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옥희
ㆍ작성일	2007-11-1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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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여행
보신여행
/ 최옥희 시인

산골에서 살다 시내로 이사를 나온 지 벌써 15년이 훌쩍 흘렀다.
15년이라는 세월이 말해주듯이 이 시간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휴일을 맞아 온 식구들이 집에 모였다. 아버지의 생신이 다음 달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올해는 어찌 해드려야 할 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 후면 우리 집에 한 식구가 된지 딱 1년이 되는 넷째 제부가 그럴듯한 의견을 냈다.
염소탕과 토끼탕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1박 2일로 해서 그곳에 보신여행을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절을 짓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지라 멍멍탕은 먹지 않지만 육식을 워낙 좋아하는 식구들이라 염소와 토끼탕으로 모두가 찬성을 했다.
솔직히 모두가 이렇듯 찬성을 한 내막 속에는 알게 모르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한 몫을 담당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 당시 고향시골은 농촌이라는 의미보다는 첩첩산골의 의미를 더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해야 맞을 만큼 하늘과 더 가까이 맞닿아 있다 보니 5일장이 서는 시내를 한번 구경 나올라 치면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해야 겨우 아침 첫차를 탈 수 있었다.
버스라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를 오가는 차를 모두 합쳐봐야 3대가 전부였다.
등굣길에 맞춰 운행하는 첫차와 점심나절에 또 한번, 그리고 해가 진후에 들어와서는 자고 아침에 출발하는 마지막 막차.
우리 집은 그중에서도 제일 마지막 종점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버스 운전사들은 차를 마지막 종점에 정차시켜놓을 때면 으레 우리 집 대문을 들어서며 “아줌니.....밥좀 주이소.” 라는 큰 소리로 대문 들어서는 표시를 내곤 했었다.

이렇듯 산골 오지이다 보니 평소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5일장을 기다렸다가 장날이 되면 사오거나 아니면 논이나 밭에서 자급자족을 해야 했는데, 논이나 밭에서도 나오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생선과 고기였다.
첩첩산골에서 생선종류와 조개류는 한 달에 한번을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특별한 날이 되어야지만 접할 수 있는 귀한음식으로 취급받았고, 정말 내 기억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선을 먹어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도 생선류에 비해서 귀하기는 매반 마찬가지였다.
이 두 마리의 짐승은 어머니가 장날 시장엘 다녀와도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특별히 구경할 수 있는 날이 있다면 그날은 동네에서 돼지나 소를 잡는 날이었다.
동네 어귀에 있는 우물곁에 삼삼오오 건장한 남자들이 모여 앉으면 그날은 누구누구네 집에서 키우던 돼지나 소 중 한 마리가 살코기로 변신을 했고 앞다리 뒷다리에 갈빗살까지 모두 골고루 나눠진 살코기들은 그날 저녁상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허기진 뱃속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것도 말 그대로 일 년에 한 두번 정도 어쩌다 생기는 잔칫날이나 행사가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고기의 궁함은 항상 가슴에 남아있어야 했다.

이런 고기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11월을 지나면서부터는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는데 그건 바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대신할 대체 고기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봄에 풀이 자라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뭇잎이 떨어지는 늦가을까지는 고기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눈에 보여도 잡아 먹지를 않던 산속의 토끼와 꿩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풀을 먹기 시작하면 고기에서 누릿내가 심하게 나기 때문에 맛이 없어 잡아먹지를 않는다고 했다.
이런 토끼를 11월이 되면서부터 슬슬 잡기 시작했는데, 물론 요즘 같으면야 불법이라며 수렵감시단에 표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버스조차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산골이다보니 겨울 내내 토끼 몇 마리 잡는 것쯤은 흠도 되지 못했다.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오니 같은 동네에 살던 삼촌이 올무를 놨다며 토끼를 한 마리 잡아서 들고 왔다. 그 당시 삼촌은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채 혼자 살다보니 가끔 산에서 잡은 산짐승들을 들고 저녁을 함께 먹으러 들르는 일이 잦았다.
온몸이 하얗고 통실통실하게 살이 오른 토끼는 이미 죽은 상태로 온 몸을 축 늘어뜨리고는 삼손의 손에서 털래털래 흔들리고 있었다.
“형수요~저녁 쫌 얻어 묵읍시더”
하며 죽은 토끼를 번쩍 들어 올리는 삼촌의 입가에는 행복한 웃음이 한 가득해 있었다.
“어서오이소. 토깽이 한 마리 잡으셨네예~”
어머니는 별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이 지극히 평범한 웃음과 말투로 삼촌을 맞았고 그날 저녁상에는 잡은 토끼가 얼큰한 탕으로 바글거리며 올려져왔다.
전골냄비 속에서 올라오는 구수하면서도 매콤한 탕 냄새가 어찌나 코끝을 자극하며 배속을 꼬르륵 거리게 만들었던지, 아버지의 숟가락이 들리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뼈다귀에 붙은 토끼의 살을 먹어치우려 손끝으로 국물이 흐르는 것도 모른 체 짭짭거리며 뼈를 발라먹었다.
지금생각하면 아버지와 삼촌의 술안주로 만들어 상에 올려놓은 것이었던 듯 상당히 매웠던 것 같은데 얼마나 고기가 먹고 싶었으면 그 매운맛도 감수하며 허겁지겁 먹었는지...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시생활에 젖은 사람들은 결코 이 절실한 생활을 알지 못할 참이다.
그 후, 도시로 이사를 오고 난 다음부터 산토끼고기는 먹을 필요도 없게 되었고 또 반대로 구하기가 힘든 음식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이런 막연한 추억과 함께 시골에서 맛있게 먹던 그리운 맛이 서로 말은 안했지만 각자의 머릿속에 남아있었을 거였다. 토끼탕을 먹으러 가자는 제부의 말에 나 또한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시절 산토끼탕이 생각났으니 말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면서도 추억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보신여행을 가고자 하는 집에서 우리 모두는 음식의 맛보다는 다시금 그 옛날의 추억을 맛보고 싶어진 것일 터였다.
하나의 바램을 더해 본다면, 이번 여행으로 도시생활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커가고 있는 어린 자식과 조카들의 가슴속에도 어버이가 된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처럼 멋진 기억이 가슴에 남겨져, 먼 후일 추억의 강에서 재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여행의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가슴속에서 작은 두근거림과 설렘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아마 내일은 더 커진 설렘으로 마음은 벌써 그곳에 달려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최평균: 한 2십여년전에 강원도의 도계(지금은 태백시)에 업무 출장을
갔다가 마침 장날 동네 영감님들이 잡은 산토끼탕을
도계전화국 직원과 정말 막있게 먹었었는데 그 이후로 그때 그맛이 생각나
찾아간 토끼탕집에서는 그때 맛을 볼 수 가 없었습니다.(아마도 집토끼)
지금도 성남의 남한산성을 가면 토끼나 꿩탕을 맛 볼 수 있는데
그때의 희열은 맛 볼 수 없습니다.
최옥희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그때의 강원도 산골 토끼탕 맛 추억에
회가 동 하는 군요. 대 가족이 같이 하는 보신여행이 멋진 추억 여행이 되도록
잘 다녀 오시기 바랍니다. 아~~ 나도 토끼탕 매려워......ㅎㅎㅎ -[11/16-09:02]-

최옥희: 며칠전에 TV를 보니 강원도에 테마여행상품으로 토끼를 풀어놓고 잡는 게 나오더군요^^.진짜 산토끼를 잡는 느낌은 못느끼겠지만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데요 ㅎㅎ.사람의 미각에서 느끼는 최고의 맛은 아마도 추억에 깃든 맛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11/30-04:28]-

임정수: 제가 귀촌을 하면 텃밭에다 먹을 곡식을 심고
연못을 만들어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도 양식하면서
토끼와 염소, 닭과 오리...등을 키우고 싶었는데,
아직은 준비 단계랍니다.

언젠가 저의 꿈을 실현하는 날,
꼭 최옥희 시인님을 초대하고 싶네요.
(물론 모든 분들을 다 초대하겠지만요..ㅎㅎㅎ)
-[12/02-21:09]-

최옥희: 임정수 수필가님....다 완성되면 꼭 초대해주세요. 바로 달려갈께요(많은 회원님들 모시고^^) -[12/28-00:39]-

고드름

단풍잎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