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옥희
ㆍ작성일	2008-06-3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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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부른 화
습관이 부른 화

/ 시인 최옥희

6월과 7월엔 어김없이 장마가 온다.
요 며칠 가끔 예고도 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아침출근길에 우산을 꼭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평소에는 잘 보지 않는 tv를 켜는 일이 됐다.
리모컨을 이리저리 움직여 뉴스채널을 찾고는 가만히 10여분 정도를 기다리면 어김없이 기상 캐스터가 나와 오늘의 날씨를 알려준다.

식구들 아침 식사를 챙겨줘야 하는지라 6시전에 일어나다 보니 tv로 날씨를 시청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오늘도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일어나 뉴스를 보니 오후에 한 두 차례 소나기가 온다는 예보를 전해준다.
우산을 챙겨서는 출근 준비를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직장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다 보니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기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걸어가는 걸 즐겨 하는 편이다.
가는 중간에 딸애가 다니는 학교도 지나고 고등학교 때 시화전 장소로 많이 사용했던 문화원도 지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그때 그 시절 추억들이 가물가물한 안개 속에서 깨어나 내게 아침인사를 건네는 것 같아 이런날은 기분이 너무 상쾌하다.
한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저 앞으로 보이는 공원에 안개가 자욱하게 꼈다.
이런날은 무척 더운 날이 되곤 하는데...
안개가 낀 아침을 맞으면 어김없이 그날은 찌는 듯 더위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햇빛을 받으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지라 가늘게 실눈을 뜨고는 또각또각 걷다보니 어느덧 저 앞에 사무실이 보였다.
사무실에 도착하기 몇미터전쯤 되자 어제 화재로 시커멓게 타버린 가계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 보면 예고된 화재였기에 한편으로 가슴아프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느낌을 받도록 하는 곳을 지나가자니
자꾸 고개가 그쪽을 향하며 힐끔거리게 된다.

어제의 화재가 나기 한참 전에 일이다.
10미터도 채 남지 않는 거리쯤이야 2분 안에 도착하겠구나 생각하며 그날도 출근시간에 늦지 않으려 발걸음을 더 빨리 하며 걷고 있었다.
앞을 향해 걷고 있는 발을 따라 신발소리도 덩달아 빨라지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다리에 따가운 느낌이 ‘훅’ 와 닿았다.
“아야”
가끔 다리미질을 하다 뜨거운 다리미 끝이 살에 닿아 물집이 잡힐 때가 있는데 꼭 그런 느낌이 다리에 와 닿은 것이었다.
순간 놀래서 걸음을 멈추고는 따끔거리는 곳을 내려다 봤다.
하필이면 날씨 좋다고 치마를 입고 오는 바람에 맨살이 밖으로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라 무언가 기분 나쁜 것이 닿아도 방어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 뜨거운 것이 닿았는지 벌써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것의 정체를 찾기 시작했다.
상가 밀집구역으로 난 인도로 걷고 있었던 지라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걸어온 길을 살짝 뒤돌아보는데 뭔가 눈에 띄었다.
‘담배꽁초’
그것도 벌건 불을 달고 반쯤 타고 있는 꽁초였다.
도대체 누가 담배를 피우다 길로 던졌나 싶어 옆을 보니 사무실 문이 열려있고 아저씨 한분이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에서 담배를 버릴 사람은 저 아저씨 밖에 없었다.
멀리서 던질 일도 없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이 열려있는 상가는 저 아저씨 가계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르니 우선 물어보고 따질건 따지자 싶어 아저씨 앞으로 다가갔다.
“저기 아저씨? 뭣좀 여쭤볼께요?”
“네.무슨 일입니꺼?”
“저 혹시 아저씨가 좀 전에 담배 피우셨어요?”
“네. 맞는데예. 그런데 와카는교?”
이쯤에서 그 불붙은 담배꽁초가 아저씨의 것이라는 걸 알게 되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벌겋게 부풀어 오르는 상처를 아저씨 앞으로 내밀며 한마디를 쏘아 붙였다.
“아저씨? 이 다리에 벌건 것 보이시죠? 이게 뭣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하세요? 금방 여기 지나가다가 생겼거든요.”
“아가씨 다리에 생긴 것을 내가 어찌 아는교? 아침부터 와그카는데? 재수없게스리..”
‘헉’
이 아저씨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눈치도 못체고 있거니와 도리어 아침부터 여자가 재수 없게 시비를 건다는 식의 말투였다.
‘재수 없기는 매 마찬가지구만...’
“아저씨가 금방 밖으로 휙 집어던진 담배꽁초에 제 다리가 화상을 입었잖아요. 아니~ 담배를 피우셨으면 불을 끄고 재떨이에 버리셔야지 불도 끄지 않은 채 사람다니는 밖으로 집어던지면 어떻해요?”
“아~~ 난 또 뭐라칸다꼬. 내가 던진 담배 꽁초에 맞은거라고요? 이거 미안해서 우짜노. 그래도 물집은 안잡혔네.괘안소마~.몇시간 지나면 가라앉을 꺼라요.미안하구마.”
이게 진정 미안한 마음에 하는 말인지 참...
“아저씨? 미안하다는 말 듣자고 드린말씀이 아니구요 앞으로는 담배꽁초 밖으로 던지지 마시라구요. 더 큰일이 생길지 혹시 알아요?”
“알아꾸마. 고마가서 일보고~”
더 이상 말해봐야 소귀에 경읽기 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판이라 한숨 한번 푹쉬고는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그러고는 몇주가 지난 어느날, 그러니까 어제 결국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무실 밖에서 난데없이 119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바로 밖이 도로라서 지나가는 차량에서 나는 소리같았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가 잦아 드는데 오늘은 일정한 크기로 계속 들려오는 거였다.
시끄러운 소리에 근원지가 어딘지 밖으로 나가봤다.
저 앞 50미터쯤 상가에서 뿌연 연기가 유리창을 뚫고 새어나오고 있었다.
불이 난 거였다.
누구 가계인지 궁금해 조금 걸어 올라가 보니 세상에나 얼마전 실랑이를 벌였던 그 아저씨네 가계였다.
‘이게 뭔일이래’
하나둘씩 모여든 사람들로 도로가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접근 금지를 알리는 소방관의 지시에 따라 한참 멀리서 걸음을 멈추고는 연기를 보고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왜 아침부터 불이 난거에요? 저집에 아저씨 한분 있지 않나요?”
아주머니는 무언가 알고 있을거란 생각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아~ 저집 주인아저씨가 외출하고 없는데 그 안에서 불이 났다네요. 저봐봐여. 문이 잠겨있어 창문을 깨고 불을 끄고 있잖우.”
정말이었다.
출입문은 잠겨있고 깨져있는 창문으로 소방관이 고무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었다.
내부가 얼마나 탔는지 무엇이 타고 있는지 시커먼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상태로 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옆건물로는 불길이 번지지 않고 있었다.
한참을 불길이 잡혀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타고있는 가계를 보고는 어찌할줄 모르는 표정이 멀리서도 보였다.
불이 잦아들고 소방관 말이 담배꽁초에 의한 불일 확률이 높다는 말을 전했다.

멍하니 주저앉아서는 다 타버린 가계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얼마전 담배꽁초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던 일이 떠올랐다.
‘그러게~ 그렇게 담뱃불 조심하라고 말씀드렸건만...’
평소의 아저씨 습관이 이런 화를 부른 거였다.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더 조심해야 하는데 가만보면 담뱃불을 다루는데 있어서 정작 피우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꽁초를 취급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얼마전 다리를 데이고 친구를 만났는데 내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 친구도 별반 심각성을 못느낀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친구말이 ‘지금까지 10년 넘게 담배를 피우고 있지만 아무일도 없었어’였다.
과연 그럴까?
이전까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아무일 없을까?
‘앞일은 어찌될 지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닌데 자기가 하는 아주 사소한 행동이 평생에 가장 큰 불행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해보지 않는지...
아저씨 가계에 불길도 잡히고 모여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 제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참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평생을 일궈온 가계를 단 한시간만에 모두 재로 만들어 버리고 과연 저 아저씨는 무얼 생각하고 있을지...
혹시 나와 싸운 그날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무수히 많고 그 중에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인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부주의가 화를 부르는 것이 태반이라고 한다.

이번 장마가 끝나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것이다.
몸이 나른해져오면 자칫 신경이 무뎌질 수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무슨일을 하던 주위를 한번 더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막을 수 있는 일로 평생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장맛비에 흘려내려 본다.

임정수: 제가 만약에 최옥희 시인님 입장이었다면
그 가게에 불이 났을 때에 부채를 들고 얼른 뛰어가서
'앗싸~' 하면서 한바탕 춤을 췄을 것입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다 보라고...

가끔 운전을 하다보면
저보다도 더 성질 급한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요,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선 저만치에서 음향 효과도 만점인 차...
요란한 굉음과 함께 멋지게 부딪히는 것을 목격하곤 하거든요.

그럴 때면 어김없이 바로 옆에다 차를 세워놓고 박수를 치곤한답니다.
그사람이야 아파서 죽든말든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지요.
어차피 그사람또한 제가 안중에도 없었을테니까요..
ㅎㅎㅎ

자신의 행동이 잘못인 줄을 모를 때엔 하는 수 없겠지만,
분명 잘못된 것이고 누군가가 옆에서 조언을 해준다면
그때라도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을하여야 정상인 것을...

사람과 짐승이 다른 점은,
말못하는 짐승이야 어차피 말을 못하니 무슨 말인지 말귀를 모를테고,
사람은 좋은 말과 그렇지 ? -[06/30-20:11]-

임정수: 못한 말을 새겨들을 줄 알기에 사람인 것입니다.

좋은 취지로 좋게 말을 하면 알아듣고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미안한 감정이 있어야 당연한 것인데,
그 가게 주인은 조금도 뉘우칠 줄을 모르니
어쩌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인지도 모르죠.
ㅎㅎㅎㅎㅎ

그동안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장마철이라 고르지 못한 날씨에 몸 상하기 쉬운 때입니다.
잦은 비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단도리를 잘하시고
건강한 여름을 나시길 바랍니다.

6월의 마지막 밤을 잘 마무리 하시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한 멋진 7월을 맞이하시길 빕니다.

모처럼 고운 글밭에 머물다갑니다.
편안한 밤 되시고 좋은 꿈 많이 꾸세요. *^.^* -[06/30-20:11]-

고드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