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6-09-20 03:38

ㆍIP: 124.xxx.224

화장실 청소 당번 이야기/교단 수기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쉬고 있는데 학교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에게 불가피한 연고가 생겼다면서 4일간만 학교에 나와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미 예정된 별 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나는 그 청에 흔쾌히 대답을 하고 학교에 나갔습니다.
정해진 하루 일과를 마칠 때쯤이면 청소를 하여야 합니다.
내가 학급 담임을 맡고 있다면 당연히 내 방식대로 하면 되지만
나는 담임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 담당을 어떻게 배정하는지를 아이들에게 묻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커다란 암초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고학년이 되면 화장실 청소를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학급이 공교롭게도 6학년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화장실 청소라는 게 어떤 사람이든지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화장실 청소를 좋아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옛날 내가 어렸을 적에는 “처갓집과 화장실은 멀어야 한다.”는 속담이 세상에 흔하게 돌아 다녔지만 요사이에는 이 속담이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지도 이미 오래전입니다.
사체가 이러한데도 가정집은 모르지만 대중이 모여서 생활하는 공간에서는 이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담임교사의 입장에서도 양심상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 화장실 청소 담당은 가장 맡기 싫어하는 청소 구역중 하나입니다.
이게 사실 따지고 보면 만 생령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정갈하고 고상하고 우아하고 향기로운 우리 사람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공간임이 분명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그와 같이 대접을 받는 것처럼 나의 결과물도 나와 똑같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아니할 수 없는 게 맞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이론은 그럴싸하도록 명백하지만 실제라는 벽에 부닥치면 상황이 완전히 엇나가고 맙니다.
다른 곳은 지정해 주어도 별 말이 없지만 화장실 청소는 맡기만 하면 아주 재수 없다는 듯 낯빛이 금세 벌레 씹은 얼굴로 변해 가는 것이 여실히 보입니다.
“에에에... 이번 주 화장실 청소는 ㅇㅇ 분단...”
담임교사는 빠른 속도로 발표를 못하고 “에에에...” 하고 길게 뜸을 들인 후 발표를 합니다.
이에 그 분단 아이들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에잇! 재수 없어.” 하고 아주 똥 밟은 표정을 짓습니다.
한 쪽에서는 마치 교실이 떠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환호성을 질러 댑니다.
하지만 이러한 희비쌍곡선은 매주 반복된다는 사실은 다음 주 일이고 우선은 모르는 듯합니다.
또 당번을 바꾸는 것이 약간의 불규칙이 있어도 다른 곳은 별 말썽이 없지만 화장실 담당을
잘못 바꾸면 마치 세상이 뒤집어 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항의가 빗발칩니다.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이 순간만큼은 벌집을 잘못 건드린 사람 마냥 허둥대야만 합니다.

그 날도 내가 화장실 당번을 물으니 어제 숙제를 안 해 온 사람이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에 정식 화장실 청소 당번은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해방을 맞은 듯이 의기양양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앗사! 메롱...약오르지?"
좋아 못견뎌 하는 모습이 아주 볼만 합니다.
그래도 내 방식이 아니어서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지금 당장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서만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화장실 청소는 벌 받을 사람이 해야만 하는 청소인가?’
‘벌을 안 받는 사람은 화장실 청소를 하면 안 되는 일인가?’
‘우리 집에서도 벌 받을 사람이 청소를 하는가? 아닌데...’
‘그럼 그 선생님 집에서는 벌 받는 사람이 청소를 하고 있는가?’
‘잘못한 일이 없는 사람만 사는 곳에서는 누가 청소를 하여야 하는가?’
‘만일 벌 받을 짓을 저지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그 날 청소는 누가 하는가?’
‘만일 반 전체가 벌만 받았다면 다른 곳은 빼고 모두가 화장실 청소만 하면 되는가?’
또 어떤 경우에는 시험 성적이 나쁜 사람이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우스운 말도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상정해 놓고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내 머리는 도리질을 칠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살던 그 옛날에는 화장실이 마당 건너편에 따로 있었습니다.
그 이름도 듣기 거북스럽기만 한 변소였으니 제 어찌 언감생심 오늘날의 대우를 생각이나 했으리요.
더러운 곳이기 때문에 집과 가까이 있을 수 없다는 고정 관념에 그랬기도 했지만 사실로 또 깨끗하게 관리할 형편도 못되게 살았었으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거든요.
화장실이 잠자는 공간 옆으로 식탁 곁으로 이사를 왔으니 말입니다.
가장 가까운 공간이 화장실이고 그 곳이 깨끗할수록 정갈한 집안이거든요.
지금이야 침실과 식탁과 화장실 그리고 모든 주거 공간이 어느 하나라도 모자란 구석이 있다면 말 자체가 안 되는 일이지만 그 시절만 해도 좀 그렇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화장실 청소든 다른 곳 청소든 공평하게 돌아가는 방식으로 청소 담당 구역을 배정하였습니다.
단 한 번도 이 원칙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정하다는 신뢰를 하나 더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나 완벽한 방법은 없습니다.
어찌하면 완벽하도록 실행할 것인가 하는 노력이 더 빛이 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보다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선생님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노력하며 살아가시는지를 어린 아이들이지만 알 만큼은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천심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심은 양심입니다.
내가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백낙은

2016-09-20 10:10

이석희 작가님
화장실 청소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옛날에는 뒷간과 처가는 멀어야 한다고 해서
멀리 위치했었는데 자꾸 가까이 오더니
이제는 방안까지 들어오고 말았네요.
그리고 화장실 청소는 벌받는 사람만 하는게 아니라는 말씀 지당합니다.
저도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요즘은 수세식이라 정말 편리해 좋습니다.
벌 받을 것 무서워서가 아니라 양심적으로 선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필하시고 은안하소서.


이석희	백낙은 작가님! 재미있게 읽으셨다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저는 화장실 청소만은 간신히 면하고 살아갑니다. 순전히 내 노력의 결과물이지만 내가 생각해 보아도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이 탄로나면 큰 일 납니다.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9/20 22:19

주응규

2016-09-20 15:59

이석희 작가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 배독합니다
글 쓰기 좋은 가을입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십시요 건필을 기도합니다.


이석희	주응규 작가님! 감사합니다. 저도 그래볼 작정입니다. 환절기 건강하세요.	9/20 22:20

정찬열

2016-09-20 20:41

이석희 작가님 ! 골머리아픈 화장실 청소
혹시 작가님께서 하신것은 아니겠지요
머리되게 아팠겠습니다.
"화장실" 생각하니 그옛날 지금처럼 수세식이
아니던 시절이 눈앞에서 맴도네요
고심속에 올려주신 글 감사히 배독했습니다.
가을 행사때 뵙기를 갈망 합니다.


이석희	정찬열 작가님! 화장실 청소 당번은 걸렸다 하면 골머리 아픈 일이지요. 지금은 용역회사에서 해주니 완전히 신선놀음이지요. 그래도 그 때가 좋았답니다. 지금보다 더 마음이 편했으니까요. 그 날 뵙겠습니다.	9/20 22:24

김종근

2016-09-21 08:59

이석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화장실 청소 당번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중학교 때 화장실 청소하던 기억이 어렴풋하는군요.,
저도 대학 졸업하고 1년간 교단생활을 한적이 있습니다.
여고 2학년, 무척 힘든직업이라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힘든일을 정년까지 하셨으니 존경스럽습니다.
가을 행사때 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이석희	김종근님! 반갑습니다. 여고 2학년은 참 힘들지요. 저는 초등이었으니까요. 참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좋은 추억거리도 참 많고요. 가을 행사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9/21 15:00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박서방과 백정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