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6-08-25 00:16

ㆍIP: 124.xxx.224

손자 돌보는 일을 놓으며

손자 돌보는 일을 놓으며

아직도 우리 아들은 그의 엄마와 아빠의 실력을 굳게 믿는가 봅니다.
하루는 전혀 예고 없이 아들이 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곧 이어 아들 내외의 초청을 받아 그들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새로운 집을 한 채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4년을 기약하고 구미로 갔습니다.
지난 해 봄이 막 시작될 무렵 길고도 긴 생각과 준비 끝에 희망 비슷한 것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내려갔습니다.
내 딴에는 아이들을 한 4년쯤 보아 주고 나면 큰 아이가 4학년이 되고 작은 아이가 1학년에 입학을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가 되고 보면 누나와 동생이 나란히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고 그 때 올라오면 된다는 계획에 따라 일어난 일입니다.
이리 하면 그런대로 아들 내외에게도 한결 힘을 보탤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서 보니 며늘아기는 벌써 취업을 하였고 그의 기상은 마치 ‘세상아, 내가 간다’ 는 표현이 걸맞을 만큼 꿈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전업 주부의 가시밭길 같은 인생행로를 걸어 왔구나 싶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어쩌다가 이런 제의를 받아 여기까지 내려오게 되었는지 아들이 참으로 고맙기까지 하였습니다.
늙은이가 집에서 빈둥거린들 누가 시비는 걸지 않겠지만 이런 일이라도 해서 젊은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장한 일이겠는가 싶었습니다.
‘아! 나도 이제는 아들 내외에게도 떳떳한 모습으로 버티고 설 수 있을 것 같구나.’
하면서 가슴이 콩닥거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드디어 난생 처음 육아의 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들 하나와 딸 둘을 키워냈지만 벌써 시대가 다르고 오래전의 일이기에 난생 처음 해 보는 듯한 야릇한 심정이었다고 표현하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 내외가 저희들을 잘 키웠다는 자부심만은 확실해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더라도 믿고 맡기니까 아들 내외 눈치 보는 일은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실상은 우리 부부가 원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순전히 그들의 원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기에 속으로야 비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은 생각지도 않았던 데에서 상처가 덧나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엄마 냄새를 맡지 못한 아이들이 엄마를 너무나도 애타게 기다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그들을 소홀하게 대하여서 일어난 일은 결코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엄하게 보여서 그런 일은 더욱 아닙니다.
엄마 냄새가 그리운 것입니다.
엄마인들 아이들이 얼마나 보고 싶겠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기운이 허공에서 만나 이루어진 아름다운 무지개인 것입니다.
오후 5시만 되면 6시에 퇴근하는 저의 엄마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립니다.
만일 눈이 빠질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눈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 시간에 올 수가 없는 일인 줄은 뻔히 알지만 보고 싶으니 어쩌겠습니까?
“엄마, 언제 와?”
“응, 곧 간다. 아니 6시면 퇴근이니까, 이제 잠시만 기다리면 되겠네.”
전화를 걸어보기도 합니다.
계단에서 저벅저벅 신발 소리만 들리면 귀와 눈이 현관으로 향합니다.
“엄마다.”
초인종 소리가 들릴 만한 시간이 되었건만 야속하게도 그 소리가 울리지 않으면 실망하고 이어서 내뱉는 한숨 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는 고문 그 자체였습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주면 되고 심심하면 함께 놀아주면 되며 운동장에 나가서 뛰고 달리고 하면서 즐겁게 같이 놀아주면 어느 새 시간은 잘도 흘러갑니다.
하지만 엄마의 빈자리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밖으로 표현은 안 합니다.
하지만 기운으로 느낄 수가 있는 일이니 우리들 마음이 더 미어지도록 아픕니다.
이것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산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어른들을 만나면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한다며 며느리가 좋아하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아이들을 잘 키워 주어서 다른 이들에게 칭찬을 듣는다 하면 좋아해야지 그게 어찌 문제가 되느냐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젊은 엄마들이나 나이가 적은 사람이 보아서 좋은 아이로 보여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고작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어쩐지 내가 키운 아이에게 희망을 보기보다는 절망을 보게 하는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또 하나는 젊은 엄마 아빠 처럼 많은 정보를 아이에게 체험할 수 있도록 가르칠 자신이 없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죽이고 사는 것은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꿈보다는 어두운 그림자를 생각하게 하는 중대한 문제점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이 생활을 더 이상 할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1년 전에는 내가 몰라서 일을 저질렀지 알고 나니 난감한 생각이 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식한 사람이 일을 잘 저지르는 용기가 넘치는가 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니 어깨에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생활을 접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 하였습니다.
아이는 죽을 쑤든 밥을 짓든 부모가 직접 키워야 하는 일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엄마가 보살펴야 한다는 게 나의 육아 철학입니다.
이런 기조 아래 정리를 하다 보니까 아들도 찬성을 하고 며느리도 집에 들어앉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3월이 되니 큰 아이가 입학을 하게 되고 그의 특기를 살려서 교실 꾸미기를 한다 학부모 모임에 간다 교실 수업 참관을 한다 하면서 하루가 짧을 만큼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 여섯 사람이 모두 다 행복한 선택을 하여서 참 다행입니다.

백낙은 2016-08-25 09:32	안녕하세요. 손주를 돌보셨군요. 저희들 부부도 손녀 셋을 키웠보았습니다만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할아버지에게 배워서 00도 잘하네! 하는 소리를 듣고보니 보람도 느낍니다. 일을 하다가 땀을 흘린 채로 들어와도 품에 안기지요. "할아버지 땀내 난다" 샤워 하고 올께 라고 하면 할아버지가 땀이 나야 "할아버지 냄새가 나지"하며 더 달라 붙었답니다. 지금도 그 아이들은 할아버지 냄새를 그리워 한답니다. 행복한 가정 이루시고 더 좋은 글 많이 양산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석희 2016-08-25 15:15	백선생님! 앞날을 축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주응규 2016-08-26 10:55	수필 서재에 모처럼 들러 좋은 글에 머물러 봄이 행복합니다 모처럼 수필을 쓸려니 맘같지 않습니다 이제 간간히 수필 서재에도 불을 밝히겠습니다 무더운 날 건강하시고 늘 행복을 깅원합니다.

이석희 2016-08-26 14:36	주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맛보는 듯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선생님과 긴 호흡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요.

정찬열 2016-08-26 17:57	이석희 작가님작가서재에서 처음 뵙나 십네요 어린 손주를 돌보는게 옛날시대와 많이 다르고 주위환경이 아이들을 빠르게 변화 시키기 때문 이리라 생각이 듭니다. 저희집사람은 6~7년동안을 외손주가 엄마보다 외할머니 덤으로 외할아버지를 좋아해서 흐뭇했습니다. 작가님의 " 손자 돌보는 일을 놓으며" 동감으로 배독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안 하시고 행운이 충만 하세요^^^

이석희 2016-08-26 23:30	정찬열 작가님! 이달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어요. 아직 초보자라서 많이 서툴답니다. 선배님들께서 많이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필요 이상은 원치 않았다.

박새의 순애보