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안시영
ㆍ작성일	2015-05-07 11:28

ㆍIP: 58.xxx.18

어버이날 저녁식사

금년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아들 내외가 롯데호텔 뷔페권 4장을 준비 해 놓았었나 보다.
어버이날은 복잡할 수도 있으니, 사전에 미리 저녁식사를 하자고 한다.
우리 내외는 아들 내외 그리고 손녀딸과 함께 아들 차를 타고 오래간만에 서울 소공동을 찾았다.

차 한 대에 앞좌석에는 아들 내외가 타고, 뒷좌석 카시트에는 손녀딸이 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중늙은이 내외는 나머지 뒷좌석에 탈 수 밖에 없었다.
두 늙은이는 몸이 엉겨 붙을 지경이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자기들은 떡하니 앞자리에 편히 앉아서 가고,
우리 늙은 것들은 짐짝처럼 마구 엉겨 붙게 해도 되는가 말일세.
기분이 약간은 상했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저녁식사 하자고 하는데 신경질을 낼 수도 없고,
더구나 별도로 택시를 타고 가는 것도 번거로울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꾹 참자고 다짐해 본다.

현대 소나타 중고차는 옥수동 집을 떠나서 남산 기슭과 남대문, 시청, 소공동을 잘도 비집고 달린다.
이리 저리 좁은 도로를 누비고 소공동 롯데호텔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번엔 주차난 때문에 지하 4층까지 가는데 이삼십 분이 걸렸다.
이래서 난 시내에 차를 몰고 오기가 싫다니까.

1층 로비에 연결되어있는 라세느뷔페 카운터로 갔다.
아들이 사전에 예약한 것을 확인 한 웨이터가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고 한다.
나는 약간은 기웃거리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뷔페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인지, 간편한 옷을 입고 식사 하러 나온 사람들일 텐데도 여유로워 보였다.
종업원이 안내하는 대로 우리 일행은 뷔페 홀에 인접해 있는 개방된 룸으로 들어갔다.
8개월 된 손녀딸을 위해서 유아용 의자를 하나 갔다 달라고 하니까,
어디에서 가져 왔나 유모차 한 대를 가지고 온다.
우리 일행은 원탁 식탁에 둘러앉았다.
의자 뒤에 상의를 걸친 다음 접시를 들고 홀에 진열되어 있는 음식을 가지러 갔다.

내가 지금까지 다녀 본 뷔페식당 중에서는 가장 값 비싼 음식들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양고기 갈비며, 황새치 뱃살, 가자미 레몬소스, 바다가재 등 그 전에는 별로 접해 보지 못했던 음식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여러 가지 음식들을 골고루 맛보려고 조금씩만 접시에 담아서 가져 왔다.
이참에 포도주도 곁들일 겸 해서 아들한테는 물어 보지도 않고 웨이터를 불렀다.
아들이 묻는다. 웨이터는 왜 부르시는지? 아 이 사람아!
어버이날이니 이 날 만큼이라도 격식을 갖추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려면 고기에 포도주는 필수 아닌감?
웨이터가 포도주 가격을 써 놓은 메뉴판을 들쳐 보인다.
41,000원부터 160,000원 까지 여러 종류의 포도주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비싼 포도주를 주문할까 봐서인지 아들 얼굴이 약간은 걱정스러워 보인다.
나는 가장 저렴한 41,000원 짜리 칠레산 까르미네르를 주문했다. 아들의 얼굴이 펴지는 모양이다.

평상시에 나는 뷔페식당 이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
늙은이가 접시를 들고 이리 저리 기웃거리는 것이 왠지 모르게 싫었다.
그러나 오늘은 음식이 고급스러워서일까? 이 정도의 수고와 번거로움은 감수할 수밖에 없겠지.
처음 보는 요리를 하나 씩 접시에 담았다.
고기와 생선 이름을 외워야 늙은 친구들한테 아들 내외가 나에게 대접해 주었다는 음식 이름이라도 들여 댈 텐데
자꾸만 잊어버린다.
스마트 폰에다가 더듬더듬 생선 이름을 적어 놓았더니, 아차 뭐를 눌렀나? 공들여 적어 놓았던 생선 이름들이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네.

한 참을 배 터지게 먹고 있노라니까, 며느리 하는 말이 ‘어떤 분은 이곳에 양고기만 먹으러 일부러 온다고 하네요.’
라고 하면서 한 접시 가득 양고기를 담아 왔다.
양고기 하면 몽골사람들이 광활한 평원에서 목축업을 하다가 먹을 것이 없으면 잡아먹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곳 양고기는 요리를 아주 특별나게 잘 해서인지 냄새가 나질 않는다나 뭐라나.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칠레산 포도주를 곁들여 많이도 먹었나 보다. 배가 터 질 것 같았다.
노인네가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는 기여? 라고 자책하다 보니, 우리에게 주어진 식당 이용시간 두 시간이 다 되었나 보다.
종업원이 일일이 테이블을 다니면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고 양해를 구한다.

우리는 호텔 로비로 나왔다. 다음엔 무엇을 할 까 망설일 겨를도 없이, 이제는 집으로 가야지 뭐 별 수 있겠나.
또다시 아들이 몰고 온 차를 타고 남산 길을 꼬불꼬불 넘어서 한남동 로터리를 거쳐 옥수동 집으로 왔다.
손녀 딸 낳을 때, 내가 사는 아파트로 아들 내외를 이사 오라고 한 것이 이렇게 편할 적도 있구먼.
우리 내외를 모시다 드리고, 아들 내외가 또다시 자기들 사는 아파트로 운전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지니 말이다.

최근 몇 달 동안 손녀딸을 우리 내외가 맡아서 키운다.
그러니, 별 수 없이 우리 집으로 올 수 밖에 별 도리가 있겠나?
집에 도착해 보니, 얼마 전에 아들이 홈플러스에서 국산보다 싸게 샀다는 독일산 파울라너 500cc 맥주 캔
수무여개가 큰 비닐봉지에 씌워진 채로 부엌에 마구 나뒹굴고 있다.
입가심으로 저걸 마시면 되겠군. 식탁에 아들 내외와 둘러앉는다.
오늘 배불리 먹었던 음식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두어 캔 마시고 나니, 배는 더욱더 불러만 온다. 잠이 금방 올 것만 같다.

금년 어버이날은 비록 애들이 용돈은 주지 않았어도, 음식을 배 터지게 먹은 어버이날이 된 것 같다.
자식들하고 이렇게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아야, 먼 훗날 내가 죽었을 때, 애들이 그럴게 아닌가?
“아빠 엄마하고 뷔페에서 배터지게 먹던 음식이 생각난다고...”

2015. 5. 6 오후

김경렬 2015-05-07 13:45	안시영 작가님! 어버이날 저녁식사! 부모님을 모시고 귀한 음식 대접하는 아드님 내외의 효심에 저도 흐믓하고 즐겁습니다. 행복한 장면을 보여 주셔서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백낙은 2015-05-07 14:17	안시영 작가님. 흐뭇한 가족의 모습을 잘 보았습니다. 저도 역시 늙은이가 접시를 들고 이리 저리 기웃거리는 것이 왠지 모르게 싫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뷔페에 가곤 한답니다. 우리 아버님 시대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짓이지요. 귀한 아드님 그리고 며느님까지 두셔서 행복하신 겁니다. 저도 나이가 들고 보니 음식은 자주 조금씩 먹어야지 한꺼번에 많이 먹고 나니 많이 불편하더라구요. 그래도 아들이 효도하는 것이니 흐뭇합니다.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세요. 평안을 기도합니다. 수필소설분과 위원회 회장 올림

안시영 2015-05-07 18:40	대한 문학세계에 이름을 올린 후 떨리는 손으로 처음 올려 본 글 입니다. 작가님들께서 댓글을 정성껏 달아 주시니 감사하기도 하고 용기도 납니다. 틈나는 대로 가끔 졸필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정근 2015-05-08 08:11	안시영 작가님 서재에서 반갑게 뵈옵니다. 다시한번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고운 글향 맘껏 피워내시며 문운이 창대하시길 늘 기원 드리겠습니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내려주신 글에서 감사히 봅니다. 늘 평안하시고 향필 하세요 작가님~~~^^

정찬열 2015-05-09 13:39	안시영 작가님 이렇게 봅게되니 반갑슴니다. 며느님과 함께 가족이 한지붕 아래 살의는 행복이 부럽습니다. 아무래도 뷔폐는 누구에게나 많이 먹게 되는 식탁이지요 거기에다 한잔 곁들이는 포도주 즐겁고 행복이 함께하는 작가님의 글 즐감하고 갑니다. 향기짙은 5월의 주말 행복한 시간 되세요

박목철 2015-05-22 15:14	나이가 들면 베플던 입장에서 보호받는 입장이 됩니다. 안작가님은 계속 현역으로 계시니 소운과는 경우가 좀 다르지만 소운은 일찌기 뒷방 늙은이 입니다. ㅎㅎ 재미있데 읽었습니다. 참, "얻어쓰는 돈으로 미리 계획을 세우지 마라," 제가 올해 헛물 켰습니다.

천리포수목원에 가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