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옥희
ㆍ작성일	2006-08-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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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연일 폭염에 열대야로 기세를 부리던 날씨가 이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해 졌다.
저녁을 먹고 9시가 되면 일찍 잠자리에 들던 아버지께서 옥상에다 모기장을 두르고 잠을 청할 정도였으니 이번 여름의 폭염은 살인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느덧 8월도 끝이 나고 가을의 시작이라는 9월을 맞으며 아버지의 하루 일과가 어김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는 징조.
70을 바라보는 나이라 본인께서는 염려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자식들 입장에서 봤을 때는 항상 아버지의 하루가 걱정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런 아버지께서 8.9월이 되시면 항상 빼놓지 않고 하시는 일이 하나있다.
보통 때는 날씨가 그리 덥지 않은 8월부터 시작을 하시는데 올해는 더위 때문에 조금 늦은 9월이 되서야 시작을 하셨다.
벌초!
어떤 이들은 벌초하러 간다고 하면 그거야 조상 산소를 돌보는 일이니 당연한 것이라 생각을 하겠지만 우리 집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딸만 여섯에 아들하나 없는 아버지께서 조상 산소 아래에 정작 본인의 자리 하나 마련해 놓는 일은 극구 말리시며 “나 죽으면 화장하그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을 하시면서도 산소에 잡초가 조금이라도 자랄라 치면 어김없이 찾아가 잡풀을 뽑고 주변정리를 하시는 것이었다.
또 그 중에 아버지께서 가장 중요하게 가꾸시는 할머니 산소는 우리 딸들에게는 가고 싶지 않은 곳 1위의 장소였기에 산소를 가시는 날은 아버지와 딸들의 신경전이 늘 이어져야 했다.
돌아가셨다고는 하나 우리 집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생각하는 여섯 딸들에게 할머니의 행동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마음의 상처로 남겨져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조금만이라도 정을 주셨으면 아버지께서 지금 혼자 이렇듯 외롭게 생활하시지는 않았을 터인데, 시집오는 날부터 왜 그리 엄마를 미워하시고 결국은 헤어지게 만드셨는지...
이런 사정으로 딸들이 또 산소를 찾는다며 잔소리를 할라치면 오히려 역정부터 먼저 내시며 더 이상 말을 못하게 막아버리시곤 대문 밖을 슬쩍 나가 버리시는 아버지.

얼마 전 또 수돗가에서 낫을 쓰윽 쓱 갈고 계신 걸 보니 산소를 가시려는 것 같았다.
“언니가 아버지 좀 말려 봐. 집 뒷산에 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더 가야하는 거리인데 왜 툭하면 가신다고 저러시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지금이 독사가 가장 독이 올라 있을 때라잖아. 벌들도 마찬가지이고. 혹시나 혼자 가셨다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하시면 어째.”
동생이 수돗가에 앉아계신 아버지를 보고는 걱정이 되었던지 내게 나직이 말을 건넸다.
그렇지 않아도 못마땅하게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던 내게 동생의 한마디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 뭐하세요? 또 할머니 산소 가시려고 준비하시는 거에요?”
“그래. 오늘 날씨도 좋고 한동안 못 가봐서 풀도 제법 많이 자랐을 게다. 오늘은 한번 가봐야 겠구나.”
“혼자 다니시면 위험하니까 가시려면 큰댁에 연락해서 함께 가시지 몸도 좋지 않으시면서 왜 그 많은 일을 항상 혼자 다 하고 오시는 거예요? 아버지 하시는 행동 못마땅해 죽겠어 정말...”
“큰집에서 안한다고 나까지 안해야 되나? 아무도 신경 안 쓰면 금방 어디가 묘인지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게 잡풀이 자라기 때문에 안 된다. 니들이 뭐라 케도 오늘은 할매 산소에 갈꺼니 잔소리 그만하거라.”
늘 그렇지만 한번 고집을 부리시면 절대 두 번 번복을 하시는 일이 없으셨다.
아무리 굳은 표정을 짓고 언짢은 말씀을 드려도 그만둘 것 같지가 않았다.
“알았어요. 그럼 오늘 다 같이 가요. 모처럼 모두 모였으니 자가용 타고 다 같이 갔다 오면 되겠네. 아버지 혼자 가신다니까 마음이 안 놓여서 도저히 안되겠어요. 우리도 준비할 테니 같이 가요.”
“니들 좋은 쪽으로 해라. 나야 뭐 아무 상관 음따. 버스타고 혼자 갔다 와도 되고 나들이 겸해서 니들하고 같이 갔다 와도 되고...”

고향 시골에 도착해서 산소를 가기 위해 작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잡풀들이 무릎까지 자라있는 것을 막대기로 탁탁 치며 우선 길을 만들었다.
한참을 올라가서야 저만치 윗대의 조상님들 산소와 할머니, 할머니보다 몇 년 먼저 세상을 떠나신 고모할머니의 산소가 보였다.
고모할머니는 하나있던 자식과 남편을 6.25때 북한군에게 잃어버리고는 그 후 평생을 혼자 생활하시다 생을 마감하시고 저 자리에 누워계셨다. 제사도 고향동네에서 지내준다고 했다. 그나마 조금은 불쌍하게 생각하던 고모할머니 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소를 찾은 것은 돌아가신 후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 산소 앞에다 소주 한 잔과 과자 한 봉지를 뜯어 놓더니 딸들에게 절을 하라 명하셨다. 살아계실 적에도 찾아뵙지 않았던 할머니를 이제 와서 인사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아버지의 부탁이니 마음에 없는 인사지만 어찌되었건 절을 했다.
살아 계셨을 때 조금만 잘해주셨으면 여섯 손녀들 마음에 이렇듯 응어리가 져 있지는 않았을 것을.. 그러나 글도 미처 알지 못하는 나이부터 엄마 품을 모르고 자란 막내를 생각하면 평생가도 가슴에 응어리는 지워질 것 같지가 않다.
아버지께서는 산소 주변에 잡풀들을 모두 제거하고는 이제야 됐다 싶으셨는지 풀들이 깨끗이 잘려나간 산소 옆에 앉아서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셨다.
“아버지. 우리가 꼭 이렇게 해야 해요? 못마땅해...”
“너무 그러지 말그라. 그래도 그런 게 아닌 게다. 내가 할머니 자식 하기 싫다고 자식이 안되는 건 아니지 않더냐. 부모는 자식과 마찬가지로 미워도 부모인 게다. 니들은 내가 서운하게 한다고 나 안볼끼가? 뿌리 없는 자식은 없데이.. 이제 할매 그만 미워하거라. 이 아빠한테는 그래도 부모인기라.”

‘뿌리없는 자식은 없다’
며칠을 그 말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9월. 다가오는 추석을 느끼며 벌초하러 산소를 찾는 분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분들 중에 아버지처럼 마음으로 벌초를 하러 가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추석이 되면 오히려 외국이나 유원지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
그 반대로 조상에 대한 의무감, 외부의 눈초리, 불효자 소리 듣지 않으려는 얄팍한 계산 없이 마음을 놓고 오시는 효자 아버지.
일주일 남짓 지나고 엊그제 비가 내렸다.
오늘 또 아버지는 수돗가에 앉아 낫을 갈고 있지나 않으실지 모르겠다.

최 선경: 가족은 사심없이 내가 행복하길 원하는 사람이면서도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서로 상처를 내기도 하지요. 옳다 그르다 정리할 수 없는 관계속에서 인간적인 끈끈함에 마음이 뭉클하네요. 최옥희 시인님 글속에 잠시 묻혀있다가 돌아 갑니다. -[08/30-23:36]-

유남계: 최옥희 국장님 안녕하세요
글을 읽어보니 저의 아버님과 꼭 닮았군요
할아아버지 할머니 산소 밑에 가묘를 써 놓고는
틈만 나면 잡초 뽑으러 가시는 아버지를 못가게 말리곤 해도
그 여름 뙤약볕에 가시는데, 팔십 노인이 쓰러지실까 늘 걱정이지요
이번 추석에 고향에 성묘가서 가지고 있는 수맥진단기로
조상의 묘지에 수맥이 들었는지 검사를 했는데
묘지에 수맥이 없다고 하니까 그렇게 좋아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조상의 묘지에 물이 차면
그 후손이 서 있는 자리에 수맥진단기로 측정하면 그곳에
수맥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시험해 보고 놀랐답니다.
죽은 조상의 기운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증명되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요
집안의 형뻘 되는 사람이 중풍이 들어서 반신불수가 되었는데
이번에 그 분의 할아버지 묘지에 가서 수맥을 측정해 보았더니
묘지에 물이 가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가 봅니다
시인님의 글을 무심코 읽어보 -[10/10-13:02]-

유남계: 시인님의 글을 무심코 읽어보다가 댓글 단다는 것이 너무 길어져서 짤렸나 봅니다
댓글다는 날은 너무 바빠서 마무리 못하고 이제야 짤린 댓글을 이어갑니다.
이번 추석에 모인 가족들을 상대로 수맥진단기로 측정해 본 결과 제수씨와 자형의 조상묘에 수맥이 들어 있어서 이야기 해 주었더니 좀처럼 믿지를 않더군요
시인님의 글을 무심코 읽어보다가 공감하는 바가 있어서 댓글단다는 것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주말 편안한 시간 되세요.
-[10/14-14:39]-

주 환: 최옥희 시인님 수필서재에는 처음인듯 합니다! '뿌리없는 자식은 없다!'라는 말에, "뿌리는 있으나 근본 없으면...."이라는 생각을 하다갑니다! 뿌리와 근본은 비슷한 것 같지만 깊이 생각하면 다르다고 저는 생각한답니다, "뿌리는 부모를 일컬음이지만, 근본이란 부모는 있으나 배움이 없다"는 말이 되겠지요! 뿌리와 근본이 함께 살아 있어야 되리라 새삼 다짐하게 하는 글앞에 머물다 갑니다, 늘 아름다우시고 건필하시길 기원드리면서....., -[08/18-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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