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5-08-23 12:29

ㆍIP: 100.xxx.189

기다림(2)

연희동    김숙자

석양빛에 달구어진 이 층의 방들은 마치 훈증 탕과 흡사하다.
문을 닫고 에어컨을 풀 가동하며 방마다 선풍기를 돌리고 석양의 열기를 식힌다.
친손, 외손 다섯 명은 더운 줄 모르고 위 아래층으로 뛰어다닌다.
11세 된 손녀부터 8세, 7세(쌍둥이), 6세, 네 명의 손자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며
반가움의 표시로 집이 떠나갈 듯 깔깔거리고 뛰며 집안 곳곳을 오르내리고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큰아들네 가족 다섯 식구가 더위가 막바지인 8월 18일 미국에 온 것이다.
아이들 셋을 데리고 출구로 나오는 큰아들은 머리가 반백이 되었고, 며느리의 얼굴은 반쪽,
몸은 한 움큼도 안 되듯 여위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들의 외양에서 미국에 오기까지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을 보게 되어 가슴은 더 아려진다.

  지난 5월 중순경 이른 아침,
손녀의 등굣길에 교통사고로 온 식구가 얼마나 놀랐고, 힘들어했던가?
오른쪽 다리, 정강이의 골절이 아직도 완쾌되지 않아서 철심을 끼운 채 깁스만 풀고 미국에 왔단다.
주사약만 냉장고 한쪽에 가득하다. 그리고 매일매일 배꼽 아래의 배에다 제 어미에게 주사를 맞는다.
거동도 아주 불편해 보인다. 다리 골격의 모양도 자연스럽지 못해서 온 가족은 걱정되고,
손녀가 움직일 때마다 잔소리한다.
  "민주야, 똑바로 걷는 연습하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또 6월~7월엔 메르스 전염병 때문에 나라 전체가 얼마나 뒤숭숭하였던가?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못하고, 국내에서도 가능한 외출과 모임을 자제한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여기 미국도 한국인 입국을 몹시 까다롭게 확인하며 비자 발급이 쉽지 않다고도 하였다.
호흡기 내과 전문의 교수인 큰아들은 전염병에 따른 대처 상황을 충청지역의 기관장( 충남 도지사. 경찰국장, 교육감 등)들에게 보고도 하고, 언론사와 인터뷰, 병원의 홍보까지 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몹시 어렵게 선택받은 미국연수 기회가 이런 갑작스러런 전염병의 재앙 때문에 잃는 것은 아닌가?
큰아들은 8월 20일경에 오겠다는 전화만 하고는 유학 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듯하다.
산부인과 의사인 며느리도 병원에 나가랴, 손녀의 병간호, 쌍둥이 손자들 관리--
그 왜소한 몸으로 아이들 양육과 가정 관리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초조한 기다림 속에 세월은 흐르고, 시간이 해결하고 있었다.
7월이 되자 메르스 전염병도 잠잠해진다.
큰아들은 비자발급도 받았고, 항공표도 예약하였단다.
집 정리와 가족 대 이동준비를 대충 끝내고 예정대로 8월 18일 미국에 온다는 것이다.

남편은 급히 서둘러 지난 3월에 딸의 거처를 소개해준 부동산 중개사에게 연락하였다.
주거환경과 교통, 학군이 좋으며 임대료가 싼 주택을 구하라니 입에 맞는 떡이 구하기 쉽지가 않다.
며칠 몇 날을 이곳저곳을 답사한 끝에 거금의 임대료(월 300만 원),
그것도 1년 치($36,000)를 일시금으로 지급하기로 하고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해 놓았다.
중국인 소유 주택이지만, 계속 임대를 놓았던 꽤 근사하고 깨끗한 저택(방이 4, 화장실, 2)의 집이다.
그러나 지금 살고 있는 임대인(필리핀)이 8월 31일에 집을 비우겠다니,
열흘 동안 나이 70이 된 할망구가 아이들 다섯, 어른 다섯, 열 식구의 매 끼니를 챙겨야 한다.
이 더위에 갑자기 늘어난 열 식구가 오두막집에서 십여 일을 보낼 것을 생각하니 걱정도 된다.
그러나 싫지가 않다. 몸은 고단하지만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내 분신들을 품 안에 끼고
그들이 잘 먹고 쉴수 있도록 뒷바라지할 기회가 온 것이 한 편으로 기쁘기도 하다.
아들, 며느리, 딸, 손들이 열흘 동안 편하게 먹고 쉬도록,
내몸 힘든 것을 참고 최선을 다해보자고 스스로 다짐도 한다.

딸은 제 오빠네 가족이 시차 적응할 겨를없이 미국에서 일 년간 거주할 수 있는 편의 업무를
부지런히 안내하고 있다.
은행 계좌 개설하고 모든 생활비를 예치하여 신용의 입지를 확고히 한다.
세 아이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루스벨트 초등학교'에 전입 신고하여
9월 3일부터 손녀는 4학년, 쌍둥이 손자는 1학년에 입학하게 된다.
휴대전화를 개설하여 연락망을 만들었다.
뉴저지 River Edge 주민임을 신고하여 쇼설넘버(주민등록증)를 받게 된다.
큰아들을 초청한 코넬대학교 교수와 미팅 약속이 8월 21일에 잡혀있었다.
이날, 큰아들 내외와 딸은 이른 아침에 뉴욕에 있는 코넬대학교 부속병원엘 갔다.
아산병원, 강남 삼성병원, 서울대 병원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큰 병원의 규모와 시설에 압도되었다고 한다.
친절한 교수와 미팅, 비서의 안내로 병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고, 많은 종사원과 미팅도 하였단다.
9월 8일부터 출근한다.

아들은 제 동생에게 (딸) 고마움의 표시를 톡톡히 하겠다고 한다.
남들은 타국에 와서 3개월 정도 지나야 안주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다는데,
딸의 안내로 일주일 만에 모두 처리하게 된 고마움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아들은 우리 가족 열 명이(특히 아이들)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가족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아들 내외와 딸은 이마를 맞대고 서로 다른 일정을 이리저리 꿰맞추며 여행계획을 짜고 있다.

막내아들 내외와 노부부, 딸의 가족은 7월 26일~8월 8일까지 시애틀 관광과 알래스카 쿠르즈여행에 이어서
8월 13일까지 미국 서부 (유타주, 애리조나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하였고,
여독이 채 풀리지도 않은 채 큰아들 가족을 맞이하였건만,
또 4박 5일 동안 보스턴, 나이아가라, 캐나다를 여행하자니......,
큰 외손자는 아직도 고산병에 시달리고 있다.

노부부는 가지 않겠다고 하니 분위기가 편치 않다.
아들가족과의 여행이니 완강히 거절도 못 하고, 나이가 드니 내 재량의 범위도 점점 좁아져 간다.

어제부터 새벽녘엔 풀벌레 소리와 서늘한 바람이 창가를 맴돌고 있다.
뉴저지의 여름철도 서서히 뒷걸음질 치고 있다.
새벽녘엔 손들이 차버린 얇은 이불을 배 위로 끌어서 덮어준다.
쌍둥이 손들을 키우느라 큰며느리와 큰아들이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손들이 무럭무럭 자란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과 기다림의 결과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미국생활 일 년 동안 어려움도 많겠지만,
타국에서 가족이 뭉쳐 사는 특별한 기회가 왔으니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꾸리라고 아들 부부에게 당부를 한다.
체면이나 자식으로 해야 할 도리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생활하라고 또 당부한다.
그들이 기대하고 온 목표 이상으로 행복한 생활이 되도록 있는 힘 다 쏟아 도와주고 싶어진다.
기다림은 이렇게 결과가 있어서 참 좋다.

                                                                                       2015년 8월 22일 뉴저지에서 Kimsj

8월 18일 존. F. 캐네디 공항에 도착한 큰아들 가족

백낙은 2015-08-23 15:23	김숙자 작가님. 큰 아드님 가족을 해우 하셔서 많이 기쁘셨겠습니다. "뉴저지의 여름철도 서서히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와 비섯한 기후인듯 하네요. 손녀의 교통사고가 있었지만 많이 회복 된듯 보여 다행입니다. 손자 손녀 모두 예쁘고 멋지네요. 작가님의 외국 체재가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을 빕니다.

정찬열 2015-08-27 15:41	김숙자 작가님 낮선 이국땅에서 오붓한 가족들의 배려로 손쉽게 적응하며 행복한 가족생활이 부럽습니다. 손자손녀들과 함께하신 사진으로 보아도 멋지시네요 작가님의 외국 나들이에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고독의 시간 속에서

늙은이의 권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