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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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눈에 비친 한국 정치사(1950~60대)

人生 70年史 결코 짧은 세월만은 아닌 것 같다.
인류의 역사나 한 나라의 역사에 비교한다면 하나의 점일는지는 몰라도 격동기 급변하는 시대의 70년은 너무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해방 직후인 1947년에 태어난 나의 인생은 우리 대한민국 정부와 같이 근대사를 장식한 사람 같다.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지난날을 회상해 보니 꼭 설악산 권금성에서 본 공룡능선과 같이 험난하고 동해안에 위치한 하조대의 정자 앞 바닷가 절벽 난간에 서 있는 소나무같이 모진 풍파를 다 만나며 살아 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태어난 다음 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한참 재롱을 떨 때 한국 동란으로 3년간의 전쟁을 치렀다. 아주 어린 유아기의 나이기에 6·25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고 야간에 빨치산 습격을 피해 피난을 간다고 어떤 분의 지게를 타고 가다 되돌아온 기억과 우리 집 뒤에 있는 자그마한 동산에서 밤중에 총소리가 나 어머님이 귀를 막아주며 이불을 덮어주었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내가 살던 곳은 전라북도 운장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아마 지리산의 빨치산이 운장산을 거쳐 대둔산으로 가다 저지른 소행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금산읍 장동마을이란 곳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금산읍에서 남이면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남이면이란 곳은 대둔산에서 가깝고 주변에 백암산(650m)이란 600고지가 있는 산이 있는데 이곳은 휴전 후에도 오랜 기간 빨치산 소굴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 오다 보면 비포장 신작로에 완전무장을 한 군인을 태운 군용트럭이 몇 대씩 지나가곤 했다. 그때 우리는 군용트럭이 지나가면 먼지를 뒤집어쓰는지도 모르고 군인들에게 건빵과 초콜릿을 달라고 소리치며 뜀박질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후 중학교 1학년 말(당시는 4월 1일부터 새 학기가 시작됨)인 1960년 3월 15일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가 있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분명 학교에서 민주주의의 선거제도는 보통, 평등, 비밀, 직접 선거를 하여야 한다고 배웠는데 어른들 말씀이 세 사람이나 여섯 사람씩 조를 지어 기표소에 들어가 기표를 하고 서로 보여준 다음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3·3조나 6·6조를 지어 투표하도록 해야 한다고 공무원들이 마을에 구성된 반상회에 참석하여 교육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이장과 반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조를 편성해 주었단다. 어른들이 무슨 이런 선거가 있냐고 하시던 이야기가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때 기표해야 할 사람은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봉을 찍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2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상대는 신익희 선생으로 기억되고 3대 때는 조병옥 박사로 기억되는데 기억이 조금씩 뒤엉켰다.

비밀투표 제도에 위배되는 9·9조나 6·6조를 실시한 것은 자유당 후보인 이기봉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자유당 정권의 불법 선거를 말한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신익희 선생이나 조병옥 박사가 투표 전에 서거하여 대통령은 이변이 없는 한 자동으로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당선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통령 선거는 여당 후보인 자유당의 이기봉보다 야당 후보인 민주당의 장면 박사가 인기가 높았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즉 대통령은 이승만, 부통령은 이기봉에게 기표했나 안 했나 여섯 사람이나 아홉 사람이 서로 기표한 용지를 보여주고 투표함에 넣는 방식으로 비밀투표에 위배되는 투표 방식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6·6조나 9·9조 투표방식을 도입한 3·15 부정선거로 자유당 정부는 결국 4·19 학생 의거의 도화선을 만들어 준 것이다.

1960년 4월 중학교 2학년이 된 나는 늦은 봄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중·고 병설인 우리 학교는 고등학교 3학년 형들이 부서진 책상다리를 들고 교실로 들어와 책상을 내려치면서 운동장으로 몰아냈다. 전교생을 운동장에 집합 시켜 놓고 고등학교 형들은 조회대에 올라가 소리소리 지르며 "체육 선생 민ㅇㅇ 는 물러가라" " 영어 선생 박ㅇㅇ 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선창하며 외쳐 대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고등학교 형들이 무서워 구호에 따라 "물러가라, 물러가라"하고 목이 떠지라 외치던 기억이 새롭다. 그것이 우리 학교에서 있었던 4·19 여파라는 것을 뒷날에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제2공화국인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자 세상의 주인은 학생들로 변하여 교실에서 공부해야 할 학생들이 정치에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여파가 우리 학교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체육 선생 민ㅇㅇ 선생님은 중학교 미술 교사로 고등학교 체육 수업도 겸해서 맞고 있었다. 내 기억에는 참 좋은 분이었는데 고등학교 형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이유는 고등학생들이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볼을 차고 놀고 싶은데 볼을 잘 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고 있었단다. 그리고 영어 박ㅇㅇ 선생님은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겠다고 학생들에게 질문하여 틀리면 '라이트 펀치' '레프트 펀치' 하면서 군밤을 준다든지 또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실내화(헌 구두의 뒤창을 뜯어내서 만든 실내화)를 벗어 볼기짝을 때리시던 엄한 선생님이라 대다수 학생이 무서워하고 싫어했다. 결국 두 분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사실은 그만둔 것이 아니라 다른 학교로 전출했다는 것을 한참 뒤에 성인이 된 다음에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4·19혁명에 대한 기억이다.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헌법이 개정되어 정부는 내각 책임제, 국회는 참의원과 민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가 나타났으며, 주민자치를 활성화한다고 시골의 면장까지 선출하는 선거 열풍이 일어났다. 중앙 정부의 선거 결과 대통령은 윤보선, 국무총리는 허정이 당선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제2공화국인 민주당 정권이다.

이런 혼란 속에 다시 혁명이 일어났다. 1961년 중학교 3학년 시절 5·16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6개조(정확하지 않음)로 된 혁명 공약을 외우지 못하면 방과 후에 남아서 외우는 일이 나타났다. "우리는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고 ~~~~"로 시작되는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국경일이 되면 읍내의 중·고등학생들이 한곳에 모여 기념행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고 연설이 끝나면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는 것이 일 년이면 몇 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행사 때마다 빈혈에 쓰러지는 학생들이 몇 명씩 속출했다. 가난뱅이 농부의 아들인 나는 이런 행사 때가 되면 빈혈로 죽을 맞이였다.

나에게는 중학교 앨범이 없다. 이유는 혁명정부에서 학교의 부조리 관행을 고치기 위하여 앨범을 만들지 못하게 했단다. 그 결과 중학교 졸업사진은 3학급이나 되는 전교생이 한 장으로 찍은 커다란 사진 한 장뿐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도 특수고등학교(예, 철도고등학교, 해양고등학교 등)만 제외하고 다른 시·도로 진학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 보니 가정형편이 여유롭고 공부를 잘했던 금산군 학생들은 인근에 있는 대전시로 진학할 수 없고 멀리 떨어진 전주시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다.

1962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초여름 어느 날(5~6월경) 친구들과 제원면에 있는 천내강(금강 상류)이란 곳에 놀다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화폐개혁이 단행된 날이라 잊히지 않는다. 우리나라 화폐단위가 환이었는데 원으로 바뀌면서 환율의 변동이 나타난 것이다. 즉 천 환짜리가 백 원으로 변하였다. 그러다 보니 셈이 밝지 못한 사람들은 백 환을 지불한다고 백 원짜리를 주었다는 이야기가 하나의 코미디가 되었고, 어느 집에서는 그동안 감춰 두었던 돈이 자루로 가득 나왔다는 둥 갖가지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돈을 바꾸어 주는데 교환할 수 있는 화폐의 액수에 상한선을 정하여 상한선에서 넘는 화폐는 나중에 주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즉 그동안 장롱 속에 꼭꼭 숨겨 두었던 돈이 다 드러나게 되면서, 누구 내가 돈이 제일 많은가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고리채 정리라는 정책이 나왔다. 고리채 정리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하여 남의 돈을 빌려다 쓴 사람은 관공서에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채무자는 정부에서 정해준 저금리로 일정 기간에 갚아 나가도록 한 정책이다. 이 정책은 빚더미에 허덕이는 서민들을 위한 정책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빈민 구제 정책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사회적 갈등을 빚기도 한 정책이었으나 서슬이 시퍼런 군부 세력의 정권에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다.

5·16 군부 쿠데타(군사혁명이라 부름) 당시 군부는 사회가 안정되면 정권을 일반인에게 이양한다고 약속했는데 이는 하나의 공염불이 되었다. 국가재건 최고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육군 소장 박정희는 본인의 어깨에 스스로 별을 붙이고 또 붙이어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다음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된 것이다. 그때 선거운동 기간에 어른들이 보여주었던 모습들이 머리에 스쳐 갔다. 하나의 스토리와 같은 막걸리로 표를 산다는 '막걸리 선거' 고무신으로 표를 산다는 '고무신 선거' 돈을 받고 기표한 투표용지를 가지고 들어가 투표함에 넣고 기표하지 않은 자기투표용지를 넘겨주는 '릴레이식 투표' 밀가루를 받아먹고 투표했다는 '밀가루 투표' 등 오늘날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5일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장날이면 시골 사람들은 막걸리 한 잔에 자기 권리를 표기한 지도 모르고 술이 거나하여 비틀거리며 술주정하던 모습들이 아른거린다. 이런 투표를 하는데도 어른들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으며 오히려 못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인식을 가진 후진 사회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GNP가 약 70~80불 정도요, 1년 정부 예산이 1조 몇천억 원 정도라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보면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던 시절인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중앙정부의 1년 총예산이란 것이 작은 시군의 예산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예산이었다. 가난한 주민들이 먹을 것, 신을 것, 입을 것을 주면 선거에서 찍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통령 입후보자는 여당으로 육군 대장 출신 박정희 후보와 야당은 윤보선 후보 등 여러 명의 후보가 나왔으나 두 분이 다투는 선거였다. 그때 담벼락에 붙은 흑백의 벽보들도 '못 살겠다 갈아 보자' '갈아 봤자 별수 없다' 등등 흙 담벼락에 붙어 있던 코미디 같은 선거 벽보가 눈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야당 입후보자가 선거 유세를 하면 불량배들이 횡포를 부린다고 하였으며 트럭 같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확성기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이런 선거 결과 그래도 도시 사람들은 부정선거에 휘말리지 않고 야당을 찍었으며 농촌은 돈이 많은 여당이 당선되는 풍토를 보여 ‘여촌야도’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결과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공화당은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대도시에서 여당의 국회의원 당선 숫자를 높이기 위하여 중선거구제를 도입한 것이다. 즉 한 선거구에 두 사람을 뽑는 중선거구 제도를 도입하여 야당만 당선되던 서울에 큰 변화를 준 것이다. 서울의 각 선거구에 여당에서는 한사람, 야당에서는 두 사람이 출마하다 보니 여야가 각각 한 사람씩 당선되어 그동안 야당이 싹쓸이하던 것을 막아 반반씩 당선된 것이다. 그리고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는 여전히 소선거구제를 실시하여 여당이 거의 독식하다 보니 국회는 거의 여당 국회의원들로 채워졌다.

내가 살던 금산이란 곳도 초대 국회의원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 장관이면서 대통령 입후보도 했던 자유당의 임영신 여사가 당선되었다가 2대 때는 야당 당수를 지낸 유진산 총재가 당선되었다. 그러다 5·16 이후 군부 세력의 한 축이었던 길재호라는 사람이 나타나 그를 당선시키기 위하여 금산군을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편입시켰다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런지 야당인 유진산은 지역구를 여당인 길재호에게 내주고 서울 노량진으로 지역구를 옮겨 당선된 것이다. 이런 일로 그 당시 금산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말하던 금산의 4대 명물로 '임영신' '유진산' '길재호'에다 지방의 토산물인 '인삼’을 들곤 했다.

이런 사회적 풍경은 가난 속에 사는 시골의 순박한 나를 신념이 강한 인격의 소유자로 변화시켰다. 아무 짬도 모르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한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내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해 보겠다고 나름대로 꿈의 설계를 세운 것이다. 집에서 일하면서 반 염세주의로 변했던 나는 글을 쓰는 글쟁이가 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아보겠다고 글을 써보다가 고등학교 1학년 말경 병원에서 폐결핵(사실은 감기가 오래되어 폐렴 정도를 X-R도 없는 병원에서 한 이야기임)이라며 산속으로 들어가 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런 시련을 겪던 나는 가난하고 모순된 사회를 바꾸어 보겠다고 유능한 정치인이 되는 것을 꿈으로 삼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내 명찰을 정치에 제일 능한 사람이란 뜻으로 政一能(정일능)이라고 바꾸어 달고 다닌 적도 있다. 그리고 마을에 꿀벌 4-H를 조직하고 금산읍 4-H 연합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맡았으며 1966년으로 기억되는데 겁 없이 우리 마을 4-H 회원들을 격려해 달라는 편지를 대통령께 보내어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인지는 모르지만 대통령 사인이 있는 펜으로 쓴 친필편지를 받아 회원들에게 낭독해 주며 잘사는 농촌을 만들어 보자고 선동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내눈에 비친 한국 정치사(1970~80)

눈 위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