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7-02-21 06:44

ㆍIP: 124.xxx.224

여행자

여행자

뉴욕에서 만났던 어느 흑인 거지가 있었다. 봄비가 내리던 사월의 어느 날
나는 비를 피하기 위해 건물 밑에 서 있다가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뉴욕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여행자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흑인 거지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여행자 아닌가?
너는 너만이 여행자라고 생각하느냐?" "You are right!"
그렇다. 흑인 거지여, 너의 말이 옳다.
세상에 여행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뉴욕 할렘 가 근처 공터에 버려진 부서진 차를 자기 집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 '집'에 초대 받아 간 나는 영국제 골동품 커피믹서기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그것이 당신 것이냐고 물었다.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겠는가?" "You are right!"
그렇다. 흑인 현자여,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는 너의 말이 옳다.
세상에 나의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여행자인 것을.

- 류시화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중에서 -

그렇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여행자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무릇 여행이란 어디인가를 향하여 가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동물은 어디로 가든지 향하여 가는 곳은 달라도 하여튼 가고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부여 받아 태어나는 순간 여행은 시작됩니다. 싫든 좋든 여행은 하고야 말게 됩니다. 여행을 말하는 사람 중에는 죽음을 향하여 가는 길이 바로 여행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통상 목적지를 정하고 장비를 갖추고 경비를 들여서 날짜를 잡아 가는 일만을 여행이라고 부릅니다. 인생 자체를 여행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인생 여행은 그저 소홀하게 정의하게 됩니다. 가장 근본이 되는 이 인생이라는 여행을 이렇듯 가볍게 여기면 안 되는 소이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인생 여행객들은 자기가 어디를 향하여 가는지를 모릅니다.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고 가는지를 알 까닭은 더 없습니다. 지금 가게 되면 언제 돌아오는지도 모릅니다. 누구와 함께 가는지도 모릅니다. 경비는 얼마나 들고 장비는 어떻게 갖추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막연히 가기만 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니까 나도 갑니다. 마치 덩달아 장에 가는 머슴 장꾼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날짜를 잡아서 경비를 들여서 한시적인 여행을 갈 때에는 철저히 준비를 하고 단단히 대비를 하고 떠납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인생의 근본 여행은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대비도 없이 막연히 따라서 떠나갑니다. 이렇게 준비가 없이 되는대로 개울물에 얼음 조각 떠내려가듯 덩달아 따라가니 그 인생이 바른 여행이 될 수가 없습니다. 목적지는 바로 길을 나서는 사람에게는 행선지가 됩니다. 향하여 가는 곳이 바로 목적지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언필칭 성공하였다는 사람들의 면면을 봅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을만한 유명한 대학에서 출세 길이 보일만큼 전공과목도 잘 선택하고 머리가 좋아 대학 초년이면 고시에 합격하여 소위 소년등과를 하여 면류관을 일찍 썼던 사람들을 봅니다. 20대에 영감님 호칭을 받습니다. 눈을 번뜩이며 수소문하는 금수저의 자녀와 짝이 되어 금세 번쩍 번쩍 하는 출세가도를 달려서 급기야 금수저의 후예가 됩니다. 성공을 한 셈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자신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부터는 빛이 반짝반짝 나는 두뇌를 사용하여 일찍이 아무도 누리지 못하였던 부와 명예 권력 그리고 아무도 걸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신화를 창조합니다. 하지만 오늘 그들의 몰골을 한 번 보십시오. 그래도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손목에 가리개를 얹어 수갑을 감추고 큰 집에 드나드는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도 자식에게만은 면목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옛날에는 그들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떳떳합니다. 그때는 참으로 가족들에게 미안하였습니다. 물려줄 것이라고는 가난 밖에 없으니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닙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올 때에는 단출한 내 가족만의 축복 속에 조용히 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날 때에는 많은 이들의 아쉬운 탄식과 함께 다시 홀로 떠나는 소박한 여행길을 떠나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일까 하고 나 자신의 여행을 돌아봅니다. 결혼 후 40년이 넘도록 이렇게 살고 있으니 아내에게 가장 만만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을 함부로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즉시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 놈의 자존심이 무언지 사과는 죽어도 못합니다. 하기 싫습니다. 그저 속으로만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반복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조심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여야 아내에게 쥐꼬리만치라도 당당한 남편으로 거듭날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출세를 하고 더 잘 난 사람들이 우리들 필부필부만도 못한 여행길을 걷는다면 정말로 부끄러운 출세를 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 때 잘 나갔으면 무슨 소용일까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성공이 아니고 작더라도 당당한 성공이어야 합니다. 가족 앞에 비록 소박할망정 떳떳한 성공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치는 박수를 받는 성공이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지혜와 부와 명예가 세상에 울림을 주는 그것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여행 계획표를 다시 점검하여야 합니다. 그 때가 언제냐 하면 바로 지금입니다. 어디에서 그 일을 하여야 할까? 여기에서 하여야 합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여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나는 어떠한 여행길을 걷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혹시 나도 탈선을 한 여행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방치하면 처참한 결과가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송은 이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김종근

2017-02-21 08:07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석희 작가님
작가님의 여행자 글을 읽고 깊이 반성해 봅니다.
그냥 목적도 없이 물에 물탄듯 무의미하게 하루를 맞이하는
이 모습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뭐 하나도 명예롭게 이룩하지
못하고 세월에 이끌려가는 제모습을 되돌아 봅니다. 지금
이순간 이자리에서 다시한번 여행의 목표와 삶의 방향을
점검해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이석희	김종근 작가님! 반갑습니다. 겸손의 말씀이지요. 항상 뒤를 돌아보며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글의 행간에서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참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구나 하고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봄 오는 길을 멈추게 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21 10:32

김종덕

2017-02-21 11:37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오늘도 평안하시지요? 살아가면서 자신의 좌표의 점검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행시에는 다양한 환경과 서로 다른 길손을 만나 같이 가야할 일들이 생기게 되겠지요. 어떤 항해에서든지 더불어 가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 볼수있는 시간을 갖는것은 해야 할 일이지만 현명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항로의 자취를 간직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석희	김종덕 작가님! 읽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공유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봄을 시샘하는 반짝 추위가 몸을 움츠리게 합니다. 항시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21 11:49

정찬열

2017-02-21 19:39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부끄러운 성공이 아니고 작더라도 당당한 성공으로
가족 앞에 비록 소박할망정 떳떳한 성공이어야 하는
세상에서 치는 박수를 받는 성공 내가 가진 지식과 지혜와
부와 명예가 세상에 울림을 주는 떳떳한 삶으로
살아가야한다는멋진글 공감하며 감사히 배독하고 갑니다.
늘 편안 하시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이석희	작가님! 감사합니다. 찾아 주시고 공유해 주시고 격려까지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2/21 21:52

김상화

2017-02-21 23:12

이석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제가 게을러 자주 뵙지를 못해 미안합니다
작가님의 여행자라는 글을 읽고 한편으로는 내 삶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저 사업에만 몰두하느라 앞뒤도 바라보지 못하고
오직 성공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노력에 비해 크게 성공도 못한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가족에게 미안함이 떠올라
혼자서 반성도 해봤습니다
아름다운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해주신
이석희 작가님 감사합니다


이석희	김상화 작가님! 반갑습니다. 공유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2/22 06:31

김경렬

2017-02-24 12:17

어느분이 마지막 가는길에
'여행 잘하였다 하리라' 는 여운의 글이 생각납니다.
여행자/의 의미 깊은 옥고에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가의 길을 성실히 임하며 후반기를 마무리 하렵니다.
감사합니다.


이석희	작가님! 반가운 님이 오시니 기쁘고요, 격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는 봄 행복하게 맞으시고 내내 건강하시기 심축드립니다.	2/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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