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6-09-05 01:18

ㆍIP: 221.xxx.8

욕 밥이야?
욕 밥이야?

김경렬

아침마다 식탁에서 손자들과 신경전이 벌어진다. 외손들이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
이다. 그래서 아침 조반은 과일 식으로 바꿨다. 오색과일 한쪽씩, 두부한조각에 계란1개, 그
리고 야채 주먹밥 세알이다. 오늘도 갖가지 야채를 다져넣고 참기름 소금에 버무린 밥
을 꼭꼭 주물르다가, 문득 어릴 때 밥상이 떠올랐다.

그때는 해방 후 격동기라 여러 면에서 어려운 시대였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녁 끼니는 언제나 밀가루반죽을 밀어 켜켜이 어린 호박잎을 깔아 숭숭 썰은 칼국수였다.
하얀 쌀밥은 제삿날만 먹을 수 있었고 그 외엔 꽁보리밥과 시래기죽을 먹기 일쑤였다. 그러
나 생일날만큼은 달랐다. 꽁보리밥 속에 하얀 쌀 한줌을 박아 고놈만 따로 퍼 주기 때문이
다. 동생이 두 명 있었다. 맛있게 먹다보면 동생들이 내 밥그릇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차마 다 먹을 수가 없어서 한 술씩 덜어주고 미역국으로 배를 채웠다. 동생들은 입이
짧아 가려먹어서 꾸지람을 들었지만 나는 식성이 좋았다. 하긴 없어서 못 먹던 시대였으니
가리면 나만 손해가 아니겠는가? 어릴 때부터 식성 좋고 활달하다고 칭찬을 받았지만, 그런
것들은 내가 육남매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우리 집은 육남매인데 장손인 큰오빠는 까칠한 성격이고 언니는 참배처럼 연한성격이지만
예민하고 파르르 한 면이 있었다. 둘째 오빠는 말이 없고 점잖았다. 같은 형제이지만 성격
도 식성도 다 달랐다. 큰 오빠는 강원도에서 감자를 너무 먹어 물렸다고 처다 보지도 않는
데 막내 동생은 보리밥이 싫다고 여름 내내 감자만 먹었다. 둘째 오빠가 대학을 다니다가
결핵에 걸려 휴학계를 내고 요양 차 내려왔다. 내가 제일 건강하다는 이유로 병수발을 하게
되었다. 일 년 동안 하얀 쌀밥에 고기반찬을 따로 차리고 식기를 매번 소독하며 철저한 투
약과 마이신 주사를 맞으며 일 년 만에 쾌차하여 복학을 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둘째 오빠와는 각별한 정이 들었다. 피하주사를 놓느라고 오빠의 엉덩이를 수도 없이
갈겼다. 그때마다 작은 오빠는 계면쩍은 듯 씨익 웃었다. 69년 초 겨울 오빠보다 내가먼저
혼인을 했다.

둘째 오빠는 하숙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돈을 잘 빌려주어 저축을 하지 못했다. 때마침 작
은 집을 장만하면서 남는 방에 하숙을 쳤다 오빠도 하숙생으로 들어 왔다. 그달부터 오빠의
월급을 관리하며 적금을 부었다. 시댁에 장조카도 육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하게 되어 오빠
방에서 함께 살았다. 그때도 쌀밥은 하숙생과 다른 식구들의 몫이었고 솥 밑창에 보리를 깔
아 보리밥이 내 몫이었다. 그런데 이상한일은 육 학년인 장조카가 밥을 엄청나게 먹는 것이
었다. 오빠와 겸상을 차려 주는데 오빠가 남긴 밥마저 다 쓸어 먹고도 반찬을 계속 먹고 있
었다. 간식도 아들과 똑 같이 담아주면 꼭 식탐을 하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마음
이 허기져 있었던 사실을 미처 몰랐다. 어린것이 눈칫밥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먹어도 먹
어도 허기지는 눈칫밥을, 이듬해 장조카가 중학교 배정을 받았다. 너무 거리가 멀어 버스를
타고도 산꼭대기로 많이 걸어 올라가야 했다. 때마침 시누이가 취직이 되어 학교 근처에 방
을 얻어서 장조카를 데려갔다. 작은 오빠도 혼인을 하고 그동안 부었던 적금으로 보금자리
를 마련했다. 하숙생도 고향으로 전근이 되어 지방으로 떠났다.

아들이 벌써 다섯 살이다. 곧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므로 하숙을 치면서 모은 저축으로 조
금 넓은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조망이 좋은 붉은 벽돌집이었다. 하루 종일 한강물을 바라보아도 지루하
지 않았다. 그런데 동네 수준이 문제 였다. 저녁때 집에 들어온 아들 녀석이 TV 앞에 앉더
니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우려 들어보니 손가락을 꼽아가며 욕을 외고 있
는게 아닌가. 앞집 친구는 ‘0새끼’ 옆집 친구는 ‘0발놈’ 깜짝 놀란 나머지 호통을 쳤다.
“너 어디서 그런 나쁜 욕을 배웠어 엉?”
깜짝 놀란 아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욕이 아니야 친구들 이름이야”
하더니 으앙! 울음을 터트렸다. 그 동네 아이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욕으로 부르면 응! 하
고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애들이 집에서 얼마나 욕을 먹었으면 저 지경일까’ 개탄
하는 소리를 들은 아들이,
“엄마 그 친구들은 쌀밥이 없어서 욕 밥을 먹는 거야?”
기가 막혔다. 이사를 잘못 왔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과 상의를 하고 급매로 3개월 만에 집
을 팔았다.

1974년도 아파트가 귀하던 시대였다. 아파트에 이사를 오니 동네도 조용하고 아이들 모
습부터 달랐다. 엄마들도 교양이 있고 이웃 간에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사를
하고 둘째를 출산하였다. 어머님이 두 치레 미역국을 끓여 주시고 시골로 내려가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앞집 부인은 자기 집 도우미를 보내 도와주고 장도 보아 주었다. 고마웠다.
그 시대는 엘리베이터가 귀하던 때라 7층 아파트임에도 계단을 이용하였다. 아들은 이웃에
서 자기보다 어린 친구와 놀아주다가 자전거도 집 앞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끌어다 준다며
아이 엄마가 과일을 사들고 인사를 왔다. 동네에서는 나도 모르게 녀석의 인기가 대단했다.
경비아저씨도 볼 적마다 아들 칭찬을 해주어서 ‘맹모삼천지교’ 를 실감 하였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지고 모든 물자가 풍족한 시대가 되었다. 그 귀하던 쌀밥이 건강 밥상에
서 밀려나고 지겹게 먹었던 나물과 시레기가 전문요리집으로 득세 했다.
공원 쓰레기통에는 먹다버린 빵조각과 마시다 버린 음료수가 딩굴고, 없어서 못 먹었던 사
탕도 해롭다고 아이들에게 먹지 말라고 한다.

가난해서 양식을 아끼느라 억지로 먹었던 죽은 전문점으로 위상을 떨구며 건강을 다스리
는 음식으로 거듭났다. 밀 냄새가 싫었던 칼국수는 갖가지 종류로 기호 식품이 되었다. 꽁
보리밥도 영양식으로 보리밥 정식이란 벼슬을 했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것은
가난이 준 선물이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 싫도록 먹었던 먹거리가 이시대의 건강식이 되었
고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고자, 그 음식을 찾아다닌다. 이제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을
가꾸자고 연일 TV 특집을 내보낸다. 세상이 세월의 윤회 속에 많이도 변했다.
사람만 그대로다.

백낙은

2016-09-05 09:41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욕밥이라고 하셔서 욕밥은 배는 안 불러도 오래는 살겠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 내려 갔습니다.
가족이 모두 개성이 강한 분들이셨군요.
그리고 오빠의 병 수발을 하셨는데 다행이 작가님은 감염 되지 않은 것을 보니 매우 위생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 결핵을 앓았답니다.
먹거리도 부족했고 균에 무방비로 노출 되었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저는 제 혼자 주사를 놓고 약을 먹어 치료를 했답니다. 죽지 않으려고요.ㅎㅎㅎ
그리고 맹모삼천지교를 몸으로 실천하신 것 보고 감탄했습니다. 현대판 맹모라고요.
요즘 TV 특집이 강조하는 건강식이
과거에 우리가 먹기 싫어했던 것들이었다는 말씀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세월의 윤회 속에 사람은 그대로라 하셨는데 사람이라고 왜 안변했겠습니까?
저도 옛날엔 여자들에게 인기가 좀 있었는데 이젠 뒷방 신세랍니다.
멋진 사연 글 감사드리오며 기온차가 심한데 건강유념하십시요.


김경렬	수필 분과 위원장님! 어서 오세요, 위원장님도 결핵으로 고생 하셨습니다. 치료에 전념하면 잘 낳는 병이었습니다. 혼자 주사를 손수 꽂으며 외로운 투병을 하셨네요. 지금도 협회에 인기가 가득 하신것을 모르시는군요.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는말은 예전보다 무수한 발전을 해온 시대를 사는 자 답게 의식도 행동도 바람직하게 변해야 한다는 뜻이었답니다. 조석으로 날씨가 선선합니다. 수학 준비로 바빠 지시겠습니다. 건강하시고 기쁨가득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	9/6 06:33

김종근

2016-09-05 12:21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반갑습니다. 잘 계시지요.
욕 밥이야? 욕밥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잘 읽어 보았습니다. 맹모 삼천지교로
교육을 위해 이사를 하셨군요. 저도 어릴적 이사를
많이 다니다 보니 국민학교를 세군데 다녔습니다.
맹모 삼천지교가 아니라 아버지의 직장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항상 외톨이고 친구가 없었습니다.
교육적 환경이 정말 중요합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구요. 건강하세요.


김경렬	김종근 작가님! 저도 이사를 수없이 다녔답니다. 특히 그동네는 이사를 하고 보니 달동네였지요. 양옥집 몇채 빼고는 무허가 판자집으로 골목에서 아이들이 바글대며 놀던 동네였답니다. 그후로는 동네를 잘 살펴보며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과천에서 대학까지 마치느라 15년을 살았답니다. 지금은 수원에서 20년째 살고 있습니다. 조석으로 선선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9/6 07:01

이석희

2016-09-05 15:40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저도 그 시절을 보냈었지 싶습니다.
욕이요?
까짓것 아무리 먹어도 배도 부르지 않지만
내가 안 받아 가면 도리 있겠어요?
되가져 가겠지요.
욕은 아무리 먹어도 좋으니 배만 부르게 해 주면
만사형통인 시절에 살았지요.
그토록 먹기 싫었던 보리밥, 시레기, 콩나물, 산나물 등속이
이젠 출세 했지 뭐예요.
참 즐거운 추억담이었습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편안한 시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경렬	이석희 작가님! 작가님께서 서재를 환하게 밝혀 주시니 참 좋습니다. 날씨가 조석으로 선선하하오니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글 양산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9/6 07:08

주응규

2016-09-06 08:31

김경렬 작가님 좋은 글 배독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기온이 가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좋은 계절에 두루 평안을 기원합니다


김경렬	감사합니다. 조석으로 선선한날씨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9/7 14:44

정찬열

2016-09-09 06:58

실감이 가득한 "욕밥이야"
역시 작가님은 언제봐도 친누님같으니
어린적부터 형제간에 우애며 남을 배려하시는
꽃같은 마음의 신 지식인이기에 말입니다.
그아름다운 가족애에 멋진 내일의 행사장에
꼭 가보려 합니다.
절절히 예추억을 담아주신 멋진글향
잘 배독했습니다. 내일 인사 드릴께요


김경렬	어머나! 정찬열 작가님! 몸도 불편 하신데 그멀리서 오신다구요? 황송합니다. 옆자리에 사모님 꼭 모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9/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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