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 명(酒器 銘)과 조 껍데기 술

조선시대 금주령 이 심했던 때 세종대왕의 주계(酒戒)를 보면 “술의 화(禍)가 어찌 곡식을 축내고 재물을 소비하는 것뿐이겠는가! 안으로는 마음을 어지럽히고 밖으로는 바른 모습을 잃게 하여 혹 부모의 봉양을 폐하게 하기도 하고 혹 남녀의 분별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크게는 나라를 잃고 작게는 본성을 해치게 하니,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어지럽히고 풍속을 무너뜨리는 것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고 술로 인한 화가 끝이 없다며 세종대왕을 비롯한 제왕들은 대체로 술의 독을 경계 했으며 조선의 숙종(肅宗)임금은 “한번 술을 권하는데 백번 절을 하는 것은 술의 재앙의 무서움을 알리고자 하는 것을 주배명(酒杯銘)”이라고 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학자들도 대체로 술의 폐해(弊害)를 이렇게 말했다. 19세기의 이남규(李南珪)는 이황(李滉)의 주계(酒戒)를 베껴 아들에게 주면서 “창자를 썩히고 본성을 미혹시키고 몸을 망치고 나라를 뒤엎는다. 내가 그 독을 보았는데 너 또한 그럴 것이냐”라고 하였다. 박지원(朴趾源)은 후배 유득공(柳得恭)에게 “유(酉:술병)에 졸(卒:죽음)을 합하면 치(취할:醉)자가 되고 생(生:삶)을 붙이면 성(醒:깰)자가 된다”며 술을 조심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애주가들의 항변도 그칠 줄 몰랐다. 이규보(李奎報)는 국선생전(麴先生傳)에서 “우울하던 임금도 성(聖:청주)이 들어와 뵈면 비로소 크게 웃었다고 적었다. 그런가 하면 이태백(李太白)은 만고의 시름을 잊으려 술잔을 들었고” 삼배 통대도(三杯通大道: 석 잔이면 도에 통하고) 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 한 말이면 자연에 화합)한다. “며 술을 극찬했다. 또 박지원(朴趾源) 유득공(柳得恭)과 함께 놀았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끌러 술을 사준 백동수를 호쾌한 남아라 칭하며 기렸다. 애주가들은 여전히 지상에는 없는 주국(酒國)의 주민이기도 했다. 이규보는 술동이에 이렇게 적었다. “네가 품은 것을 옮겨, 사람들 배속으로 들인다. 넌 가득 차면 덜어서 넘치지 않는데, 사람들은 가득 찬 줄 모르고 쉬 꼬꾸라진다.” 비틀비틀 고꾸라지는 술꾼은 술의 길을 이미 잃은 취한(醉漢)이다.

술~술 넘어간다 하여 ‘술’이라 한다는 술이고 보면 이름부터가 순수한 우리말로 마시기 전부터 정감이 간다. 제주도에 패키지여행을 해본 분이라면 누구나 안내인을 따라 제주도 토속주 파는 식당을 들렀을 것이며 “조 껍데기 술”을 마셔보았을 것이다. 약주 계통으로 마시기 순하여 그야말로 목 안으로 술~술~ 넘어간다. 그 순수성 때문인지 유일하게 법으로 인정된 환각제이다. 다른 마약이나 마취제는 그 사용을 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으나 술만은 그 부류에서 제외된다. 사실 중독성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기능은 마약이나 비슷하나 음식의 분야로 간주하여 자유스럽게 즐길 수 있게 한 점은 무척 다행이라 하겠다.

술에 대한 에피소드는 하도 많지만 내가 직접 겪은 비행기 탑승(搭乘) 후 갑자기 터진 조 껍데기 술 (막걸리)을 흠뻑 내가 뒤집어쓴 일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2001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회사의 전기공사 입찰 때문이었다. 요즘이야 인터넷을 통한 전자 입찰의 발달로 입찰(入札)하기 위해 발주처 현장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다. 조달청을 통해서 전자 입찰을 하기 때문이다. 육지에서야 육로를 이용해 발주처를 찾아가지만, 제주도에 입찰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다. 아침 9시 30분경의 비행기를 이용하여 제주비행장에 도착하니 10시 20분경에 제주 비행장을 나왔다. 입찰이 있는 한전 제주지점에는 택시를 타고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입찰시간은 현장입찰에 오늘 오후 6시까지만 입찰(入札)하면 되기 때문이지만 도착하여 입찰을 끝냈다. 남은 시간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 시내에서 멀지 않은 용머리며 몇 군데 관광지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후 5시 30분에 있는 광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러 제주공항에 돌아왔다.

제주에서 광주로 오는 대한 항공기에 탑승하였다. 좌석은 앞에서 그리 멀지 않은 48-D 좌석이었다. 그러니까 창 쪽으로 두 개의 좌석이며 진행방향 통로에서 중앙 쪽 좌석의 통로에서 두 번째 좌석이었다. 중앙 열에는 대부분 네 개의 좌석이 대부분이다. 내 옆 우측에 70대 정도의 할머니가 그리 크지 않은 보따리를 무릎 위에 앉고 앉아 계신다. 15분 정도 지난 후 이륙하던 비행기가 고도를 정 상으로 유지하며 날고 있는데 갑자기 펑 소리가 나는 순간 내 머리와 할머니 머리 위로 하얀 액체가 쏟아져 내린다. 술 냄새가 풍기며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그때 나는 와이셔츠 넥타이에 검은색 정장을 하고 있었다. 순간에 둘러쓴 막걸리는 할머니가 선물로 사 가시는 ‘조 껍데기 술’ 두 병중 한 병이 기압의 영향으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쩔쩔매는 할머니한테 한 참 뒤쪽에 탄 아주머니가 찾아와 어머니 어떻게 된 거냐며 묻는다. 젊은 기내에 승무원이 달려왔고 남자 승무 조장까지 찾아와 내 정장 상의를 벗어달라며 닦아내고 탑승한 의자가 술에 흠뻑 젖어 버렸다. 사무장의 지시로 승무원이 가져온 비닐을 깔고 앉아서 와야 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일이었다. 굽신거리며 할머니를 대신해 아주머니와 승무원이 사과하지만 어쩔 줄 모르는 할머니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얼마 후 사무장이 메모지에 세탁비 배상권이라는 메모지와 함께 명함을 건네준다. 그 상황에 무어라 따질 수도 없이 비행기는 금방 광주 비행장에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이 들린다. 순간 온통 하얗게 술 벼락을 맞은 나는 순서에 따라 일어서 나왔어야 했었다. 그런데 나는 차라리 모든 승객이 내린 후 늦게 내려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뒤쪽에서 앞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모르는 승객들이 내가 기내에서 술에 취해 큰 것을 실례하고 나오지를 못하는 눈초리로 나를 보는 것이다.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울화가 밀려오는 것을 참으며 탑승 출구를 빠져나왔다. 할머니와 딸인 듯싶은 아주머니가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죄송하다고만 연발한다. 마침 당일 주차로 비행장에 승용차를 두고 온 나는 괜스레 창피하기만 해서 더는 할머니한테 괜찮다며 승용차를 타고 돌아왔었다.     

“조 껍데기 술”은 좁쌀을 맷돌로 갈아서 만드는 술입니다. 술을 만들고 나면 껍데기만 둥둥 뜨게 되어 조 껍데기 술이라 한답니다. 제주도의 조 껍데기 술은 시중에 나오질 않으니 직접 제주도에 가서 마시든지 아니면 우리처럼 비행기나 배로 공수시켜 술자리를 만들어야 마실 수 있지만, 제주도에서도 지역 간에 다툼이라고 할까 조 껍데기 술이 있는 곳과 그 술을 취급하지 않아 마실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 제주도 여행에서 내가 탄 관광버스 가이드에게 꼭 조 껍데기 술을 비행기를 이용하여 사 가시려면 술병 마개를 다시 한 번 안전하게 묶어 주거나 비닐봉지에 이중으로 넣어 화물칸에 싣는 것을 당부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조는 밭에서 생산되는 농작물로 서숙[黍菽]이라고도 하는 조는 척박한 토지에서도 강한 생명력으로

결실을 보아서 산간의 화전민[火田民]들이 주로 새로 일군 화전에 심어서 가꾸던 농작물로 콩과

함께 생산되는 좁쌀은 지금은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움으로 생산하는 농가가 없어서 귀하게 된 사

유로 쌀값보다 비싼 값으로 새들의 먹잇감으로 팔리고, 있으나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강원

도를 비롯한 경상도 산간지방에서는 쌀을 제치고, 주식으로 활용되었고 배고프던 시절에는 조와 잡

곡 의로 연명을 해야 하던 시절도 있었음을 신세대들은 대부분 모를 것이다. 오늘날에는 건강식품

의로 주로 돈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위하고, 식이요법[食餌療法]으로 좁쌀로 지은 조밥을 먹지만

보릿고개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좁쌀도 없어서 배를 곯아야 했다고 하면, 왜 라면이라도 끓여 먹

지'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할는지 모르나, 라면이 이 땅에 선을 보이기 시작 한때가 60년대 후반 의

로 그 이전에는 죽으나 사나 쌀이 아니면 보리로 이마저 떨어지면 지금은 새가 먹는 막걸리 중에도

좁쌀로 빚은 막걸리를 두고, 조 껍데기 술이라는 이름으로 이 말을 빨리하게 되면 좆 껍데기 술이

라 고하여 좌중을 웃기게 되는 말로 한동안 조 껍데기 술이라는 이름으로 한 층 더 매상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가면 꼭 그때의 웃지 못 할 사연 때문

에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