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안시영
ㆍ작성일	2015-05-22 18:38

ㆍIP: 58.xxx.18

천리포수목원에 가다

지난주 주말을 맞이하여, 손녀딸을 데리고 아들내외는 차 한 대를 타고, 우리 노부부는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충남 태안반도 만리포 근처에 위치한 천리포 수목원을 보기 위해 서울 집을 출발하였다.

첫날은 천리포수목원 근처 피노키오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손녀 딸 챙기느라고 늦게 서야 수목원을 찾게 되었다. 이곳은 지난 설날 연휴 때 방문했었는데, 겨울에 피는 복수초, 남매, 호랑가시나무 열매에 매료되어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천리포 수목원은 미국인 민병갈 박사가 설립한 수목원이다. 그는 1945년에 미 해군 정보장교로 한국에 입국하여 제대한 후에도 계속 한국과 인연을 맺어서 1979년에 국내 최초로 한국국적을 취득한 민병갈 박사(Dr. Carl Ferris MIller)이다. 여기서 나는 그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진솔하게 쓰고 싶어진다.

전 직장인 엔지니어링 업계를 퇴직 후 방송대 농학과를 4년간 다닌 나로서는 한편으로 수목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목원 그 자체의 식물보다도 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이끌림이 본인의 열정과 보람은 물론, 전혀 다른 나라인 우리 한국을 위해서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를 기술하고자 한다.

민병갈 박사는 1921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작은 광산마을에서 태어났다. 15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살았던 그는 열심히 독학하여 버크넬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미 해군 정보장교로 임관한 그는 1945년 한국에 오게 되었고, 제대 후에도 미 군정청 고문으로 재입국하여 한국은행 고문으로 정식 취업하여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 당시는 해방 직후라서 국내의 모든 사회체계가 정립되지 않았을 때였다.

1962년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주말 휴가를 즐기기 위해 바닷가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서울에서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데가 만리포 해수욕장이었나 보다. 우연히 마주친 어촌의 촌부가 자기 논을 사 달라는 것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촌부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논마지기를 파는 수밖에는 없었는데, 사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가 미국사람이니까 돈이 많은 줄 알았나 보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민병갈 박사는 서슴없이 그의 논을 사 주었다. 그랬더니 어촌 마을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자기 땅을 사 달라는 것이었다. 야금야금 땅을 사다보니 17만평이 훨씬 넘는 해안가 땅을 사게 된 것이다.

그는 틈만 나면 해변에 위치한 자기 소유의 땅을 찾게 되었고, 그럴 때 마다 그 땅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1964년에 이창복교수의 도움으로 식물에 대한 학습을 시작하게 되었고, 1970년에 수목원 공사를 위한 첫 삽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각종 희귀한 식물을 들여오게 되었으며, 수 십 개 국가에서 식물들을 들여 와 2014년 12월 현재 15,000여 종류의 식물을 보유하게 되었다.

2000년에는 국제수목학회에서 천리포수목원을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세계 10대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또한 본 수목원은 국내 최초의 사립수목원이며, 다른 식물원과 달리 인간이 손질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나무가 주인이 되는 수목원인 것이다. 지난 설날 때 가서 보니까, 호랑가시나무열매를 새들이 거의 다 쪼아 먹어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보고 나는 느낀 바가 많았다.

그는 그렇게도 애착이 갔던 수목원을 뒤로 하고 2002년 이 땅을 떠났다. 2009년 수목원을 일부 개방하기도 전에 먼저 떠나가신 것이다. 떠나기 전까지 그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불우한 아이들 네 명만 양자로 삼아 교육을 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는 양자들한테 이 수목원을 물려주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이 수목원을 한국 사회에 돌려준 것이다. 80여 평생을 오로지 세계의 식물들을 한국에 들여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신 그 분의 숭고한 뜻에 농학을 공부한 나로서는 스스로 머리가 조아려 진다.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인 중 어느 누가 이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해 낼 수 있는가? 우리 세대 누가 남의 나라를 위해 이토록 헌신할 수 있단 말인가? 매일 매일 싸움박질 만하는 국회를 보라! 민병걸 그 분만 생각해야 하는 데 내가 왜 이러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현실을 보게 되니까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여기에 그가 남긴 시 한 수를 옮겨 본다. 내 영어 실력이 보잘 것 없지만, 영어를 전혀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주제넘게 번역을 해 보았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신 분이 있다면 본문에 더 접근한 멋진 영시 번역을 바랍니다. 어떻든 민병갈 그 분이 자정시간에 공사장 연못가 나무의자에 걸터앉아서, 모든 인부들이 떠난 황량한 공사장을 지키고 있노라니 주위는 스산하기만 했을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면서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뒤척여 보는 혼돈의 순간이 느껴진다.

“What more could I pray for learning from your compassionate mind?
Though no one believe in me, only peace I find.
Day to day without a care, are living those so close to me yet,
my mind is comfortable, in understanding my soul is free.
Deep in the mountains there blossoms a flower among the many thousands there,
vibrating glory fragrantly, fair and untouched where no one can see.
Here, the midnight moon shines bright unseen and fair.“

“임께서 내 마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아무도 나를 믿지 않겠지만, 나에겐 평화가 있다오.
매일 근심 없이 아직은 살고 있지만,
내 마음은 평온하고 내 영혼도 자유롭소.
깊은 산 어디에선가는 꽃들이 만발하고,
아무도 볼 수 없는 손 때 묻지 않은 곳에서는 꽃향기가 진동한다오.
자정의 휘영청 밝은 달은 구름과 숨바꼭질 하네요.“

2015. 5.22 오후

백낙은 2015-05-22 20:03	안시영 작가님. 천리포 수목원을 다녀 오셨군요. 많이 부럽습니다. 저는 만리포 해수욕장에는 가 보았지만 천리포 수목원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세계 10대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하시니 더욱 간절히 보고 싶어 집니다. 2014년 12월 현재 15,000여 종류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저를 더욱 유혹합니다. 그리고 멋진 영시도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글 올려 주신 것 감사드리오며 앞으로도 많은 글 부탁드립니다. 건안하소서.

박정근 2015-05-23 10:21	안시영 작가님. 내려주신 좋은 글 감사히 배독합니다. 만리포 천리포 ... 인근에 처가가 있는 관계로 자주 다니던 곳이지만.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 처음 알았습니다. 좀더 깊은 시선으로 그곳을 다시 찾고싶습니다. 내려주신 글에 감사히 다녀가며 작가님의 평안과 향필을 기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정찬열 2015-05-25 18:32	안시영 작가님 10여년전제가 백리포로 천리포로 만리포로 다녀 왔지만 그토록 좋은 곳이 있다는 곳 조차 몰랐습니다. 무관심에 지나쳤는지 그지방의 홍보가 없는지는 확인할수 없으나 작가님의 소개로 언젠가 한번쯤 꼭 들려보렵니다. 민병갈 박사님에 숭고한 정신에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그분이 남기신 영문 번역시 감동으로 가슴에 담으며 올려주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건안과 향필을 기원 드립니다.

김경렬 2015-05-27 19:15	안시영작가님. 안면도.와 만리포는 여러번 갔었지만 천리포는 공교롭게 한번도 못갔습니다. 작가님 글을 읽고 꼭 가보고 싶습니다. 민병갈박사님의 숨은 미담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꼭 찾아가서 세계 10대 아름다운 수목원을 답사하렵니다 감사합니다.

안시영 2015-05-28 10:28	다가오는 7월4일 방송대 농학과 서울지역 남초회 스터디 동문들과 함께 그 곳을 다시 찾을까 합니다. 한 사람의 자연사랑이 곧바로 나라사랑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김락호 2015-07-06 01:13	안시영 작가님 신인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시상식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활발한 활동 부탁드리며 멋진글 많이 지으시길 바랍니다.

청평유원지에서의 농학과 MT

어버이날 저녁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