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옥희
ㆍ작성일	2008-03-2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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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

고드름
/ 최옥희 시인

아직 겨울이 물러가려면 한 달은 더 꽃샘추위에 시달리며 차갑다 못해 살갗을 콕콕 찌르는 듯 한 추위를 견뎌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점점 더워지는 날씨 탓인지 예전처럼 많은 눈이 내리는 날을 보지 못한다.
서울, 강원과 북부지방에는 제법 많은 눈이 내리는 날도 있었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다고 할 수 없는 정도이고 남부지방으로 내려가면 그 잠깐의 시간에서 조차도 눈 구경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 전엔 그래도 나뭇가지나 지붕에 쌓일 만큼 눈이 내렸다. 거리에 내리는 눈들은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려 그 흔적을 찾기 힘들었지만 지붕에 쌓인 눈은 하루정도는 더 볼 수 있을 듯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새벽에 내린 눈들이 일부는 쌓이고 먼저 내린 눈은 녹으며 처마 끝에 고드름이 달렸다.
물이 적게 떨어진 곳에는 가늘고 작은 고드름이, 물이 좀 더 많이 흘러내린 곳에는 굵고 긴 고드름이 달려있었다.
하얗다 못해 그 투명함으로 햇빛을 받으며 가지런히 줄을 서있듯 매달려 있는 고드름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즐거움. 뾰족하고 올록볼록한 모양을 한 것이 ‘마치 나를 만져보세요. 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반가운 마음에 다가선 처음 마음과 달리 선뜻 그 고드름에 손을 가져가지 못했다. 오염된 공기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의 존재라는 것이 투명한 고드름의 몸을 뚫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라만 보는 즐거움으로 만족해야 하는 현실과 부딪힌 거였다.

맑은 모습을 하고 햇빛을 받아 한 방울씩 땅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매달려있는 고드름을 보고 있자니 언제인가 신문에서 정부과천청사 어딘가에 고드름처럼 새끼손가락만한 석회종유관이 자라고 있다는 기사를 본 것이 떠올랐다.
대기가 오염되면서 산성비와 결합한 콘크리트나 석회석이 녹아내리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원래의 콘크리트는 강알칼리성이지만 오염된 산성비를 계속 맞으면서 이 강알칼리성 콘크리트가 중성이나 산성에 가까워지게 되는데, 그때 녹아내린 콘크리트 성분이 천천히 딱딱하게 굳으며 마치 몇 만 년을 굳으며 생성되는 석회암 동굴의 종유석처럼 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해석을 하자면 콘크리트 고드름 즉 죽음의 고드름이라는 뜻이 될 것이었다.

십여 년 전부터 서울에 내리는 비나 눈은 대부분이 PH(산도)4.7~5.0 정도의 산성이라는 말이 있다. 산성의 원인이 되는 황. 질소 산화물이 오염된 서울의 대기를 순환하며 돌아다니고 있다가 비나 눈을 만나면 그와 함께 사람들의 품으로 찾아오게 되는 거였다.
비가 내린다고 하면 요즘은 당연히 산성비겠거니 하며 우산을 챙겨 쓰게 된다.
그런데 눈이 내릴 때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네 정서가 아직 메마르지 않은 탓인지 하늘을 한 번 더 바라보며 얼굴에 눈을 맞게 된다. 그러면서 눈과 함께 기억되어 있는 추억 한 자락에 눈을 뜨게 된다.
그것이 산성눈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올리긴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추억이라는 것에 또는 솜사탕처럼 포근히 내리는 동화 같은 눈의 모습에 매료된 후에는 산성눈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린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감상에 젖어있는 사이 우리 몸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온 산성눈은 연약한 피부를 통해 몸속에 스며들고 씻어도 씻겨나가지 않는 문신처럼 몸속 어딘가에 숨어서는 사람의 목숨에다 장난질을 하게 되는 거였다.
잠시 잠깐 감상에 젖어 맞는 비나 눈쯤이야 집에 돌아와 알칼리성 비누나 샴푸로 씻어내면 그만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과연 정말 씻어낸 것만으로 안전하다고 100% 단언할 수 있는가라고……. 그래도 드는 의문은 어쩔 수 없다.

이렇다 보니 오랜만에 보는 처마 끝 고드름이 반가우면서도 선뜻 손으로 잡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했다.
그 옛날에도 처마 끝에 저렇듯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었다. 또 저 고드름이 간식이었던 추억에 젖은 어린 시절이 있었다.

십 수 년 전, 산골 마을 겨울은 지금기온으로 치자면 영하 10도 정도는 더 내려갔을 정도로 유난히 추웠다. 그래도 겨울방학이 되면 추위쯤이야 코끝에 머물다 떠나는 손님쯤으로 여기며 이산 저산을 뛰어다녔고 눈이 소복이 내리는 날이면 장갑 낀 손으로 하얀 눈사람을 만들기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눈이 소복이 내리고 그렇게 하루가 지난 후 다음날 아침이 되면 밤새 내려간 기온 때문에 처마 끝에는 30cm는 족히 넘을 고드름들이 줄줄이 달렸다. 이것이 바로 천연 아이스케끼였다. 요즘 나오는 아이스크림과는 비교도 되지 못하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이빨사이로 빠지직 소리와 함께 목안으로 넘어가던 그 맛.
이런 고드름도 눈이 녹아 얼어버린 것이기에 그냥 먹으면 맛이 없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아이들이 모여 생각한 것이 설탕고드름이었다.
집에서 나올 때 외투주머니 안에는 엄마 몰래 부엌에서 훔쳐 담은 설탕이 종이에 돌돌 싸인 채 숨겨져 있었다.
각자 조금씩 훔쳐 나온 설탕을 큰 종이에 쏟아 놓고는 그 사이를 빙 둘러앉았다. 그리고 각자 한손에 하나씩 들려 있는 고드름을 설탕에 찍어가며 빨아먹는 거였다.
다들 돈이 없어 슈퍼의 맛있는 과자를 사 먹을 수 없는 처지였기에 아마도 이 설탕고드름이 더 맛있었겠지만 설사 돈이 있는 날에도 설탕고드름은 동무들과 모여 먹는 간식으로 충분한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입안에서 빠지직 소리와 함께 흐르는 단물을 맛보기 위해 훔쳐 나른 설탕으로 겨울이 끝날 무렵 어린애들이 있는 집 부엌엔 설탕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어떤 집은 고드름이 열릴 정도의 추위가 찾아오면 아이들 손이 닿지 못하는 어딘가로 설탕을 숨겨놓는 어머니가 있을 정도였으니 그 맛을 아는 이들은 아마도 상상이 될 것이다.
차가운 바람을 피해 처마 밑 바람이 덜 차갑고 햇볕이 드는 곳을 골라 옹기종기 앉아서는 손에 하나씩 들려있는 고드름을 쳐다보며 헤헤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눈으로 보는 고드름의 불우한 처지와 함께 현대의 우리에게 또 하나 잊혀 진 것이 있다.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아주 오래 전부터 동요로 불려왔던 대표적인 겨울노래....그러나 요즘은 겨울이 되어도 좀처럼 그 존재감만큼이나 들을 수 없는 잊혀 진 동요.
바로 ‘고드름’이라는 재목의 동요이다.

고드름
유지영 작사 / 윤극영 작곡

1.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

2. 각시님 각시님 안녕하셔요
낮에는 해님이 문안오시고
밤에는 달님이 놀러오시네

3. 고드름 고드름 녹지 말아요
각시님 방안에 바람 들면은
손 시려 발 시려 감기 드실라

*영창 : 방을 밝게 하려고 방과 마루 사이에 낸 미닫이

어릴 때에는 이 고드름이라는 노래도 TV를 통해서 종종 들을 수 있었고 동무들과 모여서 동네를 돌아다닐 때면 당연한 듯 고드름 노래가 입에서 흘러나왔었다.
그러나 이 동요는 산성고드름 만큼이나 사람들의 삶에서 잊혀 진 채로 이제 특별히 찾아야지만 어쩌다 들을 수 있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겨울 우리네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던 그 흥얼거림은 어디로 갔는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유행가 가사들만이 이 겨울을 노래하는 시대.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저 고드름엔 그래도 동심이 숨어들어 내게 인사를 건네고 있지만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저 고드름의 의미는 과연 무엇으로 남을까!
내 아이에게는 좋은 것만 먹이고 싶다며 몸에 좋은 것만 찾는 우리네 엄마들 중에 한사람이면서 저 고드름 하나도 선뜻 손으로 따다가 먹이지 못하는 세상에 동참하며 살고 있는 지금,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고드름을 따다가 예쁜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고 싶다는 동요를 부르며 뛰어놀 수 있었던 그 옛날이 더욱 절실히 그리워진다.

- 12월 추운 어느 날에...

최 평균: 동요 고드름이 우리들 삶의 언저리를 떠난 것도
아마 산성눈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합니다.
저는 어려서 부터 서울에서 살아서 설탕 고드름이란 추억은
처음 접하는 군요.
그러고 보면 최옥희 작가님도 어릴때는 꽤나 개구.......ㅎㅎㅎ
작가님의 어릴적 추억에 곁다리로 제 유년도 머물다 갑니다. -[03/27-11:52]-

정용하: 고드름 !
물질 자체는 차갑지만 정감이가는 말이네요
시골 초가집 처마밑에 메달린 것이 제격인 것 같습니다.
성난 황소 거식이 같이 생겨 동네 어린이들이 아이스케키
대체물로 지극히 사랑을 받던 것으로 손에 쥐고 놀다가
햇볕에녹아 떨어지면 어떻게나 아쉽던지 ...
최 작가님의 아름다우신 글에 한참동안 동심에 머물다가
갑니다. 그리고 서재 열어주신 것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늘 활기차시고 행복한 나날이 되십시요. -[03/28-14:39]-

임정수: 요즘같으면 산성비에다 온갖 오염 물질로 가득 덮힌 세상이라
감히 상상조차도 못할 일이지만,
어릴땐 저도 처마 밑으로 길게 뻗은 고드름을 따다가
얼음 과자를 먹기라도 하는 듯 시원스레 먹곤 했었답니다.

오랫만에 최옥희 작가님의 고드름을 보면서
어릴 때 맛있게 먹던 고드름의 시원함을
가슴속 깊숙한 곳에까지 느껴봅니다.

황사 바람이 심한 때입니다.
몸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 -[03/28-20:42]-

습관이 부른 화

보신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