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도연
ㆍ작성일	2020-11-2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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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가을 능선을 오르다

“북한산” 가을 능선을 오르다

이 도 연

뒷산에 올라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북한산이 하얀 어깨를 드러내고 아스라하게 보인다. 아침 일찍 북한산의 가을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북한산 입구인 우이동 계곡길로 접어들어 산길을 잡는다.

등산로 입구에 커다란 표지석이 북한산을 뒤로하고 늠름하게 서 있고 북한산 국립공원을 한문으로 일필휘지(一筆揮之)의 멋들어진 필체로써 놓았다.
북한산은 백두대간을 힘차게 뻗어 내려와 한북정맥을 이루고 추가령(586m)에서 남서 방향으로 굽이치다 도봉산을 만들고 우이령을 넘어 한강에 이르러 최고봉인 백운대(836m)를 정점으로 솟구쳐 일어난 서울의 진산으로 한산(漢山),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리다 북한산성을 축조한 뒤부터 북한산이라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산을 생각하며 천천히 5분쯤 걸어 올라 소귀천 매표소와 만나자 바로 뒤쪽으로 갈림길이 나온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인생의 삶의 여정도 언제나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의 몫은 언제나 본인이 해야 하는 것, 그것이 곧 나의 운명이자 길인 것이다.

우측은 백운대(白雲臺) 매표소이고 좌측은 대동문 방향이고 좌측의 대동문(大同門) 방향으로 길을 잡아 오르는 오솔길에서 만나는 북한산 가을이 붉은빛으로 때로는 초록과 노랑이 계곡 사이로 연하게 풀어지며 가을 햇살로 익어가고 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길옆 계곡에 흐르는 물빛에 수채화처럼 번지는 가을 풍경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성급한 물가에 가을이 벌써 결빙을 시작하고 계곡은 그사이 사이 물빛 가을이 흐르고 있다.

제법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앞에 천천히 걸어도 슬슬 땀이 배기 시작할 무렵 소박하고 단아함 속에 은근한 멋스러움을 간직한 대동문(大同門)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자 성벽 위에 아름답게 지어진 대동문이 위풍당당하다.
숙종 때 축조된 성문으로 총 14개 문중 대서문,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용암문과 함께 현존하는 성문이다.

대동문을 지나 조금 오르자 산세가 급하게 일어서며 상아같이 하얀 암벽이 가을 햇살에 빛을 반사하며 다급한 기세로 험준한 산맥처럼 태산준령으로 다가서기 시작한다.
발아래 깎아지는 벼랑과 고개를 들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하얀 암벽이 병풍처럼 길을 막는다.
실로 그 위용이 웅장하다. 수만 년을 저 자리에 버티고 있었을 태고의 고향 같은 바위산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이고 산과 하나가 되어 물아일체(物我一體)라 자연과 풍경의 일부로 대지 위에 자라는 한 구루 나무가 되어 서 있다.
내가 산이고, 그림이 곧 산이고, 산이 나이고, 자연이다.

암벽 사이사이 꼬물거리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 같아 보인다. 급경사 벼랑 사이 병풍 위를 올라서 서 발아래를 굽어보니 아득하고 깊은 절벽 골짜기가 펼쳐져 현기증이 일어나고 작은 바람만 불어와도 몸이 휘청거리며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이 순간 두려움이 앞선다.

사람들은 산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산을 오르고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심신을 대자연 앞에 날려 버리고 힐링을 위하여 자연의 품에 안기려고 입산을 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거나 아름다운 욕망의 끝을 만나기 위해서 연신 바위에 매달려 오르고 또 오른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리도 험한 바위산에 발자국을 남기며 오르고 있나 반문을 해보지만, 결론은 아무 생각이 없는 무념(無念)의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동장대(東將臺)를 거쳐 용암문(龍巖門)에 오르니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한참 비탈을 오르며 숨이 거칠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갈 무렵에 백운봉(白雲奉) 암문이 사각의 입을 벌리고 사람을 맞이한다. 북한산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萬景臺) 사이에 있는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성문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암문을 나오자 바로 좌측 길 위로 백운대 정상이 보인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등산이 시작된다는 말이 실감이 나며 등산로가 병풍을 둘러놓은 모양새로 거의 수직에 가깝다.
철 기둥과 밧줄에 사람들이 까마득한 높이까지 줄지어 대롱대롱 매달려 오르고 또 오른다. 정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무엇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정상을 향하려 하는가? 그것은 용기이고 희망이요 그곳은 자신과 싸움에서 땀과 피를 대가로 성취하려는 자아의 발견을 위한 성지라고 사람들은 말하는 것 같았다.

하늘에서 갑자기 굉음을 내며 헬기가 분주하게 머리를 선회한다. 좌측에 보이는 인수봉 자락에서 리치 등반을 하는 사람이 추락했다. 짜릿하게 느끼는 전율도 좋지만, 안전한 산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조난자의 무사 안녕을 위하여 마음 깊이 기도를 올린다.

때로는 우리의 삶도 안전 장구 없이 오르는 산처럼 무모한 도전으로 수없이 추락하고 깨지고 부서지는 경우가 수없이 많지만 또다시 길을 나서는 발걸음을 시작한다.
철저한 준비를 하고 오르는 자 많이 정상의 쾌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왠지 백운대를 오르는 암벽의 밧줄에 의지한 손에 힘이 들어가고 윙윙대는 헬기 소리에 슬쩍 두려움이 고개를 내민다.

일명 깔딱 고개를 온 힘을 다해 오르며 인간의 욕망 끝이 어디이며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며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과 자연 앞에 인간의 오만이 얼마나 어리석을 것인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달으며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위대한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경의감을 표하며 걷는다.

사람이 산에 오르는 등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자연에 품에 안기기 위하여 입산하는 것이며 산의 정상에는 또 다른 정상이 보이며 인간이 정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산의 어머니는 자연 앞에 순응하는 자들에게 잠시 정상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자연은 인간의 오만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가슴 깊이 되새기며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능선을 오른다.

청량한 파스텔톤 하늘 위에 구름이 둥실 걸려있고 백운대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가을이 산맥을 이루어 능선과 능선을 연결하며 끝자락은 가파르게 계곡으로 흐른다. 기암괴석 사이에 위태롭게 생명을 이어가는 노송도 몸을 낮추어 동면 준비에 바쁘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단풍나무는 이파리를 떨구며 겨울 준비가 한창이다.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산세가 웅장하고 백운대 뒤편으로는 인수봉이 하얀 바위의 속살을 드러내고 우뚝 솟아 있으며 앞으로는 기암괴석들이 줄을 이루어 마치 공룡의 등뼈 위를 따라 시선이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천하를 다 얻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 금강이 어디 따로 있다 더냐 바로 여기가 삼천리 금수강산이다.

감동은 짧고 신역은 고된 법이라 했나 갈 길은 멀고 마음은 급하다. 북한산 깊어 가는 가을 산하의 벅찬 감동을 눈과 가슴에 가득 담고 백운대 매표소 쪽으로 길을 잡아 천천히 하산하며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아우성을 들으며 내 생에 다시 오지 않을 올 한 해의 시간도 북한산자락 능선 너머로 아스라하게 멀어져간다.

북한산을 오르며

이 도 연

산을 오를수록 깊어지는 계곡
생각이 사무치면 깊어지는 그리움
잊으리 다짐하면
선명한 빛으로 떠오르는
애증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지난날의 기억이
태고의 화석처럼 완고하며
강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끊임없이 오른다

높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 어디인가?
저곳 어디서인가 당신의 숨결이 피어나 것만,
티끌 같은 세상의 것들만
바라다보이는 시선은

운명 같은 산란의 고통에 시달려
또 다른 그리움만을 잉태하고 있다.

청춘의 노년을 멋지게 살기

"금단의 땅 81년" 부평 캠프마켓 담장 밖 신촌에 부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