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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4-02-16 22:05

ㆍIP: 183.xxx.6

큰 손

연희동 김숙자

큰 손 하면 두 가지 뜻이 있다. 실지 손이 남들보다도 큰 경우와 씀씀이가 크거나 도량도 없이 음식을 많이 할 경우 흔히 손이 크다고 말한다.
난 이 두 가지 경우를 다 갖고 있다. 그래서 평생 수모를 당하거나 열등감을 갖고 산다. 그중 손이 두꺼비같이 큰 것에 대한 열등감이 아주 크다. 나이가 들수록 손은 험해지고 더 커지는 것 같아서 열등감을 자주 느끼며 고민도 많이 한다.
퇴임 전에 모임에 나가면 나와 같은 연배나 나이가 위인 선생님들은 내 손을 만지며 손이 두껍고 커서 잘 산다고 위로처럼 말씀하여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창피하여 얼른 상 밑으로 손을 숨기곤 하였다.

어느덧 정년퇴임을 한 지도 만 5년이 되었다. 요즈음 남편과 둘이서 스포츠댄스로 운동을 2년째 하고 있다. 상대방인 파트너와 손을 붙들고 하는 운동이라 매주 월요일, 수요일은 몸과 손을 가꾸는 데에 신경을 쓰게 된다. 평생에 하지 않던 마사지도 가끔 한다. 운동을 그만둘까? 고민도 하지만 이 운동마저 그만두면 자신의 건강과 몸 관리에 노력도 하지 않고 고운 할머니가 되려는 욕심만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포기를 못하고 갈등만 느끼고 있다.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난, 외출할 때나 귀한 자리에 설 때도 반지를 잘 끼지 않는다. 손이 하도 험하고 커서 어떤 반지도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슴 아픈 나의 마음을 딸과 며느리는 알고 있는지 '목걸이'와 '부로지'로 종종 선물하여 나의 열등감을 다독여준다.

퇴임하기 전 어느 해 3월 새 학년을 맞아 교실 환경정리를 하던 중이다. 풀칠과 가위질에 거칠어진 손을 보고
"야~~ 우리 선생님 손 굉장히(매우)크다!."
"어~ 요놈 봐라!."
2학년의 어린아이가 하는 말인데 잊지 않고 오래 기억되는 그 마음은 늘 마음속에 담고 있는 열등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아이는 그날 일기에
'우리 선생님은 손이 굉장히 크다. 큰 손으로 색종이 접기를 아주 잘하신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 일기를 검사한 후부터 얄미운 녀석으로 각인 되었고 정년퇴임한 지금까지도 험한 손을 보며 그 녀석을 떠 올리곤 한다. 젊은 제 엄마의 손과 비교한 어린아이 눈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알 수 있다.

요즈음 사진을 찍을 때마다 거칠어진 손을 감추려고 여러 포즈를 취한다. 손을 감추다 보면 손목이 없는 옷소매만 보여 아주 보기 싫다. 손이 보이면 거칠고 주름 잡힌 손등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아주 커 보인다.
지난 2월에 막내아들 결혼식 때의 가족사진을 찍을 때에도 이 왕손을 감추려고 여러 궁리를 하였다.
"당신. 장갑벗지 그래"
눈치도 없이 남편은 장갑을 벗고 사진을 찍으라고 귓속말로 속삭인다.
"손이 험해서요."

젊었을 때부터 급한 성격으로 추운 겨울에도 찬물에 맨손으로 설거지하는 습관이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일하고는 상 머슴 손이 되어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곤 하였다.
"그래도 상 머슴은 중 머슴을 부리고 있으니 괜찮아. 난 곰 발바닥 같은 당신의 손이 제일 아름다운데......."
이 멋없는 말을 들으며 40여 년 동안을 머슴처럼 살아왔다.

어느 해 초겨울 휴일에 김장하고 학교에 출근하니 소금물에, 고춧가루 물에 절은 손은 내가 보아도 남자의 큰 손이다. 손의 등은 터서 거칠거칠하여 보는 사람도 아플 것 같았다.
6학년의 담임 반 선생님들과 커피 타임 시간이다. 커피를 타고 있는 내손을 보고는 같은 연배의 남자 선생님(후에 교육장님이 되심)은
"여자 손이 이게 뭐요?"
지금까지도 그 남자 선생님의 약간의 경상도 억양의 목소리가 늘 귓전을 맴돌고 있다.
걸레를 하나 빨면서도 장갑을 끼시던 시어머니, 지금 며느리네 살림과 손녀, 손자들을 돌보는 조선족 도우미 두 명(손녀, 쌍둥이 손자 때문에 두 명을 둠)도 그릇을 하나 닦을 때도 장갑을 끼고 일을 한다.
'자기의 몸을 아끼지 못하는 타고난 성품을 누구에게 원망을 하나. 못난 자신의 몫이지.'
이렇게 스스로 못나서 왕손이 되었음을 인정하며 부끄럽게 살 수밖에 없다고 체념을 해본다.
그런데 어제 남편과 다투고 종일 저기압으로 이 층 방에서 카페에 들러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놀았다.
'손이 좀 보드라워졌나? 그러나 마음이 편해야지'
남편과 나는 퇴임한 후 얼굴을 마주하며 시간을 공유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전에 보이지 않던 실수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냉장고에 반찬 정리 좀 해. 솥에 떡국은 뭐야. 조기구이가 있는데 또 고등어조림이야?"
도량도 없이 음식을 많이 하여 버린다고 잔소리, 잔소리........
쓰레기를 분류하여 수거 날짜에 내놓아주며 험한 일을 도와주려는 남편에게 자주 듣는 꾸지람이다.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먹고, 더 시키라고 매번 잔소리 듣는다. 손이 커서 음식을 푸짐하게 먹고 남아야 마음이 편해지니 타고난 성격을 어떡하랴. 못 들은 척 난 고집대로 한다.
"얘들은 대식가라 다 먹어요. 남으면 싸서 가지고 가면 되지요."

타고난 성품인데 어떡하랴? 늙어가며 전에 듣지 않던 남편의 간섭을 받자니 정말 잔소리만 같고 자신의 결점이 아닌 것 같으니 좀 한심하기도 하다. 하지만 도량도 없이 손이 큰 것도, 거칠어진 큰 손도 부모님께 물려받은 성격과 체질이니 어떡하랴. 생각대로 생김대로 사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도 살았으니.......
2010년 5월 연희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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