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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08-14 11:07
ㆍIP: 121.xxx.134
슈킹 (26회)

 이 장사는 완전히 머리싸움이다. 강남만 해도 수없이 많은 사채사무실이

있고 여기서 나가는 자금만 해도 하루에 수백억에 이른다. 각 사채사무실마다

전주들이 있지만 신용과 능력이 있는 사무실로 전주들이 몰려들어 자기들의

자금을 써 달라고 사정한다. 특히 자기네 사무실은 부실채권과 사후 사고처리를

잘한다고 소문 나 전주들이 서로 자금을 놓으려고 아부와 비밀리에 선물 공세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까지 강의를 마친 사내는 술 한 잔을 털어 넣더니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끝맺었다.

 "내가 살아가는 방법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사채 해결업으로 살아간다. 의뢰를 받아

 일을 해결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게 된다.그래서 현재

내 삶에 번민하거나 회의를 자주 느끼며 이로 인해 자신도 괴롭다. 나를 돌이켜 보면

한시라도 빨리 이 일에서 손을 떼야 하는데 달리 배운게 없어 쉽지가 않다."

 그는 동생들에게 연락이 왔다며 거나하게 취한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나 먼저 간다고

나갔다. 현우는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순간 이런 철학적인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간은 서로의 먹이사슬 덫에 걸려 있다. 이용하는 자와 이용을 당하는 자, 또다시

이용을 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서로의 등을 쫒으며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가 아닌가.'

 현우는 사채시장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전주들의 세계를 간접적이나마 사내의 말에서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동수와 동인에게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이번 작업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한다. 그것은 '내가 저번처럼 현금으로 찾자고 했잖아'라는 동수의 말로 미루어

전에 작업한 것이 성공한 것임에 틀림없다.

 당장 동인의 차만 보더라도 뽑은 지 얼마 안 되는 최신형 대형 승용차로 그는 잠자코

있었지만 '이 차 풀옵션 해서 거의 5천만 원이나 들었어'라고 대신 자랑한 동수의 말을

유추해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며칠 전 룸살롱에서 국산 양주를 마시자는 현우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굳이 그 비싼 시바스리갈을 시켰다.

 그날 두 사람은 1년 전의 카드깡 하던 서민적인 생활은 간데없고 팁을 남발하는 모습에

현우는 깜짝 놀랐다. 그들의 씀씀이가 워낙 컸기에 속으로 거부감도 있었고 한편으론

현실에 처한 자신과 비교되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울했었다. 그때 그는 초라하고

비참해지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야 현우는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위험 부담도 없다. 그들은 초짜가

아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밥을 떠서 먹으려던 그는 수저를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앞쪽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참이나 노려본 후 말했다.

 '만일 내가 가만히 있는다면 앞으로 딱 저 표정에 어울리는 가난한 월급쟁이 신세를

못 면할거야. 그것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실업자가 될지도... 어쩌면 나는 선택받은

인간일지도 몰라.'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겨울의 찬바람이 밀려와 커튼을 들썩였다. 그의 결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식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하는 거야!'

 그 순간 현우는 가슴이 써늘해지는 느낌을 받고는 어깨를 활짝 폈다.

 언제나 그렇다. 혼자서 대화를 나눈 끝은 서늘하다. 그러나 늘 결정을 한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식탁 위에 있는 휴대폰을 들었다.

 "동인아, 나 현수. 우리 언제 만날까?"

 뚜껑을 덮은 휴대폰 시계가 저녁 8시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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