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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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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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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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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6-01-05 0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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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부 )
( 5 부 )
S는 그동안 알뜰하게 근검절약 하며 열심히 저축을 하였다. 그때 마다 조금씩 넓은 집으로 옮기며, 십여차례 이사를 다녔다. 아이가 학교를 입학 할 즈음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작은 아파트를 장만 하였다. 천국이 따로 없다. 더 이상 주인 눈치 볼 일도, 이리저리 이사 갈 걱정도 할 필요가 없으니 좋았다. 아이들은 우리 집 이라고 이방 저 방 들락거리며 좋아한다. S는 이듬 해 아들이 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학부형이 되었다. 처음 학부형이 되던 날! 입학식에서 아들을 바라보며 뿌듯했던 기분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매일 매일 즐겁게 준비물을 챙겨주며 받아쓰기 훈련도 시켰다. 받아쓰기를 백점 받아 올 때면 얼마나 기쁘고 뿌듯 했던지, 옆집아줌마에게 자랑도 하면서 하루하루가 즐거움이 가득한 나 날 이었다.
그렇게 지내던 S는 얼마 전부터 아랫배가 무겁고 싸르르 기분 나쁜 통증이 거듭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계속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원자력 병원 산부인과를 찾아 갔다. 그곳은 암환자가 많아서 그런지 대수롭잖게 여기며, 자궁에 염증이 있어서 치료를 하면 좋아진다고 했다. 그동안 열심히 치료를 받으러 다녔으므로, 기분 나쁜 아랫배 통증도 사라지고 무겁던 느낌도 없어졌다. 일상으로 돌아와 두 아이 보살피며 살림 하느라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한 여름 무더위가 찾아왔다. S는 그해 여름이 그 어느 때 보다 길고 지루했다. S는 20여 일째 하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조금씩 흘러서 불규칙한 ‘달 걸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심각 해 지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며칠째 선지 덩이가 뭉클뭉클 쏟아지고 있었다.
옆집 109호 아줌마가 놀라 허겁지겁 자기남편 친구인 한국남산부인과에 S를 데려갔다. 한두 달 전에 예약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였다. 유명인사라 그런지 진료비와 약값이 타병원보다 세배나 비쌌다. 일주일간 약을 먹어도 별 차도가 없었다, S는 용산에 있는 당시 유명한 여의사 목영자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이병원은 진료 후 몇 가지 검사를 끝내더니 물어 보지도 않고 주사실에 누이고 링거를 꽂았다. 아이들만 두고 하루 종일 5시간이나 있으려니 걱정이 앞섰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일 와서 영양제를 맞으라고 했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 에서 기다렸다. 하혈을 너무 많이 해서 빈혈이 심 했던 것은 사실 이었지만 견딜 만 했다. 진료비와 검사 비, 그리고 주사 요금이 깜짝 놀랄 정도의 거금이었다. 두 병원에 지출이 과해서 생활비가 바닥이 났다. 아파트 입주로 여유가 없기에 지출을 최소로 줄여야 했다. 일주일후 결과를 보러갔다. 간호사가 원장실로 데려갔다. 원장은 타이프를 앞으로 당겨 놓고 진료의뢰서를 치고 있었다. 의뢰서에 도장을 찍더니 누런 봉투에 넣어 내밀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하였다. 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서울대학 병원도 찾아갔다. 하나같이 자궁을 들어내는 대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 이었다. S는 앞이 캄캄했다. 아직 30대 초반 젊은 나인데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니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 무렵, 그는 지방 순회감사를 떠나고 없었다. S는 남편도 없이 혼자 죽을병 이 아닐까? 갖은 상상을 다하며 마음을 졸였다. 며칠을 혼자 애간장을 태우며 아이들 몰래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힘들었다.
드디어 그가 출장을 끝내고 돌아왔다. 저녁상을 받은 그는 S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그 고생을 하면서 사실을 숨기고 있으면 어떻게 해! 얼마나 힘들었어, 그래!”
S는 주말이면 잠깐 다녀가는 그에게 차 마 입을 열지 못했다.
“집 떠나 있는 당신이 걱정 할까봐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라고 말하는 S는 서러움이 북 바쳐 목이 메었다.
“주말에 왔다 가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미련한 놈이오! 미안해 여보!”
그는 S의 두 손을 잡아주며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핏기 없이 바싹 여윈 아내의 모습이 비로소 눈에 들어 와 가슴이 저며왔다.
S는, 모기만한 소리로 지껄였다.
“의사 선생님은 자궁을 들어내면 암에서 해방이 된다고 생각하래요.”
그는 아내의 진료 소견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수술비용을 마련해 왔다. 당장 서울대병원으로 입원수속을 하라고 하였다. 주치 선생님은 일주일후 입원을 하도록 하였으며 그동안 힘든 일 하지 말고 영양섭취를 하면서 원기를 회복 하도록 당부했다. 처방한 약도 시간 맞춰 복용하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날 밤 S는 피곤한 몸을 가누며 일찍 자리에 누웠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상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고 빨리 내려오라는 시어른의 전갈 이었다. 너무도 기진맥진한 몸이라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이튿날 아침 일찍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 가는 기차를 탔다. 시골집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S의 몰골을 본 시댁 어른들은 걱정을 하며 S를 꼼짝 말고 누워있으라 하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음식 수발에 상 차리고 거두고, S는 결국 장례식이 끝난 뒤 눕고 말았다. 삼오 재를 끝내고 간신히 돌아오자마자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주치 선생님은 전후 사정 얘기를 들으시고 환자의 건강 상태가 매우 걱정 된다며 이틀 후로 수술을 미루고, 고단백 영양제를 투여 하도록 지시하였다. 사흘째 S는 거짓말처럼 반짝 기력이 살아났다. 평소 비타민 하나 먹지 않았던 S에게 영양제 효과가 마술처럼 나타났던 것이었다. 수술실 앞에서 그는 처형과 둘이 S의 마음을 위로해 주며 안심을 시켜주고 있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린다고, 수술 잘 받고 세시간 후에 만나자며, S의 손등을 어루만저 주었다.
수술실에는 십 여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환자 상태가 허약하므로 마취에 각별한 주의가 내려졌다. 마취 선생님은 다른 환자보다 마취가 늦어진다고 걱정을 하면서, 바늘 같은 금속으로 배를 살짝 살짝 눌렀다. 차갑고 따끔 거리던 느낌이 무뎌 지면서 말소리도 멀어졌다. 세 시간 반 예정이던 수술시간이 네 시간 반이 걸려도 계속 수술중이란 글자가 바뀔 줄 몰라 기다리는 그는 처형과 둘이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다른 환자는 수술이 끝나면, 회복실로 옮겨진다는 문자가 전광판에 뜨는데, 예정된 시간이 넘어도 회복실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그는 애간장을 졸이고 있었다. 그때 '수술종료'란 문자가 떴다. 안도의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런데 간호사가 S의 베드를 밀고 나오고 있었다. 회복실로 가지 않고 바로 나오는 베드는 수술하다 잘못된 경우라는 주위의 수근 대는 소리에 그는 기절할 것 같이 놀랬다. 더욱이 환자 얼굴에 하얀 홋 이불이 씌어져 있지 않은가? 그와 S의 언니는 두 다리가 후들거려 베드에 다가서질 못했다. 간호사가 가족을 불렀다. 그는 사망 소식을 알려주려고 부른다고 생각했다. 멍하니 장승처럼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뭐하세요, 가족 분 들 따라 오세요, 병실로 올라갑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부! 살았네! 병실로 간다네, 어서가세.”
간호사는 그 제서야 상황 판단을 하고 설명을 했다.
“환자가 빨리 깨어나고 있어서 병실로 바로 올라가는 겁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안심하세요.”
그는 날아갈 듯 기쁜 얼굴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다. 숨 막히던 짧은 순간에 지옥과 천당을 왔다 갔다 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는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연실 인사를 했다.
간호사도 기분 좋게 웃어주며, 환자가 깨어나면 주치 선생님이 오셔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신다고 했다. S는 한 시간여 실눈을 떴다 잠들기를 계속하더니 깨어나기 시작 하였다. S가 깨어나자 병실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환자가 깨어났다는 연락 을 받은 주치 선생님이 오셨다. 수술은 만족하게 잘 되었다고 하였다. 주치선생은 주된 원인으로, 큰 아이 출산 때 태반 격리시 자궁벽에 상처 난 것으로 추정했다. 그 곳에 염증이 생겨 근치가 되지 않은 체, 둘째가 태어나면서 상처가 재발 되어 만성 염증이 되었을 것D라고 했다. 만성 염증은 암으로 진입하기 쉬운 상태라고도 했다. 그로 인해 양쪽 나팔관에도 염증이 심해서 한 개라도 살리기 위해 성한줄기를 잘라내 잇는 수술을 하였으므로 한 시간이 더 소요 되었다고 했다. 나건영 박사는 S에게 생명의 은인 이었다. 키가 아담한 박사님은 회진 올 때마다 재담을 하며 환자를 편하고 즐겁게 해주었다. 일주일 후 퇴원을 했다.
세 살짜리 어린 딸은 큰 이모 집에 있다가 엄마가 퇴원하자 돌아 왔다. 식구가 일주일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S는 몸이 개운치 않아 계속 요양을 해야 한다. 아이들 막내 이모가 잠깐 살림을 해 주기로 했다. 초가을로 접어들면서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퇴근길에 비를 맞고 돌아온 그의 양복저고리에 물기가 서려있다. S는 마른수건으로 양복의 물 끼를 닦아내고 있다. 불빛에 비친 그림자가 마치 양복을 뒤지는 것처럼 보였던지 그는, 벽력같은 소리로 왈칵! 문을 열어 제치며, 왜 남의 옷을 뒤지느냐고 고함을 질렀다. 깜짝 놀란 S는,
“왜 그래! 물 끼를 닦고 있는데, 비를 맞고 와서 옷이 젖었잖아!”
S는 놀란 가슴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했다.
평소 다소곳하던 아내가 반항을 한다고 생각한 그는 미친 듯이 날뛰며,
“병을 고쳐 주었더니 반항을 해? 나가! 서방을 못 믿고 옷이나 뒤지는 너 따윈 필요 없어! 이혼해! 이혼 하자구! 알았어?”
S는 기가 막혔다. 설령 뒤졌다고 한들, 이렇게 막가파처럼 한심하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퇴원 후 한 달이 되도록 허리도 못 펴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S는 서럽고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밤새 한숨도 못자고 곰곰이 생각을 했다. 무엇 때문에 하등 인생처럼 저렇게 돌변할 수 있을까? 가끔은 불같은 성질 때문에 곤욕스럽기는 했어도 이처럼 막나가는 태도는 처음이었다. S는 뭔가 알 수 없는 무슨 문제가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혹시 그 여자 애에 대한 미련으로 화풀이 불똥인가? 아니면 사무실에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걸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어느새 날이 밝았다. 아침상을 받은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식사를 끝내고 출근을 했다.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벌렁 대더니 끝내, 가슴 속에 돌덩이처럼 단단한 멍울이 치솟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십 여 년 쌓인 화 덩이가 놀란 가슴속에 튀어 오른 것 같았다. 일어나 앉아 심호흡을 하면서 S는 마음을 다스렸다. 며칠이 지나도 그는 사과 한마디 없다. S와 그는 서로 말을 잊은 채 시간이 흘러갔다. 아이들도 냉기류를 느꼈는지 저녁이면 엄마 아빠를 끈임 없이 불러대며 귀찮게 굴어서, 억지로 웃어주며 응대를 하였다. 이렇게 유야무야 흘러간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건만 이번엔 충격이 컸다.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 한번 안 내고 살아가는 S는 잘못한 것도 없이 점차 그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억울할 때마다 S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생전에 어질고 인자하신 미소에서 위안을 받고 힘을 낸다. S에게는 존경하는 친정 아버지가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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