 하나에 580원이 단가라며 몸에는 좋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잔칫상이나 재사 상이며 행사 때는 빠지지 않은 꼬막! ‘태백산맥’ “조정래 문학관은” 이제는 꼬막까지 귀한 몸값이 되어 버렸다. 점심 후 우리 일행이 이동한 곳은 꼬막 거리와 식당가를 지나면 근대 문화거리가 나온다. 그 중심에는 소설 속 많은 일이 벌어졌던 벌교 초등학교가 있다. 소설 속 “남도 여관” 1912년 지어 여관으로 실제 이어져 오던 건물 2004년 등록 문화재 제132호로 지금은 보성 여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바로 옆에 벌교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어 학교 정화법에 묶여 문화재청에 팔게 되었다 한다. 지금은 2007년 3월 25일부터 시행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 자산에 관한 국민신탁 법에 따라 2007년 4월 출범한 문화유산 국민신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다.

그 옆 일본식 건물이 보성 여관이다. 소설에서 이곳은 남도 여관으로 등장한다. 현재까지도 보성 여관 명칭 그대로 사용하는 숙박 시설이면서, 벌교와 보성 여관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실, 다양한 차를 판매하는 카페, 4칸으로 나누어진 회의나 문화재 체험장으로 활용되는 전통 일본식 다다미방과 소극장 등이 운영된다. 우리 일행이 잠시 여장도 풀 겸 여관 내를 관람하고 카페(소극장)에 자리한다. 실내 분위기가 멋스럽다. 벽체 한쪽에 몇 편의 시들이 붙어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시(詩) 내용이 좋아서 안성현 작곡가가 곡을 붙인 박기동 시인이 1948년 목포 공립 항도 여자중학교에 재직하던 동생이 세상을 떠난 누이동생을 기르기 위해 쓴 시(詩) ‘부용산(芙蓉山)’에 곡을 붙인 내용을 옮기자면 ‘부용산 오리 길에/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사이로/회오리바람 타고/간다는 말/한마디 없이/너는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채/병든 장미는 시들어 가고/부용 산봉우리에/하늘만 푸르러 푸~르러//그리움 강이 되어/이 가슴 맴돌아 흐르고/재를 넘는 석양에/저만치 홀로 섰네/백합 일시 그 향기롭던/너의 꿈은 간데없고/돌아서지 못한 채/나 외로이 예서 있으니/부용산 저 멀리엔/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여기서 잠시 ‘부용산’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안성현의 곡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빨치산의 노래로 낙인, 금지곡이 되었다. 그는 1950년 한국 전쟁 와중에 평양 학예 음악회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나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50여 년 동안 이념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 철저히 잊혔다. 북한이 2006년 사망을 공식 발표하면서 북한에서 음악인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안성현은 일제 강점기 ‘김소월의 시’‘엄마야 누나야’ 등 20여 곡을 붙인 최초의 작곡가이다. 안성현은 1920년 나주 남평면 대교리에서 1936년 말 아버지 안기옥(가야금 산조 명인)을 따라 함경도 함흥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유 소년기를 남평 에서 보냈다.

문학에 열중하는 우리 일행을 본 ‘보성여관’의 곱게 단장한 주황색 저고리 한복을 입은 해설 가이드가 고운 목소리로 ‘부용산’ 노래를 열창해준다. 더한층 힘 이난 우리 일행은 그곳을 뜰 줄 모르고 있으니 끝내는 보성 녹차 밭 박물관 관람 코스를 바꾸어 이곳에서 다 보지 못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1919년 건립된 벌교 금융 조합으로 일제 식민지 수탈의 대상이 돼 기도한 금융 조합이며 문학의 거리 부용교, 벌교 철교, 벌교 갈대밭, 관람 지로 남은 한 시간을 둘러보기로 하여 보성 여관을 뒤로하고 읍내로 발길을 옮긴다. 나름대로 가꾸어진 문학의 거리, 물론 평일인 탓일까? 자동차도 함께 통행하여 좀 아쉽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기왕 거리조성을 할 바에는 어지럽게 늘어진 전선을 지중화를 했으면 한 아쉬움이다. 물론 재정 이 뒤따른 문제라지만…! 거리에는 솥 공장, 술도가, 포목상 등 지금은 다른 업종으로 사용되고 있는 소설 속 가게들도 있고, 현대에 들어선 매장들도 거리 풍경에 걸맞은 외형으로 자리한다. 골목 끝에서 벌교여중 방향으로 들어가면 자애 병원까지 이어진 문학 거리를 걸을 수 있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가들까지 근대적 풍경을 지닌다. 길 끝에 홍교와 마주한다. 홍교는 뗏목다리라는 뜻으로 벌교라는 지명의 배경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철거위기에 놓였다가 주민들의 힘으로 지켜낸 다리인 만큼 벌교의 상징이 되고 있다. 홍교를 건너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쓰이는 인물인 김범우의 집이란다. 다리 끝에서 왼쪽으로 가야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좁은 골목 안 돌담을 따라 오르면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그곳이 김범우의 집. 설명 판만 온전할 뿐 건물은 황폐하기만 하다. 1931년 건립된 철근 콘크리트 다리로 원래는 부용 교(芙蓉橋) 라는 이름이었지만 그해가 일제 소화 6년이라 언제부터인가 대부분 소화다리로 불린 이 다리의 출생 업(業) 탓인지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이 남긴 우리 민족의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국군과 인민군이 밀고 밀릴 때마다. 이 다리 위에서 서로 부역자들을 끌어내 총살형을 집행했던 곳이란다. 조정래 작가가 소설『태백산맥』이 전 하는 그 처참함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민족의 아픔이다. 그 무렵 “소화다리 아래 갯물과 갯바닥에는 시체가 질펀하니 널이었다는데, 아이고 인자 징 혀서 더 못 볼 것 구만 이라우…. 사람 쥑 이는 거 날이 날마다 보자니께 환장 허 것 구만요”라는 대목은 이 다리를 지날 때 기억에 질펀하다. 다리 밑을 지나는 강물은 그때를 기억이라도 하라는 듯 흙탕물이 되어 흐르고 그물은 어쩜 그때의 핏물이 섞여 흐르는 듯 불그스레하다. 은빛 갈대가 바람에 출렁 일 때는 그때의 한탄을 흐느낀 듯싶다. 계절의 감각을 놓쳐버린 한 없이 펼쳐진 냇물과 갈대가 어우러진 천변을 따라 내려간다.

가는 곳마다 꼬막 정식 집이 눈에 많이 띈다.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을 소설 속의 무대를 나름대로 엮어가며 지금은 강진에서 순천으로 연결되는 자동차 전용 새 도로가 놓인 교량까지 걸어가니 옛 자취가 사라진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관광버스에 탑승한다. 벌교를 뒤로하고 광주로 돌아오는 길을 택한 시간 15시였다. 저마다 오전에 차내에서 못다 한 미션을 진행하며 한 시간 정도 걸려 아침 출발했던 학생 문학 회관 앞에서 우리는 서로 헤어져야 하는 인사를 나누며 문학 탐방을 끝내는 무사한 귀갓길이다.

2014년 09월 24일 문학 기행을 마치고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