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주야옥
ㆍ작성일	2020-03-03 21:09

ㆍIP: 14.xxx.213

라벤더 향기

아침부터 보슬보슬 봄비가 내렸어요.
바람은 꽃잎을 하나하나 들추며 속속히 파고들었습니다.
빗방울로 금방 세수한 해맑은 개나리꽃이 보였습니다.
스케치북을 가져와 비에 젖은 개나리꽃을 한 잎씩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은서는 깜박 잠이 들었어요.
누군가 뒤에서 은서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굵고도 낮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였어요.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습니다.
“은서야, 은서야.”
조여 오는 가슴을 숨긴 채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회색 양복, 검은 구두, 검은 우산을 쓴 삼십 중반의 아저씨가 우산 속으로 들어와 오들오들 빗속에서 떨고 있는 은서를 감싸주었습니다.
새 생명의 환희를 보는 듯했어요. 비바람이 스칠 때마다 가냘픈 몸 사이 수줍음 들이 살랑대며 검은 우산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습니다.
큐피드의 화살에 맞은 아도니스의 영혼처럼 가슴에서 피어나는 행복 은서는 그 행복을 꼭 가슴에 안았습니다.
도레미파로 배열된 철봉 너머로 피어있는 개나리꽃들도 은서의 수줍음에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저 저 선생님” 목 끝에서 맴도는 소리.
“은서야, 무슨 걱정 있니?”
은서는 자신의 몸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시골의 저녁 풍경은 스산했습니다.
골목길에서 뻥튀기를 팔던 아저씨의 모습 대신 뻥튀기 기계와 검은 비닐봉지들이 바람의 지휘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골목길은 참 조용했습니다.
3월이지만 날씨는 추웠습니다.
차가운 빗방울들이 손끝에서 퉁 튕겨서 들어왔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을 참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왜 비가 오는 것이 좋은지 신기했습니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방울들이 선생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대신 노래해 주는 듯했습니다.
수줍은 웃음꽃이 은서와 선생님 사이에서 번지고 있었습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갈색 운동화와 검은 구두 사이에 동그랗게, 동그랗게 동그라미를 그리다 톡 톡 터지는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은행나무 숲을 지나고 철길 건널목을 지날 때였습니다.
“선생님” 하고 다니카가 달려왔고 은서는 순간 선생님의 등 뒤에 숨어 버렸습니다.
선생님의 등은 폭신폭신한 이불처럼 따스했습니다.
은서는 선생님 등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선생님은 다니카를 보고 눈인사를 했습니다.
다니카는 은서를 불렀습니다.
은서는 누군가에게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사춘기 소녀의 아주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선생님과 있을 때 은서는 터질 듯 팽팽하고 경도 높은 보석처럼 빛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과 있는 동안은 몸의 생체리듬이 살아나 생기가 돋았습니다.
선생님은 너그럽고 온유하며 선생님의 말투는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했습니다. 선생님의 그림 솜씨 유명화가 보다 더 멋진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의 그림 속에는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리고 졸졸졸 시냇물 소리, 풀잎을 건드리는 바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은서는 선생님의 화실에서 그림 그리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선생님의 화실 안에는 각양각색의 들꽃과 이름 모를 풀들이 각자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고 화실을 가면 선생님은 아메리카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향기와 선생님 몸에서 나오는 라벤더의 향이 은서를 그곳에서 가두어 버렸습니다.
“선생님.” 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 내일은 미술 시간에 응 은서야, 미술 시간에요” 은서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은서야, 또박또박 해야 알아듣지?”
“교정에 있는 비에 맞은 개나리꽃 한번 그려보고 싶고 우산도 그리고 싶어요.”
“선생님 딱 한 번 만요.”
선생님은 피식 웃으면서 눈을 찡긋했습니다.
“은서야 깜깜한데 혼자 집에 갈 수 있겠니?”
“집이 어디니?”
“우리 집은 바다가 근처여요. 가끔 아빠를 따라 바다에 가곤 해요.
바다에 가면 파도 소리를 들어 좋은데 아빠가 김을 따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려요.”
“선생님도 바다를 좋아하는데.”
“그럼 선생님 언제 아빠랑 선생님과 함께 ‘도자기별’ 바다에 가요.”
“그럴까?”
“이제 집에 가야지.”
“비가 오지 않으면 선생님이 자전거 태워 줄 텐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전거 타고 바다에 가보자.”
“정말요, 선생님.”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주며 젖은 머리를 닦으라며 손수건을 건네주었습니다. 선생님 손이 은서의 손에 스쳐 갔습니다.
참 따뜻했습니다. 손수건에서 라벤더 향이 났습니다.
은서는 나비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둠 속에 무릎을 끌어안은 채 2차 성장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몸을 말았습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몸을 말고 또 말았습니다.
은서는 비 오는 날 선생님과 추억을 담아 뚜껑을 닫아버렸습니다.
“우르르 쾅 우르르 쾅”
천둥소리가 교실 안 가득 울려 퍼지고 알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서성였습니다.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얼굴이 늙은 호박처럼 퉁퉁 부어 있었고 허리는 평소 보다 두 배 두꺼워졌으며
얼굴은 핏기가 없이 창백해 보였습니다.
분필을 잡더니 선생님은 칠판에 ‘너희들이 있어 행복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순간 은서는 선생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은서와 선생님은 눈이 마주쳤습니다.
베일에 싸인 듯한 슬픈 눈동자가 은서의 가슴을 꼬집어 뜯었습니다.
은서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선생님의 얼굴을 4B연필로 순간을 포착해 그려보았습니다. 선생님이 1분단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은서의 옆쪽으로 왔다 다시 뒤로 갔다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지나갈 때마다 라벤더의 향기가 났습니다.
선생님은 은서 뒤에 서서 등을 토닥토닥해 주었습니다.
“은서야 너는 아주 잘 살 거야.”
“공부 열심히 하고”라는 말을 남기며 그는 교실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날 이후 선생님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픔의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쌓여 갈 무렵
회색빛 꿈을 꾸었습니다.
선생님이 자주 입던 하얀 셔츠가 바람을 따라 어디론가 가더니 구름에 앉아서 손을
흔들고 있는 꿈을 꾼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안내방송 소리가 교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오늘은 아침 조회가 있겠습니다.”
운동장에 나갔을 때는 노란 개나리꽃 사이로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라 일러주오.”
“너허 너허 너와 너너 이가지 에헤헤레 어여.”
체육 선생님은 그의 영정사진을 들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빳빳한 햇빛과 산들바람은 영정사진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훌쩍훌쩍 울고 있는 다니카의 흐느낌.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다니카의 눈은 토끼 눈처럼 빨갛게 변해있었습니다.
은서는 털퍼덕 운동장에 주저앉았습니다. 운동장에 있는 작은 돌을 주워 땅에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상엿소리는 멀어지고 선생님의 그림자만이 남았습니다.
일주일째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았고 가족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가끔 밤하늘 보며 반짝이는 별을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은하수, 북극 칠성, 카시오페이아, 슬픈 별, 아주 슬픈 별이라는 말만 중얼거렸습니다.
학교에서도 책을 보지 않았습니다. 시험 시간이면 답안지에 1, 2, 3, 4 숫자만 적어 낼 뿐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은서가 유일하게 하는 것은 수채화 그리기였습니다.
방문을 잠근 채 밤하늘의 별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별 옆에 우산을 그렸습니다.
은서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죽어야 다시 사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모두가 선생님의 죽음을 위로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창문을 열었습니다.
맑은 공기가 마시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라벤더 향을 은서에게 선물했습니다.
가슴을 크게 열어 온몸으로 라벤더 향기를 마셨습니다.
선생님의 죽음은 신장병이 원인이라 했습니다. 알 수 없이 부어오르는 얼굴, 옆으로 퍼지는 몸을 감당할 수 없어 부인을 남겨둔 채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흔적도 남기지 말고 화장을 해 바다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은서는 숨 쉬는 것이 힘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은 도르래를 감아 놓은 듯 아파져 왔습니다.
은서는 중얼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 가야 해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선생님이 가끔 학생들에게 불러주었던 노래였습니다.
은서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가슴에 몽글몽글 그리움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은서는 그리움을 꼭 잡았습니다.
두 두둑 두 두둑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비바람에 꽃잎들이 한 잎 한 잎 땅에 떨어졌습니다.
검정 우산을 펼쳤습니다.
은서의 손에 파란 라벤더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 꽃이 라벤더꽃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점점 라벤더꽃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손을 폈을 때 라벤더꽃이 탐스럽게 피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은서는 손에 있는 라벤더꽃을 지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은서의 손은 라벤더꽃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그 라벤더꽃이 손 전체로 물들어질 때마다 은서의 몸에서는 라벤더 향기가 났습니다.
은서는 자신의 손에 있는 라벤더꽃에 물을 주며 따스한 햇볕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라벤더꽃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랫소리가 통통 튀기며 바람을 타고 별님한테 전해졌습니다.

한영택

2020-03-03 23:47

주야옥 작가님 서재 첫 방문 인사드립니다
꿈 많은 학창시절 자상하신 선생님에게 은서는 푹 빠져버렸군요
사춘기 소녀 순수한 사랑을 그린 작가님의 글 좋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버렸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은서의 슬픔이 너무 컸습니다
보내는 순간 그리움이 라벤더 향기로 피어났군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건강하시고 향필하십시오.


주야옥	한영택 시인님 3월이 주는 설렘 보다는 코로나로 인해 가슴 한 구석이 꽉 막힌 시간입니다 이 또한 빨리 지나가기를 소망하머 아이들이 푸른하늘과 맑은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고운메시지 진심 감사드립니다 시인님도 건강 챙기시고 행복하셔요	3/4 07:51

김상화 2020-03-04 08:16	오랜만입니다. 주야옥 작가님 그간 잘 계셨지요 올려주신 라벤더 향기의 글 매우 향기롭습니다 은서가 사랑의 눈을 뜨기 시작한 학창 시절 같습니다 누구나 첫사랑은 그런 과정을 겪는다고 볼 수 있지요 어찌 보면 은서는 선생님과 짝사랑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지병으로 하늘나라로 가셨군요 돌아가신 선생님의 향수가 라벤더 향기로 피어났나 봅니다 주야옥 작가님 신종 코로나 19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이 위기 잘 극복하시고 건강과 행복이 늘 작가님과 함께하시길 두 손 모읍니다.

주야옥 2020-03-04 15:35	김상화 작가님 덕분에 행복을 담아봅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응원의 메시지예 힘이 납니다 좀더 노력하여 좋은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강 챙기시고 늘 행복하셔요

김종덕

2020-03-04 16:35

주야옥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정서를 저렇게 세심하게 그려내시네요. 보송보송한 깃털 같습니다. 너무 이쁘게 그려 내셔서 저러한 감정을 여태 어떻게 숨기고 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운글 당부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주야옥	김종덕 작가님 과찬의 메시지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흡하지만 좀 더 노력하여 좋은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강챙기시고 행복하셔요	3/4 19:14

이도연

2020-03-05 09:25

주야옥 작가님 반갑습니다.
별처럼 초롱초롱한 문체와 라벤더 향기가 묻어나는
동화가 가슴에 아련한 추억으로 스며들어
깊은 감동으로 다가 옵니다.
아름답고 예쁜 동화를 많이 집필하시어
독자의 사랑 듬뿍 받는 작가가
되시길 희망합니다.


주야옥	이도연 작가님 과찬의 메시지에 감사인사 드립니다. 늘 좋은글 집필하시어 독자를 사랑 듬뿍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3/5 19:31

장선희

2020-03-06 18:42

주야옥 작가님 학창시절 사춘기의 첫사랑은 슬프지만
라벤더 향기가 도시적인 세련미로 돋보이네요
환상적인 소녀의 감성에 저도 울컥했답니다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님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요즘 건강은 제일 1순위로 챙기세요.


주야옥	정선희 작가님 곱게 남겨주신 메시지 덕분에 움추렸던 마음을 펴 봅니다 늘 좋은글 올려주셔서 잘 읽어내고 있어요 쭉 고운글 많이 집필하셔서 삭막한 세상에 오아시스 같은 작가님으로 남아주셔요 감사드립니다	3/7 15:52

정찬열

2020-03-07 07:05

주야옥 작가님 초면 인사로 발걸음 합니다.

올려주신" 라벤다 향기"동화작품 감동 깊게 그려주셨네요
꿈많은 사춘기 소녀가 학창시절에 선생님께 받은 라벤다향기의사랑끝에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슬픔에 빠진 감성깊은 글 잘 배독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주위를 두렵게 합니다.
항상ㄹ 건강에 유념하시고 아름답고 향기나는 글 많이 올려 주세요


주야옥	정찬열 작가님 부족한 글에 곱게 남겨준 메시지가 행복을 더해 줍니다 작가님 좋은글 많이 쓰셔서 독자들 사랑 듬뿍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시간속에 사라지리라 믿어요 건강챙기시고 늘 행복하셔요	3/7 15:55

미안, 미안해

꿈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