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 속에는 숱한 인연을 만나 엮이고 풀리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수많은 인연 중, 친구라는 인연은 삶의 활력이요, 버팀목이다. 무슨 일이든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하나만 있어도 인생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주위에 친구라는 인연으로 만나고 나누고 하지만, 과연 진정한 친구는 몇이나 될까? 친구는 자신을 지탱해주는 심리적 버팀목이라 했다. 인디언 속담 중에 “친구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말이 있다. 살아가면서 의지할 수 있고 기쁨과 슬픔을 자기 일인 양, 기뻐해 주고 슬퍼해 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축복받은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친구를 사귄다.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 속마음을 내비쳐도 좋을 사람, 손 내밀면 언제나 따스하게 손잡아줄 수 있는, 그런 친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천사 같은 친구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힘들고 지칠 때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고, 바른길을 가지 못할 때, 따끔하게 충고할 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일 것이다.

어느 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 아련한 친구가 술 한잔 거하게 한 후, 늦은 밤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귓전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눌한 목소리에 고단함이 가득 베인 목소리의 그 친구가 세상을 등졌다는 말에 아린 가슴과 미안함이 짓누른다. 전화기 너머로 반가움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친구야"라고 힘주어 부르던 목소리였다. 단번에 알아채지 못해 머쓱했던 마음이 미안하다. 30년이 넘은 세월을 잊고 지내다, 어떻게 나의 소식을 알았는지, 반가움에 횡설수설한다. 전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 장황하게 이야기할 때, 늦은 밤 조금의 피곤함에 좀 더 배려하고, 좀 더 다정하게 못 대해준 아쉬움이 못내 가슴을 후벼 판다.

밤늦게 전화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말, 귓전에 아직도 들려오는 듯한데, 친구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말에 마음이 이렇게도 아릴 줄이야 …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음인지, 한숨을 몰아쉬며 울먹이던 친구를 술주정으로 받아들였다.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나를 친구랍시고 얼굴 떠올려 주고, 마지막 안부를 물어준 고마움에 뒤늦은 눈물이 흘린다. 얼마 전, 동창 녀석들과 술자리에서 우연히 듣게 된 말, 그 친구 사망 소식을 접하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본 결과, 나에게 전화를 했을 때, 이미 병이 깊어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였단다. 특히 나의 눈시울을 적셨던 말
"나 중에라도 나에게 안부 꼭 전해 달라고 했다는 말"
"연락처 진작 알면서도 연락 못 해 미안했다고"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던 말이 짠하게 친구의 메마른 웃음에 담겨왔다. 떠나간 친구의 명복을 빌며 술 한잔 기울인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누군가의 입에서 나지막이 선창하듯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이란 노래이다. 누구라 할 거 없이, 입이라도 맞춘 듯, 모두 떠나 버린 친구를 그리워하며 노래를 불렀다.
"하얀 날개를 휘저으며 구름 사이로 떠오네~
떠나가버린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사라져버린 그 사람
다시는 못 올 머나먼 길 떠나간다네~
-중략-
한 사람의 일생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인생길에 생을 마감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친구의 얼굴이 누구일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인생 오십 줄에 드물게 접하는 슬픈 소식들이 있다. 세월 속에서 사라져 가는 친구들의 부음이다. 마음만은 아직 소년기에 머물러 있는데 뜻하지 않은 비보(悲報)가 가슴을 울린다.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을, 인생 지천명(知天命)에 와서야 깨닫는다. 현대인의 시간에 맞추어 앞만 보고 달리던 길을 멈추고, 한 번쯤 뒤돌아보며, 이제는 건강도 챙겨야 할 나이가 되었다. “친구 건강하시게~”라는 안부 인사가 예전과 확연히 다르게 들려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