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산 연인 길을 가다. [글/정 찬 열]

가벼운 등산 준비를 하여 집사람과 함께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지난 6월 20일부터 시작된 장마가 이곳 남부 지방에는 하루걸러 비가 내려 오늘 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기상 예보를 참고하고 길을 나선다. 다른 때보다 부부동반으로 가면서 일찍 집을 나선 건 될 수 있는 대로 시원할 때 등반을 하려는 생각에서다. 목적지는 일주일 전인 지난 2일 석문공원 구름다리를 개장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선택한 곳이다. 평소에 전남 강진을 거쳐 완도를 가 다 보면 빼어난 경관에 계곡에는 물이 흐르는 곳이다. 산 중턱에는 아름다운 팔각정이 있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에 이번에 국내 최장 111m 구름다리를 계장 했다 하여 그곳으로 결정했다. 산세가 빼어나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놓은 것 같다는 전남 강진군 도암면 석문산 해발 272m가 있는 곳은 광주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 소요되는 곳이다.

이른 시간 이어서일까 잔뜩 낀 안개가 서서히 풀리며 들에는 벌써 벼가 파랗게 땅심을 받았고 푸르다 못해 진녹색 산과 들이 어우러져 진 차창 밖 경관이 아름답다. 생각 같아서는 창문을 내리고 창 박 공기라도 마시고 싶지만, 안개가 걷히면서 주변 온도가 벌써 28도란다. 아마도 56.1(m/초) 강력 태풍 ‘네파탁’이 타이완에 500mm의 비를 뿌려 3명의 사망자와 1,700이 대피했다는 보도다. 1급 태풍의 영향으로 따뜻한 공기를 밀어내어 우리나라 곳곳에 33~34도의 폭 염 주의보가 내린 탓인가 보다. 창문을 닫고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8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부부는 크게 실망하였다. 일 주전의 개장으로 말끔히 단장된 계곡에는 많은 인파가 모였을 것이라는 편견은 무너지고 말았다. 10여 곳의 텐트족과 몇 사람 관람객이 있을 뿐 입구에서 반기는 계곡 사이를 잊는 구름다리가 우리를 반길 뿐이다. 승용차를 주차해야 할 주차장과 여름철 물놀이장(295m², 7월 16일 개장예정)도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요란한 중장비 소리가 무더위 속에 기대에 부푼 우리의 생각을 실망하게 한 것이다. 무엇이 이렇게 급하여 “강진군 ‘석문공원 구름다리’ 개장”이라고 신문에 거창한 기사를 냈어야 했을까? 이곳 석문공원에서 이어지는 남도 명품 길은 다산과 관련이 깊은 아름다운 숲길이다.

다산 초당과 정치 잠룡 ‘손학규 전 고문’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그마한 산속 집이 있는 백련사를 잇는 만덕산 오솔길(2.2km)은 ‘사색과 명상의 길’로 불린다. 또한, 야생차와 동백나무 황칠나무 등이 어우러져 다산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남도 유배 길의 백미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은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어울림 상을 받기도 했다. 기왕지사 이곳을 목적지로 왔으니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석문공원 종합 안내판이 눈에 띈다. 유심히 살펴보니, 가족 길(1시간)로 관리소-노적봉-구름다리- 세종 바위 포토존- 석문공원. 연인 길(2시간 코스)은 관리소-석문 정-노적봉- 구름다리-세종 바위 포토존-석문 공원. 누비길(3시간) 관리소-석문 정-노적봉-구름다리- 세종 바위- 통천 문- 세종 바위- 포토존-석문 공원. 등의 안내 코스가 있었다.

우리 부부가 택한 코스는 너무나 더위가 심하고 숲이 그리 좋은 편이 되지 않아 연인 길 코스를 걷기로 했다. 아직은 제대로 운영하지는 않았지만, 관리소를 뒤로하고 오작교처럼 만들어진 계곡 천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지났다. 조금 평평한 길을 지나 석문 정을 오르는 길은 징검다리 같은 굵직한 돌을 놓아 한쪽으로 나무 기둥을 세워 커다란 밧줄로 연결되어있었다. 급경사를 오르는 데는 편했으나 나무숲이 적은 불편이 따랐다. 10여 분 오르니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팔각으로 된 ‘석문 정’에 다 달았다.

원래 이 석문 정은 1945년도에 최초에 세워졌으나 그 뒤 태풍에 무너지고 1989년 도에 재건된 건축물이란다.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면 경치 좋고 역사가 있는 팔각정에 명인들의 현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그곳에서 3~4분 쉬면, 하고는 우리 부부는 또 오름길을 택했다. 그런데 너무 협소하고 힘든 바윗돌 오름 길에 평소에 등산을 좋아하는 집사람이 그만 돌아가자고 한다. 하지만 기왕 왔으니 끝까지 가보자고 하는 나의 주장에 따른다. 이렇게 험해서일까? 등반객이 거의 없어 우리만이 오르는 것 같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구슬땀을 흘리면서 한참을 오르니 위쪽에서 세 사람의 오십 대 등산객이 내려오며 그분들도 초행인 듯 저쪽 아래 구름다리를 가려면 어떻게 가느냐며 우리에게 묻는다.

그런데 이분들을 따르는 귀여운 세끼 강아지 두 마리가 함께하고 있었다. 아니, 왼 강아지예요 하고 물었다. 글쎄 우리가 용문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산을 오르는데 가라고 쫓아도 한없이 우리를 따라오는데 걱정이라고 한다. 너무 귀여워 집사람은 빵을 하나 먹여주니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집사람만 따르려 한다. 억지로 쫓으며 한 마리 개가 먼저 가니 그곳으로 가버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제 풀을 베어 새 길을 내어둔 등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가쁜 숨을 쉬어 가느라 바위가 있는 곳에 쉼터에 자리한다. 그때는 먼저 올라온 애들 몇 명과 젊은이가 내려간다. 한참을 아래의 풍경과 새로 놓은 아름다운 구름다리를 내려다보며 사진도 찍고 쉬었다. 다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니 지난주 개통했다는 구름다리에 도착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는 오가는 자동차와 계곡 냇물이 흘러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짜릿하다.

얼마 후 구름다리를 건너 석문산 쪽 다리를 건너며 몇 장을 사진을 남기고 차를 세워둔 공원 쪽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조금 전에 산 위에서 보았던 강아지 두 마리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 어린 강아지를 그대로 두고 갈 수가 없다. 아마도 산에서 내려온 어린애들을 따라 내려와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내비게이션을 찍고 용문사 절을 찾아 강아지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워리~ 워리! 강아지를 부르니 잘도 따라온다, 차를 세워 둔 곳까지 꼬리를 치며 귀엽게 따라온다. 앞 좌석 발판에 두 마리의 강아지는 시원하게 틀어준 에어컨 바람에 기분이 좋은가 보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차로 이동하니 불과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은 곳에 조그마한 암자 같은 절이 있었다. 좀 더 안쪽까지 올라가니 보살님이 계시다. 여기 산에 따라온 강아지를 데려왔다고 하니 그 보살님이 강아지를 부른다. 한 마리는 보살님의 목소리에 재빠르게 뛰어가는데 한 마리는 한사코 내리지 않고 앉아 버텨버린다. 아마도 그도 우리가 고마운 줄 안 모양이다. 억지로 안아 내려놓으니 그때야 신나게 달려간다. 보살님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용문사를 뒤로하고 자동차를 몰았다.

남도의 끝자락 강진은 탐진강 푸른 물과 깊은 골짜기마다 다산의 실학 정신과 김영랑의 시혼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다. 자랑스러운 문화와 순결한 예술혼이 넘치는 다산유배 길은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를 읽는 아름다운 곳이다. 갯내음 솔 향기에 시인이 되어보는 산길, 둥근 가락지 같은 논 밭길, 꽃 그림자 드리운 개울물 길, 다산의 풍경이 보이는 총거리 65.7km의 남도 유배 길이 뛰어난 곳이다. 이곳 강진에는 주작산 휴양림길이 이곳 도암면과 해남의 경계선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사색과 명상의 다산 오솔길은 이곳에서 15km에 5시간을 걷는다. 강진읍에 있는 김영랑 생가가 있는 시인의 마을 길은 13.4km에 4시간 30분이 걸린다. 또한, 남도의 먹거리가 풍성한 바다가 보이는 마량 해안의 아름다운 항구 주위를 도는 총 길이 28.4km에 7시간 코스가 있다. 대부분 우리 부부가 한 번쯤 다녀온 길이다.

오늘은 석문공원에서 불과 6km 떨어져 있는 갯내음 풍기는 출렁다리길 도암면 쪽에서 가우도 을 잊는 출렁다리를 건너기 위해 송학리 선착장 주차장에 당도했다. 집사람은 전에 온 곳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2015년부터 1차로 완공된 강진군에서 마량 항 가는 길에 대구면 망호선착장에서 연결된 1차로 놓인 출렁다리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강진만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가우도 는 섬 모양이 마치 소의 멍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강진에 있는 8개의 섬 가운데 가우도 는 유일한 14가구 31명이 사는 유인도이다. 이렇게 다리가 놓이니 마량으로 가는 여행객들 발길을 멈추게 한다. 430m에 이르는 일명 ‘가우도 출렁다리’는 차가 다닐 수 없는 인도교다. 이 다리를 건너면 섬 면적 9만 칠천여 평에 200여 그루의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특산물로는 황 가오리, 꼬막, 낙지, 돔 등이 주민의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산물이다. 이곳 가우도 에서 바다 건너편 망호마을까지 또 하나의 출렁다리가 우리가 오는 건너는 2차 육교는 나 역시 오늘 처음으로 건너는 곳이다. 갯내음이 바닷바람과 함께 뜨거운 여름날을 시원하게 해주는 출렁다리를 건너니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황 가오리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북적댄다. 특산물이 황 가오리라서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빵이다. 그곳에서 집사람도 한 봉지 사서 가져와 출렁다리를 건너오며 즐거운 오늘의 추억 길로 달랬다. 석문공원 등반길이 미완성되어 실망함을 달래기 위해 집사람을 안내한 제2의 코스였다. 돌아오는 길 백련사를 들릴까 하다 너무 무리가 될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승용차 CD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20160709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