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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임정수 수필소설작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12-04-28 16:14
ㆍIP: 219.xxx.8
제비
                                                 제비 / 임정수
 
 
가장 빨리 일어나는 새가 먹이도 많이 먹는다 했던가.
희뿌연 밤의 장막이 걷히우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
 
두마리의 제비가 바쁘게도 날아다니더니 한마리가 입안에 먹이를 잔뜩 물고 와서 새끼들에게 주고 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한마리가 둥지에 뛰어들어 새끼들에게 골고루 먹이를 나눠주는 걸로 봐선
먼저 다녀간 제비는 수컷이며 뒤에 온 제비는 분명 암컷이렸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제비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을 떨며 먹이를 물어나르던 제비들이 입맛을 잃은 아이처럼
의기소침한듯 세상 살아갈 맛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무엇때문일까?'
 
아직 새끼들이 클려면 더 있어야 할건데...
'아하...그렇다,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이제야 제비들의 움직임이 심상치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몇일전 어둠이 내린 밤에 일어난 일 때문인 것이다.
 
세상이 잠자리에 든 고요한 시각에 소리소문도 없이 찾아든 그림자 하나...
그렇다.
그건 분명 도둑 고양이였다.
 
제비가 집을 나즈막히 지었지만 왠만한 사람들조차 손을 댈 수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도둑고양이란 넘이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마침내 거사를 실행하였던 것이다.
 
슬쩍 제비집안을 엿보니 아직도 남아있는 제비 새끼들의 뽀송뽀송한 깃틀이 안타깝게 흩어져 있었고
지옥과도 같았을 지난밤이 떠올라 제비가 마냥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매일 새끼들을 위한 부부새의 사랑에 질투가 날 정도로 정이 들었건만
이젠 사랑을 더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마치 세상을 포기하기라도 한듯한 제비들의 표정이 자꾸만 맘에 걸린다.
물한모금 입에 대질 않고 먹이도 먹질 않는 폼이 저러다 얼마안가서 굶어죽지나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무리 말못하는 새일망정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 새끼를 위한 마음은 다 같을진대...
어쩌면 새란 짐승에게도 배울점이 많아서 두고두고 깨닳음을 얻을 수도 있을텐데...
 
'아참, 그러면 되겠다. 후후후...'
 
보름쯤 되었으려나...
충청도 옥천의 계곡에서 이름모를 새의 알을 하나 주워왔었는데 제비알과 비슷하지 않았던가.
 
비록 시일이 지난지가 한참이어서 소생하기란 전혀 가망없지만,
그래도 부부새(제비)에겐 그나마 위안이 될 수도 있지않을까...
 
혹시라도 필요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챙겨두었었는데 이렇게 필요한 때가 있을 줄이야...
 
얼른 알을 찾아서 나왔다.
두마리의 제비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가까이 다가가자 두마리의 제비는 둥지를 박차고 뛰어 오르더니
살포시 전깃줄에 내려앉아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제비집에 뭐라도 묻은 것을 털어내는 시늉을 하며 얼른 알을 넣어 두었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와 밖의 상황을 살폈더니
예상했던 것처럼 부부새는 한동안 그렇게 집안팎을 오가며 생기있게 들락날낙거리며 날아다니다 어미새가 알을 품기 시작했다.
 
두마리가 똑같이 생겨서 암컷인지 수컷인지 분간은 어려우나
어떻게 보면 수컷이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교대로 알을 품으며 볼일을 보러 나다니는 것 같기도 하게 보였다.
 
뭐, 어때.
제비가 다시금 삶의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잘 살아가면 그뿐인 것을...
 
그나저나 저러다 알이 부화할 시기에 부화가 안된다면 제비가 부화(울화통)가 치미는 것은 아닐까.
괜히 나때문에 제비들에게 업을 짓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라도 제비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어야 하나?
그러면 안되겠지?
 
불쌍한 제비...
 
에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내신세가 더 처량하다.
 
나혼자서 한바탕 소리라도 지르고 나면 좀 괜찮으려나...
 
"제비야! 제비야! 니가 품은 알은 유정란이 아니고 무정란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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