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5-10-30 09:46

ㆍIP: 61.xxx.81

부서진 낙엽 하나
부서진 낙엽 하나

김 경렬

단풍이 한잎 두잎 익어가면서 시샘하듯 색색으로 뽐내고 있다. 성급한 녀석은 어느새 낙엽이 되어 발목을 휘어 감는다. 이맘 때가되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병원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환자 L씨였다. 특별 상담이 요구된 이 환자는 그동안 수시로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며 투병을 하고 있었다. 첫 만남은 현재의 건강상태와 심리상태를 체크하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 지간에 L씨는 불평불만을 쉬지 않고 토로했다. 대개의 환자들은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가는데 왜 입원을 하고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알아 보기위해 의무기록을 살펴보았다. 오십대의 L씨는 대장암 3기로 장기절제 수술을 받고 3개월째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불안정한 심리상태로 간호사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서류 정리를 끝내고 차 한 잔을 하려는데 방문이 열리며 얌전하게 생긴 중년 부인이 들어왔다. L씨 부인이었다. 좀 전에 인상이 좋은 분이 다녀갔다며 찾아가 인사드리고 무슨 일을 하는 분인지 자세히 알아보고 오라고해서 왔다는 것이다. 별난 성격의 환자임에 틀림없다. 부인과 차 한 잔을 나누며 대화를 시작 하였다. L씨와 사이에 두 아들이 있으며 지금은 장성하여 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다고 한다. L씨는 평소 말이 없고 온순한 편인데 화가 나면 무섭게 돌변하는 습관이 있어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고 하였다. 모든 생활이 L씨 위주였으며 지금도 시댁 식구들의 생활비를 대주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결혼한 형이 대학 교수임에도 생활비 보조금을 보내주면서 부모 형제위에 군림한다고 하였다. 집안의 모든 일을 간섭하며 쥐락펴락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한다. 한 시간여 부인과의 대화에서 환자L씨의 일부분을 알게 되었다.

L씨는 늦은 점심을 끝내는 중이었다. 병원 음식이 너무 싱거워서 가끔씩 외부 음식을 반입해서 입맛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L씨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L씨는 지난번 첫 만남이 서운했다고 말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자기에게 관심을 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데 김 선생님은 너무 사무적이라서 서운했다’ 는 것이다. 속으로는 ‘이 환자 왕자병 수준이네’ 라고 생각 했지만 내색은 할 수 없었다. 환자의 기분을 이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운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어떻게 만회할까 물었다. L씨는 그 말에 활짝 웃었다. 웃는 그 모습이 너무 천진스러워서 불평 불만하던 모습과 상반되었다. 웃는 모습이 천사 같다고 칭찬을 했더니 더 크게 웃으며 분위기가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간병인은 L씨가 저렇게 웃는 모습이 처음이라고 했다. L씨는 의외로 격의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조그만 사업을 하면서 재운이 좋아 돈을 많이 벌었으며 부모는 물론 형제들 대학까지 보내고 대학교수인 형이 박사과정이 끝나도록 생활비를 대 주었다고 자랑했다. 지금은 두 아들에게 사업을 맡기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위세가 당당했다. 가족들이 고맙고 자랑스러워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혼자 말로 자기가 ‘부덕한 소치’ 라고 중얼 거렸다. 쓸쓸한 그의 모습을 보며 눈앞에 물드는 가을 풍경으로 화제를 바꾸었다. L씨는 켐퍼스 MT 추억을 상기하며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돌기시작 하였다. 막걸리에 단풍잎을 띄우고 마시기 시합을 했던 일, 술을 먹어보지 못했던 L씨는 단풍잎을 후후 불며 마시다가 꼴등을 했지만 잊지 못할 즐거운추억 이라고 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위해 잠간 만났다. 한 달째 도우미로 일하며 겪은 가족들과의 사건들을
전해주었다. L씨가 누워있으면서도 가족들을 들들 볶고 위세를 부려, 돌아가며 의무적으로 문병을 온다고 한다.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고마움은 고사하고 부모님과 형제들은 마지못해 오는 것이라면서 L씨가 불쌍하다고 했다. 이후 몇 차례 방문을 하면서 L씨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L씨는 책이나 신문을 보다가도 반갑게 맞이해 주곤 하였다. 자주 방문해 주길 원했지만 여의치 못했다.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좋은 기운이 있는 분이라면서 비결이 궁금하다고 하였다. 자기는 어린 시절부터 거친 성격의 부모를 보면서 배우지 못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악착 같이 공부를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덕분에 대학도 장학금을 타면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졸업 후 학원 강사를 했던 인연으로 학원사업을 시작하였다. 돈은 좀 벌었으나 사람다루는 기술이 부족해서 직원들 상처도 많이 주었다고 하였다. 한번 화가 나면 실수를 봐주지 못하고 불같이 화내고 욕하고 던지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때다 싶어서 믿을 수 없다고 부정을 했다. 그는 사실이라며 이런 것도 혹시 병이 아닐까 물었다. 그런 것 같다고 했더니 이럴 때 김 선생님은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한수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스스로 화 조절을 하도록 권했고 화는 몸에 독소를 유발하고 큰 병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L씨는 자신이 화를 잘 내서 병이 된 것 같다고 스스로 단정을 하였다. 과로와 식습관도 문제를 키울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화 조절은 평소 명상을 하며 자기 콘트롤을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알려주었다. 화가 날 때는 두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을 하면 강도가 이완되며 조용한 음악을 감상하거나 따끈한 차를 마시면 정서가 안정되는데 효과적이라는, 평소 나의 방법을 알려 주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도 중요 하지만 정신세계의 행동수정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설득을 하였으며 예약을 도와주기로 약속 하였고 변심하기 전에 그 자리에서 응급으로 건강정신과에 상담예약을 해주었다.

L씨는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며 한편으로는 독서와 음악 감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이 가상하고 아름다웠다. 그 무렵 형에게 미국 모 대학에서 학회 초청장이 날라 왔다. L씨는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는 이유로 형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형은 두 차례 연기를 하였고 마지막 학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고민을 하던 형은 3일간의 학회만 참석하고 곧장 돌아오기로 결심 한 뒤 L씨 몰래 미국으로 떠났다. 주말이면 꼬박꼬박 문병을 왔던 형이 보이지 않자 L씨는 모친께 전화를 했다. 내용을 모르는 어머니는 사실대로 말을 해버렸다. 그 순간 L씨는 전화기를 내동댕이치며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 하였다. 링거약병이 날아가고 순식간에 병실이 발칵 뒤집히는 소동이 일어났다. 의료진이 놀라서 달려왔다. L씨는 죽어가는 나를 형이 배신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혼절을 하였다. 그 틈을 타서 겨우 안정제를 놓고 링거를 꽂을 수 있었다. 한 시간여, 펄펄 뛰며 난동을 부렸든 L씨는 깨어나자 얼이 빠진 듯이, 눈물을 흘리며 ‘형이 나를 배신했다’ 는 말을 반복하며 의식이 들락날락 했다. 극심한 상심으로 인해 위태로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연락을 받은 수녀님이 오셔서 L씨의 마음을 안정시키며 밤새 병상을 지켜 주었다. 새벽까지 잠을 설치며 헛소리를 하던 L씨는 새벽비핵로 도착한 형의 목소리에 가까스로 실 낫 같은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창밖에는 철새들의 군무가 너울너울 멀어져간다. 선산으로 향하는 장례 행렬위로 때 이른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L씨는 애석하게도 건강정신과의 검사 결과 강박증으로 인한 이상성격증세였다. 좀 더 일찍 발견하고 치료를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운 마음이었다. 성격이려니 방심 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관심 밖으로 밀리기 십상인 병증 이였기에 가족들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면당했던 L씨는 이 사회가 잃어버린 아까운 인재였다. 곱게 아름다운 단풍으로 익어 갈수 있었을 터 인데....

백낙은 2015-10-30 10:32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잘 주무셨어요? 40여년 목회를 하는 동안에도 상담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계속 하였답니다. 그래서 목회 초년생 때 적어 놓은 수첩을 보면 (1) 상담학을 다시 공부하고 싶다. (2) 침술이나 한의학을 더 많이 공부하여 봉사하고싶다. 는 등등의 글을 볼 수 있습니다만 늘 마음으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목회도 아마 피상적이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작가님은 멋진 상담가 셨네요. "곱게 아름다운 단풍으로 익어 갈수 있었을 터 인데..."라는 결론을 읽으니 더욱 마음이 짠~해 집니다. 그리고 작가님의 기억력에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늘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은혜중 안녕하시고 건필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정찬열 2015-10-31 22:10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작중 L 씨의 "건강정신과의 검사 결과 강박증으로 인한 이상성격증세였다" 라는 대목을 배람하며 물론 거기까지는 아니지만 혈액형의 "O"의 기질을 때로는 급한성격을 드러내고 마는 제자신이 부끄럽게 느끼면서 작가님의 아름다은 상담가 역활에 찬사를 보냄니다. 날씨가 급변하여 하루가 다른 10월의 끝자락 입니다. 고르지 못한 날씨에 건강에 유념하시고 이밤을 지세우면 겨울의 초입에 늘 건안하시고 아름다운 날들이 되시길 빕니다.

김경렬 2015-10-30 21:09	위원장님! 안녕 하세요? 짐정리를 하다가 컨퍼런스했던 자료를 발견하여 작품화 한것입니다. 아직 까지는 특별한 사례의 경우 기억이 살아나 다행입니다. 시간에 쫒겨 제대로 도와 주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지요. 그때는 열심한 마음으로 보람과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일을 했는데, 아! 옛날이여!! 란 노래가 생각 납니다. 감사합니다. 늘 좋은 말씀으로 힘을 실어 주시니 기운이 납니다. 건안 하시고 늦가을 수확으로 행복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김경렬

2015-11-01 12:37

정찬열 작가님!
수필 서재에서 오랜 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편안 하셨는지요?
O형의 기질은 애교랍니다.
여기서의 병증은 평상시 유순해 보이던
사람이 화가 나면 제어가 않되고 계속 치달아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겁니다. 옆에 있으면 보는이도 무서워요.
말리거나 제재를 하면 더욱 거세게 날뛰는 모습이 광기에 가깝습니다.
약물 치료를 시작하면 상당히 좋아져서 난폭성이 순화 되는사례가 많았답니다.
주로 스트레스 관리를 못해서 뭉쳐진 덩어리가 터지는 현상인데 평상시 자기 수양이 않된사람들은 난폭한 행동을 하게 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릴때 인성 교육도 매우 중요 하지요.
방치하면 무서운 심장병으로 발병하기도 합니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정 작가님!
날씨가 많이 찹니다.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려숙	안녕하셔요 김경렬 작가님 인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는 훌륭하신 글에 깊은 공감속에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너무도 가여운 가장이었네요 정서적으로 불안한 가운데서 사회적으로 성공하였으나 불안한 요소를 채우지 못하여 광폭해져 주위를 때로 어둡게 하는 ~ 차가워진 깊은 가을날씨에 편안하시기 기원합니다 ~	11/5 03:44

김경렬	김려숙 작가님! 어서 오세요. 늘 방문해 주시고 공감해 주시니 고맙고 든든한 마음입니다. 작고한 그분은 자기의 단점이 병증 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심리검사를 다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에 그리 되어 마음이 많이 아팠 답니다. 주말에 일어난 사고였기에 저는 만나 보지도 못한체 월요일 출근하여 얼마나 황당 했던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 하답니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 집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건안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11/5 06:17

그녀의 로망

첫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