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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박목철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3-07-17 20:35
ㆍIP: 119.xxx.57
건달 불 127년 만에 퇴장하다.
건달 불 127년 만에 퇴장하다.      박 목 철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87년 3월 경복궁 내의 건천 궁에 불을 밝히면서이다. 백열등이 발명되고 8년 후라 하니 상당히 빨리 들어온 셈이다.
당시의 발전기는 성능이 좋지 않아 소리도 엄청나게 크고 자주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비용도 많이 들고 깜빡깜빡 꺼지는 것이 건달을 닮았다 하여 건달 불이라 불렸다 한다.

이 백열전구가 내년부터 우리나라에서 퇴출 된다고 한다.
수많은 애환과 얘깃거리를 뒤로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 하는 것이다. 조선 백성을 깜짝 놀라게 했던 도깨비불이 127년 만에 소등을 하는 셈이다. 아직은 백열전구를 주위에서 보게 되지만, 앞으론 생산은 물론 수입까지 금지를 한다 하니, 머지않아 백열등은 옛 얘깃거리로만 우리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백열등은 열이 많이 발생한다. 혹시 불 켜진 전구를 만져본 사람은 그 열에 깜짝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퇴출 사유도 그 열 때문이다. 소모된 전력의 5%만이 빛으로 쓰일 뿐 95%는 열에너지로 발산되니,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는 전력 낭비의 대상이라 할 만하다. 조명기구로서는 이미 수명을 다한 셈이다.

지금은 새로운 조명 기구에 밀려 거의 찾는 이가 없지만, 한 세기가 넘게 우리의 밤을 밝혀준 고마운 백열등이다.
백열등이 처음 등장할 당시엔 신기한 구경거리이기도 했다. 시골 사람들이 도시에서 보고 온 백열등은 완전히 경이 그 자체로 놀라움이었고, 자랑삼아 전하는 경험담에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다른 방에서 “켤까요?” 하고 켜고 “끌까요?” 하고 끈다니 부싯돌로 호롱불 당기던 사람 눈에는 완전 도깨비불을 본 듯 놀란 것은 당연하다.

백열등을 방마다 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전 여관에 들면 옆방과 사이 벽에 구멍을 내어 백열등 하나를 설치했다. 등 하나로 방 둘을 밝힌 셈이다. 뚫린 구멍 너머로 혹 소리라도 들릴까 숨을 죽이고 사랑을 나누었을 연인들을 생각하면 재미있다. 허름한 여관에서는 요 내부까지 젖는 것을 피하려 비닐을 씌워놓아 버스럭 소리도 요란 했다. 불 하나를 사이에 놓고 소리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낭만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백열등의 퇴출 요인이 열에너지로 에너지가 낭비 되는 데 있다고 하지만,
이 열이 참으로 고마운 백열등의 중요한 기능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예전에는 난방의 방법이 온돌이나 난로가 고작이었다. 온돌을 설치할 수 없는 2층에는 대부분 다다미를 깔고 추운 겨울을 나야 했다.
저녁이면 물을 끓여 물통에 넣은 후 헝겊으로 싸서 이불 속에 넣고 온 식구가 그곳에 발을 대고 자곤 했다. 사람은 발이 뜨뜻해야 추위를 견디고 잠들기가 한결 쉽기 때문이다.

물은 처음엔 너무 뜨겁고 시간이 지나면 식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백열등의 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전구가 깨지지 않도록 상자에 넣은 후 이불 속에 넣고 자면, 그 따뜻한 열 덕분에 온 식구의 발이 행복했으니, 백열등의 열은 고단하던 시절을 행복하게 한 일등공신이라 할 만하다.

형광등의 불빛은 차가운 느낌이 든다. 백열등의 불빛은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이 들어서 참 좋다. 경제 원칙에 의해서 백열등이 퇴출당한다고 하니 시대의 발전에 따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되지만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불 속에 전구를 넣고 그 따뜻한 열기에 발을 녹이며 얘기의 꽃을 피우던 시절, 어찌 생각하면 너무도 힘들던 시절이지만 아련한 추억 너머로 보이는 백열등의 따뜻한 불빛은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기도 하다.

없어지기 전에 몇 개 사 놓아야겠다. 언 발을 녹여주던 고마운 백열등의 추억마저 사라지게 해서야 되겠는가,
이름아이콘 백낙은
2013-11-12 09:22
회원사진 		시인님 안녕하세요. 저도 그러한 경험이 있어 공감되는 글입니다.
고단했던 삶이였지만 지금은 추억으로 남는군요. 샬롬을 빕니다.
   
이름아이콘 박목철
2013-11-17 21:23
회원사진 		어렵던 시절이지만 정이 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고생은 다 잊었습니다. 고운 추억만 남고,
백낙은 시인님께서도 그러신가 봅니다.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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