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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4-10-19 19:58
ㆍIP: 223.xxx.45
베팅 (10회)
 
 비가 그쳐갔다. 한여름의 소나기였다. 선배와 지쳐 있는 그의 곁으로 팀장이
 
다가왔다.

 “네가 데려온 놈 오늘 열심히 하더라. 다른 애들보다 조금 더 챙겼다. 앞으로
 
도 우리 잘해 보자.”

 팀장은 선우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는 얼굴선도 고왔
 
고 몸도 날렵했으며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선배가 옆에서 수고했다며 봉투를
 
건넸다. 두툼함이 느껴졌다. 확인해보지도 않고 누가 볼세라 땀 냄새 잔뜩 밴
 
바지 안쪽의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

 언젠가 수강 신청을 실패해 아무 생각 없이 들었던 교양 수업 강의 중 들었던
 
어떤 철학자의 말이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랫동안 그의 안에 남아 있었다. 유
 
통기한 지난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먹을 때 꼭 한 번쯤 머릿속에서 튀어나왔
 
다. 봉투에는 일당 10만원이 들어 있었다.

 “너 생긴 거하고는 다르게 오래 버틴다. 귀공자처럼 생겨가지고 이런 일 안
 
할 놈처럼 보이는데 돈 많이 필요한가 보다. 열심히 해. 그러다 보면 인생에
 
꽃핀다. 그때까지 뒈지지 말고 말없이 도망가지 말고 잘해.”

 팀장은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하고 멀어져 갔다. 선배 말에 의
 
하면 팀장이라는 사내는 거의 맨주먹으로 이 바닥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신화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비범한 인물이라 했다. 업계에서 독립해 프
 
리랜서를 선언하고 다른 프리 팀들을 흡수하고 헤쳐 나가면서 그가 보여주는
 
절묘하고 아슬아슬한 협상 능력은 놀라움의 극치라 했다. 거리낌 없는 폭력에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범죄의 역사에서 분명히 작더라도 하나의 축을 담
 
당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일이 만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나갔다. 통장에 돈이 차
 
곡차곡 쌓여갔다. 그의 목표는 2백만 원이었다. 왜 그 금액인지는 확실치 않으
 
나 아마도 포커판에서 잃은 돈과 얼추 비슷했기에 그렇게 책정했던 것 같다.
 
이제 개학도 보름 정도 남았고 목표액의 절반은 달성했으니 나머지만 채우면
 
이 생활도 끝이라 생각했다.

 쌓이는 돈만큼 용기도 생겨났고 달라져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뭐가 달
 
라졌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느 날 팀장이 환한 얼굴로 와서는 비수기인 겨울이 오기 전에 돈 되는 재개
 
발구역에 투입된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밖에 없는 동네니까 그냥 조심히 들어서 옮기기만 하면 되
 
는 일이야. 이번에 원청에서 아주 두둑하게 보수를 책정했으니까 우리 최선을
 
다 하자고.”

 팀장이 모두를 돌아보며 외치자 다 같이 환호했다. 누군가 다른 프리 팀과의
 
경쟁에서 팀장이 그 일을 따낸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운이 좋다고 선배가 중
 
얼거렸다.

 팀장은 그때부터 열심히 준비했다. 스펙 쌓기 위해 온다는 지방의 경호학과
 
학생들도 동원됐다. 경호학과 학생들은 이런 재개발 구역에서 용역 알바 한
 
것이 취업할 때 훌륭한 경력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용, 호랑이, 곰, 뱀, 봉황
 
들이 나타났다. 온갖 동물들이 으르렁거렸다. 등과 팔과 목에 새겨진 그것들
 
이 소화기와 각목을 든 이들과 함께 들썩였다.

 기와가 널브러져 있고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모두 깨져 있었다. 시뻘건 페인
 
트칠이 이곳에 아무도 있으면 안 된다고 증명했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
 
들만 있다던 그곳에는 마스크 낀 사내도 제법 많이 있었다. 선배가 옆에서 “저
 
놈들 조심해”라고 귀띔했다. 엄폐물이 세워져 있고 곳곳에서 볼트가 날아왔
 
다. 화염병도 날아오고, 욕도 날아오고, 벽돌도 간간이 날아왔다.

 그런 대치가 계속되다 갑자기 군화 소리가 들리고 전경들과 경찰들이 뒤에
 
몇 겹으로 섰다. 순간 놀랐지만 팀장이 무전기를 들고 있는 경찰 간부에게 다
 
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둘은 큰 소리로 웃고 간부는 팀장의 어깨를 친밀하
 
게 두들겼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팀장이 돌아와서
 
는 호탕하게 웃어젖히며 말했다.

 “애들아, 우리 오늘도 돈 열심히 벌자, 자본주의 만세.”

 우리도 다 같이 따라서 웃었다. 그때 선배가 다가와서 어깨를 툭 쳤다. 그리
 
고 자신의 가슴팍을 보여줬다. 1천만 원짜리 수표 세 장으로 3천만 원이었다.

 “나 그동안 정말 노력했다. 이 돈을 부적 삼아 오늘로 이 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오늘 일 끝나면 어머니랑 조그만 가게 하나 알아보려고. 우리 엄마, 고
 
생 많이 하셨거든. 이따 일 끝나고 내가 거하게 술 한 잔 살게.”

 선배는 환하게 씩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희망으로 가득 차서 선우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 직업이 전공인 선배에 비하면 자신의 꿈은 소박하지만
 
그 또한 저렇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이름아이콘 정찬열
2014-10-22 21:36
회원사진 		슈킹 10회 잘읽어보고 갑니다.
다음 호를 기대하면 슬필하세요
   
이름아이콘 이인철
2014-10-26 19:43
 《Re》정찬열 님 ,
바쁘신 중에도 방문하셔서 덧글까지....
정 작가님의 성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께서도 슬피 지나는 이 가을에 멋진 작품 많이
산고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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