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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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머슴의 애환

책상에 앉자 손을 비비다 보니 문득 내 왼손 엄지손가락의 흉터가 보인다. 까마득하게 잃어버린 세월에 묻혀버렸는데 갑자기 아련하게 중학교 일 학년 때 소를 키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10살배기 초등학교 4학년인 동생과 13살 먹은 중학교 1학년인 나는 소여물을 썬 적이 있었다. 동생은 작두를 밟고 나는 작두에 앉자 짚을 넣는 일을 하다 작두에 박힌 지푸라기를 치우려고 손을 넣는 순간 동생은 작두를 밟은 것이다. 순간 나는 "악"하고 고함을 치자 동생은 겁에 질려 작두를 들었는데 내 왼손 엄지손가락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밟다가 멈추었기 다행이지 조금만 세게 밟았더라면 엄지손가락 전체가 날아갈 뻔했다. 그 흉터가 60여 년이 지나는데도 아직 남아서 눈에 띈 것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으로 나는 중학교 일학년 때부터 소를 먹여야 하는 소 깔(꼴의 사투리) 머슴으로 산 것이다. 햇수를 헤아려보니 7년이란 세월이나 꼴머슴으로 살았다. 중학교 3년에다 고등학교 2년, 거기에다 고등학교에 다니다 그만둔 2년이 포함되니 7년이란 세월이었다.

처음 우리 집에 소가 들어온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가난하여 소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남의 집 소를 키워주게 된 것이다. 장리 소라 하든가? 이름이 확실한지 잘 모르겠다. 돈이 많은 사람이 가난하면서 성실한 사람에게 송아지를 사주면 가난한 사람은 송아지를 키워주고 그 소가 어미 소가 되어 송아지를 나면 어미 소는 송아지를 사준 주인에게 돌려주고 어린 송아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송아지가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품팔이로 남의 집 일을 해 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 소를 키우는 것은 13살 먹은 중학교 1학년인 내 차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때부터 나는 쇠꼴을 베어 나르기 위하여 지게를 집어지는 지게꾼으로 변하여 일을 시작한 것이다. 간혹가다 아버지가 소 꼴을 베어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소 꼴을 베어 나르는 꼴머슴이 된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면 소여물을 만들기 위하여 작두로 짚을 쓸어야 하는 데 힘이 없는 나는 작두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아버지로부터 늘 꾸중 듣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겨울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소여물을 끓이는 일은 잠이 많은 어린 시절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죽기보다 싫었으나 해야 하는 내 일이었다.

내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소 꼴을 베기 위하여 학교가 끝나기 바쁘게 집으로 돌아와 숫돌에 낫을 갈고 지게를 짊어지고 이 논두렁이나 저 밭둑을 찾아 헤매었으며, 습기가 있어 풀이 잘 자라는 도랑 가를 찾아 마을 골짝마다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툭하면 손 고락을 베는 것은 여 반사요 어떤 때는 논둑의 풀을 베다 보면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만나면 놀라서 기겁하기도 했다.

어쩌다 학교에서 영화라도 한 편 보여주는 날이면 늦게 집에 오게 되어 어두워질 때까지 풀을 베어야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너무 늦게 끝난다든지 친구들과 놀다 풀을 베지 못하면 그날은 소가 굶어야 했고 나는 부모님에게 혼나야 했다. 그보다도 가장 괴로운 것은 비가 오는 장마철이다. 소나기가 쏟아지는데도 비옷도 없이 꼴을 베러 가기 위하여 비를 맞으며 집을 나서는 신세가 처량했다. 그리고 어린 내가 베어오는 풀이 똥 다발만큼이나 베어 오는 꼴이다 보니 우리 집 소는 늘 굶주리는 날이 많았을 것이다.

동화책에서 나오는 '비가 오는 날 꼴머슴이 꼴짐을 지고 소를 몰고 가는데 바짓가랑이는 내려가는 꼴머슴의 황당한 모습' 그 이야기 주인공이 바로 나였으며 그런 일이 귀한 일이 아니었다. 그럴 때 발이라도 잘못디뎌 꼴짐이라도 넘어지는 날이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소꼴 머슴이 된 나는 짧은 시간에 많은 풀을 베려고 노력하다 보니 풀 한 포기라도 더 쥐려고 오른 손가락을 뻗치고 또 뻗친 결과 왼손과 오른손 뼘의 길이가 서로 다른 짝 뼘이 되었다. 오른손은 낮을 잡는 손이라 뼘이 23cm인데 왼손 뼘은 25cm로 2cm나 더 늘어난 것이다. 하긴 되 바쁠 때는 손가락에 풀을 감고 또 감아 꼴 한 주먹이 한 다발이 될 수 있도록 쥐는 법도 터득하게 되었으며, 엉터리 풀이지만 30~40분에 한 발채를 베기도 하였으니 꼴머슴 중에 상 꼴머슴이 된 것이다. 이런 나는 지금도 꼴 베는 데는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활을 면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대학을 가겠다고 생각하면서 면하게 되었다. 부모님에게 반항하면서 집에서 나와 자취하는 친구 집에 생활하면서 가정 일손 돕는 것을 면하게 되었다. 일이 많은 부모님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밑에는 동생들이 7이나 되었는데 큰아들이란 녀석은 공부하겠다고 집안일을 돕지 않았으니 아마 속깨나 아파하셨을 것 같았다. 그런 생활을 한 나는 마을 사람들이나 친척들로부터 못된 녀석이라고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이런 생활 속에서도 나는 굴하지 않고 늦게나마 공부에 매진하여 그 지긋지긋한 시골의 지게 밑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친척들이나 마을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던 나는 그 마을에 유일한 대학생이 되었으며, 도시로 나와 도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나를 본받은 동생들도 이웃집 아이들보다 공부를 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손을 돕지 않는다고 그리 나무라시던 부모님이 큰아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또 가난 속에 허덕이는 부모님의 일손을 돕지 않고 대학에 간다고 공부한다며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는 마을 사람들도 나에 대한 생각을 달이 하게 되었다.

이처럼 한참 친구들과 재미있게 돌아다니며 놀아야 할 나이에 집안일을 돕다 보니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끼를 발산하지 못하고 살아온 불행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마음껏 노래 한 번 불러보지 못했으니 노래도 할 줄 모르고, 친구들과 어울려 공 한 번 마음껏 차 본 적이 없으니 운동을 할 줄 아나 제대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벼락치기 공부로 책 몇 줄 읽은 것으로 평생을 살아가려니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불쌍하게 살 수뿐이 없었다.

직장에서 체육대회가 있으면 맨날 뒷전에서 손뼉이나 쳐야 했고, 야유회라도 나가면 노래 한마디 할 줄 모르니 얼굴 붉히며 사양하다 마지못해 한마디 부르면 음치라는 놀림이나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사회적으로 자그마한 사회적 지위가 오르다 보니 운동할 기회도 조금씩 나타나고 노래를 들어 볼 기회도 생기게 되었다. 평생 음치인 줄 알았고 내 몸은 둔치라 운동은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노래를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럴듯하게 흉내를 내고, 운동도 곧, 잘 하게 되었다.

이제는 꼴머슴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구경조차 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추억으로 아련히 머릿속에 맴돌며 눈가에 웃음이 스쳐 갔다. 비록 몸은 고달팠으나 오늘날 같은 갈등이 없었던 그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만 간직한 행복

고난과 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