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안시영
ㆍ작성일	2015-07-14 17:37

ㆍIP: 58.xxx.18

청평유원지에서의 농학과 MT

오늘은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초복을 며칠 앞둔 토요일이다. 평상시 같으면 늦잠이라도 퍼질러 자고 싶은 아침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오후에 있을 방송대 농학과 대학생들의 스터디 MT 모임에 동문회장 자격으로 참여를 해야만 하는 날이니 어쩌랴 !

옥수역에서 출발하여 상봉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춘천행 전철에 몸을 싣고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북한강변의 물안개를 뒤로 하며 나만의 호연지기에 빠져 본다. 아! 그렇지! 내가 늦깎이 대학생으로 예순 여덟에 농학과를 졸업한지도 벌써 4년이 되었지! 참으로 세월은 빠르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청평역에 도착하여 재학생들이 알려준 대로 청평유원지에 위치한 ‘레드폭스’란 펜션을 역에서부터 보드 블록에 붙여 놓은 화살표를 따라간다. 데크플레이트를 깔아놓은 농원을 한가로이 걸으면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오게 되니 이렇게 편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푸르디푸른 강가의 나무와 동무해 본다.

내가 어릴 적 옹기종기 살았던 마을과 꼭 닮은 청평유원지 입구의 마을 한 복판에 들어서니, 레드폭스라는 붉은색 간판이 내 눈에 확 들어온다. 순간 아프리카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이 뇌리에 떠오른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독일군이면서도 가장 신사적이었던 그는 적장이었지만, 영국의 처칠도 롬멜장군을 존경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펜션이름을 레드폭스라고 지었나?

오후 2시 정도에 도착했는데, 행사를 준비하는 3학년 재학생들은 벌써 음식준비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이에 질세라 내가 둘러메고 간 카메라를 가지고 한 컷 눌렀다. 유니폼을 입고 활짝 웃는 그들의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행사 시작 시간이 되면 정확히 지정한 시간에 모여야지, “왜 동문들은 꾸물거리는 거야?”라고 혼자 투덜거려 본다. 내가 투덜거린다고 누구하나 코대답이라도 하는 사람도 없다. 스터디 동문회장 말 가지고는 어림도 없나 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다음에야 재학생과 동문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한다. 저녁 무렵이 되니까 40~50명이 모이게 되었다.

식순이 발표되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진 후에야 식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사회자가 그래도 長幼有序(장유유서)는 아는 모양이다. 먼저 동문회장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인사말을 미리 준비라도 할 껄 그랬나 보다. 있는 말 없는 말 주섬주섬 얘기하다 보니, 박수를 친다. 어! 내가 그래도 약간의 말 주변은 있나보네.

간단한 식순이 끝나고 저녁식사 전에 족구를 하잔다. 나는 족구에는 관심이 없어서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강가 유원지에서, 한가로이 노는 학생들과 자연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대지의 뜨거움과 강물의 시원함이 교차되는 강가에서 어린애들의 웃음소리가 정겹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 까 재학생 결승팀과 동문팀 간에 족구 최종 결승전이 붙는다고 동문님들 빨리 나오시라고 야단이다. 매사에 지기 싫어하는 나는 앞 뒤 가릴 것도 없이 주책없게 앞으로 나섰다. 순간 내 나이를 생각하지 못 했던 것이다. 하기야 “내 나이가 어때서!”란 유행가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나아갈 때와 들어갈 때를 알아야 성인군자라고 하던데, 나는 성인군자는 못 되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상대편이 찬 볼을 엉겁결에 발로 받다가 그만 땅 바닥에 훌러덩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한편 창피하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훌 훌 털고 일어났다. 온 몸이 쑤신다. 이래 봐도 내가 젊었을 때는 잠실 뽕나무 밭에서 서울지역 대학생 예비군 훈련 받을 때 몇 천명 앞에서 빵꾸난 양말 벗어들고 백조의 호수를 춘 사람이야! 왜 그래! 하지만 칠십이 넘은 몸은 이미 몸이 아닌가 보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 누가 농학도 아니랄까봐, 빔 프로젝트 화면에 꽃과 나무 사진을 올리고 맞추어 보란다. 농사를 짓지 않는 나는 겨우 은행나무를 맞추었다. 귀한 양주 한 병을 답례품으로 받았다. 누가 마셨는지 내 양주는 이미 저승사자가 데려 갔다. 사회 보는 재학생은 그 동안 식물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했나 보다. 척척 박사다. 부러웠다.

곧이어 밤 행사가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복장을 하고 머리에 리본을 단 1학년 새내기들의 율동이 시작되었다. 연습을 무척 많이 했나 보다. 나이든 어린이들의 율동이 앙증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조금 있자니까, 이번엔 캠프 화이어 행사란다. 오십 여명이 캠프 화이어 마당에 삥 둘러서서 손에 손을 잡고 눈에 눈을 맞춘다. 순간의 추억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서로가 서로를 포옹한다. 하나 된 감격의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인간은 가장 슬픈 감정을 가질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나 보다.

또 하나의 밤은 가고 아침이 밝아왔다. 어제의 행사는 까마득한 과거로 이미 지나가고, 각자 짐을 꾸리기 바쁘다. 나도 이에 질세라 짐을 챙겨서 다른 동문이 몰고 온 차를 타고 청평역까지 가서 다시 서울행 전철을 탔다. 갈 때와는 다른 감상에 젖는다. 집 근처에 왔나보다. 이번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아차! 그러면 그렇지 ! 카메라 삼각다리를 숙소에 놓고 왔네 그려. 하는 수 없지 다음날 출근해서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지.

다음날 회사에 출근했다. 아무래도 숙소에 놓고 온 카메라 다리가 마음에 걸린다. 인터넷에서 우체국택배란 키워드를 친다. 몇 번 시행착오 끝에 우체국 택배 안내원과 전화로 연결이 된다. 생전 처음 겪는 착불 택배를 전화로 주문한다. 나는 아직은 늙지 않은 거야? 그렇지? 우체국 택배를 나 스스로 해결하고 있잖아. “끝”

2015. 7. 14 오후

백낙은 2015-07-14 21:25	안시영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이 방송대를 졸업하시고 동문회장 자격으로 농학과 대학생들의 스터디 MT 모임에 참석하셔서 젊은이들과 어울리시는 것을 보니 그야말로 청춘이십니다. 젊은이들과 자주 어울려야 몸도 마음도 젊어 진답니다. 그리하며 회춘하시기를 빌어봅니다. 저도 나이들어 보니까 건망증이 지름길로 오니 한스럽답니다. 감사합니다. 은안하소서.

김경렬 2015-07-14 21:30	"청평 유원지에서~~" 안시영 작가님! 흥미진진하게 배독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합니다. 재미있고 보람된 작가님의 모습을 봅니다. 늦갂기 공부를 하신 열정! 감히 따를자 있으리오~ 대단 하십니다. 작가님 존경합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

안시영 2015-07-15 18:31	말씀은 등단했다고 뭐 하나 주셨는데, 이런식으로 글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차츰 체계적으로 학습을 해서 다듬어 가겠습니다. 격려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찬열 2015-07-15 23:27	안시영작가님 존경합니다.고희를 넘기신 연세에 방송대 농학과 대학생들의 스터디 MT 모임에 동문회장 자격으로 서울에서 청평유원지에서의 농학과 MT 모임에 참석하신 알차고 멋진글 배독하며 박수를 칩니다.짝~짝짝^^ 젊음을 함껏 누리셨군요 늘 건안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박목철 2015-07-20 19:29	연세대 공학 석사이시면서 방통대 농학과, 역시 대단하십니다. 사람은 죽을 때 까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은 합니다 만, 머리가 따르지 않더군요, 소운도 뭔가를 꾸준히 해 왔지만, 안시영작가님 앞에서는, ㅎㅎ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주 조리있게 잘 쓰셨습니다. 많이 쓰셔서 책도 내시고 하셔야지요, 박수와 기대를 함께 보냅니다.

안시영 2015-07-21 18:07	소운시인님이 칭찬해 주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기행문을 쓰다가 수필 같은 것을 쓰려니까, 이렇게 써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하나 배워 가면서 글을 다듬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복선 2015-08-01 12:22	젊음의 패기가 글에서 느껴 집니다 마음이 젊으면 나이도 꺼꾸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깜박 거리고 놓고 다니는 건 누구나 경험이 있지요 저도 어느날 부터 메모하는 습관이 들었어요 깜박 할까봐 ...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다음 글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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