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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김복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3 19:44
ㆍIP: 125.xxx.48
나이

참 신기도 하다.
내가 예순여섯 살 때로 기억되는데 그해 12월 어느 모임에서 나이 이야기를 하다 내 나이가 다음 달이면 예순일곱 살이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예순아홉 살에서 일흔 살로 넘어오던 때는 왠지 마음이 설레며 ‘내가 일흔 살이나 먹었어.’ 하면서 나이 먹는 것이 두렵고 불안했었는데 일흔 살이 넘어서부터는 나이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지며 여든 살 먹은 사람도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나이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져 버렸다. 일흔 살이란 나이가 나를 강하게 만들었나, 아니면 나이 먹는 것에 대하여 면역이 생겼나 알 수가 없다. 하긴 일흔한 살이 되고 보니 여든 살이 많아 보이지 않으니 노인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살 만큼 살았으니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삼사십 대 젊은 시절에는 세월이 빨리 가서 나도 빨리 승진하여 어른 대접을 받았으면 했는데 하루하루 살다 보니 어느 날 머리가 하얀 영감이 되어 버렸고 직장에서도 이제는 늙었으니 집에 가서 쉬라고 퇴직을 시켜 버린 지가 벌써 7년이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그리 안가 던 세월이 어쩌면 그리 빠르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어제가 일요일 같았는데 내일이 또 일요일이라니 날짜의 개념이 없어진 지 기억도 없다. 그렇다고 한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하루해가 짧을 정도로 바쁘게 살다 보니 날자 가는 것을 잃어버리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긴 직장에 있을 때는 매일 하는 일이 반복되었으나 자유인이 되다 보니 그동안 직장에 얽매여 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겨난 것이다. 즉 가정 일손도 조금 도와주랴, 취미생활도 하랴, 아프게 살지 말자고 운동을 하면서 건강도 챙기랴 생각보다 백수가 하는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삼십 대 때에 오륙십 먹은 상사나 선배님들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고, 사오십 대에는 육칠십 대가 고리타분하고 꽉 막히었다고 흉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나는 그보다도 훨씬 더 나이를 먹었으니 젊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초·중·고·대학의 학창 시절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고 기분은 고등학교나 대학생 같은 기분이 그대로 살아있을뿐더러 직장에서 일에 대한 오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제는 어데 가서 함부로 이야기도 할 수 없는 늙은이가 되어 버린 것인가?

지난날 학교에 근무하면서 입버릇처럼 선생님들에게 하던 말이
“학생을 지도할 때는 선생님 연령 기준에서 지도하지 말고 학생의 나이 기준에 맞추어 생각해 보고 지도하라”고 수시로 당부했으며, 나 또한 그런 신조로 학생을 지도했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학생을 이해할 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 의식 보다는 선생님이나 학생의 연령을 고려해서 나는 그 나이 때 어떤 생각을 가 젖었으며 어떤 행동을 했던가? 하는 생각을 해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이 먹은 체, 상사인 체 등 많은 티를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인 모양이다. 자기 나이 먹는 것만 알았지 남의 나이 먹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내 눈에는 사십이 넘은 내 아이들이 지금도 어린아이로 보이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이삼십 대 젊은 엄마들을 보면 아이들이 아이를 나서 데리고 다닌다는 생각이 드니 실수하기 딱 좋은 것이 아닌가? 더구나 직장에서 나보다 젊은 친구들은 늘 젊은이로 보인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40대 때 만난 30대 후배들이 늘 30대로 보이며 나만 나이를 드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 잡혀있으니 신기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늙은이는 주책이라는 소리를 듣는 모양이다.

이제는 내 나이를 생각해서 아이들에게도 말도 조심하고 술도 가능한 한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고독감이 오는 것 같다. 이것이 늙음이란 것인지 모르겠다. 어느 나이들은 가수의 노랫가락처럼  
"너는 늙어 봤어."
"나는 젊어 봤는데"라며 기죽지 말고 살라는 노래도 있지만 아무래도 노인네가 이것저것 간섭하는 것은 주책일 수뿐인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해 가는가? 젊은이들 하는 일에 간섭보다는 배우기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등지고 지난날의 추억이나 회상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연상하면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행복감에 도취하여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나이가 뭐 대 수람, 다 잃어버려야지, 사는 날까지 남의 신세 지지 말고 건강하게 살다 가야지’하는 생각에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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